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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군위 법주사 목조관음보살좌상과 대세지보살좌상 및 복장물

기자명 이숙희

도난됐던 보살님, 다시 돌아와 새 보관을 쓰다

1993년 군위 법주사에 봉안됐던 협시보살 두 구 도난당해
2016년 사립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견돼 환수 후 보관 조성
몸에 비해 머리크고 다리사이 넓게퍼진 옷주름 17세기 양식

1) 법주사 목조관음보살좌상, 조선 후기, 높이 119.4cm. 문화재청 제공. 2) 법주사 목조대세지보살좌상, 조선 후기, 높이 117.8cm. 문화재청 제공. 3) 법주사 목조아미타불좌상, 조선 후기, 높이 135cm. ‘한국의 사찰문화재-대구/경상북도Ⅰ’ 제2권.
1) 법주사 목조관음보살좌상, 조선 후기, 높이 119.4cm. 문화재청 제공. 2) 법주사 목조대세지보살좌상, 조선 후기, 높이 117.8cm. 문화재청 제공. 3) 법주사 목조아미타불좌상, 조선 후기, 높이 135cm. ‘한국의 사찰문화재-대구/경상북도Ⅰ’ 제2권.

1993년 12월4일 오후 7시경 경북 군위군 법주사(法住寺) 옛 보광명전(普光明殿)에 봉안됐던 아미타삼존불상 좌우 협시인 목조 관음보살좌상과 대세지보살좌상이 도난됐다(사진 1, 2). 

이 불상들이 어떻게 도난됐는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불상을 훔치는 수법은 단순한 절도행위부터 전문가 솜씨, 기상천외한 방법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보살상 2구는 2016년 10월에 서울의 한 개인 사립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견돼 무사히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군위 법주사는 493년 신라 때 심지왕사 또는 은점조사가 창건한 사찰로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주석하고 일연이 총림을 세웠다고 전하나 17세기 이전 연혁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후 조선 중기 때 화재로 법당이 소실되자 1623년에 보광명전을 중건하고 1681년 나한전을 새로 건립했다. 1800년에 이르러 크게 중창되며 지금 모습을 갖추게 됐다. 

1977년에 보광명전 천장에서 비가 새는 것을 고치기 위해 용마루를 수리했다. 이때 그곳에서 ‘화엄경’ ‘법화경’ 등 많은 경전들이 발견됐다. 발견된 기록에 따르면 본당 서편에 파손된 불상 15구를 땅 속에 묻었고 불상 5구는 대법당 앞에 묻었다고 한다. 

사찰 관련의 기록 중 1824년 나한전이 붕괴됐을 때 십육나한상 중 파손된 상을 서쪽 산에 묻었다고 하는데 어쩌면 불상 15구는 그 나한상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불상 5구는 어느 전각에 봉안돼 있다가 어떤 연유로 땅 속에 매몰됐을까? 이제는 법당 주변을 발굴해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서 발행된 ‘관보’ 제1692호(1932년 8월 26일)를 보면 군위 법주사는 대구 동화사 말사로 목조 석가여래·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상과 산신탱·신중탱·지장탱·괘불탱·소종·향로·사리탑 등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사리탑은 경내에 세워진 고려시대의 오층석탑을 의미한다. 현재는 불상과 석탑만 남아 있고 불화는 괘불탱 외에 전해지지 않는다. 그나마 최근 괘불탱이 보물로 지정되면서 절 자체가 다시 주목받게 됐다. ‘괘불도’는 높이 10m에 이르는 대형 불화로 1714년 5월 수화승 두초 등 9명의 화승이 참여해 완성한 것이다. 이로 보아 군위 법주사는 역사가 깊은 고찰로 경상도 지역에서 꽤 규모가 큰 사찰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법주사의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은 도난되기 이전에 보관이 없었으나 지금은 새로 만든 보관을 쓰고 있다. 보관에 화불(化佛)이 새겨진 것은 관음보살상이고 수병(水甁)을 장식한 것은 대세지보살상의 상징이다. 높이는 119.4cm, 117.8cm로 크기나 형태 등에서 거의 같고 조각 솜씨도 비슷하다. 몸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이며 목이 짧아 얼굴과 어깨가 거의 붙어 있는 듯하고 다리의 폭은 좁고 높아지면서 둔중한 느낌이다. 

