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 스님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저는 총림에 처음 왔습니다. 잘 지도해 주십시오.” 조주 스님이 묻는다. “그대는 아침에 죽공양을 하였는가?” “예.” “그러면 발우를 씻게나!” 무문 스님이 말했다. “조주 스님이 입을 열어 쓸개를 보이고, 심장과 간장까지 드러내 보였다.” 그래도 감지가 안 된다면 게송을 들어보자. “불법이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에 도리어 그것을 체득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등(燈)이 곧 불(火 )이라는 사실을 빨리 알아차렸다면, 솥에 밥은 이미 다 되었을텐데.” ‘차나 한 잔 하게나!’, ‘날마다 좋은 날’과 맥을 같이하는 선문답이다.
무상-고-무아 적확히 통찰 광명-희열 10경계 상세설명 『청정도론』은 부처님의 직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경장 4부 즉 『다가니까야』, 『맛지마니까야』,『쌍윳따니까야』,『앙굿따라니까야』에 대한 주석서로 서기 425년께 인도출신 붓다고사 스님이 편찬했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최고의 수행지첨서로 이 책을 꼽는다. 『청정도론』은 수행자가 걸어야 할 길을 확연하게 드려내 놓고 있다. 심지어 출가한 스님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잘 때까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의식주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지침까지도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눈여겨 보아야할 것은 계정혜라는 불교수행의 세 버팀목과 칠청정이라는 불교수행의 일곱절차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특히
선과 차문화를 통한 국민정서 함양을 위해 건립된 연화정사(주지 영공)는 중국의 차를 배우려는 불자들을 위해 ‘전통차 문화센터’를 개설했다. 전통차 문화센터에서는 주부불자를 비롯해 학생들, 타종교인까지 중국차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전통차 문화센터는 수시로 수강생을 모집하며 중국차 과정은 6개월이다. 02)739-1811 사단법인 한국차인연합회 석정원 차회(회장 선혜 스님)도 오는 11월부터 중국다예 강의를 시작한다. ‘제1회 중국다예 단기특강’은 중국 절강대학교 교수가 직접 강의하며 수강시 중국노동청과 절강대학교에서 인증하는 중국다예사 초급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제1회 중국다예 단기특강은 총 6주 과정으로 초급부터 고급과정까지 이루어져 있어 다양한 중국의 차문화를 배울 수
국민대학교 명원민속관은 지난 10월 14일 교내에서 ‘추계 다악(茶樂)공연-가을과 차와 음악’ 특별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250여명의 교수 및 학생들이 참석했으며 ‘승무’를 주제로 한 첼로연주 및 거문고 연주를 들으며 차 문화발전을 논의하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한암 스님 결기로 6.25 참화 피해 2002년 문수전서 독립… 20명 결제 상원사 청량선원의 전경. 2002년 150평의 터에 건물을 지어 문수전 더부살이를 끝내고 청산하고 독립했다. 결제때마다 20여명의 수좌들이 안거에 들고 있다. 부엌에서 불붙이다 홀연히 눈 밝으니 이걸 꽂아 옛길이 인연을 따라 분명하네 나를 보고 서래의를 묻는 이 있다면 바위 밑 우물 소리 젖는 일 없다하리. 마을 개 짖는 소리 손님인가 의심하고 산새들 울음소리 나를 조롱하는 듯 만고의 빛나는 마음의 달이 하루아침에 세간의 바람 쓸어버리네. - 한암 스님 오도송 새벽 아침 가을 바람을 타고 오대산에 올랐다. 태초의 숨결을 간직한 채 울창하게 늘어선 전나무 숲길. 울긋불긋 단장한 가을은
