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시간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명상센터에 앉아 있습니다. 불도 켜고 블라인드도 올리고 따뜻한 물 한잔에 노트북을 켭니다. 분위기를 편안하게 하려고 잔잔한 음악도 켰습니다. 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로 여러분을 만날까요. 오늘은 늘 앉던 자리 반대편에 앉았습니다.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지만 보이는 것, 느껴지는 건 전혀 다릅니다. 입장의 차이를 실감하는 순간입니다. 10여 년 전 건축 디자인으로 유명하신 분이 우리 절을 방문하신 적 있습니다. 그분에게 “어떻게 하면 적은 비용으로 절의 분위기를 좋게 할 수 있을까요?” 물었더니 “그것
1989년 증엄스님의 재가제자가 제공한 집에서 대만유학생활을 시작한 나는 자제공덕회의 공익활동실황을 보고 들을 기회가 꽤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놀라웠고 부러웠다.하루는 자제공덕회 소식지에서 두 팔, 두 다리가 없는 소년이 화련 자제병원 병상에 앉아 있는 사진을 보게 되었고 이 보다 더 비참할 수 없다는 생각에 한참을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 속 병원자원봉사자와 소년의 표정에는 어색함이 없었고 그들의 평범한 일상사를 들려주는 듯 평화로움에 나는 그들에게서 한참을 더 벗어나지 못했다.며칠이 지나 자제공덕회 위원으로부터 사진
2029년 4월14일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날 아포피스라는 소행성이 지구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는데 지구와 충돌할 확률이 2.7%라고 합니다. 지름 400m의 소행성인 아포피스와 충돌하면 히로시마 원폭의 8만 배나 되는 폭발이 일어난다고 하니 인류에겐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행성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인류는 무방비 상태의 충돌을 피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우주의 원리나 상태를 다 보지 못합니다. 언제 어떤 상황이 태양계에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 훨씬 더 많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10년에
드디어 7일 간의 미국 연수가 끝났다. 이제 휴가다! 도대체 몇 년 만의 일인가. 휴가란 것이 있기나 했던가. 하늘이 약간 흐렸지만, 무사히 교육을 마쳤다는 안도감과 여행에 대한 기대로 이미 내적 흥분은 최고조였다. 약간의 사치를 부려 애틀란타-보스턴행 티켓은 미리 업그레이드 해뒀다. 어느 순간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가끔 천둥 번개도 쳤지만, 길에서 마주친 동료들은 날이 곧 좋아질 거라 말했다.오후 5시, 공항 스피커에서 날씨로 비행기가 연착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오후 7시, 비행기 탑승은 가능하지만 업그레이드 좌석 이
법보신문 독자분들과 오랜만에 만나게 됩니다. 다시 글을 쓰게 되니 그동안 잘 계셨는지 안부도 궁금합니다. 원고 청탁을 받고 어떤 내용으로 만나야 할지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1년 전에는 아직 쓰지 못한 명상에 관계된 박사 논문을 쓰겠다는 다짐으로 절 식구들에게도 용기 있게 말하고 시간을 달라며 떠벌렸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3월부터 은사스님을 모시게 되면서 그 꿈은 저 하늘의 새처럼 다 날아갔습니다. 계획은 항상 변수가 따르고 아쉬움과 섭섭함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냥 접으려
세상은 늘 시끄러움 속에서 질서를 찾아간다. 비록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이 그리 순탄치 않지만 우리는 의무와 권리를 이행하면서 현재를 살아나간다. 누구든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시끄럽고 질서를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즉 의무는 다하되 권리는 모자라듯 행사해야 자타(自他)가 모두 평안하게 된다.언제부턴가 우리는 물질적 손익 계산을 선두에 두는 습관을 갖게 되었고 풍부한 자원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을 부자라 하고 행복할 것이라 생각한다. 즉 물질적인 손익 계산이 지혜로운 삶보다 우선시된 것이다. 반면
‘묘법연화경’의 ‘제바달다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이야기가 서술돼 있다. 부처님은 전생에 한 나라의 왕이었는데 법을 위해 왕의 자리를 선위하고는 스승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스승을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과실을 따고 물을 긷고 땔나무를 하고 음식을 장만하는 등 게으르지 않고 섬기기를 천년이 넘도록 했다고 한다. 구도자가 법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진실하게 보여주신 부분이다. 오늘날 우리는 과연 이런 발심을 실천하고 있을까.모실만한 스승이 없는 것이 아니다. 법당에 부처님과 경전 그리고 절에 오가는 모든 이들이 스승이 될 수 있다.
