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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선(禪)과 위빠사나

기자명 김정빈

선, 시대 흐름에 응해 변해야

선(禪)은 경전에는 보이지 않는 독특한 수행법이다. 그렇다면 왜 중국인들은 경전에 없는 선을 창안한 것일까? 그것은 중국에 소개된 경전들이 수많은 종류의 삼매를 통한 깨달음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삼매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빠사나, 자신 관하는 혜수행
화두선은 타물 집중해 정 얻어
선은 사마타의 장점 가진 수행
위빠사나와 결합해 재창조되길

그래서 중국 불교인들은 삼매를 얻는 방법론을 찾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천태지자(天台智者) 대사였다. 천태 대사는 ‘법화경’을 불교 경전의 정점에 놓는 교판을 제시하는 한편 ‘지관(止觀) 수행법’을 확립하였다. 그렇긴 해도 ‘지적인 이해(聞慧·思慧)’를 ‘수행을 통한 체험(修慧)’으로 바꾸기 위해 제안된 천태 대사의 지관 수행법은 구체성이 부족했다.

천태 대사가 제안한 수행법 중 삼매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수행법은 ‘비행비좌(非行非坐) 삼매’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수행법은 현재 널리 알려진 위빠사나 명상법과 비슷한 점이 있다. 그렇긴 하지만 구체성에서도 그렇고 수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현상에 대한 이해와 그 현상들이 어떻게 삼매로 이어지는지, 삼매를 통해 어떻게 깨달음이 성취되는지에 대한 상세한 ‘안내 지도(地圖)’가 제안되어 있지는 않다.

그 한계를 극복해낸 수행법이 선이다. 선은 화두(공안)를 참구한다는 보다 구체적인 수행법을 제안하였고, 선이 보여주는 안내 지도를 따라 여행함으로써 많은 수행자들이 찬란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성과가 불교를 강화하는 한편 약화시키는 면도 있었다는 점이다. 불교의 핵심 사상은 연기법인데, 선은 불교인들을 연기법 쪽으로 끌어들이기보다는 멀어지게 하는 면이 있었다.

불교는 연기법에 대한 통찰로서의 지혜(반야)를 소중히 여긴다. 그 지혜는 조견오온(照見五蘊), 즉 자신을 관찰함으로써만 성취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선은 화두라는 타물(화두)을 수행 주제로 수행된다. 이는 선 수행자가 자신의 심신을 관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선 수행을 한다고 해도 연기법적인 지혜를 얻을 수는 없다.

또한 선은 한 가지 주제를 붙들기 때문에 심신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을 바라봄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없고(지혜는 두 가지 이상의 대상에 대한 비교를 통해 얻어진다), 화두가 정지태적이라는 점에서도 진행태를 관찰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없다(지혜는 선행(先行)의 인(因)에 대한 후행(後行)에 과(果)에 대한 관찰로써 얻어진다).

그렇다고는 해도 선이 훌륭한 수행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선은 사마타의 하나로 분류할 수 있는 수행법이며, 따라서 우리는 선을 수행함으로써 사마타적인 결과, 즉 고요함·평화·행복을 기대할 수 있고, 기대해야 한다. 거꾸로 말해서 우리는 선에서 선적인 깨달음을 기대할 수는 있어도 연기법적인 깨달음을 기대할 수는 없다.

선에는 ‘성성적적(惺惺寂寂)’이라는 개념이 있다. ‘적적’은 사마타적인 고요함(定)을 의미하고, ‘성성’은 위빠사나적인 통찰(慧)을 의미할 수 있다. 다만, 선의 ‘성성’은 밝게 깨어 있음을 의미할 뿐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신을 관찰하는 것까지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온전한 위빠사나는 아니며, 이는 선을 통해 연기법적인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한 단계가 더 필요함을 의미한다.

남방불교 전통에는 위빠사나만을 수행하는 수행자와,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병행하여 수행하는 수행자, 사마타를 먼저 수행한 다음 그로써 얻은 선정의 힘을 위빠사나로 전환하여 깨달음을 성취하고자 하는 수행자가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만일 선 수행자가 화두를 참구하여 성성하게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심신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경우 연기법적인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선은 부처님에 의해 제시된 ‘유일도(唯一道, 본고 44, 45회분 참조)’로서의 위빠사나 명상의 세밀한 내용이 잘 알려진 상황에 응하여 역동적으로 변해야만 한다. 그때 선은 불교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꽃다운 주역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371호 / 2016년 1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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