부산 숙우회 회원들이 발우공양을 하며 선차의 기본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기다림, 성숙을 의미하는 식힘 사발 ‘숙우’를 닮아가는 차인들이 있다. 깔끔한 다실과 아담한 정원이 자리한 부산 대신동의 한 주택에서 차공부에 진력하는 ‘숙우회’가 그 주인공이다. 숙우회는 경봉 스님, 명정 스님, 일장 스님, 도현 스님, 영명 스님 등 현대를 대표하는 선지식에게 불교정신을 배운 강수길 선생이 이끄는 차모임. 강 선생은 1960년대 말부터 차공부를 시작해 지금까지 발우공양 의식을 기초로 30가지의 독창적인 선차 및 접빈다례 행다법을 창작했다. 1985년 강 선생의 차를 배우려는 20여명의 회원들로 출발한 소모임이 1997년, 민족미학연구소 내 ‘우리 차 모임’으로 성장해 지금의 2002년 ‘숙우회’로 거듭났다
흑차는 찻잎이 많이 자란 쇤잎을 사용하여 녹차제다과정으로 만들어 햇볕으로 건조시키는 소위 쇄청녹차를 원료로 한다. 이 쇄청녹차를 퇴적한 뒤 적당한 습기와 열을 가해 발효시키는데 그 발효시간이 비교적 길다. 발효과정에 의해 찻잎의 색이 윤기 있는 검은색 또는 흑갈색이 되므로 흑차라고 부르는 후발효차다. 흑차의 향과 맛은 비교적 순하며 찻물색은 짙은 홍색을 띤 등황색 이다. 발효된 흑차의 1차 가공차(毛茶)는 흑차 잎차(散茶)로 불리며 직접 우려 마실 수 있다. 정제 후 재가공하여 긴압차로 만들거나 약간의 압력을 사용해 대나무통이나 바구니에 넣어 보관하거나 판매를 한다. 또한 햇볕에 건조하여 바로 긴압흑차를 만들기도 한다. 주 생산지는 호남(湖南), 호북(湖北), 사천(四川), 운남(云南), 광서(廣西
고암스님은 평생 겸양을 실천했다. 사진은 설법하는 모습 고암 스님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한국불교의 대표 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의 최고 어른인 ‘종정(宗正)’의 자리에 무려 세 번이나 추대된 큰 스승이셨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몸을 스스로 낮추시고 누구에게나 겸양의 미덕을 평생토록 실천하신 자비보살이었다. 심지어 종정으로 계실 때에도 고암 스님은 신도들이나 스님들로부터 삼배(三拜)를 받지 않으셨다. 신도회 일을 보는 거사나 보살이 종정 스님을 찾아뵙고 삼배를 올리려고 하면 첫 번째 맞절이 끝나자마자 스님께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절은 한 번만 하면 됐으니 두 번, 세 번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니 종정 큰스님께서 삼배를 받지 않으시면 그럼 어떤 스님이 삼배를 받으신단
위파사나 핵심 알아차림·마음집중 초심자는 자비·관용부터 익혀야 위파사나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부처님 수행법의 원형이 담겨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매력이지만 스님들의 전유물인양 인식되고 있는 화두선의 권위주의적 냄새가 없는 점도 일반인들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특히 최근에는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 등 남방불교의 선지식들이 우리나라를 찾아 위파사나를 직접 지도하는 등 교류의 폭이 증가한 것도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풍요 속에 빈곤이랄까? 위파사나에 대한 관심은 늘고 있지만 효과를 장담하기엔 아직 이르다. 아니, 최근에는 위파사나 강좌와 수행센터가 증가하는 반면 위파사나가 본래 목적인 깨달음에서 한참 빗나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자리에 위치한 마하보디 대탑의 불빛이 새벽의 여명과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깨달음을 이룬 후 붓다는 보드가야(옛 지명은 우루벨라)에서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몇 가지 중요한 선택, 아니 결단을 내렸다. 이 곳에서 내린 붓다의 결단들은 그의 일생은 물론이요, 불교교단 형성에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보드가야에서 결단에 대해 보다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제일 먼저 꼽아야할 붓다의 선택은 전법을 결심한 것이다. 붓다가 당신의 깨달음을 뭇 중생들에게 전하는 것을 포기했다면 오늘날 우리 인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며, 불교라고 하는 최고의 가르침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붓다 역시 이 결심을 통해 성인 중에
