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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중앙승가대 비구니수행관장 오인 스님

경전의 프리즘으로 불교문화를 연구하는 시대 연다

▲ 중앙승가대 비구니수행관장 오인 스님은 불교문화 연구가 여전히 학계의 변방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전과 신심의 안목으로 불교문화를 바라보는 것은 출가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이라고 강조한다.

“불교문화를 전공한다 하면 ‘여기저기 놀러 다니니 좋겠네요’라는 분들도 있었어요. 문화라고 하면 학문의 영역이 아닌, 취미나 놀이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학계에서조차 전공분야로는 적절하지 않다며 만류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적멸보궁에 대한 관심에서 
불교문화 연구로 넓혀나가
“시은 있어 가능했던 배움
교육·연구로 회향해야”

삼보 근간한 ‘삼원론’으로  
불교문화 분류 새 기준 제시


“미술 관점선 불상도 조각품
경전 근거한 배경·사상으로
유·무형불교문화 해석해야”

중앙승가대 비구니수행관장 오인(吾印) 스님은 2005년 ‘동아시아에 있어서 오대산 문수신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스님은 불교문화의 새로운 분류 기준을 제시한 논문 ‘불교문화 삼원론’을 시작으로 ‘한국비구니선원의 수행과 생활문화’ ‘불교문화와 수행’ ‘가람의 한국민속적 요소와 의미’ 등 불교문화에 집중하며 민속과의 접점을 찾는 방향으로 연구 영역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2014년엔 사찰과 스님들이 1년간 어떤 세시풍속을 행하며 생활했는가를 집대성한 저서 ‘불교세시풍속’을 출간하며 이러한 연구 활동에 또 하나의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불교학이나, 불교미술 등 불교학계의 일반적인 주류와 비교해 볼 때 불교문화는 여전히 학계의 변방이다. 스님은 “변변치 못한 소장학자의 목소리”라며 주류가 아님을 자임하지만 “불교의 모든 문화현상과 대상들은 경전에 의거한 불교적 관점으로 해석할 때 그 가치를 올바로 드러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목소리에 자못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1981년 수덕사 견성암서 지정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오인 스님은 10여년간 한 철도 결제에 빠진 적 없는 수좌였다. ‘화두정진 않으면 중도 아니다’고 생각할 만큼 ‘외골수 수좌’였던 스님이 학문에 눈을 돌린 것은 세납 서른이 훌쩍 넘은 후였다.

▲뒤늦게 학문에 뜻을 둔 계기는.
“일본 도쿄대학에 유학하던 사형 소운 스님(동명대 교수) 주선으로 일본 조동종 사찰에서 생활할 기회가 있었다. 출가 후 줄곧 우리나라에서만 지내왔는데 일본서 머무는 동안 한국불교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불교에 대해 좀 더 알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좌가 공부를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대학입시 과정에 체력장이 있었다. 스님이 체육복 입고 뜀박질하는 것은 도저히 못하겠더라. 그래서 체력장 안 봐도 되는 승가대에 입학했다. 그 정도니 생각 한 자락은 늘 선방에 가 있었다. 유학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박사 합격증을 받아든 순간 ‘이제 다시 걸망 메고 선방가기는 틀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는 학문에 열중하게 된 것 같다”

▲여전히 아쉬움을 갖고 있나.
“출가자가 생사문제 해결이라는 본래 목적을 떠날 수는 없다. 더구나 내 연구가 교학이나 선학과는 거리가 있지 않은가.”

간화선수행의 중요성에 대한 신념은 역설적이게도 수행 관련 분야 전공을 기피하는 원인이 됐다. “선 수행은 실참이지 학문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불교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소소한 흥미와 관심에서 출발했다. 학인 시절 불교사학연구소에서 공부하며 최태선 교수의 영향으로 막연히 고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고 일본 교토에 있는 북쿄대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는 고고학연구 과정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불교문화과정을 택했다. 처음 생각했던 전공은 아니었지만 수업은 더없이 흥미로웠다. 특히 다양한 전시회와 현장답사 등은 문화와 문화재를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열어주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독특한 사리신앙인 ‘적멸보궁’에 대한 관심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사리만 모시는 적멸보궁은 중국, 일본서 찾아볼 수 없는 형태였다. 그 연구가 오대산 문수신앙으로 확대되며 연구의 주제가 됐다.

