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세기 신라는 정치·사회·경제·문화의 전반에 걸쳐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었다. 특히 22대 지증마립간대(500~514)부터 23대 법흥왕대(514~540)의 6세기 전반은 연맹왕국으로부터 중앙집권적 왕국으로 전환되는 하나의 획을 긋는 시기였다. 그러한 전기를 마련한 중요한 역사적 사실로서 그 동안 주목된 것은 지증마립간 4년(503) ‘사로’에서 ‘신라’로의 국명 변경과 ‘마립간’ 대신 ‘왕’의 칭호 사용, 6년(505) 주군제(州郡制)의 실시, 그리고 법흥왕 7년(520) 율령의 반포, 14년(527) 불교의 공인 등의 사건이
새벽에 눈을 떠서 108배부터 시작하는 하루는 항상 새롭다. ‘금강경’ 독송과 다라니, 도반의 소개로 시작한 ‘법화경’ 사경까지 이어가고 있는 요즘이다. 지금까지 항상 해오던 수행에 절수행이 더해지고 마지막에는 사경까지 하면서 마무리를 하다 보니 1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다양한 수행을 경험한 덕분일까. 수행마다 가치와 장·단점을 경험하게 된다. 보통 독송이나 주력은 수행을 하면서 수마가 찾아올 때가 많다. 그런데 절을 하면 오히려 의식이 맑아짐을 느낀다. 예전에는 아침에 일과수행을 못하면 저녁에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요즘은 아
가을이 깊었다. 몇 년의 가을을 잊고 지났는데 새삼 올해 가을 이야기가 잦으니 사람들이 내게 가을 탄다고 한다. 계절은 매년 어김없이 내 곁을 지나가지만 내가 느끼는 계절의 흥취는 완전 별개인 것 같다.바쁜 삶을 살다 보니 실은 가을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제주에 살다 보면 가을을 잊어버리기 쉽다. 남도의 낙엽은 우리 곁에 깊게 다가오지 않는다. 사실 한라산 고산지역이 아니면 낙엽다운 낙엽을 보기 힘들다. 제주 가을의 흥취는 노오랗게 익어 수확을 기다리는 밀감을 보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생일이 가을 초입이라 매년 한 번씩 나
그날도 변함없이 딸을 카시트에 태우고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청소를 마치고 친구의 일정이 궁금해서 전화를 하니 절에 있다고 했다. 언니를 따라 동네 안의 작은 절에 있다는 친구의 말에 문득 나도 절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음력 10월 초하루였다. 마침 친구도 대중법회를 본 이후 점심공양 중이라며 당장 올 수 있으면 오라고 제안했다.새벽에 꾼 꿈 생각이 나기도 해서 3개월도 채 안된 막내딸을 업고 절 입구에 들어섰다. 순간 너무 놀랐다. ‘꿈속에서 본 곳이 여기였구나.’ 그날 무심코 친구에게 건 그 전화 한 통화로 부처
“양복을 입으라니요? 대통령에 당선된다 해도 양복 입을 일 없습니다. 저는 승려입니다!”조계종 통합종단이 출범(1962.4) 했지만 정화운동(1954) 이후 9년에 걸친 비구·대처 간의 분규 후유증은 도량 곳곳에 남아 있었다. 동국대도 그러했다.1956년 7월 이후 동국대는 당연직 총장을 제외하면 ‘임시·관선이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는 동국대 자체운영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됐음을 방증한다. 불교재산관리법 공포(1962.5.30) 직후 유수의 사찰 대부분이 조계종으로 속속 등록됐지만 동국대는 대처승이 장악하고 있어 녹록지 않았
지난 주말은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날이었다. 우리 서울노인복지센터는 60여명의 직원들과 3000여명의 어르신들이 매일 이용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이라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지난 주말 한 직원이 결혼식을 하고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그들을 축복하기 전 센터에 잠시 들러 못다한 일을 하고 있는데 한 직원이 슬픈 얼굴로 “센터에서 18년간 봉사 해주신 어르신이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얼마 전 서울노인영화제에 어르신영상자서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초반 즈음 신라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전반에 걸쳐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었다. 17대 나물마립간(365〜402)부터 22대 지증마립간(500〜514)의 시기로서, 부족국가의 전통을 계승한 ‘사로국’으로부터 중앙집권적 영역국가인 ‘신라’로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그 중간의 과도기에 해당된다. 나물마립간 때부터 김 씨가 왕위세습권을 독점하게 되고, 19대 눌지마립간 때에 왕위의 부자상속제를 확립하였다. 그리고 지증마립간 4년(503) 마침내 신라라는 국명과 중국식의 왕호를 독점적으로 사용하기에 이르러 왕권은 크게
