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상상을 할 수 있기 시작한 호모사피엔스에게 미래는 영원한 꿈이 되고 말았다. 지상의 무수한 생물종 중에 과거를 뚜렷이 기억하고, 미래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며 살아가는 종족은 아마 인류밖에 없을 것이다. 진화는 기억력이라는 달콤한 기능을 선사하면서 상상이라는 기능을 첨부해 우리를 번뇌의 세계에 던져버렸다. 기억과 상상은 우리들을 현재에 상주하지 못하고 방황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인간은 업의 굴레를 인식하게 되었고, 희망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내일이라는 환상을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기 시작했다.우리들에게서 기억을 뺏어버리
특유의 직관적인 문체로 불교적 삶과 현대사회에 관해 깊이 있는 통찰을 보이며 불교인문주의라는 독특한 영역을 심화시킨 인물이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불교 관련 저서를 쓰고 경전과 선어록을 번역하며 20여권의 저서를 남겼으나, 안타깝게도 2002년 여름 43세 젊은 나이로 짧은 세연을 접은 일지 스님이다. 스님은 1980년 해인강원을 졸업하고, 1982년 해인율원을 수료하면서 성철 스님을 만났다. 자신의 저서에서 성철 스님을 “진리를 위해서는 개인적인 이익을 버리고 일체를 희생해서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해야 한다는 진지하고도 철
미국불교에는 주류문화에 긴 세월 동안 영향을 준 프로테스탄트주의의 진보적, 실용적, 현세적 경향이 드러난다. 이러한 경향은 불교의 경험주의적 기반이자 효과적인 도구인 명상으로 표현되고, 또한 붓다의 가르침을 따름으로써 개인이 얻게 되는 효용으로 표현된다. 미국에서는 이런 현세적인 성향이 붓다의 가르침이 지닌 힘이라고 간주된다. 그런데 이런 실용주의적 성향은 미국인들이 절충을 좋아하는 성격에서도 드러난다. 즉, 그들은 한 가지 수행에 전념하지 않고 다양한 불교수행을 체험하면서 선별적으로 수용한다. 물론 이러한 절충적 수용이 가능한 것
세월이 흘러도 중요성이 퇴색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일기가 그렇다. 기록과 성찰이라는 일기의 기본 속성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개학을 앞두고 숙제로 내준 일기를 한꺼번에 써야할 때 날씨가 어땠는지 가물거려 당황스러웠던 기억 등 누구나 일기와 관련한 추억이 한둘쯤은 있을 듯싶다.200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초등학교 아이들 일기장 검사는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며, 교육부에 일기 검사를 개선하라고 권고하면서 예전의 일기 검사방식은 사라졌다. 대신 담임 선생님과 부모들이 재량껏 일기 쓰기를 지도하고 있
근현대불교연구 권위자이자 불교구술사 개척자인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가 최근 ‘고승 연구와 불교 구술사’(전자불전 제20집)를 통해 자신이 20년간 진행해왔던 구술사 작업에 대한 정리를 비롯해 불교구술사 현황, 문제점, 모순 해소 방법, 전망 등을 제시했다. 또 불교사 연구 자료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대안으로 구술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이를 위해선 불교 구술사연구소, 학회, 포럼 등 필요성을 역설했다.구술사(oral history)는 개인이 기억하는 과거사건과 행위, 그에 대한 해석을 면접과 육성구술을 통해 기록화 하는 사료
동양에는 수에 대한 신비한 이야기가 떠돌지만 사실은 수학이 아니다. 산수일 뿐이다. 동양종교 신비주의자들이 이걸 수학이라고 하는 것은, ‘엄지공주와 개구리 왕자’ 같은 동화를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동급으로 치는 것과 같다.서양에는 일찍이 수학이 발달했다. 이미 기원전 500년경에 기하학이 발달했다. 플라톤은 자신이 꿈꾼 이상국가인 공화국에서 필수로 배워야 하는 것으로 수학과 철학을 들었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를 지극히 기하학적인 것으로 파악하였다. 천체
아름다운 삶과 역사 창조의 동력은 꿈과 희망이다. 꿈과 희망이 없는 삶은 공허하며 무기력하다. 인간은 현실을 발판으로 삼아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그 이상을 현실 속으로 앞당기며 살아간다. 현실의 절망과 고통, 결핍과 미완의 존재에서 꿈과 희망의 나래를 펴고 보완, 완성, 충족, 행복과 평화의 가치 창조를 향해 날개 짓 한다.꿈과 희망이 종교적 확신과 비원으로 연결된 것이 발원이요 서원이며, 원력이자 행원이다. 그래서 서원은 한순간 식어버리는 뜨거운 열정이 아니라 지속적인 열정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역사의 강물을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간
