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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탈종교 시대와 불교 (1)

탈종교 가속화는 불교에 주어진 새로운 기회

탈종교 현상 날카롭게 반영한 달라이 라마의 책 ‘종교를 넘어’
2017년 설문조사에 “영적이지만 종교 믿지 않아” 27% 차지
특정 교리나 믿음 강조하기보단 인간이 지닌 본성 일깨워야

백남준, ‘TV 붓다’, 용인 백남준아트센터, 1974.법보신문 자료사진
백남준, ‘TV 붓다’, 용인 백남준아트센터, 1974.법보신문 자료사진

그간의 연재에서는 인문학적 관점으로 바라본 ‘부처님의 삶’(佛)과 ‘가르침’(法)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9월부터의 연재에서는 주로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승가(僧伽)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승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금·여기 현실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개방적 공동체를 뜻합니다. ‘개방적’ 공동체라 함은 전통적인 승가의 구성원이라 일컫는 비구·비구니·우바이·우바새 등 남녀 출재가 불교인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굳이 전통적 불교승가의 구성원인 사부대중을 넘어서는 공동체를 말씀드리는 것은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새로운 시대상황 때문입니다.

시대전환의 징후는 여러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만, 이번 글에서는 특히 ‘탈종교’라는 현상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지난 10여년 간 기독교를 비롯한 한국의 종교계에서는 탈종교 현상을 언급하는 목소리들이 간헐적으로 있어왔습니다만, 주로 교회나 사찰에서의 신자·신도 감소 추세를 염려하는 데에 집중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탈종교라는 현상은 단순히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니고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현상으로 일종의 문명전환의 한 모습입니다. 따라서 저는 탈종교 현상을 문명사적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탈종교 시대의 불교의 새로운 역할을 어떻게 모색할 것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2011년 출판된 달라이라마의 ‘Beyond Religion(종교를 넘어)’에서 달라이라마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넘어 인류를 연결하는 도덕적 가치로서 기본적인 인간의 본성(영성, spiritua lity)을 강조합니다.

종교는 과거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다양화된 세계화 시대에는 종교가 인간의 모든 고민과 문제들에 해답을 줄 수 없습니다. 이제 종교를 초월한 삶의 방식과 행복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달라이라마는 인간의 기본적 본성으로서의 영성과 종교적 영성을 구별합니다. 그에 따르면 그 둘의 차이는 ‘물’과 ‘차’의 차이와 같다고 합니다. 종교적 내용이 없는, 인간 본성의 내적 가치는 물과 같은 것으로 건강과 생존을 위해 매일 매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반면 종교적 내용을 가진 도덕과 내적 가치는 마치 차와 같다고 합니다. 차에는 찻잎과 향료 때로는 설탕이 들어가 차를 더욱 영양가 있고 몸에 좋은 것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차의 주성분은 언제나 물입니다. 우리는 차 없이는 살 수 있어도 물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달라이라마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말을 요약합니다. “그러므로 종교보다 근본이 되는 것은 기본적인 인간의 영성입니다. 종교적 토대가 있건 없건 우리는 인간으로서 사랑, 친절, 애정의 근본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달라이라마는 자신이 속한 불교라는 종교 전통마저 부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그의 책 전체를 일관하는 메시지는 오히려 불교의 근본 가르침을 일깨우고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가 부정하는 ‘종교’는 특정한 교리체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배타적 공동체’로서의 종교입니다. 전통이라는 미명으로 고착화된 제도와 의례, 신(神)을 대신한다는 사제주의의 폐해, 그리고 수행보다는 예배와 기도가 자신을 구원해준다고 믿는 사람들의 수동적인 종교생활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가 강조하는 인간의 기본적 영성(spirituality)은 그 의미로 볼 때 불교전통의 선근종자나 불성이 의미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달라이라마는 구원받아야할 ‘죄인’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불성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신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이 책은 서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탈종교현상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조사기관 퓨 리서치(Pew Research)에서 2017년에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영적이지만 종교를 믿지 않는’ 소위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이 전체 종교인구의 27%에 달한다고 합니다. 불과 5년 전에 SBNR이 19%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늘었으며 계속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교회’에 가지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 ‘종교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교서적 읽기, 명상, 봉사 등의 활동을 통해 나름대로의 ‘종교적 활동’을 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불교에 우호적이고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불교를 ‘종교’로서가 아니라 행복추구를 위한 영적인 ‘삶의 방식’(lifestyle)으로써 받아들이거나 혹은 무신론적 철학 체계로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달라이라마의 책 ‘종교를 넘어’는 이러한 미국인들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요컨대 그가 하는 말의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은 “불교는 당신들이 믿어왔던 그런 ‘종교’와 다르다”일 것입니다. 실제로 불교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구축되어 온 ‘종교’(religi on)라는 개념에는 잘 들어맞지 않습니다. 19세기 서구열강의 동양진출에 따라 억지로 ‘종교’라는 분류에 속하게 되면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때로는 근대화의 명분으로 서구전통의 ‘종교’라는 외피에 맞추려고 노력을 해왔지만 그 결과가 늘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탈종교적 현상은 불교에게는 어쩌면 새로운 기회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서구에서의 불교에 대한 관심이 불교의 ‘종교적 성격’이 아니라 불교가 가진 ‘비종교적 성격’ 때문이니까요. 한국불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다음번 연재에서 더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만, 한국인의 종교인식은 서구적 관점의 ‘종교적’이라기보다 ‘영적인 관심’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 한국의 10대 20대 젊은이들은 서구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멤버십에 기반 한, 교회의 강한 연대감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또한 ‘집단적’ 믿음보다는 ‘개인적’ 수행과 영적 라이프 스타일을 강조하는 불교에 더 친근함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준비와 태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을 잘 이해하고 시대적 요청을 적극 수용한다면 탈종교 시대의 새로운 대안으로서 불교는 한국사회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stcho@korea.ac.kr

[1601호 / 2021년 9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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