아내도 나의 사경 노트를 보고 다시 사경을 하며 불교 공부를 하고 있다. 함께 불교대학을 다니지는 못했지만, 항상 가까이에서 나의 공부를 응원해 주었고, 같이 부처님의 감로수와 같고 여의주 같은 가르침을 사유하는 최고의 도반이 되어 주었다. 이렇게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이 그의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고맙기 이를 데 없다.수업을 받을 때는 경전 책에 연필로 줄을 치며 한 구절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중요한 문구나 구절은 괄호를 치면서…. 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면 기억에서 잊힐까봐 배웠던 부분을 사경하면서 복습을 하다
수행자의 삶이라 항상 평온하면 좋겠지만, ‘주지’라는 소임이 있어 하루하루가 매우 분주합니다. 몹시 지칠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찾아가는 멋진 벗이 있습니다. 그는 언제 어느 때나 저를 최우선으로 맞아주며, 가장 편안하게 마음 쉬도록 해 줍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나의 삶에서 나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벗입니다. 그는 바로 ‘바다’입니다.바다를 바라보면, 어머니 품 안에 안긴 것처럼 안락합니다. 햇빛을 받으며 반짝이는 각양각색의 깊고 얕은 푸른색은 경이롭습니다. 파도는 아득한 수평선에서 쉼 없이 다가오며 바위를 감싸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유마거사를 문병하러 비아리 내성에 가셨을 때, 유마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잘 오셨습니다, 문수사리여. 오지 않고 오셨으며 보지 않고 봅니다’라고 말씀하시니, 문수보살이 답하시기를, ‘그렇습니다, 거사여. 만약 와 버렸다면 다시는 오지 못하며 가 버렸다면 다시는 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오는 사람은 어디에서 오는 바가 없으며 가는 사람은 이를 곳이 없으며, 볼 것이 있는 사람은 다시는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유마경’에 나오는 내용이다. 위의 구절처럼 불교 공부를 많이 했다고
봉은사에서 명상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반년 정도 지났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마음챙김 명상을 지도하고 있는데요. 제가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동시에 배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배우기 위해 오신 분들에게 무언가 전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공부도 하게 되고 평소에 수련을 할 때에도 일어나는 현상들을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보게 됩니다. 교육 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주로 학업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명상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지도하는 과정이 다소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와 현장에서 하는 명상에는 엄연히 격차가 존재하기
“마음은 뇌의 작용에 불과하다!”마음 통찰이 부족했던 서양 과학자들이 동양 수행인들에게 던진 일언이다. 그러나 기능성 자기공명 영상(FMRI. Func 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이라 불리는 뇌사진 촬영 기술에 의해 그 선언은 산산조각 났다. 뇌사진을 통해 입증된 결과는 간단명료했다. 불교수행이 뇌의 전두엽 두께와 건강, 심지어 선심소(善心所)와 관련된 뇌의 영역을 활성화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뇌세포가 형성되고 나면 바뀌지 않는다는 서양의 관념을 깨버리는 결과였고, “마음이 뇌를 바꾼다”는 가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