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곁의 지목행족]21. 해인정사 주지 수 진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화엄과 소통 발원한 이 시대의 ‘화엄통역관’

<사진설명>중국 청량 징관 국사가 지은 『화엄경 청량소초』를 완역하겠다는 발원으로 하루 20시간이 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번역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수진 스님. 스님은 “이 일을 끝마치는 것이 부처님과 스승의 가르침에 보답하는 길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노을을 좋아하는 소년이 있었다. 해가 붉게 대지를 물들일 때면 말할 수 없는 기분에 들뜨던 소년의 가슴에는 어느 때부터인가 출가 수행자의 발원이 함께 물들기 시작했다. 낙동강 하구, 아름다운 노을을 만날 수 있는 부산 사하구 괴정동의 승학산 해인정사. 이곳에는 노을을 좋아했던 그 소년이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강백이 되어 『화엄경』의 큰 빛을 밝히고 있다. 해인사 강주를 지낸 수진 스님이다.

붉게 타오르던 노을이 지고 승학산에 깊은 어둠이 깔려도 스님의 방 안 불빛은 사라질 줄 모른다. 지난해부터 외부 법회나 강의 일정을 눈에 띄게 줄이고 『화엄경청량소초(華嚴經淸凉疏抄)』 전권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에 진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벽 4시 아침예불로 시작된 스님의 하루는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예불 올리는 시간과 하루 한 끼의 공양, 대중법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청량소초』 번역에 맞춰져 있다. 하루 수면 시간이 1~2시간에 불과한 그야말로 초인적인 인고의 시간이지만 스님에게는 지친 기색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말 그대로 무피염(無被厭) 삼매. 피곤해하거나 싫어함이 없는 삼매의 연속이기 때문이리라.

2006년부터 ‘청량소초’ 번역 시작

스님이 화두처럼 붙들고 있는 『화엄경청량소초』는 1200여 년 전 중국의 청량 징관 국사가 80권 『화엄경』에 소와 초를 달아 해설한 것이다. 방대한 주석의 양과 유, 불, 도 삼교를 아우르는 전개 방식으로 통현 장자의 『화엄합론』과 함께 『화엄경』의 대표적인 논서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통강원 대교반의 교재로 채택되어 있지만 워낙 양이 방대하고 내용이 난해하기에 대부분의 학인 스님들이 서문에 해당하는 8권 중에서도 3~4권 만 보고 졸업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강원의 현실이다. 『청량소초』는 아직 전문이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상황이고 특히 최근에는 『화엄경』 원문만 보면서 점점 그 가치가 바래져가는 실정이다.

이러한 한국불교의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한 수진 스님이 『청량소초』 전문을 우리말로 살려내는 대작불사를 위해 목숨을 내 건 것이다. 워낙 방대한 양이라 10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 그러나 스님은 인고의 노력으로 지난 2년 동안 전체의 30% 정도의 번역을 완성했다.

“불보살의 가피가 아니고서는 아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겁니다. 아무도 걸어가지 못한 길을 걷는다는 것은 모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미지의 세계를 개척한다는 묘한 맛도 있어요. 어찌됐든 부처님의 보살핌이 아니었다면 이내 포기하고 좌절해 버렸을지 모릅니다.”

스님이 『화엄경』과 인연을 맺은 것은 30여 년 전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13세에 부산 마하사로 발심 출가한 스님은 선교를 두루 섭렵한 문성 스님 문하에서 4년 동안 행자 생활을 했고 이후 강원에서 많은 경전을 접했다. 그러나 스님의 시선은 이상하게도 화엄으로만 향했다. 묘한 인연이었다. 특히 1977년 탄허 스님의 『신화엄경합론』 완간을 기념해 열린 제1회 화엄법회에 참석한 것이 화엄사상에 본격적으로 빠져드는 계기가 됐다. 당시 법회 참석자 중 최연소였던 스님은 법회 도중 『화엄경』의 글귀들이 눈으로 빨려드는 경험을 했고, 화엄법회를 마치고 처소에 누우면 천정으로 『화엄경』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바둑에 미치면 누워도 천정에 바둑 선이 그려진다는 말이 있지요.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화엄경』이, 부처님이 대중들과 함께 법회하는 모습으로 생생하게 떠오르니, 아마도 전생에 『화엄경』과 남다른 인연이 있었던 것 같아요. 후에 화엄 법회 당시 나름대로 체득한 내용을 요약 정리해 은사이신 문성 스님께 보여드렸더니, 스님이 크게 기뻐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스님은 그 길로 『화엄경』에 대한 공부에 매진하며 『화엄합론』을 수차례 봤지만 『청량소초』에 대한 도전은 쉽지 않았다. 강의를 하는 곳도 없었거니와 분량면에서 『화엄합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양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워낙 방대했기 때문에 독학으로는 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그런 스님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왔다. 금산사에서 각성 스님을 강사로 모시고 『화엄경 청량소초』  완독을 목표로 화엄학림을 개원한 것이다.

