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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묵언에 대한 붓다의 비판

기자명 마성 스님

말 할때 분명히 말하고 침묵할 땐 침묵해야

기수급고독원 승가공동체서 불화 염려해 대화 단절한 채 안거
붓다, 꾸짖으며 “외도 벙어리계 버리고 갈마서 소통할 것” 강조
무조건적인 묵언 안되지만 여법한 침묵은 승단정화·화합 요체

안거 동안 스님들은 한 곳에 모여 생활한다. 사진은 태국 스님들이 수도원에서 함께 공양하는 모습.
안거 동안 스님들은 한 곳에 모여 생활한다. 사진은 태국 스님들이 수도원에서 함께 공양하는 모습.

불교승단은 보름마다 실시하는 포살(布薩, uposatha)과 함께 자자(自恣, pavaraṇa)라는 훌륭한 제도를 갖고 있다. 자자는 3개월 안거(安居, vassa)의 마지막 날, 전체 대중이 한 자리에 모여 법랍이 가장 높은 장로부터 지난 3개월 동안 자신의 허물을 보았거나 들었거나 의심스러운 바가 있으면 지적해 달라고 요청한다. 만일 지적을 받으면 잘못을 참회하거나 해명해야 한다. 이러한 갈마를 통해 자체적으로 승단을 정화하고 승단의 화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면 ‘자자건도(自恣犍度)’는 어떻게 제정되었는가? 붓다께서 사위성의 기수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실 때의 일이다. 그때 안거를 맞이한 비구들이 한곳에 모여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그들은 승려들 간의 충돌과 불화를 염려하여 ‘어떻게 하면 함께 서로 화합하여 싸우는 일 없이 즐겁고 안락하게 보낼 수 있을까?’를 의논하게 되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우리들은 서로 얘기도 나누지 말고 안부도 묻지 말자. 마을에서 걸식을 끝내고 먼저 정사로 돌아온 자는 묵묵히 자리나 발 씻을 물, 식기 등을 마련해 두자. 나중에 돌아오는 자는 묵묵히 이것들을 정리하여 제자리에 두자. 물병이 비어있는 것을 보는 자는 묵묵히 채워두고, 만약 스스로 못할 사정이라면 손짓으로 다른 비구를 불러 역시 손짓으로 지시하여 채우게 하자. 그러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들은 서로 충돌하는 일 없이 서로 화합하여 즐겁고 안락하게 안거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그리고 그들은 우기 3개월을 그대로 실천했다.

안거가 끝난 뒤, 이들은 붓다를 찾아뵈었다. 그때 붓다는 그들에게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안거 기간 동안 서로 화합하며 별 어려움 없이 잘 지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붓다에게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묵언(默言)하면서 3개월 동안 생활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붓다는 그들을 크게 꾸짖었다. “이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들은 안락하게 살지 못했으면서 그것을 안락하게 살았다고 하는구나. 어찌하여 너희들은 외도(外道)나 지니는 벙어리계를 지키며 살았단 말인가?” 그런 다음 “안거를 보낸 자는 세 가지 점에 의해 자자를 실행해야 한다. 세 가지란 보고 듣고 의심한 것이다. 이것에 의해 너희들은 서로 허물로부터 벗어나 율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사분율’ 권37 ‘자자건도’에서는 이렇게 설해져 있다. “어리석은 자들이여, (침묵이) 스스로 즐거움이라 하지만 그것은 실로 괴로움이다. 스스로 근심이 없다고 하지만 그것이 실로 근심이다. 원수의 집에서 함께 거주하는 것과 같고, 마치 백양(흰색 양)과 같다. 왜냐하면 내가 수많은 방편으로 이미 설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이쪽과 저쪽이 서로 가르치고 서로 말을 들어주고 깨달음을 얻도록 해야 한다.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외도와 같다. 서로 벙어리법[瘂法]을 받아들였다. 이와 같은 벙어리법을 행해서는 안 된다. 만약 벙어리법을 행하면 돌길라(突吉羅)이다.”(T22, 836a) 이와 같이 붓다는 안거 기간 동안 묵언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 대신 이쪽과 저쪽이 서로 가르치고 남의 말을 들어주고 깨달음을 얻도록 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한편 말을 전혀 하지 않는 ‘묵언’과 대중생활을 하면서 ‘침묵’하는 것은 그 의미가 약간 다르다. 담체(曇諦)가 번역한 ‘갈마(羯磨)’는 이에 대해 ‘다섯 가지 대중 생활법[五種入衆法]’을 언급하고 있다. 그 중에서 “다섯째는 승가 내부에서 옳지 못한 일을 보더라도 마음을 편안하게 인내하면서 마땅히 침묵해야 한다(五若見僧中有不可事, 心安應作默然也).” 그 연장선상에서 다섯 가지 여법한 침묵과 다섯 가지 비법의 침묵을 제시하고 있다.

다섯 가지 여법한 침묵이란 첫째는 타인의 비법(非法)을 보더라도 침묵한다. 둘째는 (비법자와) 동반자가 되지 않고 침묵한다. 셋째는 중죄(重罪)를 범하더라도 침묵한다. 넷째는 함께 머물며 침묵한다. 다섯째는 (타인과) 함께 지내는 곳에서 침묵한다.”(T22, 1064a)

이것은 승가의 화합을 위해 가능하면 타인의 허물을 지적하지 말라는 것이다. 타인의 허물을 지적하는 것을 거죄갈마(擧罪羯磨)라고 한다. 그런데 상대편에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다시 불견죄거죄갈마(不見罪擧罪羯磨)를 실시하게 된다. ‘이로 인해 승가 내부에서 다툼(bhaṇḍana, 訴訟), 쟁론(kalaha), 논쟁(viggaha), 언쟁(vivāda), 승가의 분열(saṅghabheda), 승가의 불화합(saṅgharāji), 승가의 차별(saṅghavavatthāna), 승가의 분리(saṅghanānākaraṇa)가 예상된다.’ 이 때문에 붓다는 타인의 잘못을 보더라도 침묵하라고 했다.

반면 침묵해서는 안 되는 다섯 가지 경우를 제시하고 있다. 이른바 다섯 가지 비법의 침묵[五種非法默然]이 그것이다. 첫째는 여법한 갈마에 마음으로 동의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다. 둘째는 도반과 뜻을 같이 하면서도 침묵하는 것이다. 셋째는 작은 죄[小罪]를 보았더라도 침묵한다. 넷째는 별도로 거주[別住]하면서도 침묵한다. 다섯째는 계장(戒場)에 있으면서 침묵한다.”(T22, 1064a)

이것은 자신의 의견을 표명해야 할 때 침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첫째, 회의(갈마)에서 어떤 안건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침묵하지 말고, 분명하게 자기의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 안건이 통과된 후에 불평하는 것은 수행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도반과 뜻을 같이 하면 같이 한다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 셋째, 타인의 작은 허물은 그때그때 지적하여 시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동주(同住)가 아니고 별주(別住)일 경우에는 반드시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 이런 경우에 침묵하는 것은 승가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다. 다섯째, 계장(戒場)이란 수계식을 거행하는 계단이나 포살을 실시하는 포살당(布薩堂)을 말한다. 이러한 갈마에서는 갈마사의 물음에 반드시 답해야 한다.

이와 같이 공동생활에서 묵언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대중과 함께 생활할 때에는 침묵해야 할 때가 있고, 분명히 자기 의견을 피력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침묵해야 할 때에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거나,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한마디로 말을 해야 할 때는 말해야하고, 말하지 말아야 할 때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598호 / 2021년 8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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