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생후르츠’라는 독립영화를 지인들과 함께 보게 되었다. 영화는 슈이치와 히데코라는 노부부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찍은 것이었는데 이 노부부는 일생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면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연이 덜 훼손되길 바라면서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쭉 뻗은 길을 선호하고 편리한 아파트를 더 좋아하는 요즘, 노부부는 바람 길과 주변의 환경에 거슬리지 않게 집을 짓고 무차별한 개발로 헐벗은 나지막한 동산에 나무를 심어 지금은 주민들의 쉼터로 변모시켜 많은 사람들이 건강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성도일입니다. 해마다 성도재일이 되면 견성오도에 대해 말을 합니다. 견성오도는 견성성불과 같은 말입니다. 견성이 성불이고 오도입니다. 성품이라고 하면 마음입니다.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서 그 마음을 바로 보면 성불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소소영영(昭昭靈靈)하게 듣고 있는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왜 견성을 못하는가. 지도에 부족함이 있는가, 받아들이는 사람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가. 달마선법(達磨禪法)에도 ‘견성오도’라고 해서 “마음이
신라에서는 23대 법흥왕 22년(535) ‘성법흥대왕(聖法興大王)’이라는 왕호를 칭하면서 국왕의 초월자적 위상을 과시하였다. 그보다 11년 전의 법흥왕 11년(524)에 탁부라는 소속부를 관칭하고, 동시에 ‘모즉지매금왕(牟卽智寐錦王)’이라고 호칭하였던 것에 비하면 국왕의 위상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모즉지라는 법흥왕의 본래 이름이 ‘삼국사기’에서는 원종(原宗), ‘양서(梁書)’나 ‘책부원구(冊府元龜)’ 등의 중국 역사서에서는 모진(募秦)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모즉지와 모진은 같은 말에 대한 한자 표
울산 해남사의 ‘금강경 대정진 법회’. 지난해 신임 주지로 취임하신 혜원 스님께서는 “금강경만을 주제로 정진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물론 나도 나름 오랜 기간 절에 다녔지만 이 같은 정진은 처음이었다.시작할 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매일 ‘금강경’ 독송을 했다. 그런데 19일째 되던 날, 스님께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무척 아팠다. 그리고 왜 그렇게도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읽으면서 나 역시 힘들었지만 무척 재미있고 즐겁고 소중한 경험이었다.막막한 두려움과 설렘으로 시작한 ‘금
새해 첫날, 바다와 산에서 찍은 아름다운 해돋이 사진을 여러 장 받았습니다. 산과 바다 어느 곳이든, 새로운 희망으로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집니다.우리 절에서는 삼천배 기도로 새해를 시작했습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의 태양이라도 사진 속 태양의 모습이 모두 다른 것처럼, 같은 삼천배도 각각 모두가 다릅니다.가장 나이 어린 기도자는 열 살인 명진이입니다. 작년에 천배밖에 못했다며 아쉬워하더니 올해는 큰 결심을 한 모양입니다. 주변에 신경 쓰지 않고, 힘들다는 말도 없이 스님에게 배운 자세 그대로 흐트러짐 없이 삼천배를 했습
불교방송에 오기 전에 대각사 법당에 앉아계신 부처님께 “오늘 불자님들에게 어떻게 법을 설하면 좋겠습니까?”하고 여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웃으면서 하시는 말씀이 “나처럼 법을 설하라”라고 조언해 주시더군요. 원고 없이 법을 설하라는 주문이셨습니다. 부처님 재세 시 부처님의 법석은 항상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나무 아래 부처님께서 앉아서 수행하신 그곳이 바로 법석이었으며 수행자들이나 불자들은 부처님께서 계신 바로 그곳에서 법을 청하고 수행에 관한 지혜에 대해 여쭈었습니다. 어디서든 부처님의 법석이 펼쳐졌던 것입니다.오늘 인연 공덕으
