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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순천 선암사 ‘53불도’ ‘영산회상도’ ‘지장보살도’

기자명 이숙희

도난 과정·시기조차 모른 채 사라진 조선불화

2014년 경매서, 2016·2020년 사립박물관 수장고서 4점 회수
시공간 충만한 부처님 품은 ‘53불도’ 현존하는 가장 이른 작품
‘영산회상도’와 ‘지장보살도’는 조선 후기 불화 특징 잘 살려내

사진1) 선암사 53불도, 98x86cm, 1702년(사진 왼쪽). 선암사 53불도, 65x56cm, 1702년(사진 오른쪽).
사진1) 선암사 53불도, 98x86cm, 1702년(사진 왼쪽). 선암사 53불도, 65x56cm, 1702년(사진 오른쪽).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선암사에 봉안되었던 ‘53불도’ ‘영산회상도’ ‘지장보살도’가 1998년 2월6일, 1999년 3월16일, 2002년 1월25일에 각각 도난되었다. 그 외 ‘화엄후불도’를 비롯하여 응진전 및 불조전의 ‘후불도’ 3점, 팔상전의 ‘33조사도’ 4점 및 ‘팔상도’ 8점 등 조선 후기의 불화가 대량 도난되었다. 도난과정은 물론이고 도난된 시기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중 ‘53불도’는 2014년 6월 서울의 한 경매시장에 나오면서 알려지게 되었고 ‘영산회상도’는 2016년 10월, ‘지장보살도’는 2020년 7월에 서울의 개인 사립박물관장의 수장고에서 추가로 발견되어 우리 품으로 되돌아왔다. 나머지 불화들은 여전히 떠돌아다니며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순천 선암사는 875년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통일신라시대의 고찰이다.

1478년에 편찬된 ‘동문선’ 제68권에 ‘지리산 성모천왕’(聖母天王)이 만일 세 개의 암자를 창건하면 삼한이 합하여 한 나라가 되고 전쟁이 저절로 종식될 것이다’라 하여 도선이 선암사, 운암사, 용암사를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0권에는 ‘선암사는 순천 조계산에 있다’고 되어 있다. 또 조선 전기의 문인 김극기의 시에는 ‘적적한 산속 절이요 쓸쓸한 숲 아래의 중일세. 마음속 티끌은 모두 씻어 없애고 지혜의 물은 맑기도 하네…’라는 내용이 남겨져 있고 조선 말기의 시문집인 ‘매천집’에도 황현이 선암사와 송광사, 유마사를 방문하고 지은 시가 전해진다. 이런 기록들을 통해 순천 선암사는 9세기 후반에 창건된 이래 19세기까지 불사가 줄곧 이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53불도’는 불조전(佛祖殿)에 봉안되어 있었던 것으로 중앙의 7불을 비롯하여 53불을 6폭으로 나누어 그렸으나 일부 도난되어 현재는 세 폭만 남아 있다. 회수된 2점은 아마도 한 폭에 11구 또는 8구의 불상이 그려진 것을 의도적으로 1구씩 오려낸 후 새로 배접하거나 수리하여 각각 크기가 약간씩 다르다(사진 1). 본래 불조전 정면에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과거칠불에 해당하는 비파시불, 시엽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불, 가섭불을 3구씩 배치한 ‘7불도’가 그려져 있다. 그 좌우에는 11불을 그린 그림을 안치하고 측면에 각각 2폭으로 ‘7불도’와 ‘8불도’가 걸려 있었던 것이다. 53불은 모두 좌상으로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있고 머리 위의 이중 계주(髻珠)와 통견의 법의를 입은 점에서 거의 같은 모습이다. 다만 중앙의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불 외에 모든 여래는 엄지와 중지를 맞댄 설법인을 하고 있어 각 상의 존명을 확인할 수 없다.

53불이란 각 여래의 이름을 부르며 지극한 마음으로 예불하면 시방의 여러 부처를 만날 수 있고 모든 죄가 없어지면서 과거, 현재, 미래의 천불로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름은 5세기경에 한역된 ‘관약왕약상이보살경’에 나오는데 첫 번째 여래인 보광불에서 시작되어 마지막 53번째 일체법상만왕불로 이어진다.

