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신문은 정론과 직설을 중시하는 불교계의 중요한 언론이지요. 그렇기에 위기의 순간에 더욱 빛이 났습니다. 종단이 위기에 처했을 때 사부대중의 의견을 수렴하고, 불자들이 가야 할 바른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왔지요. 1994년 개혁종단이 탄생할 때나 최근 가톨릭 교단에서 광화문 일대를 성지화하려는 계획을 저지하고 있는 모습에서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김순석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이 최근 법보신문을 교도소·군법당·병원법당·공공기관 등에 보내는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했다. 김 위원은 법보신문과의 인연도 깊다. 2006년 5월
현직 서울대 교수이자 한국역사연구회장으로 한국근현대사의 권위자로 꼽히는 학자가 유명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1950년대 범죄를 저지르고, 군대나 절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주장했다. 뚜렷한 근거 없이 1950년대 출가한 다수 스님들을 범죄자로 내몬 셈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3프로 TV-경제의 신과 함께’라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박정희 정권의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종필(JP)에 대한 과거사 가운데 그가 1950년대 장교가 아닌 사병으로 처음 입대한 사실을 소개하면서 “1950년대 범죄
팔공총림 방장 의현 스님과의 대담은 4월11일 동화사 동별당에서 진행됐다. 때마침 이날 세간의 관심은 온통 동화사에 쏠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구로 귀향한 후 첫 나들이로 동화사를 찾은 것이다. 언론들은 박 전 대통령이 그동안 각별한 친분을 유지해 온 의현 스님이 팔공총림 동화사 방장으로 추대된 것을 축하하고 봄기운이 가득한 동화사에서 의현 스님과 차담을 나누기 위해서라고 전했다. 이날 대담은 자연스레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시작됐다. 스님은 박 전 대통령과의 첫 인연이 2012년 말 제18대 대통령 선거 무렵이었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친일 밀정들을 척살하고, 국내에 잠입해 군자금을 모아 상해임시정부에 보냈던 해인사 구세오 스님의 독립운동 활동이 드러났다. 구세오 스님은 뚜렷한 독립운동 활동 이력을 가지고 있지만 독립운동사에서 크게 조명받지 못한 인물이다. 송명호 문화재청 전 근대문화재 전문위원은 최근 1920년대 신문자료를 분석하다 구세오 스님에 대한 기록을 법보신문에 보내왔다. 이 신문자료는 2019년 해인사성보박물관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에 참여한 해인사 스님들을 소개하면서 공개됐지만, 지금까지 구세오 스님에 대한 행적은 전혀 연구
20세기 근현대 한국 사찰의 풍경과 인물, 중요했던 행사와 일상 등 글이나 말로는 재현할 수 없는 순간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사진자료집이 출간됐다.‘사진으로 읽는 근현대 한국불교 1, 2’는 동국대 불교학술원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가 진행한 ‘한국의 근대불교문화 사진 아카이브 구축 프로젝트(책임연구 황순일. 이하 아카이브 프로젝트)’ 결과물의 일환이다.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불교계에서 촬영된 사진들을 수집, 분류해 총 209장을 수록했다.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2017년 한국연구재단의 토대연구 지원사업으로 선정돼
20세기 근현대 한국 사찰의 풍경과 인물, 중요했던 행사의 모습과 사찰의 일상 등 글이나 말로는 재현할 수 없는 순간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사진자료집이 출간됐다.‘사진으로 읽는 근현대 한국불교 1, 2’는 동국대 불교학술원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가 진행한 ‘한국의 근대불교문화 사진 아카이브 구축 프로젝트(책임연구 황순일. 이하 아카이브 프로젝트)’ 결과물의 일환이다.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불교계에서 촬영된 사진들을 수집, 분류해 총 209장을 수록했다.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2017년 한국연구재단의 토대연구 지원
