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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순교 역사에만 매달리는 ‘회상 종교’ 벗어나야”

  • 교계
  • 입력 2022.08.22 19:00
  • 호수 1646
  • 댓글 2

이창익 고려대 교수, 불교사회연 학술대회서 순교 개념 고찰
불교는 사회·국가 위한 순교…자기 종교만 위한 순교와는 달라
자국정부에는 치열하게 저항하며 일제에는 역설적인 상황 자초

“종교가 종교적 박해와 순교의 역사적 사실을 땅에 각인하며 기념비를 세우는 ‘회상의 종교’에 그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 종교 안에서 현재를 고민하는 ‘상상의 종교’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종교가 더 이상 세상을 회상하고 세상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종교의 과거와 미래에만 매달린다면 우리의 불안한 미래는 얼마나 또 더 불안해질 것인가.”

이창익 고려대 교수가 8월22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불교사회연구소가 주최한 ‘2022 호국불교연구 학술대회-다종교 현상과 종교 공존’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 교수는 ‘종교와 국가의 근접 조우’를 주제로 일제강점기 ‘순교’의 개념을 고찰했다.

이 교수는 ‘이차돈의 순교와 백률사 석당비문의 편모(1943)’라는 글을 통해 이차돈 순교는 ‘순국(殉國)’이자 ‘순충(殉忠)’으로 분류했다. 단지 불법을 유통하기 위한 순교가 아니라 전 사회와 국가의 장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바쳤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불교는 그저 호국불교가 아니라 건국불교(建國佛敎), 국방주의(國防主義), 국수주의(國粹主義) 불교라 말한다. 불국토의 실현을 위한 노력, 조선 시대의 승병제도 모두 국가를 위한 순교로 불교 정신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천주교, 개신교 등에서 말하는 순교는 대체로 국가와 종교의 대립 구도 속에서 발생한 종교인의 죽음을 가르킨다. 천주교 순교 성지 조성 사업의 경우도 한국천주교회사에서 보면 조선 후기에 발생한 천주교 박해는 교난(敎難)이며, 천주교인의 죽음은 종교를 지키기 위한 순교의 개념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당대 천주교인의 인식과 행위에 긍정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천주교 박해는 조선 형법에 따라 처분된 사옥(邪獄)으로 기술된다. 이 교수는 “과거 사건을 바라보는 역사적 관점에서 일정한 합의가 도출되지 않을 경우, 국가와 종교의 대립과 갈등을 순교라는 개념으로 서술하는 것은 그저 종교적인 해석이나 주장일 뿐”이라고 밝혔다.

천주교와 개신교 등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 정부와의 대립 속에서도 종교의 생존과 신자 유입을 위해 끊임없이 ‘순교’ 신화를 창작하고 재구성하면서 종교의 핵심 자원으로 안치했다. ‘순교’라는 종교적 가치가 종교의 위기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중요한 영적 자원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조선 정부하에 ‘순교 상황’에 놓였던 개신교, 천주교의 대다수 신자들은 일제의 신사참배나 황민화 정책에 동조하기도 했다. 자국 정부에는 치열하게 저항하며 순교 정신을 펼친 종교들은 일제의 성전을 위해 자기 종교의 순교 정신을 동원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자초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는 ‘순교’가 종교적 가치보다 정치적으로 변모했음이 드러난 셈이다. 이 교수는 “(천주교와 개신교가)신앙을 위해 죽음조차 불사하는 종교인의 모습은 저세상의 가치를 구현하는 초월적인 모습을 드러내지만 내세를 위해 현세를 희생하는 정신은 언제든지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정신으로 변모할 수 있다”며 “순교라는 종교적 가치도 언제든지 정치적 가치로 굴절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현재 ‘순교’의 개념이 과거만을 기억하는 데만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순교 신화는 과거의 역사를 회상하고 창작하는 데만 매달렸을 뿐 더 이상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 우리사회에서도 종교적 신화는 여전히 과거를 회상하는 기제로 작동할 뿐 현재를 사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에 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은 “한국 종교의 ‘순교’ 개념이 일본제국주의를 위한 ‘순국’의 개념처럼 굴절되는 데 기여했던 과거는 분명히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청산돼야 할 부끄러운 역사”라며 “문제는 그런 식의 부끄러운 역사가 한편에서는 해소된 것 같으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다른 옷을 입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갈등을 극복해 공존으로 전환해가려면, 갈등의 원인에 대한 진지한 숙의가 두고두고 필요하다. 그것은 충돌하는 지점에 대한 양쪽의 ‘접점’을 찾아 나가는 일”이라며 “종교라는 집단과 조직의 공존이 필요하기보다는, 타자와 공존하기 위해 자신의 것을 일부 양보하며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진짜 ‘종교’라는 인식의 전환이 요청된다”고 말했다.

이어 윤용복 아시아종교연구원장은 ‘공공성과 신앙-성지화와 성물의 사례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표했다. 윤 원장은 ‘종교적 공공성’ 개념과 관련해 공공성과 신앙의 관계와 향후 논의 지점을 고찰한 후, 성물 관련 사례와 천주교 ‘성지화’ 사례 등을 분석했다.

이밖에도 이병욱 고려대 교수가 새로운 종교의 전파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화적 긴장의 대응방법을 원효 스님의 화쟁 사상 중심으로 검토한 ‘종교의 전파, 문화적 긴장과 화해’를 주제로, 이종우 상지대 교수가 황사영의 ‘백서’가 가톨릭의 신앙과 성리학의 충 덕목이 혼재하고 있다고 본 ‘신앙과 충의 혼재-황사영 백서 사건을 다시 보다’를 주제로, 김성순 전남대 교수가 ‘남송의 선승 난계도륭이 중세 일본에 이식한 선에 대한 고찰’을 주제로 발제했다. 논평은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과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문광 스님, 조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오용석 원광대 교수가 각각 맡았다.

학술대회에 앞서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 신공 스님이 대독한 치사를 통해 “이 학술대회를 통해 현재 종교계의 현안이 되는 다종교 사회에서 종교갈등 문제에 대한 불교계의 대승적 해법이 제시될 수 있길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호국불교’와 관련한 의미 있는 결실들이 속속 세상의 빛을 보게 되고 우리 사회의 앞길을 밝혀주는 환한 등불이 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 도심 스님도 “국공립합창단 공연, 신안군 기독교 관련 사업 등 정부와 지자체가 앞장서 공동체의 분란을 조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헌법에 명시돼 있는 정교분리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며 “이러한 시점에 불교사회연구소에서 대한민국 종교평화를 위해 ‘다종교 현상과 종교 공존’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시의적절하며 매우 의미있다”고 강조했다.

학술대회를 마무리하며 불교사회연구소장 원철 스님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문화 속에 여러 종교가 함께하며 야기된 갈등과 긴장의 어려움 속에서도 아름답게 조정하고 극복해 왔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향후 더욱 아름다운 공존을 위해 여러 종교화 함께 불교계도 노력을 다짐하는 계가가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불교사회연구소는 8월29일 ‘세계 공공성지 운영의 현황과 검토’를 주제로 2차 세미나를 진행한다. 세미나에서는 전 세계의 다종교 공존 실례가 검토될 예정이다.

김내영 기자 ny27@beopbo.com

[1646호 / 2022년 8월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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