벌써 올해도 마지막 달까지 와버렸다. 참으로 세월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 시간은 나이의 숫자와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고 하니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1년이 이렇듯 빨리 흘러갔지만 생각해보면 지난 10년의 세월이 그림자같이 지나가 버린 것만 같다. 처음 ‘세심청심’ 원고를 청탁받고 이름이 너무 좋았다. 혼자서 ‘씻는 마음 깨끗한 마음’이라고 어린 시절 표어같이 이름 지어놓고 항상 즐거이 글을 쓴 것 같다. 때로는 마감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글을 쓰기도 했지만 때로는 마음 속에서 울려오는 이야기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담아 독자들에게 내보이
가장 두려운 일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늙고, 병들어 극심한 고통을 겪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끝내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어쩌면 병고에 시달리는 그의 고통보다, 혼자 남겨질 나의 고통이 더 두려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의 죽음이 안타까워 슬픈 게 아니라 평생 그리워할 자신의 외로움이 더 슬픈 것인지도.25살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제삿날마다 절에 올라옵니다. 노보살님은 과일 몇 가지를 끌어안고, 지팡이를 의지해 절에 도착하고, 겨우 마루에 걸터앉습니다. 매번 절에서 모시러 간다고 해도 거절하
위드코로나로 일상의 회복을 기대했는데 여전히 확진자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우리 복지관도 예외는 아니어서 가끔 확진 판정을 받는 어르신이 나온다. 하지만 처음 우리가 겪던 상황과는 많이 달라져 있음을 느낀다. 백신접종을 2차까지 하고도 감염이 되니 걱정이다. 그래서 가능한 외부인 출입을 자제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잘 지켜지지가 않는다. 일상생활을 위해 필요한 일들이니 어쩔 수가 없지만 가능한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켜가려고 한다. 세상은 더욱 빨리 변하고 있어서 메타버스를 통한 가상공간에서 자유자재로 학습도 하고 회의
어떤 보살님이 두 아들이 자꾸 이직을 하고 싶어 한다며 자식을 위해 어떤 기도를 하는 게 좋은지 물어보셨다. 어머니로서 걱정이 되겠지만 이런 때 어머니의 역할이 참 중요하다. 어머니는 자존감이 높아야 한다. 어머니가 행복하고 지혜로워야 자식들도 그렇게 된다. 그래서 행복하고 지혜롭기 위해 건강한 자존감을 가져야 하며, 그것은 공부와 수행, 봉사를 통해 이뤄진다. 지식과 교양, 자비심이 넘쳐야 자존감이 건강해진다.직장에 다니면서 일이 잘 되면 자존감은 좋지만 쉽지 않고 험한 길이다. 직장에 다니든 안 다니든 기도와 공부, 봉사를 하는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 가을 단풍 이야기가 회자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갑자기 대설주의보 뉴스를 듣고 한라산을 바라보니 산정에 눈이 가득하다. 저녁에 차가워진 기온이 예사롭지 않다. 이렇게 또 한해의 가을이 가고 해를 걸쳐 겨울이 펼쳐지는가 보다.나이가 들어 계절의 흐름에 애잔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춘기 젊은 시절엔 변화 그 자체가 가슴 설렘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계절의 변화에 대한 느낌은 점점 무디어지고 그저 세월의 흐름이 자꾸 애잔하게 느껴져서 아쉬움이 더하는 것 같다. 시간은 젊은이나 장년이나 늙은 사람 모두
바다를 마주하면 많은 것을 배웁니다. 푸르른 바다는 수평선을 따라 끝없이 넓고 아득히 깊어 무량한 붓다의 지혜를 보게 하고,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는 무상(無常)을 설파합니다. 경전에 나오는 법해(法海), 해조음(海潮音), 물거품의 비유가 얼마나 적절한지 매번 감탄합니다. 그 가운데 몽돌이 반짝이는 바닷가를 볼 때면, 마치 수행자를 보는 것 같습니다. 크고 작은 몽돌은 각각의 색깔과 모양을 갖고, 파도가 스쳐 지나갈 때마다 서로 어울려 부딪히며 물빛에 반짝입니다. 동글동글 몽돌 사이로 바닷물이 흘러내리는 소리는 음악처럼 아름답습니다.