▲박사논문 연구주제가 불교문화와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전혀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문수신앙 연구의 출발점이 적멸보궁이라는 독특한 우리나라의 신앙형태에 대한 관심이기 때문이다. 박사논문에서는 깊게 다루지 못했지만 그런 형태가 나오게 된 사회,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연구가 될 것이다.”

▲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나.
“학교서 소임을 맡고 있어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삼국유사’를 찬찬히 다시 살펴보고 있다. 박사논문을 쓰며 선불교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야나기다 세이잔 선생님으로부터 ‘문수신앙의 연원은 신라’라는 말씀을 들었고 박사논문에서 그 부분을 다루기도 했다. ‘삼국유사’에서 새로운 문고리가 될 말한 대목들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생애 동안 이 문제를 풀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확고부동한 문헌이나 증거가 없다면 소장학자의 새로운 시각과 주장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는 힘들다.”

‘소장학자의 새로운 시각과 주장’의 대표적 시도 가운데 또 하나가 ‘불교문화의 삼원론’이었다. 2010년 불교학연구회에서 발표한 이 논문에서 스님은 “불교문화에 대한 종래의 연구방법에서 탈피해 새로운 시각으로 불교문화에 접근할 것”을 제안했다. 즉 불교문화의 형성과 분류 기준을 불교의 근간인 불법승 삼보에서 출발할 것을 제시했다. 논문에서는 삼보가 각각의 독립된 문화층을 형성하고 있는 동시에 다른 문화층과 겹쳐지며 또 다른 문화층을 형성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불문화층, 법문화층, 승문화층을 토대로 이들이 중첩되는 불법, 법승, 승불의 문화층과 불법승(삼보)문화층의 총 7개로 불교문화를 분류해야 한다고 스님은 주장했다. 특히 삼보문화층은 삼원론의 가장 중심으로 불교문화의 총집합이다. 불교의례와 불교의식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불상’은 부처님의 화신 또는 응신이므로 불문화에 해당한다. 기존의 안목으로는 문화재, 혹은 조각품이지만 스님의 생각은 다르다. 불상은 예배의 대상이지 감상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예술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인 스님은 “기존의 불교문화는 조각, 회화, 음악, 문학, 공예 등을 기준으로 문화의 영역을 분류했지만, 삼원론은 삼보에서 출발하는 7개의 문화층을 기준으로 각각의 문화층을 다시 조각, 회화, 음악, 문학, 공예, 기타로 세분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불교문화를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한 수행과 전법의 총체적인 표현이자 이를 통해 형성된 정신적, 형태적 표현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정의였다.

▲삼원론은 어디서 착안한 기준인가.
“순수한 창작(?)이다. 일본에서 귀국 후 강의를 시작했는데 변변한 불교문화 개론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 불교문화 개론서를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작업이었다. 그런데 6개월 정도 쓴 원고가 저장돼 있던 메모리장치를 잃어버렸다. 어이없는 실수였지만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어 불교문화에 대한 뼈대라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 불교문화 분류기준이라는 기초 작업을 시도했다. 불교문화를 정리하는 데 있어 기존 연구자들의 일반적인 시각을 그대로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존 시각에 문제가 있기 때문인가.
“일본서 불교문화를 공부하는 동안 특히 미술 관련 학자들의 수업을 들으면서 의심이 커졌다. 양식이 어떻고 도상학이 어떻다는 식의 이야기만 하는데 그건 아니다 싶었다. 어떤 형태의 불상과 불화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불교사상과 경전에 의거해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모든 불교문화의 현상과 결과물들 또한 경전에 의거해, 그 가르침과 사상을 기준으로 살펴보고 해석하는 것이 스님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삼원론 발표 후 반응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반론을 펼 만큼 연구가 깊지 못했던 탓도 있겠지만 관심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

▲전공자 양성도 필요할 것 같다.
“불교문화를 연구하는 학자, 특히 스님은 여전히 만지 않다. 중앙승가대 불교문화재학과가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한다. 이 가운데 대학원에 진학하는 전공자들이 생기면 인적자원이 풍부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학부수업에서도 학인스님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삼원론에 대한 강의를 매년 하고 있다.”

