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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새해의 바람 [끝]

기자명 성원 스님

“아상, 인상의 굴레 내려놓고 싶습니다”

▲ 일러스트=강병호

오늘은 찬바람이 기세 차게 붑니다. 어제 동지는 여름 같은 날로 보냈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모두들 팥죽공양을 할 때쯤엔 여름 장맛비같이 비가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하루가 지나기 바쁘게 동짓날 긴 밤이 날이 길어지는 걸 시샘이라도 하듯이 차가움을 몰고 왔습니다. 정말 해가 바뀌는 것 같습니다.

생매장 2000만 닭 천도위해
기도하며 살았으면 좋을 듯
1% 가볍게 여기는 그들까지
모두 용해해 마음 편했으면
더 자유로운 영혼 일심발원

지난번 편지글에 마지막 이라는 말에 흠칫 놀랐습니다. 처음 글을 시작할 때 무엇을 쓸 것인가보다는 무슨 사연들을 전해 받게 될까 훈훈한 생각을 오래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 경전을 대하시면서 얻는 생생한 부처님의 이야기와 지식인의 다양한 식견을 들으면서 참 마음 흐뭇했습니다.

온통 부처님과 불교, 그 문화에 투신해서 살아가는 스님들보다 더 열심히 붓다의 향기를 채취하고 전하시는 불교 지식인의 뚜렷한 모습을 보여주셔서 너무나 좋았습니다. 한편으로 오히려 제가 전하는 이야기들이 더 세속적인 인간사가 아니었나 자주 되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저는 늘 생으로 먹는 콩보다 삶은 콩이 더 좋고, 삶은 콩보다 한겨울 띄운 메주로 담근 된장과 간장을 더 좋아합니다. 제 삶 전부를 불법의 바다에 던져 메주같이 띄워지기 바라며 살고 싶습니다. 부처님의 생생한 가르침을 직설로 전해 듣는 즐거움을 삭이고 삭혀서 우리 이웃에게 오늘의 언어로 스며들게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제게서 잘 삭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삭았다 생각하고 전하는 말들은 구수한 된장의 묵은 맛은 고사하고 풋 익은 청국장 같은 고약한 냄새만 풍기는 것 같아서 늘 부끄러움만 더하기 일쑤였던 것 같습니다.

출가 직후 원당암에서 행자생활을 할 때 종정을 지내고 입적하신 혜암 큰스님께서 우리 행자들에게 “너그들은 예불을 하고 경을 읽어도 도둑질하는 것이고, 도인은 고함을 치고 방귀를 뀌어도 법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이 말을 들은 행자들이 각자의 의견을 내었습니다. 한 행자는 더 이상 배울게 없다고 떠났고, 한 행자는 스님께서 자신이 예불에 참석 안 하니 그러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말이 어찌나 황망하던지 망치로 머리통을 맞은 듯 멍했습니다.

그 후로 긴긴날이 흘렀습니다. 우리들이 학인시절 해인사에 약간의 소란이 있어서 큰스님께서 방장직위를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돌아온 설날에 세배 갔었습니다. 여전히 장좌불와하시는 방에 이불도 베게도 없이 단출히 앉아 계셨는데 자신을 몰아내는 데 일조한 녀석들이 와서 세배를 하겠다니 얼마나 가소로워 보였겠습니까! 그 때 스님께서는 “어여 방장을 안 하니 너무 좋다. 중은 그런 거 하면 공부 못하는 기여!” 하시면서 조금도 개의치 아니하시고 강정과 과자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아! 그때 문득 사량(思量)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혼자 송구해한 일들이 큰스님 앞에서는 한줄기 아지랑이 같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는 생각의 양으로 다다를 수 없는 곳이 있고, 그곳에 계시는 분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 사람들을 생각으로 들추어보려는 마음을 잘 갖지 않으려 자주 노력하는 습관을 겨우 갖게 되었습니다.

훗날 스님께서 종정이 되시어 종단을 빛내주셔서 우리들의 작은 송구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1년이라는 시간이 마치 접혀진 12폭 병풍처럼 접히어 내게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처음 남의 마음을 훔치는 도둑질로 시작하였는데 이제 마지막까지 그 버릇의 찌꺼기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보니 훔친 마음들을 어서 돌려라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시 받은 음식도 다 소화시키지 못할 얕은 복덕으로 살아가면서 훔쳐서까지 차지한다면 제가 나서서 가지 않아도 지옥이 스스로 먼저 알고 제게 다가올 것만 같습니다.

처음 가졌던 기대에 넘치게 소식을 전해 받았는데 저는 전하는 마음이 너무 얕았던 것만 같아서 마음 무겁습니다. 제주오시는 길이 글 쓰는데 방해가 될까 안 오셨다는 정성이 벅찹니다.

이제 글을 내려놓으셨으니 한번 다녀가도록 하세요. 혹여나 마저 쓰지 못하신 사연은 모슬포 세찬 바람 맞으며 일렁이는 파도에 치솟으며 유영하는 돌고래 떼들을 보면서 말없는 말로 전해보고 싶습니다.

며칠만 지나면 새해를 맞아야 합니다. 아직도 정국은 어수선하기만 하고 우리들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온 국민들이 휘청일 정도로 놀란 일들을 1% 미만이라고 가볍게 여기는 사람의 한해도 세월은 앗아가 버릴 것입니다. 1%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제주도민의 일 년 살림살이 예산이 전체 예산의 1%인 4조원입니다. 제주도민 전체의 한해 살림살이 정도밖에 안되는데 뭘 그리 큰 잘못이냐고 하면 도대체 어쩌라는 것입니까? 5000만 국민의 1%는 50만 명입니다. 50만 명 정도의 일인데 뭘 그렇게 따지느냐는 식이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그래도 다행히 세월은 공평하여 아파하는 우리들의 시간도 마감해 주고, 한없이 날뛰는 그 사람들의 날개짓 위에서도 종지부를 찍어줍니다.

인간과 다른 동물의 유전자 정보의 차이는 너무나 미미하다고 합니다. 특히 인종간 게놈의 차이는 거의 없다는 게 정설입니다. 그토록 미워해야 하는 사람과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의 차이라는 게 정말 거의 없다는 말입니다. 그 미세한 차이를 두고 죽도록 미워하고, 죽도록 사랑하며 우리들은 또 한해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벌써 2600년전 붓다께서는 세상의 그 누구도 아무런 차이가 없이 다 똑같다고 하였습니다. 과학은 이제사 겨우 그 일부를 알아냈을 뿐인데 놀라움은 너무나 큰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새해에는 우리 모두 아상(我相), 인상(人相)의 굴레를 내려놓고 우리들을 위해 생매장 당해야 했던 2천만 닭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 모두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세존의 가르침이 공허한 메아리의 울림이 되지 않도록 마음 다지며 살고 싶습니다. 그 넓은 마음에 1%를 가벼이 여기는 못난 사람들조차 새해에는 다 용해시켜버리고 우리 모두 마음 편안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새해에는 더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습니다. 이 사회로부터, 관습의 굴레로부터, 무엇보다도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습니다. 그리고 함께 편지글 나누는 시간으로부터 더 자유로워지시기를 심축드립니다.
비 내리는 동지를 뒤로하고 늘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는 사문 드림.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373호 / 2016년 1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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