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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건국절과 이승만 우상화가 불편하다

기자명 법보
  • 기고
  • 입력 2023.08.23 19:01
  • 수정 2023.08.23 19:03
  • 호수 1694
  • 댓글 1

차차석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

해방은 무수히 많은 선열·동포들이 합심한 결과
건국은 부적절…반만년 대한민국 역사까지 배제
민주주의 파괴한 독재자에다가 부정선거 장본인
불교계 내부 갈등 유발한 ‘유시’는 역사적 퇴행

이승만 동상 제막식. MBC 뉴스데스크 캡쳐
이승만 동상 제막식. MBC 뉴스데스크 캡쳐

광복절을 전후로 세간의 주요 화제는 건국 원년이 언제인가를 둘러싼 논쟁이다. 1919년 임시정부를 건국의 원년으로 보는 입장과 1948년 정부수립을 건국의 원년으로 보자는 주장이다. 언뜻 보면 건국의 원년을 어디에 둘까 하는 역사학자들의 논쟁처럼 보이만, 이면에는 중요한 함수가 숨겨져 있다.

1919년 임시정부를 건국의 원년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땅과 이 나라의 백성은 온전히 존재했으며, 일시적 국권의 침탈에도 불구하고, 너나없이 안팎으로 노력한 결과물이 해방이라 본다. 특히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대외적으로 민주공화정을 선포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백용성, 한용운, 백초월 등 무수한 스님들과 불교도들의 독립운동 역시 여기에 포함된다.

반면 1948년 정부수립을 건국의 원년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때 비로소 온전한 정부가 탄생했다는 점을 내세우며, 이면에 미국과 이승만의 공적을 강조하고자 한다. 해방 이후 오늘까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미국이란 국가를 도외시할 수 없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초대대통령으로 쌓은 공적을 감안하여 건국의 대통령이나 건국의 아버지로 우상화해야 한다는 시각은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일생을 살아가다 보면 공과가 없을 수 없다. 그런 만큼 남의 허물은 한 눈으로 보아 넘기고, 남의 잘한 점은 쌍수를 들어 칭찬하라는 것이 조상들의 덕담이었다. 한국인의 정서가 남과의 갈등보다는 화합과 인내 속에 길들여진 탓일 수도 있지만, 농본문화의 특성을 고려하면 대립과 갈등은 공멸의 지름길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특정인의 우상화에 대한 논쟁은 시의성도 없지만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정권이 바뀌자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기념관을 만드는 문제나, 그를 건국 대통령으로 혹은 건국의 아버지로 우상화하려는 움직임에 국가보훈처 장관이 앞장서고 있으며, 사회 저명인사들까지 동참하고 있다. 심지어 전직 대통령 자녀들까지 나서서 기념관 건립에 국민적 호응을 유도하고 있다. 초대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없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지닌다. 그렇지만 그것이 특정 세력의 특정인을 우상화하는 작업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승만의 공과를 넘어,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에 헌신한 그분의 업적을 고려하면, 기념관 건립을 통해 후세의 울림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해방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으로 인식해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그날이 있기까지 무수히 많은 선열과 동포들이 합심한 결과이며, 때문에 건국이란 단어도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일제의 침탈을 극복하고 해방된 것은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새로운 국가를 세운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만 반만년 대한민국의 역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승만의 우상화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공이 99%라면 허물은 1%이기 때문에 건국 대통령으로 추앙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전 러시아 대사를 지낸 이인호는 건국 75주년을 축하하기가 어찌 이리 힘든가 하고 탄식한다. 수많은 국민이 그날을 기리고 있음에도 탄식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또한 이승만의 농지개혁이나 민주주의 공화제의 수립, 시장경제체제의 확립, 이승만라인선포 등은 한국사회의 민주화 발전에 토대가 되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한 독재자에다 부정선거를 자행한 장본인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특정인을 건국의 아버지로 우상화하는 일은 한국의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철지나 피는 꽃처럼 왕조시대가 지나간 지 언제인데 이 시점에 건국의 아버지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특히 1954년의 사사오입 개헌과 1960년의 3·15 부정선거는 씻을 수 없는 과오가 아닐 수 없다. 부정선거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 전개되는 30여년의 군사독재는 그 출발이 이승만의 부정선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차차석 교수
차차석 교수

혹자는 이에 더해 기독교인 이승만이 불교와 유교 등 전통종교를 평등하게 포용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사오입 개헌을 무마하기 위해 불교계에 비구와 대처의 갈등을 유발했으며, 그로인해 초래된 불교계의 역사적 퇴행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민주주의를 가장하고 왕정처럼 정교분리의 원칙을 위배한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정화유시(?)의 후유증은 이승만 정권의 유산이자 정권이 종교를 침탈하고 억압한 역사적 퇴행이 아닐 수 없다.

[1694호 / 2023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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