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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중품상생(中品上生)

극락은 혼자 잘 살기 위함이 아닌
돌아와 중생교화하기 위해 가는 것

“부처님께서 아난과 위제희에게 말씀하셨다. 중품상생(은 다음과 같다.) 만약 어떤 중생이 오계(五戒)와 팔재계(八齋戒)를 받아 지니는 (것은 물론) 모든 계율을 수행하여 오역죄(五逆罪)를 짓지 아니하여 어떠한 악과 허물이 없다고 하자,”

‘관경’ 오역죄 범한 자도 제도
부처님 제도공동체 범위 넓혀
극락서는 부처님 섬기고 예배
사바세계서 어려웠던 수행도

오계를 죽이지 않는 것, 훔치지 않는 것,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 것, 거짓말 하지 않는 것, 술을 마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한 다섯 가지 일을 하지 않겠다는 맹서입니다. 팔재계는 이 오계에 더하여 세 가지를 더 지키는 것입니다. 꽃다발이나 장신구, 향수 등을 착용하거나 바르지 않는 것, 노래하고 춤추지 않으며 노래를 듣지도 않고 춤을 보지도 않는 것, 그리고 높고 큰 침상에 앉거나 눕지 않는 것이 세 가지 추가조항입니다.

오계는 오계라고 하는데, 팔계는 팔재계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서 계의 의미는 원래 재계(齋戒)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목욕재계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몸과 마음을 조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계율의 의미입니다.

계율은 선(線)입니다. 중앙선입니다. 그런데 그 중앙선은 스스로가 지켜야 하는 자기질서입니다. 그러한 자기질서가 없다면 선을 넘고, 마주 달려오는 차와 충돌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계율을 지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한 중앙선이 없다면, 우리 삶의 안전운전은 담보될 수 없습니다.

뒤에 가면 나오겠습니다만, ‘관경’의 매력 중에 하나는 오역죄를 범한 사람도 제도되는 데 있습니다. ‘무량수경’의 제18원에서는 “오직 오역죄와 (대승의) 정법을 비방한 죄를 범한 중생은 (극락왕생할 수 없도록) 제외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 오역죄를 범한 중생까지 제도함으로써 부처님의 제도공동체의 범위를 넓혔다는 데, 이 ‘관경’의 존재이유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미타불의 본원을 곡해해서 마치 악을 범해도 좋은 것으로, 계율은 전혀 안 지켜도 좋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 오역죄인까지도 구제할 수 있는 법문을 마련해 놓았다고 해서,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함부로 짓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런 행위를 ‘본원 과신’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우리는 선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선근(善根)을 (극락왕생을 위하여) 회향함으로써 서방 극락세계에 태어남을 원한다고 하자,” 서방 극락세계에 태어남을 원하는 회향을 왕상회향(往相廻向)이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원하는 것이 곧 회향입니다.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한다면 “행자가 목숨이 마치려 할 때, 아미타불께서 모든 비구 (등)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금색의 빛을 놓으면서 그 사람(=행자)이 있는 곳에 이르러서, ‘괴롭다, 공하다, 무상하다, 무아다’라고 연설해 주시고, 모든 괴로움을 떠나는 출가자를 찬탄해 주신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사바세계에 살면서 고생하는데, 극락에 가서 혼자 즐겁게 살면 무슨 재미인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전혀 정토삼부경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극락에 가는 것은 돌아오기 위해서입니다. 극락에 가는 것을 왕상회향이라 했는데, 극락에서 돌아오는 것은 환상(還相)회향입니다. 그러니 중생들을 놓아두고,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극락에 가는 것이라는 이야기는 편견입니다. 선입견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극락에 가서 우리가 하는 일은 탱자탱자 노는 것도 아니고 놀고먹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을 섬기고 예배하고 공양하고, 부처님으로부터 설법을 듣고 수행하여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사바세계에서 행하기 어려웠던 수행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미타불이 해주시는 법문의 내용이 또 주목할 만합니다. 고, 공, 무상, 무아, 이들은 바로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핵심입니다. 초기불교와 정토불교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 역시 이렇게 증명됩니다.

김호성 동국대 교수 karuna33@dongguk.edu

 [1363호 / 2016년 10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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