화면 아래쪽에 있는 화기를 보면, 1702년 7월에 사신·약눌·치상·취성 등 5명의 불화승이 제작한 것으로 7불을 주존불로 하여 53불을 그렸던 것이다. 선암사 불조전의 ‘53불도’는 현존하는 작품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예이다. 53불을 불상으로 조각한 경우는 더러 있지만 불화와 불상이 함께 제작되어 안치된 경우는 선암사와 송광사가 거의 유일하다. 벽화로 그려진 ‘53불도’ 역시 창녕 관룡사 약사전과 안동 봉정사 대웅전에 전해지나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사진2) 선암사 영산회상도, 393x518cm, 조선후기.
사진2) 선암사 영산회상도, 393x518cm, 조선후기.

‘영산회상도’는 대웅전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가로 393cm, 세로 518cm의 대형 불화이다(사진 2). 도난 후 법의와 천의, 광배를 일부 개채하여 원래의 색이 변형되었고 화면 아랫부분은 도난 당시 잘라진 흔적으로 화기가 크게 훼손된 상태이다. 연화대좌에 앉아 있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현보살이 서있고 그 주위를 아난, 가섭을 비롯한 10대제자와 6보살, 신중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본존불의 압도적인 크기에 비해 보살과 권속은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석가가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는 영산회상의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화기는 거의 훼손되어 내용을 알아볼 수 없지만 1765년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면은 붉은 색과 녹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데 개채되어 장엄한 멋이 적다. 그러나 화면의 대담한 구도와 압도적인 크기, 도상의 배치 등에서 조선 후기 불화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사진3) 선암사 지장보살도, 214.5x227cm, 1849년. 문화재청 제공.
사진3) 선암사 지장보살도, 214.5x227cm, 1849년. 문화재청 제공.

‘지장보살도’는 지장전에 봉안되어 있었던 것으로 가로 214.5cm, 세로 227cm의 크기이다(사진 3). 도난된 후 안료가 박락된 부분에 덧칠되었고 법의와 칼, 창 등에는 밝은 청색 또는 금니를 사용하여 개채하였다. 화면 중앙에는 지장보살, 도명존자, 무독귀왕의 삼존상을 중심으로 6보살, 8구의 신중들이 좌우 대칭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6보살은 서있는 자세나 얼굴, 합장한 손모양까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각 상의 존명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신중은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지만 8구 모두 칼과 창을 든 것으로 보아 지옥을 지키는 귀왕, 나찰, 장군 등으로 보인다. 본래 명부전 또는 지장전에는 명부의 세계를 주관하는 지장보살을 비롯하여 죽은 자가 생전에 지은 죄업을 심판하는 시왕과 권속들이 봉안되었다. 또 상과 짝을 이루어 벽면에는 ‘지장보살도’를 중심으로 하여 좌우에 ‘시왕도(十王圖)’ 10점, ‘사자도(使者圖)’ 2점이 걸리게 된다. 선암사 지장전에도 ‘지장보살도’ 외에 ‘시왕도’와 ‘사자도’가 봉안되어 있었으나 그중 제8 평등대왕도 1점만 남아 있고 11점은 모두 도난되어 아직까지 그 소재지를 알 수 없다.

본존인 지장보살이 결가부좌하고 머리에 투명한 흑사(黑絲)로 된 두건을 쓴 젊은 스님의 모습으로 표현된 것은 조선 후기 지장보살의 도상적 특징이다. 지물에서도 지장보살은 여의주와 고리가 6개인 육환장(六環杖)을 각각 들고 있고 오른쪽의 도명존자는 합장한 모습이며 무독귀왕은 금으로 만든 경전합을 받들고 있다. 화면 아래쪽에 있는 화기를 보면, 이 그림은 1849년 4월에 제작된 것으로 19세기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했던 금암당 천여(天如)를 수화승으로 하여 익찬, 영운, 도순, 재순, 채종 등 14명의 불화승이 참여했던 것이다.

순천 선암사는 연륜이 깊고 선방으로서 유명한 만큼 오래전부터 문화재들도 많은 수난을 겪어왔다. 다행히 불화 4점은 회수되었지만 그외 불화들은 어디에 꼭꼭 숨어 있을까? 지금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홀연히 나타나리라 생각한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606호 / 2021년 10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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