위산·오봉·운암 스님이 함께 백장 스님을 모시고 서있자 백장 스님이 위산 스님에게 물었다. “목구멍과 입을 닫아버리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스님께서 말씀해보십시오.” “나는 사양치 않고 그대에게 말해주고 싶지만 훗날 나의 자손을 잃을까 염려스럽다.” 이에 원오극근 스님은 이렇게 일렀다. “사람을 통쾌하게 하는 한마디 말[言]이요, 말[馬]을 날쌔게 달리게 하는 하나의 채찍이며, 만 년이 한 생각이요, 한 생각이 만년이다. 단박에 깨치는 길을 알려고 하는가? 말하기 이전에 있다. 말해보라, 말하기 이전에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를. 거량해 보아라.” 원오극근(園梧克勤 1603~1135): 팽주 숭녕 출신으로 자(字)는 무착(無善)이고 극근은 스님의 휘(諱)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뒷날
Q. 부처님은 이미 부처님이 되셨다고 하지만, 막상 갖가지의 업보에 휘둘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염불하는 우리들도 성불할 수 있을까요? A. 소위 신심이 돈독하다고 자처하는 사람마저 자신의 성불을 선뜻 입에 올리지 못하더군요. 마치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는 부처님과 자신의 삶을 끝없는 대립구도로 파악하는데서 말미암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의 성불에 자신의 삶이 포함되어 있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딱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순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염불의 기본원리인 이미 부처님의 원력에 섭취(攝取)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만하면 문제는 참으로 간단합니다. 한마디로 일러, 끝없이 업보의 굴레에 싸여 윤회할 수밖에 없는 ‘나’라고 하는 허
우선 사찰·스님들이 직접 만드는 차는 믿을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스님, 불자들을 주고객으로 하기 때문에 소비자를 속이지 않는다”며 “사찰이나 스님 법명을 걸고 만드는 차라는 점과 차를 한번 구입한 사람들은 ‘단골’로 직결되기 때문에 더더욱 속일수가 없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불자의 기본인 오계에 ‘불망어(不妄語)’가 있지 않은가. 교계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차의 경우 농약이나 비료를 쓰지 않고 만들어 많이 마셔도 속이 쓰리거나 상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는 차를 판매해 얻은 수익금으로 사찰의 소소한 일부터 새로 전각을 세우는 일까지 사찰의 경제적인 자립에 일조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불자들은 차를 마시고 불교발전에도 한 몫하는 일거양득의 효과인 것이다. 광양 백운산 정토사 법진 스
유마힐이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보살이 둘이 아닌 법문[不二法門]에 들어가는 그것은 무엇인가?” “제 생각으로는 일체의 법에 말도 없고 설명도 없으며, 보여줌도 없고 알려줌도 없으며, 모든 물음과 답을 떠난 그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문수사리보살이 유마힐에게 물었다. “저희들은 모두 설명이 끝났습니다. 인자(仁者)께서 말씀하셔야겠습니다. 무엇이 보살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설두스님은 말한다. “유마야! 무슨 말을 하겠느냐?” 다시 말한다. “속셈을 간파해버렸다.” 쯧쯧! 유마 늙은이. 중생을 불쌍히 여기느라 부질없이 괴로워한다. 비야리(毘耶離)성에 병으로 누워 온몸이 너무나 깡말랐다.
