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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고민 담아낸 성보라야 미래 문화재 가치 크다

  • 성보
  • 입력 2021.08.23 11:32
  • 수정 2023.09.13 20:32
  • 호수 1598
  • 댓글 3

‘국가 등록문화재 보호제도’ 20주년…불교유산은 37건
사찰별 개성과 스님 철학 담긴 불사 시도 점차 많아져
일상속 부처님 모습부터 갤럭시S21 복장물까지 다양
“감동 선사하고 공감 이끌어 낼 독창적 시도 이어져야”

사단법인 다나 법당에 봉안될 후불탱화의 일부. 현재 배접까지 완성된 상태
사단법인 다나 법당에 봉안될 후불탱화의 일부. 현재 배접까지 완성된 상태다.

부처님이 단잠에 빠진 아기 옆에 앉아 새근새근 아기 숨소리에 맞춰 부채질을 한다. 뜨근한 욕조에 몸을 담근 노인 뒤에는 ‘이태리 타올’을 손에 쓴 부처님이 등장한다. 짐을 이끄는 이가 힘겨워 보이자 얼른 달려가 힘껏 수레를 밀어주는 부처님도 있다. 언제 어디서 누굴 도와야할지 모르니 체력 관리는 필수. 무거운 바벨을 번쩍 들어올리는 부처님과 짐볼로 유연히 스트레칭을 하는 부처님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얇은 한지를 여러 겹 배접해 온화한 느낌을 자아내는 이 작품은 사단법인 다나 법당에 봉안될 후불탱화다. 친근한 우리네 일상이 조각조각 간결하게 표현됐다.

‘부처님이 지금 이 시대 종로에 머무신다면 무엇을 하고 계실까?’를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다나 대표 탄경 스님이 후재 김법영 작가에게 고민을 나누자 계획이 금세 구체화됐다. 작업이 착수된 지는 4개월, 현재 배접까지 완성된 상태다. 이 탱화에는 희붐한 새벽마다 수레에 도시락·간식·침낭을 싣고 다니며 허기진 이들에게 온기를 나누던 스님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논산 쌍계사 대웅전 삼존불. 문화재청 제공
논산 쌍계사 대웅전 삼존불. 문화재청 제공

대웅전 삼존불 개금불사에 한창인 논산 쌍계사에서도 흥미진진한 소식이 들려왔다. ‘어떻게 하면 현 시대 쌍계사 모습을 후손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주지 종봉 스님의 머리에 ‘삼성전자 갤럭시 S21’이 번쩍 떠올랐다. 그날부터 스님은 스마트폰을 들고 경내 곳곳을 찍기 시작했다.

도량을 뛰어다니는 꼬마불자들부터 재잘거리는 청년불자들, 아들 취업을 발원하며 법당에 앉아 기도하는 보살불자들,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쓴 채 진행되는 현재 법회의 상황까지 쌍계사 일상을 부지런히 담아냈다. 사진과 동영상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간행됐던 쌍계사 관련 학술자료와 도서도 PDF파일로 변환돼 스마트폰에 담겼다.

“쌍계사 불자들이 더 신났어요. 도량에서 촬영한 자기들 가족사진도 복장물로 들어갈 스마트폰에 담아달라며 이것저것 보내와요. 신도들과 함께 하는 복장유물이니 의미가 크죠. 용량이 512GB니까 쌍계사와 관련된 자료는 거의 담을 수 있어요. 이전에 담았던 사리장엄구, 사경집 등도 당대 최첨단 기술을 반영한 거잖아요. 현대 기술의 집약체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스마트폰이 떠올랐어요. 예술성은 모르겠지만 스마트폰에 담긴 불사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100~200년 이후엔 새로운 불교문화유산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문화재청이 국가등록문화재 20주년을 맞아 올해 4월16일부터 7월18일까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 특별전을 진행했다.
문화재청이 국가등록문화재 20주년을 맞아 올해 4월16일부터 7월18일까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 특별전을 진행했다.

