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님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9년 백양사에서 사회국장을 맡으면서부터다. 벌써 20년의 세월이 훌쩍 넘었다. 당시 스님은 백양사 기획국장을 맡고 있었다. 첫인상은 맑았고, 소탈했다. 누구에게나 웃음을 잃지 않고 따뜻함을 간직해 스님과 신도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다.
그러나 자신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엄격했다. 스님의 진면목은 2000년 백양사 방장 서옹 스님의 원력으로 추진된 ‘무차선 대법회’에서 드러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백양사는 다른 본사와 달리 대중이 많지 않고, 재정도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리 방장스님의 뜻이라도 백양사에서 대규모 법회를 개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다수 대중들이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님은 방장스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며 묵묵히 홀로 무차선 대법회를 기획했다. “인류문명과 인간성 붕괴의 위기를 맞아 자비활동의 능동적 주체인 참사람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방장스님의 뜻을 담아 직접 홍보 문안을 만들고 행사기획안을 차례차례 만들어갔다.
그 무렵 스님의 행정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1988년 이른 나이에 완도 신흥사 주지를 맡아 낙후된 사찰을 중창하고 사찰 살림도 크게 개선한 경험이 있었다. 1990년대 들어 가정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자 직접 컴퓨터 활용능력을 배워 ‘베이직’ 프로그램을 이용해 신도관리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만들기도 했다. 손글씨로 신도카드를 적었던 시대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신도관리를 진행했으니 시대를 앞서가는 스님임은 분명했다. 그런가 하면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처음으로 법당 내부에 연등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화재위험 등을 이유로 대다수 사찰은 법당 내에 연등을 밝힐 수 없었지만, 스님은 많은 신도들이 자신의 연등을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처음으로 대웅전에 연등을 걸게 했다. 신도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후 법당 연등공양은 대중화됐다.
그랬던 스님이었기에 2000년 백양사 무차선 대법회는 전국에서 대덕스님들과 수만명의 불자들이 동참한 가운데 성황리에 봉행될 수 있었다. 무차선 대법회는 스님이 기획·홍보·연출을 도맡아 만들어낸 성과이기도 했다.
스님은 위기관리 능력도 뛰어나다. 2010년경 백양사는 문중간 알력으로 내홍이 심했다. 방장 수산 큰스님에 대한 불경스러운 일도 적지 않았다. 급기야 백양사 전 주지스님 측이 ‘백양사 호국법회’라는 명목으로 대중들을 동원해 새로운 방장스님을 모시려는 일까지 진행했다. 그러나 스님은 문중화합과 백양사 안정을 위해 현 방장스님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대중들을 설득했다. 결국 스님의 노력으로 ‘백양사 호국법회’는 무산됐다. 그러나 백양사 내홍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했다. 그 여파는 2012년 백양사 도박사건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고, 종단마저 위태롭게 만들었다. 백양사 소임자들은 대부분 사건에 연루돼 자리를 비웠다. 백양사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방장 수산 큰스님은 진우 스님에게 주지를 맡겼다. 사태 수습에 나선 스님은 우선 대중들을 결속했고, 대외적으로 부당한 억측 주장에 맞섰다. 백양사 비상대책위를 만들어 사태수습을 위해 노력했다. 지금도 스님과 밤을 새워가며 성명서를 만들고 대중화합을 위한 수습책을 고민했던 일들이 눈에 선하다.
스님은 어른스님들에 대한 공경심도 남다르다. 어린 나이에 출가해 어른스님들을 시봉해 온 습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2004년경 수십 년간 강사를 하며 후학들을 지도했던 혜권 스님이 돌연 백양사를 떠나겠다고 선언한 일이 있었다. 혜권 스님이 타본사 출신이라는 일부 대중의 반감에 스님이 크게 노여워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진우 스님은 걸망을 메고 떠나는 혜권 스님을 만나 노여움을 풀어드렸고, 담양 용흥사에 혜권 스님의 요사를 지어 주석하도록 했다.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혜권 스님을 살뜰히 모시고 있다.
그랬던 스님이 이제 종단의 종무행정을 총괄하는 총무원장에 당선됐다. 오랜 종무행정 경험, 자신보다는 남들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함을 갖춘 분이기에 누구보다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 스님의 원력이 꼭 성취되기를 부처님 전에 기원한다.
불갑사 주지 만당 스님
[1647호 / 2022년 9월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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