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조건 따른 생산방식이 신앙심·정서 형성의 토대 초창기 티베트 종교는 본교주술 성향 강한 샤머니즘이환생 신봉 문화형성에 영향 ▲티베트의 원시종교인 본교는 오늘날 라싸보다는 외곽 쪽에서 그 의례와 사원, 본교도를 만나 볼 수 있다. 이들은 여전히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본교의 제사의식이나 생명사상을 보유하고 있다. 다시 만났다. 인연이 되었는지, 아님 의식적으로 이 황량한 고원에서 다시 한 번 만남을 의도하였는지 10일 후, 우리는 배시시 웃으며 다시 만났다. 마치 가족처럼. 아들 때문에 속상하다는 엄마의 육체는 매우 힘들어 보였으나 얼굴은 왠지 모를 미소와 희망이 엿 보였고 그 아들도 10일 전의 아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자연·종교는 티베트 두 기둥삶 붙잡아 주는 정신적 멘토 지형·생존 환경 가혹해도‘도전과 응전’ 속 변화 발전 생사관·상장의식에도 영향 ▲필자는 라싸에서 짱무로 가기 전에 일명 ‘하늘호수’라고 불리는 ‘남쵸호수’를 들렸다. 이 호수는 해발 4718m, 길이 70km, 폭 30km, 수심 약 35m의 방대한 견적을 가지고 있다. 티베트인들이 가장 신성한 호수로 여기고 있는 성수(聖水)인데 가보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외의 대상이다. 이미지 출처: 수미여행사 어느 해 8월의 여름, 라싸로 기억된다. 개인 일정으로 네팔 근처 짱무(樟木, ZhangMu)까지 여행을 갔다가 다시 라싸로 돌아와서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늘어진
유목 사회서 활불제는권력 안정성 유지하는 효과적인 정치 제도 달라이라마 짧은 수명은불안정했던 통치권 대변 ▲ 전대의 활불로 인준된 어린영동을 달라이 라마로 옹립하는 과정에서 섭정활불은 어린영동의 탐사와 확인 및 인준의 모든 기획과 결정권을 가졌다. 사진은 섭정활불이 거주했던 중국 사천성의 티베트 홍교사원. 티베트는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라는 거룩한 별에 의해서 유지되고 힘을 발휘하는가? 외관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그들은 설역(雪域)고원에서 티베트인들로부터 추앙받는 존재이자, 대체 불가한 종교적 능력을 배양한 인간 신(神)이기 때문이다. 또 그들이 위대하게 보이는 것은 스스로의 법력으로 윤회와 환생을 주관할 수도 있고
활불제도 하에서 섭정은실질적 권력자로 군림영동이 18세 되기 전까지티베트 정교 사무 주관 ▲근대에 이르기까지 티베트의 불교사원은 수행승들에게는 영적수행을 정진하는 도장이었고 일반 신자들에게는 종교적 신앙의 귀의처요 문화적(오락적 포함)으로 기댈 수 있는 공동의 학교였다. 역사는 인간의 생활이 모여 누적됨으로써 이루어지며, 그 생활이나 행동은 인간의 사고를 통해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원동력은 거기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사고나 그 표현으로서의 생활 속에만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니며, 그때그때의 체계적인 힘이 강하게 작용함으로써 그 원동력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체계적인 힘의 으뜸이 되는 것은 바로 ‘정치권
엄밀한 이론과 더불어정신영역 탐구 중요시 활불 명칭 얻기 위해선‘게시’ 학위 획득해야 ▲티베트에서 활불이 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일반인이 출가하여 스승을 모시고 수 십 년간 공부하여 ‘게시’라는 불교학 박사학위를 받는 경우이다. 두 번째는 어린 아이가 전대 활불(달라이라마 포함)의 영동(靈童)으로 확인되어 체계적으로 20년 동안 불교와 명상공부를 수행하고 인정을 받는 경우이다. 후자의 경우는 모든 티베트 아이들에게 적용된다는 공평성의 이론을 가지고 있다. 7세기경 불교를 받아들인 티베트인들은 불교를 자신들의 생명처럼 여기며 살아왔다. 이런 까닭에 티베트 불교는 그 자체가 티베트 역사의 궤적이