최근 사찰의 특성을 살리고 현 시대의 불교 모습을 각종 불사에 담아내려는 시도들이 활발해지고 있다. ‘국가등록문화재 보호제도’가 20주년을 맞은 현 시점에서 이런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국가등록문화재 보호제도는 2001년 근현대문화유산을 보존·계승하고자 도입됐다. 현재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문화유산은 모두 906건. 이 가운데 불교 관련 등록문화재는 37건이다. 최근 등록문화재였던 ‘서울 진관사 태극기’가 광복절을 앞두고 보물로 승격 지정예고 되면서 등록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등록문화재에 대한 불교계 관심은 저조했다. 수백년의 역사가 스민 문화재가 즐비하다보니 100년 이전에 조성된 유물은 문화재로 보는 인식이 희박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가진 가톨릭·개신교·원불교는 50년만 된 문화유산이 있으면 어떻게든 문화재로 만들고자 고군분투했다. 문화재청 근대분과 문화재위원 경암 스님은 “등록문화재 선정 기준에는 ‘고전과 현대를 잇는 근대성이 반영돼 있느냐’ 여부가 크게 작용한다”며 “불교계도 격랑의 시대를 버텨온 만큼 등록문화재 후보에 오를 수 있는 문화재가 많이 있지만 근대유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등록문화재 지정 신청은 여전히 활발히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불사에 시대상을 담아내려는 시도는 근대 시기부터 두드러졌다. 신라·고려·조선시대 전통을 답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1880년대 개항기 전후로 신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불사도 혁신의 시대를 맞았다. 몇몇 화승들은 과감하게 시대 상황을 녹여냈다.

금용일섭 스님(金蓉日燮, 1900∼1975).
금용일섭 스님(金蓉日燮, 1900∼1975).

대표적인 인물은 금용일섭 스님(金蓉日燮, 1900∼1975)이다. 근대 불화 전문가 최엽 동국대 강사는 일섭 스님을 “다이나믹했던 격랑의 근현대기에 불화를 파격적으로 선보인 선구자”라며 스님의 작품을 모본으로 한 제자 우일 스님의 ‘영암 망월사 감로도’(1945)를 소개했다. 이 감로도에는 지옥으로 행렬하는 이들이 각기 다른 전통민속 의상을 입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인도, 보르네오, 이집트, 알제리, 핀란드 등 세계 33개국 의상이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최 강사는 “이러한 경향은 시대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서 “제국주의로 인해 인류학, 민족학이 자연스럽게 발전했고 스님은 당대 유행했던 배경을 불화에 과감하게 녹여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서울 돈암동 흥천사 감로왕도(1939).
서울 돈암동 흥천사 감로왕도(1939).
서울 돈암동 흥천사 감로왕도 중단.
서울 돈암동 흥천사 감로왕도 중단.

서울 돈암동 흥천사 감로왕도(1939)도 시대상이 반영된 대표적인 불화다. 전투기·포탄·육군·탱크 등이 담긴 이 작품은 공주 마곡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계룡산파 화맥의 보응문성 스님과 그의 제자인 남산병문 스님이 31개 화면에 당시 어지러웠던 국내외 정세를 곳곳에 배치했다. 두 화승은 기본적인 도상 구성에 충실하면서도 일제강점기 문화 풍속을 풍부하게 반영해 일제가 남산에 세웠던 조선신궁과 침략의 본거지 통감부부터 기차·서커스단·전당포 등 다양한 도시 문화까지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청양 장곡사 감로도(2017).
청양 장곡사 감로도(2017).
청양 장곡사 감로도 하단.
청양 장곡사 감로도 하단.

비교적 최근 조성된 청양 장곡사 감로도도 눈여겨 볼만하다. 2017년 하대웅전에 봉안된 이 감로도 하단에는 세월호와 소녀상, 5·18민주화운동,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근현대사가 선명하게 담겨 있다. 억울하게 숨진 고혼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자 했던 당시 주지 서호 스님이 고민한 산물이기도 하다. 스님은 “현 시대의 아픔을 담아 부처님 가르침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원래 감로도의 취지”라고 강조했다.

시대상을 반영한 작품을 불사에 담아내려는 이러한 시도들은 미래 불교문화를 구현해 나간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경암 스님은 “작품의 독창성도 중요하지만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대중에게 어떤 감동을 선사하고 어떻게 현 시대에 맞는 부처님 가르침을 표현해 ‘공감’을 얻어낼 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이를 새로운 포교 지향점으로 삼아야 진정한 문화유산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목조·기와로 지어진 사찰 건축물에 현대성이 담긴 작품을 녹여내는 작업은 까다롭겠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독창적 시도는 계속해 이어져야 한다. 이러한 도전은 불교유산을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핵심 사안이기에 가볍게 여겨선 안된다”고 전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598호 / 2021년 8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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