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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원죄

기자명 이병두

기독교, 특히 가톨릭에서는 ‘순교’를 매우 거룩하게 여긴다. 조선 후기 많은 교도들이 권력에 희생된 한국에서는 그 정도가 특히 더 심하여 전국의 도로 곳곳에서 ‘〇〇순교성지’라고 새긴 갈색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조선시대에 가톨릭교도뿐 아니라 동학교도와 홍경래난 관련자 등 더 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했던 곳까지 ‘순교 성지’로 선포하여 중앙과 지방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아 ‘성역화’하고 있다. 로마교왕이 방한했을 때에 그곳을 찾게 하고는 ‘교왕이 다녀간 곳’이라는 표지판이나 표지석을 세운 뒤 로마교왕청의 힘을 내세워 ‘가톨릭의 독점권’을 주장하고 정부를 압박하여 그 독점권을 확실히 다지는 일을 이어간다. 그리고 지방 정부에 압력을 넣어 자신들이 주장하는 성지를 잇는 순례 길을 조성하게 한다.

어느 종교이든 ‘순교’를 거룩하게 여기지만, 다른 종교에 비하여 기독교[가톨릭]는 그 정도와 수준이 더 심한데 여기에는 탄생에서부터 이어져 온 역사적 배경이 있다. 로마 제국 치하에서 수난을 당하다 서기 313년에 공인을 받은 뒤로는 제국 내의 다른 종교들을 탄압하는 막강 권력을 누리기도 했지만, 훗날 기독교인들에게 ‘배교자’로 불리게 되는 율리아누스 황제(재위 서기 361~363)가 유대교 신전 수리를 하게 하자 기독교인 세 명이 밤중에 그 신전에 들어가 신상들을 부수어 버린다. 요즈음 서구인들이 무슬림을 향해 자주 쓰는 ‘자살 공격’과 다름없는 일이라, 예루살렘 주재 로마총독이 회개하라고 했지만 이 기독교인들은 거부하며 “차라리 어떤 고통이라도 기꺼이 겪겠다”고 소리치다 고문을 당한 뒤 결국 불에 타 죽는다.

이런 식의 공격적인 순교자는 제국 폭력의 무고한 피해자가 아니었다. 오늘날의 일부 극단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인은 이교도 신상을 부수고 의식을 중단시키고 자신들의 지위 격하를 상징하는 신전을 파괴하고, 율리아누스의 ‘압제’에 도전하는 사람을 크게 찬양하면서 스스로 순교를 불러들였다.(카렌 암스트롱, ‘신의 전쟁’)

조선시대 가톨릭교도들이 조상의 신주를 태우고 제사를 거부한 행위는 유교를 최고 통치 이념으로 하고 있던 당시 국가권력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탄압’과 ‘처형’이 뒤따르게 될 것임을 알면서 저지른 일이라는 점에서, 율리아누스 황제 시절에 있었던 위 사건과 닮았다. “가톨릭 탄압에 보복한다”면서 임금의 할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는 오페르트 일행을 조선 가톨릭교도들이 안내해 준 일도 국가권력을 자극해 ‘탄압’을 유도하고 ‘순교’를 하겠다고 한 점에서 비슷하다.

피사로가 이끈 스페인 정복자들이 현재의 멕시코(Mexico) 땅을 점령하여 폐허로 만들고 새 도시를 세우면서 맨 먼저 한 일은 그곳의 선주민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던 틀라텔롤코 피라미드 곁에 성당을 세운 일이다. 스페인 침략자들의 행위를 ‘합법화’해준 선언문, 레케리미엔토 (Requerimiento)에는 그 땅의 주인들에게 “내가 너희들의 땅을 스페인 국왕에게 넘겼으니 그런 줄 알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내용의 교왕 알렉산드르 6세의 1493년 교시가 들어있었다.

아이티 땅의 선량한 주민들을 수백 명씩 잡아다가 스페인의 성당에서 경매로 팔면서도 양심의 가책은커녕 오히려 “성부‧성자‧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잘 팔릴 만한 노예들을 계속 공급해주자”고 한 콜럼버스의 일기가 잘 보여주듯이, 이 잔혹한 행위의 배경에는 가톨릭교회의 원죄가 있다. 그러므로 가톨릭은 전 세계에 자신들의 순교 성지와 순례 길을 조성하기에 앞서 스페인‧포르투갈과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을 앞세워 세계 곳곳에서 선주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그곳의 문화를 말살했던 죄를 회개해야 마땅하다. 제주도 등지에서 가톨릭[프랑스]의 힘을 믿고 악행을 저지르고 일제 식민지배에 적극 협력‧지원했던 한국 가톨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603호 / 2021년 10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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