60~70세를 장수로 여기던 시절은 이제 아득한 옛이야기다. 의학 발달로 오늘날 한국인 기대수명은 83세를 넘겼다. ‘100세 시대’ 도래가 머지않았다는 전망들이 나온다. 학계도 일찌감치 고령화 시대를 맞았다. 20~30년 전에는 환갑이나 고희를 축하하는 자리가 많았다. 제자들이 주도해 기념논총을 만들어 헌정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관행을 찾아보기 어렵다. 논문을 게재할 수 있는 학술지가 흔해지기도 했지만 환갑이나 고희의 특별함이 현격히 줄어든 이유가 크다.그럼에도 대학 강단을 떠난 학자들이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모습
만해 스님(1879~1944)의 삶과 사상을 기억하고 계승하려는 노력은 오랜 세월 이어져왔다. 만해 스님을 주제로 다룬 논문과 저술도 2000여편에 이르고, 만해학회와 만해연구소 등 학술연구단체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매년 만해문학상, 만해백일장, 만해축전 등이 진행 중이며 백담사, 만해마을, 남한산성, 홍성에 각각 만해박물관이 건립됐다. 이렇듯 전 국민적 차원에서 한 인물의 사상을 계승·실천하고 있음은 만해 스님을 제외하고 다른 사례를 찾기 어렵다.근현대불교사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는 만해 스님이 근현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역사
통도사 극락선원 경봉 스님(鏡峰, 1892~1982)은 한국 근현대불교사에서 가장 많은 일화를 남긴 큰스님 중 한 분이다. 세수 91세, 법랍 77세로 장수도 했지만 생전에 수많은 사람에게 감로법을 베풀고 깨우침을 줬기 때문이다.이 책은 “인생은 연극이요, 이 세상은 연극무대가 아니더냐! 사바세계를 무대 삼아 연극 한바탕 멋있게 잘해야 한다”던 경봉 스님의 일화집이다. 스님의 대표법문을 시작으로 일화 73가지가 실려 있다. 유발상좌인 김현준 불교신행연구원장이 2020년 말부터 경봉문도회 도움을 받아 엮은 것으로 월간 ‘법공양’에 9
박경훈(본명 박경준) 전 동국역경원 편찬부장이 미국 LA현지시각 3월2일 오후 4시경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고인은 1950년대 불교계와 인연을 맺은 후 스님으로, 언론인으로, 역경위원으로 활동하며 현대 한국불교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고인이 법보신문 주필을 맡던 1997년 4월10일 동출 스님과 대담내용을 수록한 ‘(22인의 증언을 통해 본) 근현대불교사’(선우도량출판부, 2002) 등에 따르면 1934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생후 3주일 만에 세례를 받을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던 고인은 불교를 미신이나 무속으로
“설봉선사는 현사사비를 일컬어 재래인(再來人)이라고 했다. 불보살이 중생제도를 위해 다시 온 사람이라는 의미다. 윤창화 대표가 꼭 그렇다. 그는 자신의 서원과 불보살님의 가피로 일생을 불교출판을 위해 산 재래인이다.”(시인·선어록 번역가 석지현 스님)“나의 외우(畏友)인 그는 출판인으로서 불자로서 인간으로서 참으로 성실하고 진지하고 선한 사람이다.”(홍사성 ‘불교평론’ 주간)“단순히 책을 펴내는 수준을 넘어 뛰어난 안목으로 필자들 저술 작업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근대 불교출판인의 모범이 안진호 스님이라면 이후 현대 불교출판인의 넘버
세월의 무대 속에서 일어나는 한 개인의 삶이나 나아가 개인이 모여서 이루어진 세상을 보면, 그 속에는 무수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런 지난 ‘무수한 일들’을 사람들은 ‘기록’해 왔는데, ‘기록하는 행위’에는 반드시 기록하는 주체가 있게 마련이다. 물론 그 주최는 개인일 수도 있고 집단일 수도 있다.필자가 종학(宗學)을 논하는 이번 글에서는 ‘기록하는 행위’에 주목하고자 한다. 인간의 행위는 크게 세 방면으로 드러난다. 육체를 매개로 한 행위, 언어나 문자를 매개로 한 행위, 사유를 매개로 한 행위,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이런 행위가
왜곡 논란이 있는 제주 근현대불교사 쟁점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려 이목이 집중됐다.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이사장 효덕·원장 혜달 스님)가 10월16일 제주 휘슬락호텔 세미나장에서 ‘근대제주불교 역사 그리고 그 진실을 찾다’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는 그간 한국불교사에서 크게 조명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최근 역사왜곡 논란이 있는 제주 근대불교 쟁점을 집중 탐색하고자 마련됐다.첫 주제발표에 나선 이성수 동국대 박사(불교신문 기자)는 일제강점기 언론(매일신보·동아일보·조선일보·조선중앙일보) 보도에 나타난 봉려관 스님의 새 행
