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한국 불교를 위해서 제언하고자 한다’는 전국비구니회와 ‘샤카디타 코리아’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제18회 샤카디타 한국대회에서 발표할 필자의 논문 제목이다. “위기의 세상 속에 깨어있기”를 주제로 6월23일부터 닷새간 봉은사 일원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논문발표, 워크숍, 전시, 명상, 문화공연 등 세계 각국 불교여성들이 준비한 다채롭고 풍성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최근 우리는 우리가 발전시켜온 문명과 작금의 세계정세가 얼마나 ‘무상(無常)’한 것인지를 뼈아프게 실감했다. 우리는 늘 깨어있어야 하고, 지혜와 통찰력을 길러야
2011년 일본 후쿠시마현 제1원전의 폭발은 세계를 경악케 했다. 이보다 25년 전인 1986년에는 체르노빌에서 원전 폭발이 일어나 지구의 종말과 같은 상황을 보여줬다. 영구 폐쇄된 체르노빌은 죽음의 땅이 됐다. 환태평양지진대, 일명 불의 고리에 놓인 일본은 지진활동으로 인해 후쿠시마현 말고도 언제든 해안에 건설된 원전에 위험이 가해질 수 있는 상태다. 한국 또한 최근 동해의 지진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울진·영덕·월성·고리에서 가동되고 있는 원전에 대한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전문가와 정치가들이 일본의 오염수 해양방류에 대
올해 3월 말 스님 몇 분과 강화도로 삼사순례를 다녀오면서, 그중 한 곳에 모셔져 있는 함허기화(涵虛己和, 법명 得通; 1376~1433) 스님의 자그마한 부도에 참배하였다. 함께 한 일행과 작고 소박한 스님의 부도를 참배하며 스님이 불교사에 남긴 자취를 잠시 돌아보고 오늘날 한국불교 현실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그 부도 옆에 세운 안내판을 보는 순간 답답하고 안타까워 눈을 돌리고 싶어졌다. 그 부도의 주인공인 함허 스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도 없이 부도의 크기와 양식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1392년 실권
불교문화 전반에 드리운 기본 요소는 ‘전통’과 ‘엄숙, 경건’이 아닐까? 서구 문명의 홍수와 그것을 타고 들어온 기독교를 상대하면서 자연스럽게 불교는 전통을 업을 수밖에 없었고, 그 전통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엄숙함과 경건 쪽으로 치우치게 된 것 같다. 불교박람회 등을 보면 계속 새로워지는 면모를 보이면서도 여전히 그러한 기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적 분위기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부처님오신날의 연등축제이다. ‘부처님오신날’의 핵심은 ‘기쁨’이어야 한다. 부처님이 오심으로써 우리 모두에
나는 불교학생회 출신 스님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문학의 밤’에 초대되어 처음 불교를 접했다. 그 시절 시골의 학교는 대부분 사찰로 소풍을 갔고, 나의 유년시절도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 모두 9년을 아주 먼 거리를 걸어서 사찰로 소풍을 갔다. 그 절에 스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코흘리개들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했다. 9년을 들은 설명이지만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은 전혀 없다. 아마도 사찰에 대한 연기와 법당에 대한 설명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각인된 기억은 이상한 옷(가사 장삼)을 입은 도인과 같은 스님의 낮선 모습과 곰팡
지난 4월10일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자유 우파의 단결을 주장했다. 그는 137년 전에 들어온 한국교회가 “민족의 개화, 독립운동, 건국, 새마을운동, 민주화 등에 중심적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는 데 앞장섰다고 한다. 그리고 “어렵게 찾아온 보수정권이 확실히 제자리를 찾고, 윤석열 정부가 성공하는 길은 보수의 대결집”이라고 한다. 전 목사의 정치 참여는 한국 사회의 비이성적인 사회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목불인견의 언행으로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시민들이 사회적 병폐로 지적
