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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사 대중들이 직접 말하는 위례 상월선원 천막결사

  • 교계
  • 입력 2020.02.14 12:44
  • 수정 2020.02.17 13:50
  • 호수 1525
  • 댓글 23

“대중들 큰 은혜 헛되지 않게 여법한 수행자로 살아야죠”

스님들 체중 7~18kg씩 감소…촌음 아껴가며 수행에 일로매진
자승 스님은 ‘다각’ 맡아 매일 차 끓이며 대중들 위로하고 격려
결사 재참여 여부 질문엔 “글쎄”…“감동 주는 삶 살겠다” 다짐

한국불교 중흥과 온 세상 평화를 발원하며 위례신도시 황량한 뜨락에서 진행된 90여일 천막결사가 마침내 회향됐다. 엄동설한 온기 없는 천막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던 결사 대중들은 매일 14~16시간씩 화두 하나 붙들고 정진했다. 엄격한 청규대로 동안거 기간 내내 하루 한끼 식사에 일체 말을 않는 긴 침묵의 시간을 이어갔다. 삭발과 목욕조차 않겠다고 결기를 세웠던 것처럼 촌음을 아껴가며 수행에 일로매진했다. 아파트 공사장 온갖 소음과 불자들 절절한 기도소리가 어우러져 천막 안 시간은 소 걸음마냥 우직이 흘렀다.

그 90일 천막 안에서 지냈던 대중들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생활했던 것일까. 진각 스님을 비롯해 호산, 심우, 도림, 인산, 성곡 스님 등 결사 대중스님들이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위례 상월선원 천막결사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호산 스님은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고 3월초 네팔에서 새로운 정진을 준비하고 있는 도반 무연 스님의 얘기도 들려주었다.

스님들 모두는 천막결사 기간에 몸무게가 현격히 줄었다. 잠을 줄여가며 긴 시간 정진했던 데 비해 소박한 한끼 식사였기에 대부분 9~10kg씩은 빠졌다. 선방에서 30년 넘게 정진하며 평소 일종식에 가깝게 소식했던 무연 스님은 7kg으로 그나마 적게 감소했으며, 평소 90kg을 훌쩍 넘겼던 진각 스님은 무려 18kg이나 체중이 줄었다. 천막결사가 끝난 지금 스님들 일부는 얼굴이 붓는 등 후유증이 있지만 대부분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고 밝혔다.

극한의 상황에서 생사를 걸고 정진했던 천막결사에 대해 스님들은 지금 어떻게 생각할까. “이번 결사는 공부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 선방에서 정진했던 스님과 행정을 보셨던 스님이 한 공간에서 공부한 것도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었다.”(무연 스님) “부처님과 옛 조사스님들께서 이 길을 가셨고 나도 그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공사장의 망치소리, 트럭소리가 내게는 화두라는 쇳덩이를 두드려 황금을 만드는 점철성금(點鐵成金)의 시간이었다.”(진각 스님) “가장 낮은 곳에 수행자의 본분이 있었다. 나는 그 길을 가고자 한다.”(호산 스님) “몸무게가 9kg이 줄어 지금 59kg이다. 내가 출가할 때도 59kg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출가했을 때의 몸과 마음을 돌이켜보았고 이제 그것을 새기고 살겠다.”(심우 스님) “내게는 첫 안거인데 살아보니 산중 선원에서 열심히 정진하시는 수좌스님들이 더욱 존경스럽다. 나도 늘 열심히 수행정진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도림 스님) “춥고 배고프다는 가장 근본적인 욕구에 접하면서 그동안 내가 너무 안일하고 시주의 은혜를 생각 않고 살았음을 알았다.”(인산 스님)

한겨울 허허벌판에서 진행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야외천막결사. 한 벌뿐인 승복은 습기를 잔뜩 머금어 눅눅하고 낮과 밤의 온도차는 30도를 넘나들었다. 돌연 비가 새는가 하면 갑작스런 건강 이상으로 응급차가 대기하는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결사대중 스님들이 꼽은 가장 힘든 상황은 무엇일까.

