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 여법수지분 초반에 이 경(經) 혹은 가르침을 어떻게 이름 할 지 묻는 부분이 나온다. 즉, “세존이시여! 이 경을 어떻게 이름 해야 하며, 저희들이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하옵니까?”라고 물으니 부처님께서 “이 경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이니 이러한 이름으로 네가 받들어 지녀야하느니라”라고 답했다. ‘금강(金剛)'은 범어 와즈라(vajra)에서 온 말로서, 선・악의 신들이 전쟁을 하는 와중에 힘을 잃은 선신들을 위해 선인 다디찌가 자신의 유체(遺體, 스스로 자신을 화장하여 만든 재)를 제공하여 만들어진 세상에서 가장 단단
붓다에 의하면 우리는 몸에서 몸을, 느낌에서 느낌을, 마음에서 마음을, 법(dharma)에서 법을 마음챙김함으로써 해탈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그 첫 번째 길은 몸에서 몸을 마음챙김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몸에 있는 실재의 경험에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어떤 때는 따끔거림이나 열기, 차가움, 통증이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긴장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우리가 따뜻한 마음으로 자신의 몸에 주의를 기울이면 상처받은 곳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고 우리 몸속에 있는 치유의 에너지가 흘러넘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몸은
51장은 “‘예배(禮拜)’는 ‘공경’과 ‘굴복’이다. ‘참된 자성(眞性)’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한다”로, 신수(神秀, 606~706)의 ‘소실육문’ 내용이다. ‘진성’이란 ‘능엄경’에서는 “‘색‧성‧향‧미‧촉’의 허망한 생각이 너의 ‘진성’을 미혹하게 한다”고 했고, ‘육조단경’에서 “지혜는 ‘자성’을 따라서 생하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뜻’을 잘못 쓰지 말라. ‘진성’은 ‘스스로 쓰는 것’을 말한다”고 하고, ‘지월록’에서 파사사다(Póshèsīduō, 인도 25대 조사, ?~325)는 “나는 지금 ‘진성’을 깨달
한 승이 협산에게 물었다. “협산의 경계는 어떤 것입니까.” 협산이 말했다. “원숭이는 새끼를 안고 푸른 산으로 돌아가고, 새는 꽃을 물어다 이끼가 낀 바위에 쌓아둔다.”협산선회(夾山善會, 805~881)는 약산의 제자인 도오원지(道吾圓智, 769~835)의 권유에 따라 오강(吳江)에서 뱃사공으로 살아가는 선자덕성(船子德誠)에게 참문하고 그 법을 이었다. 여기에서 협산에게 질문했던 승은 일찍이 조주에게 물었다. ‘달마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조주가 말했다. ‘뜨락에 있는 잣나무이다.’ ‘화상께서는 객관의 경계[境]
불교는 2500년 전 인도의 사성제 계급에 의한 인간의 삶에 대한 숙명론을 부정하며 생겨났다. 존재는 연기법에 의해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되어 있고, 자신의 수행과 노력에 의해 그에 상응하는 삶의 결과를 받게 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이어져오는 종교이다. 당시 인도에는 한 번 정해진 계급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고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그 계급의 삶을 다시금 살 수 밖에 없다는 베다의 가르침에 따르는 브라만교가 정착되어 있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숙명론을 부정하며 구경의 깨달음인 무상정등각을 얻으시며 우리가 사는 이 세
율장에는 스승과 제자 간에 지켜야 할 예법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스승은 제자를 자식같이 생각하고 제자는 스승을 부모처럼 여겨야 한다. 제자를 자식같이 생각한다는 것은 제자가 전문가가 되도록 훈련시키고, 자비심으로 보호하며, 긍휼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옷과 음식을 제공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스승을 아버지처럼 여긴다는 것은 스승을 친애(親愛)하고, 공경하고 효순하며, 어렵게 여기고 두려워할 줄 알며, 신하가 왕을 섬기고 자식이 부모를 섬기듯 봉양하고 모시는 것이다.어느 때에 제자들이 은사인 화상을 공경하지 않고, 스승의 일
