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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인정사 주지 수진 스님

“선업 닦아 마음 잘 갈무리하면 내생엔 반드시 안락의 길 향해”

마음과 영혼은 하나, 살아서는 마음이요 죽으면 영혼이라 지칭
예수재 지내는 것은 내생 믿기 때문 … 선인은 선과 악인은 악과
어떤 망상도 없이 아미타불 염불하면 부처님 광명이 나타날 것

“윗동네에 괴병이 돌았단다. 그래서 그 마을을 순식간에 불살라서 없애버리고 떠났단다.” 어릴 때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의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입니다. 분명한 것은 엄청난 재앙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그나마 괜찮다는 사실입니다.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얼굴을 드러내고 기도하지 못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만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안전 수칙을 지키면서 이렇게라도 법석을 열 수 있으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영혼은 있는가?’ 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면 80%의 불자님들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고 답하실 것입니다. “걸어 다니고, 먹고, 앉고, 누우면 그뿐이지 무슨 영혼이 필요합니까?” 하고 되물으실 수 있겠습니다. “영혼은 있는 것인가?” 이 질문을 다시 드리면, “마음은 있는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있습니까? 이 질문에는 모두 답을 하실 것입니다. 마음은 있습니다. 사실 영혼이라고 하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과 돌아가신 분 모두에게 통하는 말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은 마음이라고 말하고 돌아가신 분에게는 영혼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나의 모습이 일어나고, 앉고, 먹고, 자고,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행주좌와의 주체가 있습니다. 이 법당의 천장을 보면 등이 환하게 켜져 있습니다. 그 등은 저절로 켜지는 것이 아니라 스위치를 켜야 불이 켜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저 불만 보고 켜졌다고 생각합니다. 스위치는 따로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앉고, 먹고, 자고 하는 모든 것들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마음이라고 하고 영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놈이 없다고 한다면 천도의 의미가 없습니다. 이놈이 없다고 하면 생전예수재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놈이 있기 때문에 죽은 뒤에는 살아생전의 복업을 따라서 태어나는 곳이 달라지게 됩니다. 살아생전 선업을 닦았다면 여러분의 영혼은 잘 갈무리되고 잘 갈무리되면 고통이 없는 안락의 세계에서 태어날 것이 분명합니다. 살아생전 악업을 짓는다면 여러분의 영혼은 안락이 없는 고통의 세계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착하게 살면 착한 과보를 받는 것이고 악하게 살면 결국 악한 과보를 받는 것, 이것은 우주의 질서이자 대자연의 섭리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친구는 별짓을 다 하고도 잘 살던데요?” 착하게 살면 손해본다는 것이 진리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분들입니다. 혹여 공부하지 않아도 영리한 사람이 있습니다. 죽어라고 시험을 준비해도 70점을 넘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시험을 앞두고 30분을 공부해도 모르는 것 없이 항상 100점인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타고난 능력은 전생에 예금해놓은 지혜의 복업입니다. 부자로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생의 창고에 아직은 보물이 차 있는 것입니다. 실컷 놀아도 쓸 만큼 있겠지만 채우지 않고 꺼내어 쓰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고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가 덩실덩실 놀기만 해도 잘산다는 것에 농락될 일이 아닙니다. 나의 복업은 내가 만들어서 내가 받는 것입니다. 여실한 마음으로 선업을 지어가고 복업을 닦아가면 언젠가는 나도 잘사는 날이 옵니다. 

우리가 예수재를 지내는 것도 내생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생이 없다라고 한다면 예수재는 지낼 필요 없고 선업도 닦을 필요 없습니다. 지금 내가 짓는 것은 이후에 받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받는 것은 과거의 결과입니다. 선인은 선과를 받고 악인은 악과를 받는 것입니다. 