일반적으로 기도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거나 본인이 원하는 바를 얻고자 절대적인 유일신 또는 외부에 존재한다고 믿는 절대적인 힘(Absolute Power)에 의지하여 간절하게 비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불교에서의 기도는 부처님과 불보살의 원(願)을 기반으로 하는 가피(加被)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중생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게 해 준다.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불·보살의 원력과 자비가 중생의 간절함을 담고 있는 기도에 감응하여 중생이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가피는 부처님과 불보살이 중생을 구제하려는 회
스리랑카 콜롬보공항과 우리나라 인천공항을 연결하는 직항이 개설된 것은 2013년이다. 그 이전에는 싱가포르, 방콕, 홍콩 등을 경유했다. 인천공항을 출발, 아무리 서둘러도 10시간 이상 가야하는 머나먼 나라였다. 직항이 개설된 이후 스리랑카와의 교류는 빠르게 증가했다. 동시에 스리랑카의 불교유적을 찾아가는 불자들의 발걸음도 가파르게 늘어났다.콜롬보공항에서 근무하고 있는 우리나라 항공사의 한 관계자는 “스리랑카를 찾아오는 한국인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불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일반관광객이 아닌 불자들도 스리랑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이 12월22일 ‘콜럼버스, 세스페데스 신부와 대흥사’라는 기고문을 보내왔다. 이 원장은 기고문에서 15세기 종교를 내세워 선주민들에게 온갖 악행을 저지른 콜럼버스와 임진왜란 때 왜군과 함께 조선에 왔던 세스페데스, 그리고 대흥사에 전해져오던 십자가 문제를 다뤘다. 특히 이 원장은 “(대흥사가) 십자가를 복원하여 천주교에 기증하여 종교 화합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고 싶은 대흥사의 마음은 이해한다”며 “천주교 쪽에서 ‘임진왜란 당시 침략군에 복역했던 세스페데스 신부의 잘못을 우리가 대신 참회하며 용서를 구한다!’는
어느덧 연재를 시작한지 1년이 되었고 이제 마지막 회차가 되었다. 급작스레 건너뛴 느낌이 있지만, 오늘 소개해 드릴 작품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되고 있는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1497~1543)의 ‘대사들’이다. 홀바인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와 더불어 르네상스 문화가 북유럽에서도 풍미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는 특히 초상화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구교와 신교의 대립이 유럽을 먹구름 속으로 몰고 갔던 때였다.그는 독일의 화가 집안에서 태어
구두쇠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디킨즈의 작품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인 스크루지일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 또한 법정에서 꾸어 준 돈을 갚지 못하는 밧사니오의 심장을 베어낼 것을 요구하는 구두쇠로 이름이 높다.이솝 우화에도 구두쇠 이야기가 있다. 어느 부자가 황금을 모아 마당 한구석에 몰래 파묻어 두었는데 어느 날 도둑이 들어 황금단지를 가져가 버렸다. 그가 엉엉 울자 그의 친구가 말했다. “어차피 쓰지 않을 돈이니 지금도 거기에 있거니 하고 여기면 마찬가지가 아니겠나?”이들은 문학작품 속의 주
이재형 법보신문 편집국장은 조계종 교육원이 12월14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교육아사리 등 전문연구자를 대상으로 개최한 ‘한국불교의 좌표와 나아갈 방향’ 세미나에서 ‘키워드로 보는 한국불교’주제로 기조 발제했다. 2회에 걸쳐 지면에 요약 게재한다. 편집자 연말이면 다사다난했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되지만 올해 불교계에 이보다 더 적확한 말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지난해 총무원장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총무원장이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불교계는 심각한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학문의 분야들은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인문학자가 과학자였고, 과학자가 또한 사회학자이기도 했다.그런데 근대 이후에 각각의 분과 학문들이 생겨나면서, 인간의 삶 전체를 향해 열려 있던 시각 역시 그 분과학문들의 영역에 따라 시야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그런 양상들 중에 한국불교를 전공하는 필자가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것은 한국사 쓰기이다. 한국사 관련 책들을 읽다 보면 유독 불교와 관련한 부문에 대한 의도적 도외시가 눈에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좀 더 많이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을