장마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곳곳에서 피해 소식이 다양한 영상을 통해 온 국민에게 여과 없이 전달되면서 소식을 접하는 모두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지금같이 큰 홍수로 피해가 발생되었으면 무엇보다 모두가 마음을 모으고 고사리 손이라도 빌리려는 심정으로 재해극복에 힘을 기울여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뉴스를 보다 보니 피해를 크게 입은 지방자치단체와 기상청, 수자원공사, 여당과 야당이 각각 자기들의 주장을 펴면서 다른 기관의 과실을 조금이라도 더 파헤치려 안달하는 것 같아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부처님께서 제자 말롱카에게 ‘독화살의 비
26대 진평왕대(579~632)는 대내적으로는 노리부(弩里夫)와 수을부(首乙夫)가 연이어 상대등으로 취임해 왕을 보좌함으로써 왕권과 귀족세력이 균형을 이루게 되었고, 대외적으로는 고구려가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와 혈투를 전개하고 있었다. 백제는 성왕의 피살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 국력을 회복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소규모의 분쟁은 있었지만, 격렬한 전투는 없었다. 이로 인해 비교적 정치적 안정을 이루게 된 신라는 대내적으로 지배체제 정비를 서두르는 한편, 대외적으로 불교를 중심으로 한 중국문화 수입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라싸공항에 내리는 순간 턱 하니 닥쳐오는 숨 막힘에 공포감이 밀려왔다. 천천히 숨을 쉬며 로비로 나오는데 사방에 흰 수건을 잔뜩 걸머진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였다. ‘뭐지 저 흰 수건?’ 어리둥절해 있는데 마중 나온 지인이 그 수건 하나를 목에 걸어 주었다. 티베트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거나 항상 가탁을 목에 걸어주며 축복 인사를 나누었다. 할머니 따라 방문한 장터에서 처음 본 살풀이춤에 홀딱 빠졌던 유년 시절이 떠올랐다. 가탁의 길이, 재질, 촉감까지 우리네 살풀이춤 수건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던
출가수행이나 일상의 삶에서나 도처에 디딤돌과 걸림돌이 존재한다.디딤돌은 하고자 하는 공부나 일이 성취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는 고마운 존재이고, 반대로 걸림돌은 성취를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걸림돌이기만 하거나, 마냥 디딤돌이기만 한 경우는 없다. 한때는 고마운 존재였던 디딤돌이 어느 날 애물단지 걸림돌로 전락하기도 하고, 또는 치워버리려 애썼던 걸림돌이 몰란결에 기특한 디딤돌 역할을 하기도 한다.부처님 설법에 ‘뗏목의 비유’가 있다. 이 비유는 출처가 ‘금강경’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은 ‘중아함’의 ‘아리타
내 유전자에 감사하게도, 그리고 그 유전자를 전해주신 부모님과 조상님들께 감사하게도, 나는 물욕이 없는 편이다. 새로운 물건을 보고 소유욕에 휩싸인 적이 별로 없다. 대신 지녀온 물건에 대한 애착은 강한 편이다. 혹자는 삶의 투영에 대한 과도한 의미화를 지적하기도 하나, 글쎄. 나의 애착은 오히려 애니미즘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 나를 잃고 홀로 남겨질 그 물건들의 쓸쓸하고 두려울 마음. 그것이 나는 그다지도 사무친다.음식에 대해서는 이렇다. 식탐에 대한 자기 검열을 하곤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미식이나 과식에 대한 기호는 크지
붓다는 일체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붓다는 일체중생을 구제할 수 없다. 전지전능하다는 신(神)도 일체중생을 구제하지 못한다. 붓다 재세 시에도 모든 사람들을 다 교화하지 못했다. 더더구나 붓다의 면전에서 붓다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도 중에는 붓다가 일체중생을 구제해 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붓다를 전지자(全知者, The Omniscience)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 붓다는
불자라면 모두가 외우고 있는 ‘천수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소원종심실원만(所願從心悉圓滿), 원하는바 마음 따라 모든 것이 원만히 이루어지이다.”삶은 바다와 같다. 고요하고 잔잔할 때가 있고, 큰 바람에 휩쓸려 거대한 파도가 덮칠 때도 있다. 삶은 등산과 같다. 평탄한 길을 지나다 보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교차한다. 알 수 없이 변화무쌍한 삶의 흐름이 바로 인생인가 보다.‘인생은 자기 복대로 살아간다’고 불교에서는 말한다. 행복과 불행이 모두 자신이 지은 업의 인연들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늘 ‘선업을 지으라’고 말씀
