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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아미타삼존내영도의 수수께끼 : 그 독창성의 기원과 유통

기자명 주수완

고려 아미타삼존내영도엔 왜 서하불화 흔적이 담겼을까?

▲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아미타삼존내영도, 고려.

아미타내영도란 죽은 사람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해 마중 나오는 아미타불을 표현한 그림이다. 이 도상이 과연 내영도인가 아니면 수기도인가에 대해서는 지난해 연재한 ‘쟁점 한국불교미술사’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여기서는 그중에서도 매우 특출한 작품 한 점을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리움 소장한 아미타삼존내영도
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 등장
관음보살은 극락세계로 타고 갈
연꽃 마련할 만큼 적극적 모습

중국 아닌 서하에 존재한 양식
고려, 실크로드 직접 교류 의미

리움 소장 내영도는 서하불화에
기본을 두고 새 아이디어 더해
파격이라 할 정도 독특한 구성

고려불화의 대부분은 현재 해외 소장이고, 그중에서도 대다수가 일본에 소장되어 있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고려불화는 손에 꼽을 정도이지만, 고려불화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으로 일컬을 수 있는 아미타삼존내영도 한 점이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다. 이 작품은 몇 가지 측면에서 주목되는 부분이 있다.

▲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아미타삼존내영도, 서하시대.

첫째로는 일반적인 아미타삼존내영도에서의 도상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협시하는 것이고, 또 그러한 형식이 ‘무량수경’과 같은 경전의 내용에도 부합하는 것이지만 리움 소장의 내영도에서는 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이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아미타불·관음·지장보살의 삼존구도는 중국에서는 드문 사례이지만 우리나라 고려 후기로부터 조선 전기에 이르는 시기까지는 이와 같은 사례가 많이 나타나고 있어 우리나라 불교도상의 특징으로도 지적될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지에 대해서는 단지 경전에 의거한 세지보살 대신에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지장보살을 교체해서 그린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 아직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두 번째로 특이한 것은 관음보살의 자세이다. 보통의 내영도에서는 보살들이 똑바로 선 모습으로 마중을 나오고 있지만 여기서는 허리를 구부려 죽은 자의 영혼이 극락에 왕생하는 것을 마중하러 나온 듯 묘사된 것이 특이하다. 손에는 커다란 연꽃 대좌가 들려있는데, 마치 극락왕생한 인물에게 이를 선사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는 심청이 연꽃을 타고 용궁에서 지상으로 환생하는 것처럼, 지상에서 생명이 다한 영혼은 연꽃을 타고 극락으로 넘어가 새롭게 태어나는데 이를 ‘연화화생’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이 그림 속 관음보살은 영혼이 극락세계까지 타고 갈 연꽃을 마련하는 장면인 셈이다. 이런 모티프는 이미 고구려의 장천1호분처럼 불교적 표현으로 가득한 무덤에 그려진 벽화 속에서도 비천이 연판을 들고 날아오는 장면이 등장하고 있어서 그 기원이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중간계주(이마) 부분에서 왕생자를 향해 빛을 비추는 아미타불의 모습(리움미술관 소장 불화의 세부).

리움 소장 아미타내영도에서는 비천이 아니라 직접 보살이 이를 선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이라고 하겠는데, 이렇게 영혼을 맞이하는 장면은 중국 불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시도이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작품을 중앙아시아 지역, 지금의 영하 회족자치구와 감숙성 지역에 걸쳐 존재했던 티베트계 탕구트족의 서하시대 불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차이점이 있다면 서하의 작품에서는 협시보살로서 지장보살이 아니라 도상에 철저하게 세지보살이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리움 소장 내영도에서는 관음보살 혼자 연화좌를 헌정하고 있는데 반해 서하본에서는 관음·세지보살이 함께 연화좌를 운반하고 있다는 점 등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왕생할 영혼에게 협시보살이 적극적으로 나서 연꽃을 헌정하는 모티프는 동일하다.

나아가 서하본에 보면 아미타불의 백호에서 빛과 같은 형체가 발산되면서 두 협시보살의 위를 휘감아 돌다가 승려로 보이는 인물에게 마치 빛으로 빨아들이듯이 내리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리움 소장 내영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서하본에서 재미난 것은 빛을 쬔 지상의 인물은 승려였는데, 빛을 따라 빨려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형상은 어린아이의 모습이니 혹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를 통해 화가는 마치 요즘의 SF영화에서 빛으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듯한 개념을 이미 가지고서 이런 장면을 연출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너무나 현대적인 감각이 아닌가! 비록 리움 소장 내영도는 빨려 들어가는 모습은 표현되지 않았지만 본디 같은 의도였을 것이다.