울산에 살면서 통도사 울산포교당 해남사를 다닌 지는 어느덧 20여년의 인연이 되었다. 누구나 그렇듯 나에게도 처음 절은 생소한 곳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 보면 계기를 만나게 되는 것처럼 나 역시 이런저런 상황에 부딪히면서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기도하게 되면서 절은 점차 친숙한 곳으로 바뀌어 갔다. 부처님께 귀의하는 삶을 살겠다고 발원한 것도 우연한 계기에서 시작됐다. 물론 단순히 부처님을 무조건 믿는다고 해서 마음먹은 대로 뜻하는 대로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그래도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생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제 입춘(立春)도 얼마 남지 않았으며 한여름인 하지(夏至)까지 낮은 계속 길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굳이 뉴스나 주변에서 소식을 전하지 않아도 낮과 밤의 길이와 체감온도만으로도 계절의 변화와 해가 달라짐을 알 수 있습니다. 늘 그랬듯이 계절은 변하고 시간은 흘러갑니다. 내 밖의 세상이 변화무쌍하게 모습을 바꾸듯이 나의 내면세계와 삶의 모습도 점차 변화해 나갈 것입니다. 이러한 안팎의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 생각하게 됩니다.한 해를 마무리하고 시작하는 시점에서 삶의 전
신라에서는 23대 법흥왕 14년(527) 이차돈의 순교라는 희생을 치른 이후에 비로소 불교가 공인될 수 있었다. 이 해는 고구려에 대항하여 동맹관계를 맺고 있던 백제가 국가부흥을 이루면서 웅천주에 양나라의 무제(武帝)를 위해 사찰을 세우고 대통사(大通寺)로 이름한 때였다. ‘대통’이라는 사찰 이름은 양의 무제가 동태사(同泰寺)에 사신(捨身)하였다가 환궁하여 새로운 연호로 선포한 것이었다. 이로써 신라에서의 불교 공인은 법흥왕 8년(521) 양의 승려 원표(元表)의 사신 파견, 그리고 백제와 양에서 일어난 불교 흥륭의 사건들과도 무관
사실 자주했다. 그동안 108배는 몸에 익숙한 수행이기도 했다. 하지만 1000배를 하루 만에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1000배를 올리는 동안 온 몸에서 땀이 비가 오듯이 흘러내렸고 다리는 후들거려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부처님의 보살핌과 가족들의 화합 덕분에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뭐랄까. 1000배를 마친 내 마음은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으로 가득 차올랐다.그래서다. 한 번 더 도전했다. 지난해 연말 두 번째 1000배 정진법회에 동참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그 과정은 힘들고 어려웠지만, 성심성의껏 임하며 10
누군가에게 목요일은 한 주의 마감으로 바쁜 날일 수 있다.적어도 내게 목요일은, 행복한 요일이다. 바쁜 직장생활에도 목요일만큼은 불교대학으로 공부하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기초반이 끝나고 경전반에 등록할 때만 해도 남편은 직장일도 바쁘고 힘든데 공부까지 한다고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목요일 오전이 되면 지각하겠다며 먼저 전화해주고, 힘들어서 빠지고 싶다고 넋두리를 할 때면 오히려 독려해주는 남편이 요즘은 너무 고마울 뿐이다.내가 불교대학에 다닌 후부터 우리 부부의 신심은 더욱 깊어졌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주말마다
눈물이 난다. 이 말이 어떻게 들리느냐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다. 터져 나는 슬픔일 수도 있고, 가슴 벅차 말을 잊을 정도의 기쁨일 수도 있다.젊은 시절 인류의 대량 학살사를 접하고 모든 의식이 일순간 마비가 왔다.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오랜 진통 끝에 조금은 생뚱할지 모르겠지만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을 거부하고 감성적 낭만주의를 접하면서 그 답을 찾았다. 오랫동안 감정적으로 살지 말고 이성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고, 배워왔다. 하지만 차디찬 이성은 경직된 사회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할 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