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동무들과 대화중에 ‘매우’ ‘아주’라는 말 대신에 ‘겁나게 ~하다.’는 표현을 많이 썼었다. 한창 커가는 어린 아이 눈에는 주변의 많은 일들이 새롭고 대단해 보였기에 자기의 생각이나 경험을 벗어난 경우 즉 일상보다 많이 벗어났다 싶을 때 이런 표현을 흔히 사용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이런 표현은 마음이 크고 넓어져가는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라면서 세상에 익숙해질수록 주변 일들을 그저 그런 상례로 받아들이게 되어 이런 표현이 적어지고 어른 되어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잊고 있던 표현이 몇 해 전부터 주위에서 들려오더니 요즘은 뉴스를 대할 때면 내 입에서도 맴돌기 시작했다. ‘겁나게 밀어붙이네’‘겁나게 서두르네’‘겁나게 편가르네’‘겁나게 휘두르
우리 산천은 사시사철 어느 모습이나 부처님 몸인 국토신(國土身) 아님이 없지만 온 마음을 토해낸 듯한 가을 산야의 모습은 더욱 그러함을 새기게 한다. 이렇듯 장엄한 가을 산야에서 부처님을 볼 수 있으면 그 뿐, 더 이상 무슨 언설이 필요할까 싶다. 그래서 통도사에서는 해마다 한 해를 정성스레 갈무리하고 새해와 모두를 향해 회향하고자 화엄산림법회를 갖는다. 선재동자가 물러섬 없는 구도행을 통해 53선지식을 만나 법을 구하듯 53분의 법사를 통해 모든 존재들이 불성의 현현으로 각각이면서도 한 둥우리로 어우러지는 절대적 존재임을 일깨우는 화엄세계를 만나게 된다. 이런 뜻 깊은 법회인 탓에 해마다 원근 각지에서 참 많은 불자님들이 동참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도 하고 나 자신도 다시금 신심을 더하기도 하지만 더러
예전 시골에선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면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땔감을 마련해 쌓아놓은 것이 큰일이었다. 지금은 숲들이 다 우거지고 나무를 때는 집도 드물기에 나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지만 그 시절에는 산에 나무도 적었을 뿐더러 시골에선 거의 나무를 연료로 사용했기에 힘든 일이었다. 근 십여 리까지 가서 해 와야 했고, 간혹 면의 삼림계원에게 들키면 크게 혼이 나기도 하면서 겨우살이로 땔감을 준비해야 했기에 연탄 때는 집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이제 절 집에서조차 이런 일은 옛일로 묻혔다. 예전에는 스님들이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서 동안거를 준비했다고 하는데 이젠 산중에서도 거의 석유나 전기보일러, 가스를 사용하기에 나뭇짐 멜 일이 없다. 그저 더러 선방에 장작을 때는 곳이 있고 통도사 같은 경우처럼
언젠가 단풍을 보면서 중물들이기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단풍이 고운 빛을 띠는 것은 새로이 빛깔을 만들어 내서가 아니라 잎에서 푸른 색소가 감소하기 때문인 것처럼 중물 들이는 것 또한 이와 같겠구나 싶었다. 십칠팔년 전, 계를 받고 그저 젊은 혈기로 포교하러 나서겠다고 하자 은사 스님께서 만류하시면서 포교가 시급하긴 하지만 대중 생활을 통해 장판 때를 묻히며 중물을 들이고 해도 늦지 않다 하시며 큰절에 있는 강원으로 보내실 때는 중물 들인다는 것을 새롭게 무엇을 배워 채워 가는 것만으로 알았었다. 그래서 하판일 때는 계행을 잘 지키고 사미율의와 초심에 나오는 말씀 그리고 어른 스님들과 강원 상판 스님들이 일러주는 말씀에 따라 여러 가지 습의를 익히고 그에 따라 몸가짐 하는 것만을 중물 들이는 것으로 알았
한 동안 비 소식이 없어 청류동 계곡이 바짝 잦아드는 것을 보며 비를 고대했는데 모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려 반가운 날이다. 그리고 가뭄에 비 같은 스님을 만나고 온 날이라 더욱 기쁜 날이었다. 송광사 강원에 처음 입방한 날, 바로 윗반인 스님에게서 느껴지던 기운은 신선하고 차분하고 다듬어졌으면서도 생각도 몸도 틀져 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이었다. 어쩌다 일 년에 한 두번 기약 없이 만나보면 스님은 늘 그렇게 길을 가는 모습으로 안주하려는 내게 무언의 가르침을 보여 주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스님도 내년이면 쉰 고개에 들어서는데 여전한 모습을 보여준다다. 그런 스님을 만나고 온 날은 연꽃에 향을 맡은 듯 기분이 좋고 한 동안의 양식을 얻은 듯하다. “初發心時便正覺(초발심시변정각)”이란 말을 늘 되새긴다 하여도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면서 짙은 빛깔과 풍성한 잎새를 자랑하던 낙엽목(落葉木)들이 서서히 본지풍광을 드러내고 있다. 한 여름 자신의 위용을 한껏 드러내주고 햇빛을 받아들여 자신을 성장시키며 가려주었던 한 몸이었건만 본래 자리로 돌려보냄은 하나 둘 모든 것을 떨어내고 적나라한 맨 몸이 되어야만 다가오는 혹한을 극복해 낼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혹한을 견뎌내기 위해 이런 아픔을 감내하듯이 우리도 이제 그런 이별을 해야 한다. 겨울을 앞 둔 나무에게 삶의 지혜를 배워야 점점 다가오는 어려움을 버텨낼 수 있다. 실속은 없이 허풍스럽고 그럴듯한 폼새와 말로 자신을 내세우는 것, 유명상표로 휘감는 것, 학력이나 이력만으로 자신을 커버하려는 것 등의 허울은 찬바람을 칼날 삼아 베어내고 스스로 속임