얼굴은 살이 오른 듯 넓적하며 이마와 턱이 좁은 편으로 무표정한 인상이다. 머리카락은 위로 틀어 올린 가늘고 긴 상투 모양이며 양쪽 귀를 감싸면서 어깨 위까지 내려와 있다. 몸에는 오른쪽 어깨를 살짝 덮은 편단우견식으로 옷을 입었는데 양 옷깃은 대칭적으로 접혀 있고 어깨에서 팔꿈치까지 둥근 곡선의 옷주름이 자연스럽게 늘어져 있다. 다리 사이에는 넓게 펼쳐진 옷자락을 중심으로 좌우에 옷주름선을 간략하게 표현했다. 

이런 스타일의 옷주름은 1646년에 조성된 구례 천은사 수도암 목조아미타불좌상이나 1657년 북고사 목조아미타불좌상 등 17세기 중반 조선 후기 불상에서 볼 수 있다. 두 손은 따로 조각하여 끼워 넣었고 가슴 앞에서 엄지와 셋째손가락을 맞댄 설법인을 하고 있는데 손의 위치만 반대로 돼 있다. 그렇다면 관음과 대세지보살상을 협시보살로 양 옆에 배치한 본존 아미타불상이 있었다는 얘기다.

본존불이었던 목조아미타불좌상은 현재 보광명전 안에 근래 새로 만든 목조관음과 대세지보살입상, 그 사이에 배치된 목조문수와 보현보살입상과 함께 오존상이 봉안돼 있다(사진 3). 보광명전은 2001년에 새로 건립된 것으로 이 전각 바로 뒤편에 있는 영산전(靈山殿)이 옛 보광명전이라고 한다. 내부에는 새로 만든 석가삼존불상과 1736년에 제작된 ‘영산회상도’가 봉안돼 있다. 실제로 목조아미타불좌상은 제자리가 아닌 남의 집에 안치된 상태이며 원 봉안처는 장소적인 의미만 남아 있는 셈이다.

목조아미타불좌상은 높이 135cm로 협시보살상에 비해 조금 크고 이중의 계주(髻珠)가 장식된 여래상이라는 점 외에 얼굴이나 착의법, 옷주름 표현 등에서 거의 같다. 특히 머리와 육계와의 구분이 분명치 않고 원통형의 정상 계주와 타원형의 중간 계주가 장식된 것은 17세기 불상의 특징이다. 두 손은 설법인을 하고 있는데 오른손을 가슴 위로 올리지 않고 무릎 위에 놓여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런 손모양 역시 17세기 이후 불상에서 보인다. ‘관보’ 제1692호에는 이 불상이 목조석가여래로 기록되어 있으나 손의 형태나 협시보살상에서 볼 때 아미타불상임이 틀림없다.

법주사 목조아미타불좌상은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順治十七年 丙子四月日…)에 의해 조선 현종 원년인 1660년에 조성됐다고 전한다(‘문화유적총람’, 문화재관리국, 1977). 하지만 조성발원문이 언제,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며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아쉽게도 이와 관련된 자료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대세지보살상의 무릎 안에서 발견된 오색실로 묶여 있던 다라니 3점은 불교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조선시대 불상은 내부 복장물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복장물은 개금 또는 보수하는 과정에서 종종 발견되며 작업이 끝나면 원래대로 불상의 안에 다시 넣는 것이 통례이다.

군위 법주사 목조아미타삼존불상은 신체비례, 얼굴, 착의법, 손모양 등으로 보아 17세기 중반의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봐도 크게 무리가 없다. 특히 아미타불좌상은 17세기에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주로 활동했던 조각승 승일(勝日)이 조성한 1648년의 강진 정수사 삼불상이나 1657년의 무주 북고사 아미타불좌상과 비교할만하다. 

앞으로 불상의 조성발원문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조성연대와 조각승이 분명하게 밝혀지리라 기대한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585호 / 2021년 5월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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