범어사-해인사 등서 경학 10년 수학

당시 화엄결사는 3년 동안 진행됐고 30여 명이 입방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수료한 이는 스님을 포함해 10명에 불과했다. 그 과정에서도 회향하지 못한 남은 부분이 있었는데 수진 스님은 해제 철마다 스스로 『청량소초』를 펼치며 나머지 부분까지 완독했다. 그야말로 초인적인 노력으로 『청량소초』 1자 1구도 빠트리지 않고 연구와 이해를 마친 것이다.

범어사, 해인사 강원을 거쳐 화엄학림까지 경학 공부에 10년을 보낸 스님은 이후 선방에서 10년 동안 수선 안거에 들었다. 선과 교를 두루 겸했다는 세간의 평가도 이런 스님의 모습에서 비롯됐다. 스님은 10여 년의 수선 안거를 끝내고 1994년부터 1999년까지 해인사 강주로 지내며 학인들을 가르쳤다.

이렇게 배움을 회향하고 발길을 돌린 곳이 지금의 부산 해인정사. 그저 작은 토굴에서 정진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수진 스님의 명성을 듣고 매일같이 사람들이 몰려왔다. 결국 비좁은 곳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대중들의 고통을 보다 못한 스님은 불사에 팔을 걷어야 했다. 이렇게 해서 허물어져가는 슬레이트 판잣집에 5년여의 세월이 보태져 대적광전과 요사채, 범종각을 두루 갖춘 여법한 도량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불사를 끝낸 스님은 2006년 1월 10일부터 원력을 품고 『청량소초』 번역에 들어갔다. 스님이 ‘『화엄경』의 부활운동’이라고 부를 만큼 번역에 대한 사명감이 남다르다. 한문원전을 경시하는 풍토로, 점점 『청량소초』의 가치가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스님은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철학사상의 으뜸은 ‘화엄’”

“물론 한문경전도 범어로 된 경전이 번역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한문 대장경이 원전입니다. 우리 대장경을 만들어 놓고 읽을 수 없다면 말이 됩니까. 스스로 원전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청량 스님의 글은 까다롭습니다. 말이 집약돼 있기도 하지요. 제가 작업에 홀로 매달리는 것은 한 글자라도 오류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지요.”

스님은 종교를 초월해 한국의 정치와 역사, 문화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사상과 철학은 불교이며 그 중에서도 ‘화엄사상’이 으뜸이라고 설명한다. 지금의 정보화, 첨단 과학 시대의 사상적 뒷받침도 이미 화엄에 설해져 있다는 것.

“제 서원은 한 가집니다. 『청량소초』의 번역을 마칠 때까지 온전한 기억력과 건강을 유지하기를 바랄뿐입니다. 성철 스님께서 『선문정로』를 마치시고 당신 밥값을 했다고 하셨는데 『청량소초』를 완역하는 것이 고불(古佛), 고조(高祖), 그리고 은사 스님의 가르침에 대한 밥값을 하는 것이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수진 스님의 방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다상 바로 옆에 앉은뱅이 책상이 있다. 포교 일선에 있다 보니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마련한 궁여지책인데, 소박한 책상 위에 놓인 크고 작은 『화엄경』에는 학인 시절부터의 치열했던 간경의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화엄경』의 으뜸 표현인 ‘해인(海印)’은 바다에 도장이 찍는다는 말입니다. 마음의 바다가 맑아서 무엇이든 투영해도 비침을 뜻합니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노을이 『화엄경』을 공부하면서 바로 화엄의 바다, 해인의 가시적인 모습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지요.”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노을, 화엄을 발견하길 바라며 매 순간 수행자의 삶을 걸어가는 수진 스님. 노을이 지면서 내는 붉은 입김에 수진 스님의 얼굴에도 붉은 미소가 피어난다.

부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