과연 서하와 고려는 어떤 관계에 있었기에 서로 유사한 도상의 불화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일까? 지난 회 글에서도 고려 수월관음도의 도상 역시 중국보다는 서하의 도상에 가깝다는 언급을 했었지만 이들 서하의 독특한 도상들이 중국에서는 보이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고려가 중국을 건너뛰고 실크로드 지역과 직접 교류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허리를 굽힌 관음보살의 광배를 지나며 굴절하고 있는 광선(리움미술관 소장 불화의 세부).

고려를 이곳 서하 및 티베트 지역과 직접 엮어주는 근거는 매우 드물지만 고려말 충선왕(忠宣王, 재위 1298, 복위 1308~1313)이 왕위를 양위한 후 원나라 북경에 머물고 있다가 1320년 정치적 사건으로 티베트에 유배된 일이 있었는데, 아마 이 당시의 일로 이 지역의 문물이 고려에 전해진 것이 아닌가 추정되기도 한다.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1287~1367)은 이 때 충선왕의 유배를 풀기위해 직접 티베트 지역까지 다녀왔고 그때의 감흥을 시로 엮어 ‘서정록’이라는 책도 저술했다고 한다. 물론 서하는 이미 1227년 칭기스칸에 의해 멸망하고 난 다음이었지만 그 문화적 양상은 이어져서 충선왕을 비롯한 고려의 지식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던 것이 아닐까? 이는 중국에서도 이러한 도상의 불화가 발견된다면 간단히 풀릴 문제일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그 먼 거리의 서하와 고려의 영향관계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이렇듯 기본은 서하의 아미타내영도에 두고 있으면서도 리움 소장의 내영도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하고 있다. 독특하게 아미타불의 백호에서 발산된 빛줄기가 서하본에서는 휘감기듯이 돌며 왕생자를 비추고 있는데 이는 흡사 두 협시보살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표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리움 소장본에서는 이 빛이 거침없이 직진으로 왕생자에게 비춰지고 있다. 다만 이 빛은 허리를 굽힌 관음보살의 광배를 지나며 살짝 굴절되면서 왕생자를 비추고 있는데, 이는 마치 빛의 광학적 원리까지도 이해한 듯 하다. 또한 관음보살은 이 빛이 왕생자에게 정확히 비춰질 수 있도록 일부러 허리를 굽힌 것처럼도 보이니 화가는 어쩌면 관음보살이 부처와 중생을 연결해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 극적인 순간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더불어 이 작품은 또 다른 문제를 남겨놓고 있다. 그림 오른쪽 하단의 붉은 구획은 원래 그림이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그려졌는지를 기록하는 화기(畵記)가 들어갈 곳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여기에는 아무런 기록도 쓰여지지 않았다. 이 완벽한 작품에 어쩐 일로 기록이 남겨지지 않았던 것일까? 이에 대해 몇 가지 해석이 시도되었다. 첫째는 이 그림은 미완성이라는 가정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멈췄기 때문에 화기가 쓰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만 현재의 상태를 보면 무엇 하나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완벽해 보인다. 다른 주장은 이 그림을 주문했던 사람이 어떤 이유로 완성된 그림을 끝내 받아가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누군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이 그림을 주문했지만 끝내 완성되기 전에 세상을 뜬 것일까?

▲ 구영 작 ‘청명상하도’에 등장하는 ‘장소불상(裝塑佛像)점’(화면 좌측 가게). 명대. 요녕성박물관 소장.

이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좀 더 흥미롭다. 원래 이런 그림이란 주문생산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고려시대에 와서는 점차 지금의 미술가들처럼 먼저 그려놓고 나중에 판매되는 방식으로 그 개념이 변화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명나라 때의 그림이기는 하지만 구영(仇英, 1494?~1552)이라는 화가가 그린 ‘청명상하도’에는 각종 불상을 판매하는 상점과 서화를 판매하는 상점이 등장하는데, 아마 불화를 파는 상점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화랑인 셈이다. 그리고 이런 가게에서 미리 그려진 불화를 판매할 때 구매자의 요구에 따라 화기를 적어 넣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리움 소장 내영도는 팔리지 않았거나 혹은 누군가 구매를 했더라도 나중에 화기를 적어 넣을 생각으로 가지고만 있다가 결국 공란으로 남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해석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고려시대 예술작품의 생산 프로세스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화가들에게 있어 선제작·후판매 방식은 부담스러운 방식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분명히 팔릴만한 작품을 집중적으로 제작해서 그렸을텐데, 그래서인지 고려불화 중에는 유독 유사한 도상의 그림이 많다. 그럼에도 리움 미술관 소장의 아미타내영도는 그야말로 파격이라 할 만한 독특한 구성을 보이고 있으니 작가는 무척이나 야심차게 이 그림을 세상에 내놓았던 모양이다. 화기가 쓰여 지지 않은 것이 너무 일찍 팔렸기 때문인지 혹은 아예 팔리지 않았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어떤 경우든 결국은 이 작품이 시대를 초월한 작품이었기 때문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주수완 고려대·서울대 강사 indijoo@hanmail.net


[1364호 / 2016년 10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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