하늘은 높아 가고 마음은 깊어 가네꽃이 진 자리마다열매를 키워 행복한 나무여, 바람이여,슬프지 않아도 안으로 고여 오는 눈물은 그리움 때문인가가을이 오면어머니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리고멀리 있는 친구가 보고 싶고 죄없이 눈이 맑았던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고 싶네친구여너와 나의 사이에도말보다는 소리 없이강이 흐르네이제는 우리 더욱 고독해져야겠구나 남은 시간 아껴 쓰며 언젠가 떠날 채비를서서히 해야겠구나잎이 질 때마다한 웅큼의 시(詩)들을 쏟아 내는나무여, 바람이여영원을 향한 그리움이 어느새 감기 기운처럼 스며드는 가을하늘은 높아 가고기도는 깊어 가네 이해인 수녀님의 ‘가을 노래’라는 시다. 시처럼 가을은 그리움을 담아낸다. 그래서인지 새벽 예불을 마치고 나오며 올려다 본 하늘의 투명한 보석처럼 빛나는 별에, 나
국가 고위직에 임명되기 전 열리는 인사청문회를 보다보면 거의 매번 착잡함을 느끼게 된다. 그 분들에게 주로 이슈가 되는 일들을 보면 당시에 사회적 통념으론 ‘뭐 그럴 수도 있지’하며 그리 크게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는 것들도 많이 있다. 그 만큼 우리 사회가 형식에 있어서는 많이 투명해졌고 인정은 예민하고 각박해 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일에 있어 과정의 중요함과 인과(因果)의 역연함도 새삼 느껴본다. 지난날 우리 사회는 가난이라는 문제 해결에 지나치게 급급하다보니 기본적인 일을 생략하거나 무시하고 때에 따라선 큰 잘못도 더 큰 목표를 내세워 묻어두기 일쑤였다. 그것이 결국은 외환과 카드대란 그리고 중소기업의 몰락과 빈부의 심각한 양극화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면서 우리도 과정에
“허공에 숨어도, 바다 속에 숨어도 산중의 굴속에 숨어도 이 세상에서 죽음을 피할 곳은 아무 데도 없다.”『법구경』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이다. 그리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호흡 간에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음이 자신과는 무관한 듯 도외시하고 있거나 행여 피할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젊은 사람일수록 아직 자신과는 거리가 있는 아주 먼 훗날에 일인 것처럼 여긴다. 그러다보니 이 순간 이곳에서의 삶에 최선을 다해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머뭇대고 미루고 무관심하게 그럭저럭 피동적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만일 비구가 죽음의 생각을 많이 닦아 익히면 반드시 복된 이익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를 토대로 이번 여름 수련법회에는 ‘
절 안을 오가다보면 어느 때는 답례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인사를 나누지만 가장 반가운 인사는 아이들과 나누는 인사다. 어머니가 하는 양을 따라 고사리 손을 모아 땅에 머리를 박을까 싶게 인사를 하는 꼬마의 모습을 접할 때는 그 천진스러움에 우리 마음마저 깨끗해진다. 그리고 합장 인사를 건네고는 수줍은 듯 달려가는 초등학교 꼬마 아이들을 대할 때면 맑은 희망을 본다. 그리고 간혹 TV나 영화에서 본 것을 흉내 내어 한손만을 가슴에 대고 장난기를 섞어 ‘아미~타불’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래도 인연 종자를 심었구나’ 싶다. 이런 아이들을 법회 시간에도 함께 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통도사의 경우 매달 적지 않은 금액을 후원하고 차로 모셔오고 지도법사와 선생님들이 온갖 정성을 들이는데도 아이들은 그저 스물 댓 명
다른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는 이념적 갈등이 심했고, 요즘도 그 갈등이 심상치 않다. 서로를 어느 한쪽으로 단정 지어 놓고는 딱지를 붙인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부류다 싶으면 배척하고 매우 심한 말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부류로 몰린 사람들 사이에서도 분파를 짓고 원결을 맺는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글로벌 시대를 달고 산다. 마치 작은 배를 타고 함께 큰 강을 건너가야할 사람들이 일시 나와 호흡이 맞지 않는다 해서 노를 뺏고 강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다른 배에 있는 사람을 불러대는 형국이다. 장자 측양편(則陽篇)에 나오는 와각지쟁(蝸角之爭)이란 고사성어가 있다.나라 간에 배신이 난무했던 중국 춘추 전국시대에 양나라 혜왕과 제나라 위왕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기로 굳게 약속을 맺었는데, 제나라
우리 사회는 사회적 신뢰의 붕괴 때문에 성숙한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은 이미 오래전인지라 말할 것도 없지만 정부에 이어 법원마저도 판결에 있어 그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또 교단에 대한 신뢰 상실은 우리 사회 지성의 산실이라는 대학 교단에까지 미치고 있다. 그리고 믿음에 있어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종교는 다분히 상업화되고 지나친 정치 성향을 내세운다. 초연히 객관자적 입장을 견지하며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속세와 그저 하나가 되어 물들어가고 있다. 이렇듯 우리 사회 어느 한곳도 온전한 신뢰를 얻지 못해 불안한 가운데 눈앞의 이익만을 우선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연 우리 사회는 미래나 이웃은 외면한 채 겉모습과 쾌락과 향락에 물든 퇴폐 사회가 되고 있다. 모든 사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