함께 연구할 동료학자의 부족도 아쉽지만 연구를 이끌어줄 선배학자의 공백은 더욱 크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앞선 이의 발자취가 없다 보니 연구는 자칫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모양새가 되기도 한다.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이런저런 분야를 건드리며 서로의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지난 10여년이었다. 오인 스님은 “최태선 교수님의 조언과 도움이 길 찾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며 감사의 말을 꼭 전해달라고 당부한다. 그렇게 걸어온 10여년, 스님의 연구는 최근 불교와 민속의 접점에서 하나 둘 결실을 맺고 있다.

▲ 2005년 3월 일본 북쿄대학서 박사학위를 받은 날 지도교수인 이케미초류 교수와 함께 한 오인 스님.

▲‘불교세시풍속’을 집필한  이유는.
“사월초파일에 관한 자료를 찾기 위해 ‘사고전서(四庫全書)’를 살펴보다 사월초파일에 행하는 ‘결연두(結緣豆)’에 대해 알게 됐다. 들어본 적도 없는 풍속이었는데 절집안에 이런 풍속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지낸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이런 것을 찾는 것이 흥미롭기도 했다. 그래서 아예 1년간의 세시풍속을 정리해보자고 시작한 작업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범위가 넓었을 것 같다.
“‘사고전서’ 자체가 매우 방대한 문헌이다. 다행히 대만에서 데이터베이스화 해놓은 자료가 있어 검색이 가능했다. 자료의 원문을 함께 수록했는데 한문 실력이 부족하다보니 상세한 부분까지 점검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조선왕조실록’이나 ‘팔만대장경’도 데이터를 활용해 최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노력했다.”

▲책에서 부족하다 느끼는 부분은.
“불교 관련이 아니라도 세시풍속을 연구한 논문은 많은 편이다. 그 부분을 상세히 다루지 못했다. 개정증보판을 내게 된다면 논문들을 조사해 불교세시풍속과 관련된 자료들을 보강하고 싶다. 내가 못하더라도 불교세시풍속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자들이 있다면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014년 간행된 ‘불교세시풍속’이 기본 자료의 역할을 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책에서는 신라의 탑돌이 법회인 복회, 고려시대 때 독경하며 개경 성안을 돌던 경행, 성도재일에도 불상을 목욕시키던 욕불 등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불교계의 풍속과 의식에 관한 옛 기록들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풍속이 불교무형문화유산의 영역을 넓혀나갈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연구가 주목된다.

하지만 아쉬움도 적지 않다. 절집안의 세시풍속에 대한 기억이 이미 상당부분 희미해져 있기 때문이다.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점도 불교세시풍속에 대한 연구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이유다. 하지만 스님은 “지금이라도 기억하고 있는 세시풍속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특히 이런 불교세시풍속을 찾아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활용하는 등 현대적인 접목을 시도한다면 불교문화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인 스님의 관심은 이밖에도 다양하다. 2014년 중앙승가대 불교학연구원 세미나서 발표한 논문 ‘가람의 한국민속적 요소와 의미’에서 양산 통도사와 밀양 표충사에 남아있는 가람각을 통해 불교와 민간신앙의 접점을 조명했다. 지난해에는 ‘불탑과 방편사리-경전을 중심으로’ 논문을 통해 사리신앙의 배경을, 올해에는 ‘백제 행기가 일본 정토종에 미친 영향’을 발표하며 한국불교가 일본불교에 미친 영향으로 연구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여전히 연구 방향이 다채롭다.
“불교무형문화재, 불교문화는 여전히 미답지나 다를 바 없다. 연구해야 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불교문화에 대한 연구가 학계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선학이나 교학은 어떻게 보면 순수 학문이다. 쉽게 말해 돈과 관련된 영역이 아니다. 그런데 문화는 돈과 관련되는 부분이 많다. 문화재 지정이나 보수비가 그렇고 불사로 이어지면 연관성이 더욱 짙어진다. 이 분야를 공부하려는 사람들도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보다는 이런 측면에서 도움이 될 만한 지식을 구하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학문으로서의 가치가 평가절하 되는 이유다.”

▲변방의 학문을 지속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대학자나 교수가 되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학시절부터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강단에 서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강단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내가 받은 시은에 대한 회향이다. 출가자로서 부처님 회상에 살며 종단의 테두리 안에서 정재를 사용한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그 회향이 이뤄져야 한다. 훌륭한 교육자는 못 되더라도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어떻게 하면 쉽게 전해 좋은 시각을 갖게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그 고민의 과정이 내게 큰 공부가 되었다.”