“추위와 배고픔이었다. 새벽 4시에서 6시까지 용맹정진 할 때는 너무 춥고 허기져 탈진 상태가 되고는 했다.”(호산 스님) “처음 한 달 추위와 배고픔보다 더 괴로웠던 건 14시간 이상 앉아 있는 일이었다. 선방에 10년 이상 다녔지만 종단과 사찰 소임을 보면서 오랜 세월 좌복과 멀어졌다. 그 무릎 고통을 조복 받는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심우 스님) “함께 정진하는 몇몇 대중들이 심각한 건강 이상이 올 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음에 마음 아팠다. 또 많은 분들의 격려와 응원이 있음에도 종종 번뇌망상에 휘둘리는 자신을 볼 때면 괴로웠다.”(진각 스님) “청규 하나하나를 지켜나가는 것 자체가 나와의 치열한 싸움이었다.”(도림 스님) “체질적으로 몸에 냉이 있어서 추위를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이었다. 어른·선배스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회향하지 못했을 것이다.”(인산 스님)

결사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대중들을 숙연케 한 사실이 알려졌다. 결사 기간 내내 1분 1초도 어긋남이 없이 정진에 임해 회주 자승 스님이 게시판에 ‘인공지능 로봇수행자’라고 별칭을 붙여준 무연 스님 얘기였다. 수행에 있어 서릿발 같고 철두철미했던 무연 스님이 막바지 용맹정진이 끝나갈 무렵 도반 호산 스님에게 슬며시 옷을 걷어 아물어가는 상처를 보여주었다. 병원에 가 치료를 받고 약을 먹어도 몹시 고통스럽고 쉽게 낫지 않는다는 대상포진이었다. 추위와 배고픔에 면역력이 떨어진 탓이었다. 무연 스님은 그 아픈 몸에도 전혀 내색 않고 오히려 반철(절반)이 지날 때부터는 하루 16시간 용맹정진에 들었던 셈이다. 호산 스님은 그간 무연 스님이 겪었을 고통을 떠올리며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뚝뚝 흘렸고, 그 병이 나은 것은 불보살님 가피라고 믿는다고 전했다.

천막결사가 진행된 상월선원은 안팎으로 감동의 드라마였다. 처음에는 200~300명, 나중에는 매일 1000명이 넘는 스님과 불자들 발길이 이어졌다. 천막을 사이에 두고 안쪽은 치열했고 바깥은 간절했다. 춥고 배고픈데도 지독히 밀려드는 졸음과 망상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굳건한 의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심어린 걱정과 응원을 보내는 외호대중들의 간절한 외침과 신심 깊은 기도의 목소리였다. 여러 스님들이 천막결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감동을 받았던 순간으로 사부대중의 격려와 응원을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오계윤 아나운서가 목이 메어 결사 대중 스님 한분 한분의 법명을 부르고 건강을 당부할 때 결사 대중 모두들 눈시울을 붉혔다고 말했다. 물론 허연 입김 쏟아내는 맹추위에 척량골 바로 세우고 절차탁마하던 나날들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사 대중스님들은 천막결사를 제안하고 이끌었던 회주 자승 스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전했다. 선방의 막내가 주로 맡는 소임인 다각(茶角)을 자처해 첫날부터 마지막까지 매일 두세 차례 뽕잎차를 직접 끊여 대중들에게 건넸다. 직접 비를 들고 청소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누구보다 적게 먹고 적게 잤으며, 대중들 하나하나를 세심히 살피고 돌봤다. 몸이 좋지 않은 이가 있으면 필담으로 운동법과 식사량 조절 방법을 일러주고, 누군가 힘들어하면 일일이 격려하고 이끌어주었다는 게 한결같은 전언이다. 용맹정진 막바지 피로가 쌓일 대로 쌓여 저혈당으로 쓰러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참으로 모범적인 수행자였다. 청규도 놀랄 정도로 잘 지켰다.”(성곡 스님) “사회적·정치적인 면모를 떠나 뛰어난 수행자다.”(무연 스님) “책임감 때문인지 하루 한두 시간 밖에 못 주무셨다. 회주스님 원력이 있었기에 결단코 회향까지 갈 수 있었다.”(호산 스님) “회주스님이 잠까지 줄여가며 열심히 정진하는 모습을 보며 누가 한눈을 팔 수 있겠는가.”(진각 스님) “자신뿐 아니라 모두에게 자비로 대했다. 밖에서 비난의 목소리도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헛된지 같이 살아보면서 절실히 느꼈다. 안에서 바라본 스님은 항상 솔선수범하는 참다운 지도자였다.”(심우 스님) “회주스님은 정진 기간 내내 청규를 어기거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모두들 감동 받아 정진했다.”(도림 스님) “모든 대중을 정성껏 외호하고 돌보셨다. 내가 해도 될 일을 먼저 손수 하셨다. 나는 회주스님에게서 자상한 노스님 모습과 엄격한 수행자 모습을 동시에 보았다.”(인산 스님)