척박하고 차단된 환경이자연에 대한 경외심으로 ‘삶의 순환’ 굳게 믿으며 죽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 ▲티베트인들은 끊임없이 성실한 자연의 법칙을 존중한다. 그래서 ‘삶의 순환’을 믿는다. 죽음이 가면 삶이 다시 오는 것이다. 대다수의 티베트인들은 우리보다는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하지만 우울이나 불안, 자살이 거의 없다. 이는 죽음에 대한 정의와 개념이 우리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티베트 라싸에서 한국인 관광객 한 사람이 길에서 만난 티베트인에게 뜬금없이 물었다. “티베트에서 자살을 하거나 직접 본적이 있나요?”, “티베트 사람들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혹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
‘죽음관’에 대한 관심은웰다잉 준비부족에 기인 과학기술 보유한 서양이동양에 삶 묻는 시대 도래 ▲티베트의 아이들. 이 아이들이 전생에 이어 환생했는지 아니면 우연히 탄생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티베트에서 환생의 여부는 확인 작업으로 가능하며 이들 중에 달라이 라마가 있을 수도 있다. 1989년 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갸쵸(Tenzin Gyatso)가 노벨평화상을 받으면서 티베트는 본격적으로 외부세계에 노출되기 시작됐다. 이로 인해 서방세계의 언론과 일반인들은 달라이 라마가 가지는 개인적 상징성을 포함하여 티베트불교와 명상방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오늘날 미국에 점진적으로 퍼지고 있는 티베트 명상센터의
영혼의 흐름을 주관하는 활불불교 윤회사상 배경으로 형성 권력누수와 질서유지의 방편달라이라마는 활불들의 정점 ▲티베트에서 활불은 달라이 라마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각 불교종파마다 깨달음에 이른자, 활불과 그 체계는 존재하며 오늘날까지 그들은 영혼의 흐름을 통해 다시 태어나고 있다. 사진은 중국 청해성 옥수티베트자치주에 위치한 한 백교 사원의 활불. 티베트에는 활불(活佛)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한 수행승이 존재한다. 그는 스스로 누적된 법력과 명상으로 인간으로 다시 재림, 즉 환생(還生)을 할 수도 있다. 지속적인 ‘영혼의 흐름’을 주관하기 때문이다. 세속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이러한 활불이라는 존재는 매우 신비스럽
▲티베트의 유목사회는 일부일처(一夫一妻) 보다는 상황에 따라 일부다처(一夫多妻)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문명세계에서 생각하는 혼인의 잣대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이유는 우리들의 혼인관계는 사람에 대한 ‘집착’과 ‘소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티베트의 유목사회는 소유 보다는 가혹한 자연환경에서 ‘생존’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티베트 전통사회에서 귀족집단들은 가문의 번영과 지속을 위해 세 가지 영역에 집중하였다. 첫 번째는 자신이 속한 가문에서 대외적으로 관료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근대 티베트사회의 최대 정치기구라 할 수 있는 갈하(噶廈 bkav-shag)에 대다수의 대신(大臣)들이 귀족가문
▲귀족은 가문의 재정과 사회적 신분의 지속성을 위해서 데릴사위·양자 등의 방법을 통하여 혼인과 가족의 재구성을 탄력적으로 운용하였는데, 이는 당시 티베트 사회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티베트사회에서 귀족계층은 ①아계(亞谿) ②제본(第本) ③미찰(米扎)의 세 유형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이 중 ‘아계’(亚谿)귀족가문은 주목할만 하다. 그 이유는 티베트 정교(政敎)의 수장인 달라이 라마의 가문이기 때문이다. ‘아계’가문이란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그 부모, 형제들이 주축으로 이루어진 가정을 말한다. ‘아계’란 권세와 재복의 명사를 존중하는 의미로 ‘부친의 장원’을 뜻하고 있다.