“불교가 대중에게서 멀어질수록 불교의 생명력은 퇴색한다. 현실을 외면하고서 불교가 설 자리는 없다.”이재형 법보신문 편집국장은 조계종 교육원이 12월14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교육아사리 등 전문연구자를 대상으로 개최한 ‘한국불교의 좌표와 나아갈 방향’ 세미나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이국장은 이날 ‘키워드로 보는 한국불교’라는 기조발제를 통해 ‘불자감소’ ‘기도’ ‘민주’ ‘비판’ ‘총무원장’ ‘평등’ ‘종교용어’ 등 올해 유독 많이 사용됐거나 관심을 모았던 단어를 소개하면서 오늘날 한국불교가 직면한 문제들에
최근 티베트불교의 정신적인 지도자 달라이라마는 네덜란드를 방문한 자리에서 티베트불교 교단 내 성학대 피해자들을 만난 바 있다. 미투구루(Metooguru)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하는 이 피해자 모임 대표 4명은 온라인서명 1300건을 받은 후, 피해자 12명의 진술서를 달라이라마에게 제출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호소했다. 이에 대해 달라이라마는 “25년 전 누군가 나에게 교단 성직자들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여기서 달라이라마는 1993년 3월 10개국 출신의 서양불교 지도자 22명과 다람살라에서
유럽인들은 1492년 이래 신세계라고 불렀던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하며 이 대륙을 수렁에 빠트린 천연두‧홍역‧인플루엔자‧페스트‧황열‧콜레라‧ 말라리아 등 그곳 주민들에게 치명적인 생물학 무기를 갖고 들어갔다. 유럽의 침략 이전 이 대륙에는 이런 질병이 없었다. 따라서 면역력이 아예 없어서 이 질병들이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갔고, 아스테카와 잉카 제국 원주민의 절반 이상이 이 질병으로 떼죽음을 당했다. 1600년까지 약 100년 사이에 20회 정도 대륙을 휩쓴 전염병으로 원주민 인구가 침략 이전의 10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이런 참변을
이탈리아 여정의 흥분을 뒤로 하고 밀라노 중앙역에서 23시5분에 프랑스 파리 리옹역으로 출발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리옹역에 도착한 것은 아침 10시 조금 전이었고, 바로 전철로 파리 북역으로 이동해 역 근처에 미리 예약한 숙소에 짐을 풀고 박물관을 찾아 나섰다. 파리에는 몇번 왔지만, 사실 그 유명한 오르세 미술관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맨 처음에는 조사 일정을 마치고 시간을 내려했지만 마침 월요일이어서 미술관이 문을 닫았고, 두 번째 방문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세잔과 반 고흐 같은 거
11월 마지막 주 금요일은 쇼핑을 즐기는 이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날인 블랙프라이데이이다. 세계 경제 침체로 어렵던 유통업계가 연말을 즈음해서 매출을 끌어올려 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날이 블랙프라이데이다. 여기서 블랙의 의미는 가계부에서 흑자를 뜻하는 검은 색을 차용해 온 것이다. 올해도 여전히 블랙프라이데이에 환호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많이 만났다.해마다 돌아오는 블랙프라이데이에 여전히 살 것들이 많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요즘은 외국에서 물건을 직접 구입할 수 있다 보니까 특히 미국의 쇼핑몰들이 일제히 할인을 하는 이날을 준비하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는 힌두교의 경전처럼 여겨지는 고전이다. 인도 코살라 왕국 라마왕자의 모험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에는 주인공 라마의 부인 시타를 납치하는 악마 ‘라와나’가 등장한다. 라와나는 랑카, 즉 지금의 스리랑카를 지배하는 마왕이다. 라마왕자를 도와 라와나에게 납치된 시타를 구한 1등 공신은 원숭이의 신 하누만이었다. 바람의 신에 아들인 하누만은 하늘을 날아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 하지만 라마왕자와 그의 군대가 라와나의 섬 랑카로 가기 위해서는 다리가 필요했다. 하누만은 히말라야에서 바위와 돌들을 가져와 인도의 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