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께서는 육바라밀 중에 보시를 강조하셨고 보시 중에서도 법보시가 가장 공덕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법보신문은 지혜와 자비의 사상 등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보여주는 신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웃들에게 부처님 법을 전달하는 법보시 캠페인은 공덕을 짓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법보시 캠페인 동참을 통해 부처님의 향기가 더욱 널리 퍼져나가길 기원합니다.”
서울 법련사 주지 진경 스님이 법보신문 법보시캠페인에 동참했다. 스님은 “보시를 통해 스스로의 인색함, 야박함 등 이기적인 마음을 씻어낼 수 있다”며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또 내 이웃을 내 가족과 같이 여기는 그 마음이 바로 자비이며 보시”라고 강조했다. 이어 “수행의 목적도 불도를 성취해 중생을 제도하고 대자유, 해탈의 길로 이끄는 데 있다”며 “불법을 전하는 법보시는 수행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며 결국은 수행자뿐 아니라 모든 불자가 해야 할 책무”라고 역설했다.
진경 스님이 불교와 첫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조계사 신도였던 직장동료의 권유였다. 그의 권유로 조계사 법회에 참석해 처음 법문을 들은 날 조계사 기둥 뒤에서 펑펑 울었다. 이후 조계사 법회는 물론 조계사청년회, 수선회 등에서 참선하기도 했다. 특히 무진장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 절로 나는 신심과 환희로움을 감출 수 없었다.
스님이 출가를 결심하게 된 것는 30세 때 마주한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사랑하고 존경했던 아버지의 죽음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면서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을 거듭했고 마침내 출가를 결심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출가인으로 거듭나는 것은 큰 두려움이 동반하는 일이었으나 스님은 출가발심을 굽히지 않았다.
출가에 앞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기로 했다. 인도 북부의 아슈람부터 푸나까지 인도 전역을 순례하며 불교성지를 참배했다.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를 친견했고 수행센터에서 수행도 했다. 그렇게 1년을 인도에서 보낸 스님은 한국으로 돌아와 곧장 승보종찰 송광사로 향했다. 진경 스님은 1992년 송광사 회주 현호 스님을 은사로, 보성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1996년 양산 통도사에서 청하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이후 인천 용화사 선방을 비롯해 문경 대승사에서 용맹정진하는 등 수행에 힘썼다.
2015년 현재 주지 소임을 맡고 있는 서울 법련사로 온 스님은 신도들과 함께 곧장 천일기도를 시작했다. 더불어 한 달에 한 번 1080배, 무릎이 아파 절하기 어려운 신도들과는 ‘금강경’ 독경 모임을 진행했다. 기도와 독경의 공덕으로 법련사가 도심포교당으로서의 저변을 넓히길 발원하며 신도들과 일심으로 정진을 이어갔다.
이웃을 위한 자비실천도 잊지 않았다. 2016년 신도들과 함께 경기도 양주 육군 26사단 비호대대를 방문해 350여명의 군장병들에게 사찰음식과 과일을 건네며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전달했고, 이후 동작구 본동사회복지관, 미혼모자 보호시설인 도담하우스에 후원금과 쌀 등을 보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법련사 1층에 위치한 불일미술관에 다양한 전시회를 열어 불교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일에도 주력하고 있다. 불일미술관은 현재 현진 스님의 ‘미소와 서원 동행, 깨달음의 꽃이 피다’ 전시를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처장 소임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2018년 종단협 사무처장에 임명된 스님은 ‘한중일 불교우호대회’ ‘한국불교 남방불교 교류행사’ ‘한국불교 지도자 초청 간담회’ ‘함께 나누는 작은 설 동지나눔 축제’ ‘제주4·3희생자 추모위령재’ 등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30개 종단이 함께하는 행사들이 여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력해 왔다.
진경 스님은 “온 천지에 부처님 법이 전해져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출가했기에 소임의 크고 작음을 떠나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며 “공덕의 밭에서 선업을 짓는 법보시 캠페인에 많은 불자들이 동참해 우리 사회 곳곳에 부처님 법향이 가득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윤태훈 기자 yth92@beopbo.com
[1599호 / 2021년 9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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