조선 왕조 초기부터 유신(儒臣)들은 불교가 다시 일어날까봐 불안해하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불교를 말살시키려고 하였다. 유신들의 불교 비방 정도가 너무 심해지자 성종 임금이 “유생들이 임금을 속이면 한사코 ‘미치고 망령되어 탓할 여지가 없다’고 말하면서 유독 승려들에 대해서는 신문하라고 억지를 부리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질책한다.(1480년 6월) 유생들이 원각사에 들어가 학조(學祖) 스님의 멱살을 잡는 등 행패를 부리다 붙잡히는 사건이 일어나서 ‘과거 응시자격 박탈’이라는 중징계를 지시하자, “아이들이 우연히 원각사에 들어갔다가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워 오면서 절마다 수많은 기원을 담을 등이 빛날 것이다.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소망들…. 그 간절한 마음이야말로 신앙의 출발점이요, 또 우리를 궁극의 깨달음으로 이끄는 힘일 것이다. 기도의 힘! 그것은 나의 절실한 바람에 바탕하기에 가피와 영험을 이끌어내는 크나큰 힘이 된다. 올해의 ‘부처님오신날’에도 그런 기원들이 나의 삶과 세상을 향상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기도의 힘이 그만큼 크기에 올바른 기도를 통해 그것이 서원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이야말로 또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기도의
어딜 가도 일렬종대로 줄지어 피어 있는 가로수 벚꽃은 별 감흥이 없다. 고향 동네 앞산에 희뿌옇게 피어나던 토종 산벚꽃이라면 또 몰라도.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개나리와 벚꽃보다는 눈여겨 살펴보아야 겨우 보이는 달래와 냉이가 오히려 더 봄의 감성을 자극한다. 어릴 적 기억 속의 ‘봄’은 된장과 참기름으로 쓱싹쓱싹 대충 버무려 내놓으시던 어머니 표 ‘봄나물’의 향기와 정확하게 겹친다. 내친김에 추억하는 나물 이름들을 사투리로 호명(呼名)해 본다. 달래이(달래), 머구 이파리(머위), 두룹(두릅), 엉개(엄나물), 오갈피(오가피),
어린시절은 왜 그렇게 가난했을까. 나는 소위 애기풍년 시대인 586세대다. 미군의 지프가 신작로에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나타나면 동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지프를 뒤따랐다. 미군들은 초콜릿을 던져 주거나 큰 소리로 뭐라 하곤 했다. 우리는 그저 생전 처음 보는 지프가 신기했고 구름처럼 일어나는 흙먼지가 재미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초콜릿은 불쌍한 아이들에게 던져주는 동정이었고 큰소리는 욕지거리였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일 년에 몇 번은 정성을 다해서 태극기를 그렸다. 천으로 된 태극기가 귀하던 시절 종이에 태극기를 그려서 대나무
기독교복음선교회, 일명 JMS를 세운 교주 정명석의 비행을 고발한 ‘나는 신이다’라는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경악시키고 있다. 1980년대 애천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이 교단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했다. 지금도 전국에 수십 개의 교회를 거느리며 활동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총연합에서 사이비로 규정했다. 그렇지만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한국에서는 이 교단의 종교적 활동을 막을 수는 없다. 수많은 젊은 여성에 대한 교주의 성폭력이 드러남으로써 대중이 문제의 심각성을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었다. 정명석은 10년간의 옥살이를 하고 난
500여년 조선 역사에 반정[反正, 또는 쿠데타]으로 임금 자리에서 쫓겨난 인물이 연산군과 광해군 두 명이다. 사람들의 시각이 많이 다양해진 오늘날 광해군에 대해서는 외교 문제 등과 관련하여 그의 공적을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있어서 일방적으로 매도만 당하지 않는다. 다른 왕들에 비하여 불교를 억압하지 않았고 오히려 친불교적인 면이 있어서 그의 원찰이었던 남양주 봉인사에서는 그를 재조명하는 학술세미나를 몇 차례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연산군의 경우는 누구도 그를 변호하지 않는다. TV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악독한 군주의 대표로 묘사될
정부 과천청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스님의 사진을 보니 참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수행자인 스님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런 시위를 하겠는가? 스님이 이렇게까지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든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공직자 종교편향의 심각성, 그것이 초래하게 될 큰 문제에 대해 눈감고 대충 넘어가려 하는 정치권의 무심함과 무감각, 이런 문제들이 총제적으로 느껴져 참으로 마음이 무겁다.공적인 행사인 시무식에서 특정 종교의 찬송가를 불렀는데 그 자신의 공식적인 사과도 없고, 공식적인 문책이나 징계도 없다. 작은 문제 같지만 참으로 큰 파장