며칠 전 지인 스님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낙조를 바라보는데 그렇게 아름답더군요.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우리 인생의 황혼도 저렇게 아름답게 빛나야 할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저 하늘에 빛나는 태양이 아마도 석양을 향해 가고 있는 온전한 석양은 아닐테고 곧 석양이 들려고 노을이 조금은 붉게 물들고 있는 지점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더군요.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는 ‘때’라는 것이 있지요. ‘때’ 즉 시절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여도 그 때가 도래하지 않으면 성사되지 않기
1년 365일 중 소중하지 않은 날이 없다. 하지만 같은 날이라도 챙겨서 기념해주면 더 좋은 날이 있다. ‘1월1일’이나 ‘매월 1일’ 또는 광복절, 현충일, 부처님오신날 등 공휴일은 그날의 의미에 맞게 기념하는 것이 좋다. 가족이나 개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생일(生日)’이 바로 그런 기념일이다. 생일을 정성스럽게 잘 챙기면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좋은 기운을 받는다. 사람에게 돈이나 권력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고단해도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생일을 축하해주면 힘이 절로 솟아
오랫만에 가을비가 내린다. 비보다는 청명하게 높은 하늘이 더 어울리는 계절이지만 무겁지 않게 내리는 가을의 안개비가 운치를 더해 주는 것 같다. 비에 관해 좋아하는 ‘법성게’ 구절이 있다.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허공 가득 내리는 비가 모든 생명체에 보배로운 이익을 선사하지만중생들은 오직 자신들의 근기에 따라 그 이익을 차지할 수 있다.중생들에게 근기를 키워야 한다고 가르치는 게송이지만 앞 구절에는 온 허공에 차별없이 내리는 비에 견주어 부처님의 크신 자비를 찬탄하고 있어 더 좋다.불교는 차별을 엄격
선생님들과 보살님들의 백신 접종이 완료되면서, 영상으로만 하던 청소년 법회를 1년 만에 대면법회로 진행했습니다. 물론 인원 제한으로 다 모이지는 못했지만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뜻밖에도 하은이가 BTS를 좋아하는 스님을 위해 특별한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아끼고 아껴, 비닐 포장도 그대로인 BTS의 CD와 굿즈를 부끄러워하며 줍니다. 마음이 너무 예쁩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가 “하은이 덕분에 BTS의 UN 총회 연설을 온 가족이 다 봤다”며 “팬심을 말릴 수 없다”고 놀립니다. 그리고 “내 평생 처음으로 UN 회의를 생방송으로
추석 명절을 앞두고 복지관이 부산합니다. 코로나19 이전이었다면 훨씬 더 시끌벅적하게 명절 행사를 준비하고 봉사활동도 펼쳤겠지만 아직은 코로나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아 선물만 전달하고 행사도 대부분 온라인으로 진행돼 명절 분위기가 반감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합동차례도 제한된 인원만 참석을 해야 하니 이래저래 명절이 실감나질 않습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 상황에서 처음 맞이하는 명절이다 보니 다들 처음 해 보는 온라인 차례가 낯설어 시행 착오와 실수가 발생하더라도 서로 위로하며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벌써 두 해 째 같은 상황이
살면서 자주하는 질문이나 의심과 관련해서는 미리 답을 찾아 놓는 것이 실수를 덜하게 되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것은 스스로에게나 남에게나 자주 묻는 질문이다. 또 출가한 스님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절에 다닌다고 하면 타인에게 관심거리가 되기 마련이다. ‘절에 다닌다면 좀 달라야하지’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절에 다니는 불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히 찾을 수 있고, 찾았더라도 그것을 잊지 않으려면
가을이 왔다. 가을이 왔다고 한다. 창 너머로 가을 풀벌레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정말 가을이 온 것일까? 바닷가에 살면서 바닷물에 발 한번 담가보지 못하고 보내야만 했던 여름의 야속함이 못내 아쉬움을 더 한다. 여름의 무더위와 새로운 질병으로 인해 갇힌 생활을 하면서 지쳐가는 사회에 스님들의 훈훈한 미담이 들려온다. 종단에서 추진 중인 여러 사회적활동에 스님들이 많은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금액을 그야말로 쾌척한다는 소식이다.얼마 전 청년불자와 대화를 나누는데 대뜸 ‘스님은 돈이 얼마 있어요?’라고 물었다. 좀 의아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