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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중품하생(中品下生)

아미타불 국토·법장비구 사십팔원
이야기 듣고 임종하면 바로 왕생

잠깐 복습하겠습니다. ‘관경’에서는 16관이 시작하기 전에 세 가지 복, 즉 삼복(三福)을 말합니다. 첫째는 세복(世福)인데, 세속적인 효와 열 가지 선한 업(十善業)을 닦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계복(戒福)인데, 삼귀의와 모든 계율을 받아서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행복(行福)인데, 보리심을 발하고 대승경전을 읽으면서 다른 수행자로 하여금 (왕생극락하도록) 권진(勸進, 권유)하는 것입니다.karuna33@dongguk.edu

효도하고 인·의 행한 재가자
임종할 때 선지식 설법 들어
서방극락서 태어나 7일 지나
수다원 되고 1소겁 뒤 아라한

삼복이 설해진 뒤, 관경은 16관을 설합니다. 그런데 선도대사는 이 16관을 다시 크게 둘로 나누었습니다. 정선(定善)과 산선(散善)이 그것입니다. 16관 중 1관부터 13관까지는 정선이라 평가하였으며, 14관에서 16관까지는 산선이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삼복은 어디에 속할까요? 정선일까요? 산선일까요?

산선입니다. 14관에서부터 16관까지는 구품(九品)으로 왕생함을 밝힙니다. 3관은 상배(上輩), 중배(中輩), 그리고 하배(下輩)가 행하는 관찰입니다. 삼배는 상품(上品), 중품(中品), 하품(下品)의 삼품이라 말해도 좋습니다. 상배, 중배, 하배, 다른 말로 상품, 중품, 하품에는 다시 각기 상생(上生), 중생(中生), 하생(下生)이 있습니다. 이리하여 구품이 됩니다.

예부터 삼복 역시 산선이라 평가한 것은, 상품과 중품에서 다시 한 번 더 삼복의 실천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품에서 행복이 설해지고, 중품상생과 중품중생에서는 계복이 설해지며, 마지막 중품하생에서 세복이 설해집니다.

“중품하생(은 다음과 같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부모를 효도로써 봉양하고 세속의 인(仁)과 의(義)를 행한다면, 이러한 사람들은 (장차) 목숨이 다하려 할 때 선지식을 만나서 그분이 널리 아미타부처님의 국토(에서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일에 대하여 설하시고, 또한 법장비구의 사십팔원에 대하여 설하시는 것을 (듣게 된다.)”

앞에서는 “만약 중생이~”라고 하였으나, 여기서는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경전에서 선남자선여인이라고 할 때는 출가한 스님이 아니라 출가하지 않은 재가자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우리는 ‘관경’에서 말하는 ‘중생’이 실제로는 재가자를 가리키는 말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은 ‘관경’의 출발 자체가 위제희 부인의 간청을 받아서 부처님이 답한 것임을 생각할 때, 더욱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뒤에 가면, 이제 하품이 설해지는데 이때의 하품중생들은 선업을 닦지 않고 계율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임을 생각하면, ‘관경’이 특히 재가자를 위한 경전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정토불교는 민중불교인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아미타불의 국토와 법장비구의 사십팔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곧 목숨을 다하면, 마치 장사가 팔을 한번 굽혔다가 펼치는 순간(이 그렇게 짧듯이) 곧 서방의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된다.”

순식간에 왕생합니다. 불교의 윤회설에 따르면, 사람은 죽으면 중음신(中陰身)이 되었다가 다시 49일 안에 새로운 몸을 받는다 합니다. 그래서 사십구재를 지내는 것이지요. 하지만 염불하는 사람은 윤회하지 않습니다. 왕생하기 때문입니다.

임종 시에 선지식으로부터 아미타불의 국토와 법장비구의 사십팔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빨리 왕생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물며 평소에 염불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서방의 극락세계에 태어나서 “7일을 지나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만나서는 법문을 듣고서 환희하여 수다원과를 얻는다. (수다원이 되어서) 1소겁을 지나면 아라한이 된다. 이를 중품하생이라 말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중품상생, 중품중생, 그리고 중품상생에 대한 말씀을 듣고서 생각하는 것을 “중배의 왕생에 대한 생각(中輩生想)이라 이름하며, 제15관이라 이름한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은 올바른 관찰이고, 이와 달리 관찰하는 것은 삿된 관찰이다.”

김호성 동국대 교수 karuna33@dongguk.edu

[1367호 / 2016년 11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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