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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나무의 겨울맞이

들판의 나무도 나뭇잎을 보내야 할 때를 안다

나뭇잎이 알록달록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이면 유치원의 야외활동도 그만큼 잦아진다. 유아들은 탁 트인 공간에서 몸을 마음껏 움직이는 활동을 매우 좋아해서 일단 교실을 벗어나면 맘껏 소리도 지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등 신난다. 그러나 교사는 아이들처럼 바깥놀이를 마냥 즐길 수는 없다. 왜냐면 사고의 대부분이 야외학습시간에 발생함으로 여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아교육에서 야외학습은 매우 중요한 영역이라 제외할 수 없다. 교실에서 배울 수 없는 교육의 한계를 바깥놀이가 보충해주기 때문이다. 

자연 교재 삼아 야외 학습 진행
친구들과 나눠 쓰는 행복 배워
인간이 줄 수 없는 교훈 체험

야외학습의 교재는 주로 자연이 대상이다. 노란 은행잎이 유난히 고운 11월 초 들꽃반 김 선생님은 유치원 뒤편의 나지막한 산중턱을 20여명의 원아들과 함께 탐색하기로 하였다. 산중턱에 오른 아이들은 각자가 원하는 나무를 선택하여 ‘OOO 나무’라고 자기이름을 종이에 적어 걸거나 나뭇가지를 모아 겨울채비를 위한 개미집 짓기를 하며 신이 났다. 선생님과 함께 들꽃에 이름 찾아주기도 즐거운 놀이였다. “나뭇잎이 가을이 되면 왜 붉거나, 노랗게 물들어 떨어질까요”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은 “나무가 쉬고 싶어 나뭇잎을 버려요.” “땅이 추울까봐 이불을 만들어 덮어주려고요” 그럴듯한 상상을 쏟아냈다. “정말 멋진 생각을 했구나. 날씨가 추워지면 나무는 낙엽으로 잎을 떨어뜨려 겨울추위에 견디며 살아갈 수 있단다. 그리고 나뭇잎은 흙을 덮어 땅속 생명들도 보호하고 더불어 살 수 있지.”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아이들은 내 것에 욕심내기보다 친구들과 나누며 쓸 때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배우게 된다.

이에 관한 부처님의 말씀이 ‘맛지마 니까야’의 ‘비유법의 품’에 나온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그대들에게 속하지 않은 것을 버려라. 그대들이 그것을 버리면, 그대들에게 영원한 이익과 행복이 될 것이다.”

내 것이 아니거든 과감히 버리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의 탐욕적인 속성을 혜안으로 파악하시고 그 어리석음에 연민을 느껴 말씀하신 게 아닐까 한다. 

필자는 11월, 만 30년을 거주했던 경주를 떠나 고향으로 이사를 왔다. 묵은 짐을 정리하며 그간 내가 이렇게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었구나를 알고 스스로도 놀라웠다.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30년을 쌓아두었던 소중했던 물건이 갑자기 귀찮은 존재로 비치기 시작한 것은 아들의 설득이 크게 작용했다. “엄마, 오래된 낡은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1년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필요한 다른 사람이 쓰도록 주는 것도 보시예요.” 그 말 따라 아끼던 책은 대학 도서관에, 옷은 아파트 분리수거장으로 각각 용도에 따라 물건을 정리하고 나니 3분의 2는 버린 것 같다. 그런데 웬걸 마음이 이처럼 가볍다니…. 그간 나를 짓눌렀던 마음이 뻥 뚫린 듯 시원하고 편안했다. 버리는데서 오는 해방감 ‘바로 이것을 부처님께서 지적하셨구나’라고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사랑은 상실이며 단념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남에게 주어버렸을 때 가장 중요하다”는 어느 명언처럼 들판의 나무도 나뭇잎을 보내야 할 때를 알고, 풀잎도 생존방식을 알며 순응한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참으로 욕심 많고 무지하구나’를 집을 옮기면서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공의 진리에서 보면, 인간은 본래 채우기보다 비우면서 살 때 더욱 행복할 수 있음을 잠시 잊고 살았는데 자연은 이를 늘 실천하고 있었다. 내 자녀가 가끔은 좁은 교실을 벗어나 교실 밖 세상에 눈과 귀를 기울이도록 돕자. 인간이 줄 수 없는 삶의 교훈과 자연의 섭리를 배울 수 있으니 결코 낭비가 아닌 이익이며 행복일 것이다. 

황옥자 동국대 명예교수 hoj@dongguk.ac.kr

[1370호 / 2016년 1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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