▲어떤 공부가 되었나.
“교와 선이 둘이 아니라는 말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출가자로서 생사문제 해결을 위한 수행을 떠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학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마음을 알기 위해 참선을 하라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마음은 ‘이런 것이다’ ‘이렇게 수행해라’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논리와 힘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을 불교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그 힘이 교학에 있다. 교와 선이 둘이 아니라는 것은 서로 보완해주는 관계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간화선수행에 대한 생각은 변함없지만 그렇다고 학문의 길을 후회하거나 그 가치를 낮게 보는 것은 아니다.”

스님은 웃음이 많다. 또렷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마친 스님은 곧바로 환한 웃음으로 묵직해진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석남사 비구니스님들 관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고 처음 출가라는 것을 알았던 일, 수덕사서 출가한 후에도 은사스님의 법명이 ‘은사’인줄 알았던 일 등을 술술 풀어놓는다. 고되다는 행자생활조차 “하루 종일 행자들끼리 재잘거리느라 재밌기만 했다”는 오인 스님에게서는 여전히 젊은이 같은 활기와 왕성한 호기심이 느껴진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한 번 뒤집어 보는 것이 내 학문의 출발”이라는 오인 스님은 “기회가 된다면 문화인류학을 공부하고 싶다. 그리스문화에 대한 관심도 있다. 불교 안에 그리스문화의 영향도 많이 보이는데 단순히 역사학, 미술사학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불교의 관점, 경전에 근거해 접근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며 눈을 반짝인다. 10년, 20년 그리고 그 후가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지금껏 건축, 미술, 음악 등 일반적인 문화의 테두리 속에서 분석되고 평가되던 불교유형문화유산을 불교의 눈으로 다시 보려는 노력이 그때 즈음이면 결실을 맺지 않을까. 미답지, 혹은 불모지라 불리는 불교무형문화유산을 발굴하는 노력은 앞으로 또 어떤 결실을 맺을지 궁금해진다. “주류학문뿐 아니라 다양한 불교학 연구에 관심과 지원이 이뤄지는 풍토가 만들어지기 바란다”는 스님의 당부가 제법 묵직하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드러나지 않는 성실함…대중과의 소통 넓히길

내가 본 오인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본각 스님=2013년 중앙승가대 비구니수행관장 소임을 맡으며 애를 많이 썼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접목시키려 노력했다. 수행관장은 학인스님들과 형제처럼 가까이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힘든 자리다. 또한 그만큼 소임을 맡은 사람은 원칙과 정의를 지켜야 한다. 오인 스님은 자신의 역할을 묵묵하고 성실하게 해낸다. 쉬워 보이지만 깊은 내공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전공분야 또한 매우 중요하다. 가볍게 여기기 쉬운 것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은 문화를 바라보는 안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학자의 뚝심과 깐깐한 소신의 결과다. 앞으로가 더욱 많이 기대 된다.

불교방송 진행자 원영 스님=일본 유학시절 알게 됐다. 특히 조계종 교육아사리 소임을 맡게 되면서 더욱 스님과 가까워졌다. 늘 밝고 쾌활한 성격이어서 주변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 하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뚜렷한 신념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오대산 문수신앙 등을 연구하면서 현장답사를 통해 느낀 점 등을 이야기할 때는 스님에게 있어 학문은 문자의 틀을 넘어서 신심을 키우고 출가자의 길을 다져나가는 또 하나의 수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의 밝은 성격과 견고한 신심, 학문에 대한 소신 등은 묘한 매력을 불러온다. 활동 영역을 넓혀 대중과 소통하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든다면 불교문화 연구에 대한 관심을 넓히고 포교에도 많은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스님의 모습을 보고 싶다.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오인 스님이 연구하는 불교문화사는 최근 들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분야다. 아직까지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 스님이 많지 않았다. 스님으로서 이 부분에 대한 연구를 계속 넓혀 간다면 새로운 학문 성과들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걱정은 스님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다는 점이다. 학인시절부터 매우 성실하게 공부하는 스님이었고 일본 유학시절 때도 건강을 챙기기보다는 공부에 매진했을 것이다. 또 연구에 있어서도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향이다 보니 대충 넘어가지 못한다. 비구니수행관장 소임을 맡고부터는 건강을 돌볼 틈이 더욱 없는 것 같다. 건강이 뒷받침돼야 좋은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다. 건강을 잘 챙겼으면 좋겠다.

[1370호 / 2016년 1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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