성철 스님은 근현대불교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해인사 방장과 조계종 종정을 지내서만은 아니다. 출재가자를 막론하고 수많은 이들이 성철 스님의 영향으로 화두를 든다. 매일 능엄주를 외고 힘겨운 삼천배 정진을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귀를 기울인다.성철 스님은 그 자체로 마르지 않는 깊은 우물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에서부터 만화, 소설, 평전은 물론 국내외 학술논문과 박사학위 주제로도 자주 다뤄진다. 작가와 연구자들의 눈에 비춰지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불퇴전의 수행자로, 가야산 호랑이로, 자비의 화신으로, 출중한 사상가로
최근 대법원이 순천 선암사 차 체험관 철거 소송에서 1·2심 판결을 뒤집고 파기환송을 결정한 것과 관련해 조계종 중앙종회가 사법부를 겨냥해 강한 유감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중앙종회는 “상식 이하의 판결을 내린 김상환 대법관의 즉각적인 사퇴”를 촉구했다.중앙종회 의장단 및 상임분과위원장은 2월24일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정체성을 부정한 것일 뿐 아니라 한국불교를 또 다시 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시대착오적인 결정”이라고 비판했다.중앙종회는 성명에서 “대법원은 최고의 법원으로 정치적 중립성과 국민의 기본권 보호,
불교계 지성문화를 선도하는 법보신문이 올해도 참신한 연재와 심층보도를 선보인다. 불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깊은 통찰력을 갖춘 스님, 학자, 작가, 사회활동가, 예술인 등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인사들이 필진으로 나선다. 이들은 교학, 문화재, 역사, 교육, 신행, 수행 등 관련 글을 통해 독자들의 안목을 크게 높여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논설위원과 시론 필진들의 따스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은 독자들을 정견과 정사유 길로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창간 초기부터 독자들에게 불교사상 고취와 교리 이해를 높이는데 앞장서 온 법보신문이 올해는
한국 근현대불교사에는 불교를 위해 헌신한 수많은 고승이 있었다. 그 고승들의 고뇌와 행적은 기록과 증언에 의해 해석되고 불교사에 편입된다. 1967년 4월24일 발간된 ‘동산대종사 석영첩(錫影帖)’은 근대불교사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기존 어록집, 행장기에 사진집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으며, 법어·일기 등을 수록해 고승의 일상을 세세히 보여줬다. 또 고승 법어집과 문집 발간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근현대불교사 이해를 넓힐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김광식 동국대 문화학술원 특임교수가 최근 ‘항도부산’(제40호)에 게재한 ‘
2019년 11월11일, 9명의 스님들이 들어선 상월선원 철문이 굳게 닫혔다. “여기 이 자리에서 내 몸은 말라버려도 좋다, 가죽과 뼈와 살이 녹아버려도 좋다”며 “어느 세상에서도 얻기 어려운 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이 자리에서 죽어도 결코 일어서지 않으리라” 서원한 스님들이었다. 그 누구라도 해제 전에 비상문을 박차고 나간다면 조계종을 떠나겠다고 선언한 스님들이었다.위례 천막결사는 숱한 화제를 낳았다. 그럴 만 했다. 불교증흥을 발원한 역대 선지식들이 사찰에서 결사를 결행한 적은 있었지만 도심 벌판에 천막법당을 짓고 결사를 단행한
“나 이제 갈란다. 너무 오래 사바에 있었어. 그리고 다시 통도사에 와야지.”1965년 10월3일 한낮, 근현대 통도사의 중흥조로 널리 알려진 구하 스님(九河, 1872~1965)은 출가 이후 삶의 대부분을 보낸 영축산 통도사로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열반에 들었다. 세수 94세, 법랍 81세였다.통도사 역사에서 구하 스님이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스님은 통도사 주지를 14년간 맡으면서 통도사의 면모를 일신했다. 특히 통도사와 통도사 산내 암자의 재산을 일원화 해 회계를 투명하게 했으며 이렇게 모인 정재를 바탕으로 통도사가
“너와 내가 하나요. 만물중생이 다 한 몸이요. 세계만방 모든 나라가 하나다. 이 세상 삼라만상이 한 송이 꽃이니라.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조선 땅이 세계일화의 중심이 된다.”35년간의 일제 억압에서 벗어나 나라를 되찾은 다음날, 가야산 남쪽 끝자락인 덕숭산에 머물던 수행자들도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다. 독립 소식에 만공 스님(滿空, 1871~1946)은 상좌에게 붓과 무궁화꽃 한 송이를 가져오라 일렀다. 상좌가 그것들을 가져오자 만공 스님은 붓을 잡고 무궁화 꽃잎에 정성스럽게 휘호했다.‘세계일화(世界一花)’어느 제자가 고개를 갸웃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