한 납자가 조주 화상에게 물었다.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것이 없고 오직 간택을 그만두면 된다고 했는데 어떤 것이 간택하지 않는 것입니까?” “천상천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그것도 간택이 아닙니까?” “이놈아 어떤 것이 간택이란 말이냐?” 화상이 호통을 치자 아무 말도 못했다. 간택하지 말라 했더니 간택하지 않는 것을 또 간택하려 한다. 혼나도 한참 혼나야겠다. 집착하지 말라 하니 집착하지 않으려는 마음에 또 집착하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간택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고, 집착하지 않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아 헤매고 다니면 영원히 미로 속에 갇힐 것이다. 주먹을 쥔 채 손을 편 것은 무엇이고, 펴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묻고 다니니 답답한 마음에 호통을 칠 수 밖에 없는 노릇 아
우리나라 불교 대표종단인 조계종단에서 종정(宗正)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지고지엄(至高至嚴)한 종정의 자리에 한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추대된 분이 계셨으니 바로 그 분이 윤고암(尹古庵) 큰스님이셨다. 조계종 종정으로 세 번이나 추대된 고암 스님은 자비보살의 화현으로 불렸다. 1899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1988년 가야산 해인사에서 열반한 고암스님은 19세에 해인사에서 제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이후 무소유, 무집착, 자비보살의 화현으로 한평생을 사셨고, 그 덕화로 종정의 자리에 세 번이나 추대될 수 있었다. 고암 스님은 말 그대로 욕심이 전혀 없는 분이었다. 흔히 불가에서는 무소유, 무집착, 무차별, 자비보살이라는 말로 사람을 칭찬하지만, 고암 스님이야
‘조주無字’ 등 48칙 선별해 소개 선 대중화에 기여한 종달거사 역작 선(禪)은 흔히 ‘문자를 세우지 않으며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알게 하는 데 있으며, 마음과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며 언어가 아닌 별도의 방법으로 전하는 것(不立文字 直指人心 以心傳心 敎外別傳)’으로 일컬어진다. 그런 만큼 선은 마치 결벽증에라도 걸린 듯이 문자나 언어에 대한 극도의 기피와 혐오증 비슷한 성향을 보여왔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선과 관련된 서적은 실로 엄청나다. 수많은 선사들의 어록을 비롯해 이들 선사들의 어록을 묶어놓은 『종경록』, 『경덕전등록』, 『조당집』, 『종용록』, 『선문염송』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수많은 선의 언어들은 마치 달을 가리키기 위한 수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자리에 세워진 마하보디 대탑. BC 250년경 아쇼카왕에 의해 세워졌다. 전율! 이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구나. 이 감동을 어찌 언설로 형용할 수 있을까. 붓다를 이룬 이 성스러운 자리, 보드가야에 지금 나는 넋을 잃고 서 있다. 어떤 감동적 서사도, 광경도 이를 능가할 수는 없으리라. 이제까지 목숨을 걸어 의지해온 이의 숨결을 느끼고 있는 이 순간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환희, 그 자체다. 이 감동과 환희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것은 저 거대한 마하보디 대탑과 탑을 이루고 있는 벽면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 때문만도 아니요, 보드가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성한 기운 때문만도 아니다. 어쩌면 이 감동은 붓다의 불가해한 위신력이 작용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탑의 내부와
백장화상이 오봉에게 물었다. “너는 목구멍과 입술을 닫고 말할 수 있겠는가?” “화상께서 먼저 목구멍과 입술을 없애 보시지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이마에 손을 얹고 너를 기다리겠다.” 촌철살인을 통한 이심전심이 한눈에 보이는 고수들의 문답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일상에서도 뜻맞는 지우를 만나면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다. 바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마음 하나 전달하기 위해 오랜 시간 설명과 부탁을 거듭한다면 그거야말로 피곤하고 궁색한 일이다. 서로의 눈을 보면서 상대방의 따뜻한 가슴을 느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을 만나려면 자신부터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무림에서도 고수가 아니면 고수를 알아보지 못하지 않는가.
경청화상이 한 수행자에게 물었다. “문밖에 들리는 소리가 무슨 소린가?” “빗방울 소리입니다.” “중생이 전도되어 바깥의 물건만 좇아다니는구나.” 이쯤에서 눈치챘어야 하는데 수행자는 천길도 모자라 만길 낭떨어지로 떨어져 간다. 계속 들어보자. “화상께서는 무엇이라 하겠습니까?” “자칫하면 나도 미혹할 뻔했구나.” “자칫하면 미혹할 뻔하다니 무슨 뜻입니까?” “속박에서 벗어나기는 도리어 쉬우나 있는 그대로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원오의 수시(垂示)를 보면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얼음 위를 걷고 칼날 위를 달리듯 시끄러운 저자거리 속에서도 자유롭게 다녀야 한다. 종횡무진의 오묘한 작용은 그만두고라도 찰나에 대뜸 떠나 버려야 할 때는 어떻게 하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