▲티베트의 귀족은 사회에서 특수한 신분을 영위하고 지속하기 위해서 가문의 구성원(아들)을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하였다. 예를 들어, 사원의 라마승으로 출가시켰고 지방정부의 대신으로 진입시켰고 같은 귀족집단과의 혼인을 추진하였으며 막대한 토지와 장원 그리고 그에 속한 농노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하여 유학도 보내졌다. 외관적으로 보면 1951년까지 티베트(서장, 西藏)는 ‘달라이 라마의 왕국’ 혹은 ‘활불의 나라’라고 불릴 수 있다. 그러한 이유는 다음의 현상 때문이다. 첫째, 티베트에서 출가한 수행승들은 일반적으로 ‘라마승’이라고 불리는데 출가하면 사원에서 수행승의 신분으로 개인적 스승을 모시고 철저한 수행과 계율에 정진하고 티베트불
▲이곳에서 라마승들은 밀교수행, 특히 무상요가탄트라의 수행에 의해 재생과정을 완벽히 컨트롤하여 장구한 세월을 한 생으로 압축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정식으로 천장사의 길을 가고자 결심했을 때, 스승님이 나를 불러 처음 해주신 말씀은 ‘포정해우’(丁解牛)라는 고사였다.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중국 위(魏)나라에 포정(丁)이라는 유명한 요리사가 혜왕(惠王) 앞에서 소를 잡는데, 순식간에 완벽하게 뼈와 고기를 분리하였다. 그 모습에 혜왕이 감탄하자, 포정은 자기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소를 보면 소의 외형만 보였는데 3년쯤 지나자 뼈와 근육이 보였으나, 19년이 된 지금은 소를 정신(혼)으로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만들어진 요소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무상한 것들 중에서 심리적으로 가장 우리를 압도하는 것은 바로 ‘죽음’이다. AM 3:30눈을 떴다. 새벽 3시 10분. 아직 20여분의 시간이 있다. 언제나 이 시간은 춥고 외롭다. 여름에도 춥고 가을에도 춥다. 방문사이로 히말라야의 바람이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 바람은 계절과 무관하게 늘 칼과 바늘처럼 예리하고 날카롭다. 입에서는 입김이 나오고 코끝은 시리다. ‘투모 호흡’(몸을 보호하기 위해 체열을 발생시키는 호흡법)을 시도해보지만 여전히 춥다. 그래도 몸을 일으켜 올바로 앉는다. 나의 하루가 시작되는 이 신새벽, 오늘의 삶도 이 짧은 새벽의 명상과 자기다짐에
▲티베트의 천장사는 해당사원의 활불이 지정해주며 매달 사원으로부터 월급을 받는다. 이외에도 현장에서 유가족들의 보시와 음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요구해서는 안 된다. 내가 사는 이곳은 히말라야 서쪽, 해발 5000m 상공의 티베트자치구다. 바람(風)과 설산(雪山), 건조한 공기, 적막함으로 뒤덮인 것도 모자라 외부세계와 고립된 환경 속에서 나는 30년째 살고 있다. 속인들이 ‘하늘사원’으로 부르는 이 사원에서 나는 수행을 하고 있는 라마승이며 인간의 시체를 해부하는 천장사(天葬師), ‘돕덴’(東丹, Dromden)이다. 며칠 전, 양초와 ‘금강정경’(金剛頂經)을 구하러 라싸에 갔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라싸에 거주하는 친구
▲티베트의 천장사는 해당사원의 활불이 지정해야 할 수 있다. 사진의 라마승은 처음에는 천장사를 거부했으나 활불이 임명하자 신의 계시라며 받아들였다. 티베트 천장의 의식과 절차는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을 가진다. ◇시체(屍體)의 운반 일단 사람이 사망하면, 그의 가족들은 시신(屍身)의 옷을 모두 벗긴다. 그리고 끈으로 묶어 시체를 앉아 있는 자세로 만든 다음 흰 천으로 혹은 담요로 전신(全身)을 감싸고 마대(麻袋)로 포장한다. 유해(遺骸)는 집안에 3일 동안 모셔놓는데, 이때 경제력이 되는 집안은 매일 라마승을 집으로 청해서 망자를 위해 불경(佛經)을 읽고 제도(濟度)를 한다. 일부
