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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세계 최대 성경에 순교자 기념관 세운다니

기자명 법보
  • 기고
  • 입력 2023.10.05 20:50
  • 수정 2023.10.06 06:21
  • 호수 1699
  • 댓글 1

기고-이기룡 포교사
지자체에서 역사 고증 없는 선양사업 추진
남연군묘 파헤친 ‘문화재 약탈꾼’까지 선양
한국종교계 막무가내식 영역확장 금도 넘어

유럽의 명산 알프스산맥의 연봉 정상에 십자가를 세우려는 극우 정치인을 향해 전문산악인들이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고 영국의 더 타임스가 최근 보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 타임스에 의하면 이탈리아의 전설적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78)가 알프스산맥 연봉의 정상십자가 설치에 부정적인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산꼭대기 십자가 증설논쟁이 거세지고 있다는 것.

메스너는 “알프스에는 이미 충분히 많은 십자가가 있는데도 모든 산봉우리 정상과 언덕 위에 십자가를 세우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한 뒤 “이미 설치된 4000여개의 십자가는 어쩔 수 없다 해도, 더 이상 새로운 십자가가 들어서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스너는 그 이유로 “산 정상에 아무것도 없는 게 더 낫다. 자신들의 종교를 위해 정상을 점유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거기에 이탈리아산악협회 기관지 발행인 마르코 알비노 페라리는 “모든 산악인이 산 정상의 십자가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산 정상은 중립적인 곳으로 남아야 한다”고 비판해 논쟁을 증폭시킨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종교간 다툼과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세계적 추세와는 반대로 치닫는 한국 종교계의 막무가내식 ‘영역확장’ 획책노력은 금도를 넘어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충남 당진시는 9월29일 대호지면사무소 광장에서 ‘서양음악 도래지 선포식’을 갖고 식후 행사로 면민 노래자랑대회를 열었다.

이날 선포식까지 열어가며 기리고자 하는 서양음악도래지라는 역사적 사실이 합당한 고증을 거친 것인가? 그 주인공이 과연 기릴만한 ‘깜냥’이 되는 인물인지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어 왔기 때문이다.

표지석의 주인공인 오페르트(Ernst Jakob Oppert 1832∼1903)가 누구인가? 표면적으로 알려지기로는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펴던 때 조선에 통상조약을 강요하려고 강화도 해역에 정박했던 독일군 함대를 타고 온 독일계 유대인 선교사로 알려졌으나, 남연군(대원군의 아버지)의 묘지(충남 해미현 서면 조금진/현재 충남 당진시 대호지면)를 도굴하려고 현지 천주교인들의 길안내를 받으며 2번씩이나 시도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실제 신분은 ‘도굴꾼’ 아니면 ‘문화재 약탈꾼’이라는 의심을 받았다는 인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도래지 표지석이 세워지는 이유로는 당시 그들 외래인 일행을 위해 관아에서 베푼 연회에서 가무회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서양음악이 처음으로 소개되고, 참석한 조선 관료들이 음악에 맞춰 춤추고 노래했으며, 후일 돌아가서 쓴 여행기에 한국음악을 소개했다는 것이 일부 학자들이 서양음악 최초 전래지라는 주장을 펴며 기념비를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진시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의 대호지면 조금리는 옛 나루터 ‘조금진(調琴津)’ 자리로 오성환 시장은 선포식에서 “오늘 행사는 대호지의 장소성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으로 리브랜딩한 첫 번째 시도이다. 대호지면의 이미지를 180도 바꾸고, 향후 대호지의 문화예술이 한층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지방자치의 확대 추세에 편승한 일부 지방관리 및 정치 지망생들이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공적자금 투입의 적정성, 효율성, 공공성, 특정종교 편향성의 문제점을 꼼꼼하게 따져 보지도 않고 즉흥적으로 밀어 붙인다는 논란이 끊이지를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과시·졸속형 지치행정의 사례로 꼽히며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충북 괴산군 초대형 쇠가마솥 제작 사례에서 보듯, ‘기네스북 등재’를 내세운 시선 끌기 사업이 몇 년도 못가서 ‘5억짜리 애물단지’로 전락하며, 처분 경비만 2억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데도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실정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나.

이런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멀쩡한 도로명 앞에 ‘교황청 승인’을 표시하는 안내판을 별도로 세우고, 종로통 대로변 곳곳에는 누가, 왜 붙였다는 표지도 없는 ‘이상한 길안내 표지’를 따라가 보면 천주교인들만 아는 ‘그들만의 성지’가 나타나도록 안내하는 길 안내 표지(픽토그램)가 많이 붙여져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그 작업을 누가 했으며, 거기 투입된 많은 경비는 어디서 댔을까? 물론 서울시와 해당 구청에서 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울산시는 최근 세계 최대의 성경책을 제작하여 새로 지을 기념관에 전시할 계획이라고 밝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는 불과 몇 달 전까지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 등 기업인의 얼굴을 새긴 한국판 ‘큰바위 얼굴’상을 250억원을 들여서 세운다고 요란을 떨다가 비난여론에 몰려 중단되자 느닷없이 세계 최대의 성경책 만들기와 천주교 순교자 기념관 건립 계획을 들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울산시의 “지역 랜드마크로 만들고, 기네스북 등재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생뚱맞은 여론몰이도 낯설지 않다.

포교사, 언론인
포교사, 언론인

울산시 언양읍 살티공소(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순회만 하는 구역의 천주교공동체)에 전시관을 건립하고, 거기에 세계 최대의 성경책을 만들어서 전시한다는 기획으로 이 사업은 2014년 6·4지방선거 당시 울산시장 예비후보의 공약사항으로 알려졌는데, 울산판 ‘큰바위 얼굴’ 건립계획이 무산되자 불과 3개월여 만에 갑자기 다시 들고 나온 것으로 보이며, 그 배경에는 ‘천주교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는 세상 사람들의 지적처럼, 천주교의 위세를 빌려 위기를 돌파하려는 속내가 읽혀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1699호 / 2023년 10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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