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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김기라의 LED 광배 : 광배를 되찾은 부처님

기자명 주수완

LED로 부활한 부처님 광배에 담긴 각성의 소리

억불숭유로 크게 만들지 못한 불상 위엄 살리기 위해 불화 걸어 
광배는 불상의 필수요소…동남아선 일찍이 LED 도입해 빛 살려
실상사 극락전에 설치된 광배는 현대적이면서도 통렬함 느껴져

조선시대 불상으로서 드물게 후불탱화 대신 광배를 안치한 남양주 흥국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조선시대 불상으로서 드물게 후불탱화 대신 광배를 안치한 남양주 흥국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법당의 불상 뒤에 후불탱화가 걸려있다는 것은 불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알고 계실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불상과 불화가 하나의 세트로 불단 위에 모셔지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특징이다. 이런 법식은 아마 조선시대에 이르러 보편화되었을 것이다. 불상 뒤에 바로 불화를 걸면 사실상 불화가 잘 보이지 않음에도 왜 한국에서는 이러한 봉안 법식이 자리잡게 되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후불탱화가 있어야 할 자리에 원래는 무엇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원래 불상 뒤에는 당연히 광배가 있어야 한다. 조선시대 불상은 후불탱화라는 독특한 장엄을 하고 있는 셈이지만, 대신 광배를 지니고 있지 않다. 따지고 보면 광배를 두게 되면 광배에 가려 불화가 보이지 않을 것이므로 없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왜 광배를 없애가면서까지 후불탱화라는 새로운 법식을 만들었을까?

조선에서는 억불숭유정책으로 불상을 더 이상 크게 만들 수 없었다. 법당은 큰데, 불상은 너무 작아 균형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너무 작아져 버린 불상의 위엄을 살리기 위해 큰 불화를 걸어서 마치 야구경기장에서 실제로는 선수들이 너무 작게 보이니까 큰 전광판을 달아 선수들을 클로즈업하여 보여주는 주는 개념으로 큰 불화를 그려 걸게 된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법당의 내부 벽면에 돌아가며 벽화가 그려지는 경우가 많지만, 불상 뒤에 별도의 벽을 만들고 여기에 불화를 거는 법식은 없다. 그대신 거의 모든 경우 광배를 설치했다. 
 

미얀마 쉐다곤 파고다에서 만난 LED 광배를 지닌 부처님.
미얀마 쉐다곤 파고다에서 만난 LED 광배를 지닌 부처님.

따지고 보면 불상 뒤에 광배가 있어야 하는 것은 일종의 규칙이지만, 불화가 있어야 한다는 규칙은 없다. 결국 조선시대는 후불탱화라는 독특한 장르를 탄생시켰지만 그러는 사이 광배라는 불상의 필수적 요소는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이 광배를 되찾는 방법은 없을까? 아마도 김기라 작가의 LED 광배가 그 해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불상 뒤에 놓인 훌라후프 같은 LED 광배는 자칫 쌩뚱맞게 보일 수 있지만 많은 뜻이 담겨있다. 광배는 사실상 빛이기 때문이다.

빛은 형태가 없어서 과거에는 빛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인도에서 처음 불상이 만들어지던 당시에 광배는 아무런 문양이 없이 다만 원판으로 빛의 경계만 보여줄 뿐이었다. 그러다 빛이 주로 불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광배에 불꽃을 그리기도 하고, 그 불꽃의 이글거리는 선이 어느덧 연꽃줄기나 용이 구불거리는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빛을 만들어낼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연꽃이나 불꽃이 아니라 실제 불빛으로 광배를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광배 표현도 가능하다. 오히려 동남아시아에서는 일찍부터 이런 발광체를 통한 광배를 적극 도입해 왔다. 2000년대 초반에 방문한 태국의 사원에서도 LED나 발광 다이오드를 이용한 광배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런 시도가 필자에게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고, 우리도 저런 현대적인 광배가 도입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런저런 자리에서 주장도 해왔다.

그러다 작년에 남원 실상사를 찾았다가 실제로 LED를 이용한 광배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드디어 발견한 현대적 광배가 무척이나 고무적이었고 반가웠다. 더구나 과거 동남아시아에서 확인한 LED 광배는 빛으로 광배를 표현한 것은 좋았지만, 마치 현란한 전광판 광고 같은 이미지로 고전적인 불상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점이 아쉬웠었다. 그러나 이 실상사 극락전의 광배는 그 자체로도 높은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조선 초기의 건칠아미타불상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어 큰 감동을 받게 되었다. 
 

실상사 극락전 건칠아미타여래좌상 뒤에 설치된 김기라 작가의 LED 광배.
실상사 극락전 건칠아미타여래좌상 뒤에 설치된 김기라 작가의 LED 광배.

필자가 친견한 것은 그 무렵이지만, 설치는 이미 2014년 ‘실상사 프로젝트’ 때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 프로젝트는 ‘지리산 프로젝트 2014 : 우주·예술·집’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인데, 지리산 둘레길을 예술공간으로 바꾸어 생태적·공동체적 가치를 구현하자는 취지였다. 실상사의 회주 도법 스님과 바오로 성심원 오상선 원장신부님, 해인아트프로젝트에도 참여한 바 있는 안상수 작가가 공동추진위원장으로 진행한 이 프로젝트에는 권기주, 박영균, 연규현, 이대범, 천경우 등 여러 작가가 참여했다. 단순한 참여가 아니라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을 더 깊이 이해하고 창작에 반영하는데에도 무게를 두었다. 그중 실상사를 배경으로 한 ‘실상사 프로젝트’에는 안상수 작가, 박재동 화백 외에 바로 이 LED 광배를 제작한 김기라 작가가 참여했다. 서양미술사에서 교회, 성당이 예술의 중요한 생산주체이자 후원자였듯이, 불교도 마찬가지였다. 현대불교 역시 현대미술 발전에 중요한 축이어야 한다. 실상사 프로젝트는 그러한 불교의 위상을 정립한 것이라 평가받을만하다.

태국에서 본 빛 광배와 달리 김기라 작가의 광배는 참선에도 거슬리지 않는 단순 깔끔한 형태이다. 노란 빛은 과거 금으로 도금했던 광배의 색을 그 본질만 남기고 금의 물질성은 사라지게 한 듯 명료하다. 두광이라 하기에는 크고, 신광이라 하기에는 작은, 오히려 하나로 두 광배를 통합한 듯한 그 크기도 현대적이다. 

김기라 작가는 신랄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현실을 풍자하고 나아가 변화를 모색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실상사 극락전의 LED 광배는 그의 작품이라 하기에는 너무 얌전한 느낌이 들지만, 통렬함은 그대로다. 필자가 그 의도를 다 읽어낼 수야 없겠지만, 최소한 느끼는 바는 마치 조선불교에서 잊혀졌던 그러나 불상에는 필수인 광배를 되찾아 준다는 것은 곧 그간 불교계가 잊었던 무엇을 찾아야 한다는 각성의 소리처럼 들렸다. 현대적인 것 같지만, 오히려 ‘빛’이라고 하는 원래의 뜻을 살린 이 광배처럼, 급변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그 변화를 따라가는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오히려 석가모니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을 되짚어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성의 소리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이렇게 광배가 부활한다고 해서 후불탱화는 이제 그 자리를 넘기고 사라져야 하는 것일까? 실상사는 그에 대한 답마저도 가지고 있었다.

주수완 우석대 조교수 indijoo@hanmail.net

[1597호 / 2021년 8월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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