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가 내부에서는 크고 작은 다툼이 일어난다. 승가 내부에서 일어나는 다툼을 ‘승가쟁사(僧伽諍事)’라고 한다. 줄여서 ‘승쟁(僧諍, saṅgha-adhikaraṇa)’이라고 부른다. 승쟁에는 크게 네 가지 종류가 있다. 이른바 언쟁(言諍), 멱쟁(覓諍), 범쟁(犯諍), 사쟁(事諍)이 그것이다. 언쟁이란 말다툼으로 인한 쟁사이고, 멱쟁은 교계(敎誡)로 인한 쟁사이며, 범쟁은 범계(犯戒)로 인한 쟁사이고, 사쟁은 잘못된 갈마(羯磨)로 인한 쟁사이다.
승가 내부에서 다툼이 일어났을 때 재가신자는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 그 해답을 율장 구섬미건도에서 찾을 수 있다. 꼬삼비(Kosambī)의 비구들이 둘로 나뉘어져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툼을 중지하라는 붓다의 충고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붓다는 그곳을 떠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로 다투는 비구[共爭]를 대하는 출가자의 태도와 재가자의 태도에 대해 설하게 되었다. 승쟁에 대한 재가신자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자.
붓다의 훈계를 듣지 않고 서로 싸우던 꼬삼비의 비구들이 사왓티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나타삔디까(급고독장자)를 비롯한 500명의 우바새들이 붓다를 찾아뵙고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여쭈었다. 붓다는 이렇게 말했다. “거사들이여, 그대들은 양쪽에 보시하라. 양쪽에 보시하고 양쪽으로부터 법을 들어라. 양쪽으로부터 법을 듣고, 그 가운데 여법설(如法說) 비구의 견해・이해・기쁨・주장을 받아들여라.”(Vin.Ⅰ.355) ‘사분율’ 권43에서는 “마땅히 양쪽의 말을 듣되, 만일 단월(檀越, 재가신자)이 보시를 하려면 둘로 나누어라. 이들도 승려요, 저들도 승려다. 거사들이여, 황금지팡이를 꺾어 둘로 나누면 둘 다 황금인 것과 같다.”(T22, 883b)
두 율장에서는 서로 다투는 비구일지라도 양쪽에 평등하게 보시하라고 했다. 붓다의 입장에서 보면 이쪽도 제자요, 저쪽도 제자이기 때문이다. 다만 ‘빨리율’에서는 여법설자의 편이 되어주라고 한다. 반면 ‘십송율’에서는 우선 양쪽의 말을 들어보고, 비법(非法)을 설하는 자에게는 존중・공양・찬탄하지 말고, 그 반대일 경우에는 존중・공양・찬탄하라고 되어있다.(T23, 216c) 각 부파의 입장에 따라 승쟁을 해결하는 방법이 서로 달랐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마하승기율’에서는 우선 승가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승쟁을 해결할 수 있는 총명하고 유능한 비구를 찾아서 이 일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비구를 찾지 못할 경우에는 우바새를 찾아야 한다고 되어있다. 왜냐하면 다투는 비구가 우바새를 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T22, 328a) 이것은 재가신자가 오히려 쟁사를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붓다가 제시한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바새를 보내 그 비구에게 물어야 한다. 그대는 마땅히 승가의 가르침을 따르겠는가 말겠는가. 만일 따르지 않으면 내가 마땅히 백의(白衣)의 법을 주어 그대를 쫓아내 마을에서 나가도록 하겠다.”(T22, 328b) 즉 우바새가 승가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권고하고, 불응할 경우에는 흰옷을 입혀 마을에서 추방하겠다는 뜻을 전한다.
둘째, “이 비구들의 쟁사가 사소한 쟁사일 경우에는 승가대중이 우바새 앞에서 그 쟁사를 없애주어야 하고, 만일 비예(鄙穢=추접하고 더러운)의 사건일 경우에는 우바새로 하여금 위유(慰喩)해서 떠나게 하되, 승가는 여법・여율・여수다라하게 그 사실에 따라 현전비니를 써서 제멸하라.”(T22, 328b) 즉 쟁사가 사소한 사건일 경우에는 우바새 앞에서 쟁사를 없애지만, 추접하고 더러운 사건일 경우에는 환속하도록 권유하고, 여법하고 여율하게 당사자가 있는 앞에서 쟁사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쟁사가 정(淨)하면 승가대중이 마땅히 우바새와 함께 단멸(斷滅)하고, 만일 부정(不淨)하면 마땅히 깨우쳐서 우바새를 보내, 이 비구의 일을 실제에 따라 여법・여율하게 여초포지비니멸(如草布地毘尼滅)해야 한다.”(T22, 335a) 즉 부정쟁(不淨諍)일 경우에는 우바새를 보내, 마치 풀로서 땅을 덮듯이 없었던 일로 다툼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비구들의 충고해도 다툼을 멈추지 않을 때, “우바새가 말하되, 내가 마땅히 존자에게 의발・병유탕약(病瘐湯藥)을 줄 것이다. 만일 범행을 닦는 것이 즐겁지 않다면 환속이 가능하다. 내가 마땅히 그대에게 아내를 주고 필요한 것을 공급할 것이다.”(T22, 441a)
이것은 비구들의 충고에도 불응할 경우에는 유력한 우바새가 나서서 의발과 병유탕약을 주고, 최종적으로는 환속이 가능하니 환속하기를 권고함과 동시에 아내와 필수품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한다. 이상에서 보듯이 대중부의 ‘마하승기율’에서는 다른 상좌부 계통의 율장과는 달리, 승쟁 해결에 재가신자가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후대에 성립된 ‘욱가장자소문경(郁伽長者所問經)’에서는 “재가보살이 만약 승방(僧坊)에 들어가 머무를 때는 오체투지로 경례한 후에 들어가, 마땅히 이와 같이 관(觀)해야 한다. 이곳은 공행(空行)의 처(處), 무상행(無相行)의 처, 무작행(無作行)의 처, 사범행(四梵行)의 처, 정행정주소안(正行正住所安)의 처이다. 나도 마땅히 어느 때인가는 속가의 때를 버리고 가야할 곳”(T11, 476a)이다.
또 “승려들의 거처에 들어가면, 일체 모든 비구들의 덕을 관찰해야 한다. 이를테면 누가 많이 배워 아는 자[多聞]이고, 누가 설법을 잘하며, 누가 계율을 잘 지키는 자이고, 누가 전승(傳承)에 정통한 자이며, 어떤 비구가 보살장(菩薩藏)을 수지하는 자이고, 누가 아련아[閑靜處]에 머물며, 어떤 비구가 욕심이 적게 걸식하며 분소의를 입고 욕망을 떠나 혼자 머물고 있는지, 누가 수행자이며, 누가 좌선하는 자이며, 누가 업무를 관장하는 자이며, 누가 사찰의 주인인지 등을 모두 관찰하고 따라 행해야 한다. 누구든지 헐뜯고 비방해서는 안 된다.”(T11, 476c-477a)
“재가보살은 이와 같이 사문의 행동을 잘 알아야 한다. 만약 서로 언쟁하고 다투는 사문이 있으면 화합시켜야 한다. 정법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목숨까지 바쳐야 한다.”(T11, 477a) 이상은 출가자에 대한 재가보살의 역할이다. 그런데 한국의 재가신자들은 승단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 것은 아닌가?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600호 / 2021년 9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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