봄학기에는 나도 모르게 새내기 학인(學人) 스님들을 기다리게 된다. 많을 때는 여남은 명도 됐지만,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 요즘에는 서너 명이 고작이다. 아무래도 비구니스님보다는 비구스님이 더 많은 것 같다. 어려서 절에서 자라다가 동진(童眞) 출가한 스님도 있고, 사회생활을 하다가 늦게 발심해 출가한 스님들도 있다. 더러 몽골이나 태국, 스리랑카 등지에서 유학 온 외국인 스님도 보인다. 반갑고도 고마운 일이다. 시간이 맞으면 가끔 점심 공양을 함께 하기도 한다. 짜장면이나 베트남 국수를 먹을 때가 많다. 그때마다 나는 짓궂게도 학교
어린 시절 겨울 추위는 대부분 추억으로 남아 있다. 머리맡에 놓여있던 물그릇의 살얼음이 신기했고, 문고리에 붙어 있는 서리는 그 겨울밤이 얼마나 혹독했는지 알려주는 기상척도였다. 복지관에서도 내 방 온풍기는 이용자가 올 때만, 복도 등 공간은 맹추위만 겨우 가실 정도로 사용한다. 민원이 발생할 듯도 싶은데 감사하게도 대부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뉴스에는 “난방비가 500만원이 나왔다…1000만원이 나왔다…” 등 추위만큼이나 사회를 위축시키고, 난방비폭탄 고지서는 충격을 가져왔다. 그런가 하면 서민들은 “난방비폭탄을 막아라”가 구호가
지난 2월6일 일어난 튀르키예의 지진으로 마음이 아프다. 수만 명 죽음이 확인되었고,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잔해 더미에 깔려있는지 알 수 없다. 하늘은 무고한 백성들에게 왜 이리 가혹한 고통을 안겨주는지 모르겠다. 한국인들은 마음속에 튀르키예가 6·25전쟁 때 4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해준 형제국으로 각인되어 극한의 고통을 나누기 위한 성금과 물자를 현지로 보내고 있다. 인간과 인간이 연대하는 것은 사회적 연기(緣起)의 실천행이다. 지구 위에 다양한 형태로 절망에 처한 이웃에 대한 연민의 정이야말로 인류 최고의 가치가 아닐
인도 북부 지역을 최초로 통일한 마우리야 왕조는 불교 역사와 관련이 깊다. 특히 집권 과정에서 무차별 폭력을 저지른 제3대 왕 아쇼까(Aśoka, 재위 272~236 BCE) 대왕에게는 ‘잔인한 아쇼까(Caņdāśoka)’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불교에 귀의한 뒤 그는 불법(佛法, Dharma)에 따라 전쟁과 살생을 멈추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복지 정책을 실행하였으며, 도로·여행자를 위한 숙박 시설 등 사회 간접자본 건설을 추진했다. 과거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사람과 지역에 관용정책을 펼쳤으며, 불교뿐 아니라 백
동체대비(同體大悲)라고 한다. 모든 중생이 겪는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으로 삼는 자비를 말한다. 억지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한 몸인 진리를 우리가 깨닫지 못하여 남으로 여기고, 편을 가르는 것일 뿐이다. 그러한 잘못된 견해를 벗어난 불보살에게는 동체대비가 자연스러운 것일 뿐이다. 불교에서만 그런가? 유학에서도 모든 존재를 나와 하나로 여기는 것을 어짊[仁]이라고 한다. 한의학에서는 팔다리가 마비되는 증상을 불인(不仁), 즉 ‘어질지 않다’라고 한다. 정호(程顥, 1032∼85)는 손발에 기가 통하지 않아 자기 몸을 자기
어릴 때 먹었던 음식 맛이 엄마를 부른다면, 다 커서 만난 음식도 새로운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보다. 나에게 평양냉면은 바로 그런 음식이다. 비빔은 정중히 사양한다. 사시사철 언제나 물냉면을 먹는다. 성격 한번 유별나다. 특별한 맛이랄 것도 없는 슴슴한 국물과 맥없이 끊어지는면발의 허무한 느낌이 내 마음을 사로잡을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을지면옥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얼추 25년은 된 것 같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던 시간을 두고 한없이 불안하던 시절, 추운 겨울날 우연히 들렀던 곳이 을지면옥이었다. 처음 맛본 차
우주 질서 속에 있는 우리 생명체는 유물론적 입장에서 보면 분명 시작과 종말이 있다. 사대육신이 인연이 화합하여 이루어져 있다가 사대가 흩어지는 과정을 우리는 시작과 끝이라고 한다. 그러나 무시무종의 시공 속 사대가 흩어지는 과정에서 마지막 원자만 남았을 때 이 원자는 우주의 어느 곳에서 어느 인연과 화합할지는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전우주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불교에서의 시제는 어떨까.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시제가 기찻길처럼 일직선에 있는 것은 아니다. 불교의 시제는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원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