당나라 때 하동 배휴(河東 裴休, 791~870)라고 하면 모르는 분이 없습니다. 황벽 희운 선사와의 거래는 특히 유명합니다. 청량징관(淸涼澄觀, 738~839) 국사는 당시 승속을 떠나서 가장 존경받던 스님입니다. 무려 102살을 사셨습니다. 이분이 돌아가시니까 문종 황제가 정무를 3일 동안 중단하였습니다. 황제가 돌아가실 때처럼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렇게 장례를 치르고 종남산에 탑을 조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탑의 비문을 배휴에게 명합니다. 얼마 전 제가 번역한 ‘청량국사화엄경소초(도서출판 운주사)’ 첫 번째 권에 그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배휴는 어릴 때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삼촌의 집에 살았습니다. 삼촌의 집에는 늘 오가는 일행 선사라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스님이 오더니 어린 배휴의 얼굴을 보고 “그놈의 상이 천하의 빌어먹을 상호”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 아이를 내보내라고 합니다. “당신의 기둥뿌리마저 왕창 밀어버릴 아이”라고 합니다. 배휴의 삼촌은 어린 조카를 내보낸다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파 그럴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배휴는 우연히 이야기를 듣고 다음 날 깍듯이 예를 차려 인사를 한 뒤 삼촌집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배휴는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절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그곳에 무엇인가 하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부인의 값비싼 혁대였습니다. 귀한 물건이니 분명히 주인이 찾으러 올 것이라 여기며 그것을 주워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말쑥하게 차려입는 부인이 나타나서 무엇인가를 찾았습니다. 배휴는 그 혁대를 내밀었고 부인은 그것을 어디에서 얻었냐고 묻습니다. 배휴는 길에 떨어져 있는 이것을 주워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이 자리에 있었다고 대답합니다. 부인은 그 혁대를 받고 사라졌습니다. 그 뒤로 배휴는 결국 갈 데가 없어서 다시 삼촌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삼촌 집에 다시 온 배휴를 일행 선사가 보더니 이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삼공 영의정을 할 사람이네.” 

배휴의 삼촌이 놀라며 말을 합니다. 

“아니, 지난번에는 빌어먹을 상이라고 하시더니 왜 이번에는 영의정을 지낼 상이라고 하십니까?” 

스님은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지난번에는 내가 관상을 보았고 이번에는 심상을 보았노라.” 

그 부인의 혁대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부인의 아들이 살인죄를 저질렀는데 그것을 갖다 주고 살인죄를 면케 하려는 재산이었습니다. 배휴가 그것을 챙겨 가져가 버렸거나 팔아버렸다면 여전히 박복하게 살 것인데 그 단 한 번의 선행이 마음을 바꾸고 심상을 바꾸었습니다.

이처럼 한 번 실천한 선행은 심상을 바꾸고 평생 선업을 쌓는 계기가 되어 나아가 내생의 안락까지 이끕니다. 불가에서 재를 지낼 때 꼭 들어가는 게송입니다.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

한번 내가 낸 마음의 왕을 등져 버렸다./ 그것으로 인해 몇 번이나 삼악도에 들어가서 나고 죽고 하였는가./ 오늘 그 번뇌의 더러운 물결을 찰나에 깨끗이 씻어버리고/ 너의 마음대로 본래 마음의 순백한 고향으로 가라.

우리는 잘살아보려고 색깔을 너무 많이 입힙니다. 어릴 때는 웃으면 그냥 웃음일 뿐인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 웃음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냥 웃고 우는 것이 아니라 색깔을 입혀서 나름의 목적을 챙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하를 속여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잡다한 생각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본래 태어날 때의 순백한 마음, 자유로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영혼은 있는가? 있습니다. 이 영혼을 살아생전 잘 갈무리하고 죽은 뒤에 잘 천도한다면 가정은 화평하고 행복이 절로 넘쳐나는 것입니다. 마음은 있는가? 있습니다. 이 마음을 잘 갈무리하면 살아생전에 복업이 넘쳐나고 죽은 뒤에는 안녕의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선업을 닦고 복업을 지으면 살아생전 행복하게 살고 죽어서는 극락세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지 않고 즉시에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미타불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질문을 가슴에 철썩 붙여놓고 한 발짝도 지나치지 않은 채 일념으로 염송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미타불뿐만 아니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석가모니부처님도 어떤 망상도 없이 염해보시기 바랍니다. 염도염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 아미타불을 생각하고 염불하는 그 마음이 완전히 끊어져서 내가 아미타부처님을 부른다는 생각조차 없는 곳에 도착하면, 육문상방자금광(六門常放紫金光), 나의 전신에서 부처님의 광명이 환하게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이번 우란분절 기간에 공을 들여서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하면 아마 여러분의 육근 문두에서 금색 광명이 나타날 것입니다. 설사 그렇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고통이 줄어들고 사후에는 극락으로 가는 터전이 분명히 될 것입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6월29일 금정총림 범어사 설법전에서 봉행된 ‘백중지장기도 및 생전예수재 3재 법회’에서 수진 스님이 설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544호 / 2020년 7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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