강렬한 색채를 구사한 것으로 유명한 내고 박생광(乃古 朴生光, 1904~1985) 화백은 민족적인 색채를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잘 알려진 그의 화풍은 사실 그의 말년 6년 정도 동안 급속히 완성된 것이었다. 일본에서 유학하고 활동했던 그였기에 그의 초·중기 작품은 때로 일본풍이라는 평가도 받았지만, 수묵을 이용한 해학적인 그림은 한편으로는 한국의 민화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그가 1979년부터 한국에 정착하면서 선보인 급작스런 새로운 화풍 역시 그의 생각 속에서는
앎이란 무엇인가? 예를 들어 내가 ‘인천은 서울의 서쪽에 있다’는 점을 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서양에서는 이미 플라톤이 그의 대화록에서 앎 또는 지식(knowledge)의 속성을 논의했다. 현대인식론은 플라톤의 분석이 완전하지 못했다고 비판하지만, 전통적으로 지식은 그의 논의대로 ‘정당화된 참된 믿음(justified true belief)’으로 정의되어 왔다. 이 정의는 우리 상식에 맞는다.우리는 먼저 믿고 받아들여야 알 수도 있다. ‘인천이 서울의 서쪽에 있다’는 점을 믿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인천
형식과 내용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작품들은 모두가 듣는 이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선율들이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던 모차르트는 곡을 써나가는데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소년시절 모차르트는 어느 귀족으로부터 연주회장에서 즉흥연주를 부탁받은 적이 있었다. ‘사랑의 노래’를 들려달라는 요청에 모차르트는 주저 없이 연주를 시작했다. 미묘한 사랑의 심리를 경험하지 못한 8세 소년의 연주는 예상 밖이었다.음악의 표현은 청중에게 이해되기 위하여 약간의 관습적이고 일반화된 표
인연(인과, 연기)이 불교철학의 3대 영역을 포괄하기에 인연이 없으면 법이 없다고 경전에서는 강설한다. “모든 법은 인연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으며, 만일 인연이 없으면 법도 없을 것이니, 하늘과 나쁜 갈래에 태어남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런 사람은 인연을 알지 못한 것이다(諸法無不因緣成, 若無因緣無諸法, 說無生天及惡趣, 如是之人不了因)”는 ‘심지관경’ 보은품의 말씀이 그것이다.또한 ‘화엄경 80권 본’ 이세간품에서는 법을 지니게 되는 법소섭지(法所攝持) 십종 중 네 번째로 “법은 인연으로 생기고, 인연이 없으면 생기지 않음을 알면
두 남자가 카페에서 커피와 도넛을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 느긋하게 이야기하고 웃기도 하면서. 그중 한 남자가 손장난하듯 슥슥 그림을 그린다. 그들은 각자의 일을 하다가 퇴근 후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만나 경험이나 들은 이야기들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고, 글로 쓰고 그림으로 그렸고, 그 결과를 귀엽고 유용한 한 권의 책으로 묶어냈다. 다양한 잡지와 그림책에 삽화를 그리고 텍스타일 디자인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 Matti Pikkujamsa와 심리상담가인 Antti Ervasti, 그리고 Elina Rehmonen은 의기투합해 자신들의 브랜
우리나라 근현대 대표적 기업인으로서 불교 대중화의 실질적 지평을 열어나갔던 사람이 장경호 거사다. 그의 자제들 또한 그러했다. 특히 한국불교의 새로운 변모를 꾀하며 대중불교, 생활불교의 기치를 내걸고 불교를 이 삶의 현장에서 구현해 나가고자 몸소 그 길을 열어나갔던 이가 그다. 그는 이를 지속하기 위해 목숨을 마치기 전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으며 대한불교 진흥의 초석을 다지는 편지를 대통령에게 쓴다.“이 사람은 올해 77세의 고령인 동국제강의 창업자 장경호입니다. 이제 멀지 않아 이 생을 마칠 것을 내다보고, 인생무상의 대도 앞에,
제12 존중정교분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지금 일러준 이 경전 전체나 심지어 그 가운데 사구게송 한 수 만이라도 잘 익혀서 남에게 설해주기만 한다면 가르침이 설해진 그곳은 온갖 무리들이 마치 부처님 공양하듯 모두 공양하는 탑묘(塔廟)와 같을 것이라 하셨다.탑이 있는 사당이란 의미의 '탑묘'는 ‘금강경’에선 범어 짜이뜨야(caitya)에 대한 구마라집 스님의 번역어이다. 현장 스님은 영묘(靈廟, 신령을 모신 사당)라고 번역하였다. 본디 범어 ‘짜이뜨야’는 성인의 유체가 묻힌 묘소를 비롯하여 그 분의 유품이나 가르침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