▲본교가 원시천장에서 인간의 천장으로 승화시키는데 일조 했다면 불교는 인간의 천장 행위 속에서 그 종교적 의미와 내면적 가치를 불어넣는데 공헌 했다. 사진은 사원의 활불로부터 천장의 기원과 의미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인류의 4대 문명이 태동한 그곳은 의외로 척박했다. 특히나 그리스 문명과 황하 문명의 탄생은 머리를 갸우뚱 할 정도로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기에도 지극히 불편하고 난감한 지형적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상상을 불허하는 문명이 형성됐다. 그리고 그 문명의 중심에는 사상(종교·철학)이 자리하고 있었다. 왜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생존환경과 자연환경이 유리한 곳에서 멋진 무언가가 탄생하는
▲티베트의 천장(天葬)이라는 장법은 티베트인들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장례방법이다. 놀라운 것은 천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과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천장의식을 하기 전 망자의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마니차를 돌리며 온전한 의식을 기원하는 종교적 공간. 고대로부터 티베트인들 특히나 불교사원의 라마승들은 인간의 삶과 죽음, 그중에서도 죽음에 관하여 매우 독특한 사유체계를 형성하여왔다. 그들은 ‘영혼불멸(靈魂不滅)’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스스로의 법력으로 ‘이동하는 영혼’, ‘전이(轉移)가 가능한’ 영혼의 연속성을 위해 평생 동안 명상과 수행에 천착하였다. 실지로 티베트에서 법력이 높은 고승(활
▲ 조장 터 산언덕에 앉아서 육신의 보시를 기다리고 있는 독수리들. 천국의 사자인 독수리들은 티베트인들에게 매우 신성시되는 동물이다. 1989년 달라이라마가 노벨평화상을 획득한 이후 서방세계 특히나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은 티베트 살리기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개인적 여행 혹은 학술적 종교적 성격으로 티베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서방인도 적지는 않았지만 1989년 이후 시작된 달라이라마의 국제적 종교법회를 계기로 전 세계는 확실히 티베트를 주목하고 동정하고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오늘날 서방세계에 점진적으로 번지고 있는 티베트 명상센터나 티베트불교에 대한 이해는 이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오늘은 (인간의)시체가 몇 구나 해부 되려나? 어제는 두 구 밖에 해부가 안 되어 배불리 먹지는 못했다. 점심 한 끼로 하루를 버티기에는 배가 너무 고프다. 내가 거주하는 이 동네는 나와 같은 독수리가 너무 많은 것도 불만이다. 한 200마리쯤 된다. 얼른 언덕(조장터)에 올라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아야겠다. 해부사(조장사) 스님의 움직임도 보고 망자 가족들의 숫자도 좀 확인해봐야지. 그럼 대충 오늘 몇 구의 시체가 준비되는지 알 수 있다. 아침은 거의 굶기 때문에 점심 무렵에 제공되는 인간의 육신은 아주 맛나다. 환생 도와주는 ‘공행모’의 화신 ▲죽음에서 다시 생명체로 환생할 수 있는 공간이 조장터이다. 그곳은 해부사의 작업장이자 수행
▲티베트에는 인간과 동물의 이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가 의지하고 기대며 살아가는 생물이고 공생의 동물들이다. 네 번째, 티베트에는 순환 공생형의 경제(삶)를 추구한다. 유목민의 생활이 그러하다. 티베트는 라싸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유목 혹은 농업의 생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대지가 집이요 초원이 학교다. 오래 동안 성장과 발전이 없는 대초원, 그러나 그곳에는 수학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 공생의 경제가 펼쳐진다. 유목민과 야크와의 관계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초원에서 유목민의 제일 사랑스러운 재산은 ‘야크’다. 야크는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물질적 재산의 개념보다는 삶의 동반자이자 초원의 친구이다. 이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