종단 안팎의 기대와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위례천막결사, 이 결사는 스님들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내 일생에 결코 잊지 못한 사건이었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 결사를 떠올리면 극복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호산 스님) “이번 정진을 통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회주스님과 동참대중들, 그리고 외호해주신 대중들의 은혜를 세세생생 잊지 못할 것이다.”(진각 스님) “묵언하다 보니 그동안 부처님 제자로서 너무 말이 많았음을 알았고, 하루 한끼 먹다보니 그동안 부처님 제자로서 너무 많이 먹었음을 알았고, 정진하다보니 부처님 제자로서 너무 게을렀음을 알았다.”(심우 스님) “많은 분들이 보내주신 기도와 응원을 잊지 않겠다. 공부하는 분들에게 보답하고 우리 곁의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분들에게 힘이 되는 삶을 살겠다.”(도림 스님) “대중들의 은혜를 헛되지 않게 하겠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설령 법이 없어도 수행이 깊어지지 않더라도 누구 한사람일라도 감동과 감흥을 주는 삶을 살겠다.”(인산 스님)

자승 스님도 천막결사 회향 다음날인 2월8일 봉은사에서 외호 대중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인연공덕이라는 큰 신세를 짊어지게 됐습니다. 우리 종단은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 소임을 살면서 수행을 소홀히 했습니다. 이 점 깊이 참회합니다. 결제 때마다 전국 각 선원에서 화두를 붙잡고 용맹정진하는 비구·비구니 스님들께 진심으로 존경의 인사를 올리고 한국불교의 정신을 이어오고 있는 부단한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해제 때마다 많은 선지식들이 나와 한국불교 중흥의 꽃을 활짝 피우길 진심으로 서원합니다.”

자승 스님은 “미래불교는 사부대중이 함께 만들어가야 하고 세상과 함께 세상 속에서 구현돼야 한다”며 “우리는 일심정진으로 하나이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고마운 인연으로 함께 정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막 안의 스님들이 대중들에게 드러낸 모습은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이었다. 지켜본 이들도 그렇지만 결사 대중도 출가 이후 처음 마주한 자신의 낯선 모습이었다. 그 혹독한 정진의 시간은 스님들의 형형한 눈빛마냥 이전의 경계를 넘어 세상을 보다 깊이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추게 했으리라. 천막결사가 다시 진행된다면 이들 스님은 어떤 선택을 할까? 대부분 혀를 내두르거나 그때 가서 판단할 일이라며 웃음을 내비쳤다. 허나 불법이 위태롭거나 세상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면 천막결사보다 더 한 고난도 마다하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진각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두말 않고 목숨을 걸고라도 뛰어들겠습니다. 우리 정진이 불교를 중흥시키고 세상에 진리의 빛을 밝힐 수 있다면 못할 이유가 없죠.”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525 / 2020년 2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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