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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홍법사 주지 심산 스님

“발심은 삶의 전환점 아닌 끝없이 나를 향상시키는 계기”

종범스님 일체유심조 강의
통도사서 첫 ‘출가 발심’

고3 졸업 후 입산 작심
“동국 불교대 입학 후 오라!”

45m 대웅전·21m 아미타불
조성한 후 포교 급속 탄력 

동자승·어린이 단기출가
외국인 전통문화체험 호응

대만·몽골·인도·라오스 
해외불교 문화교류도 활발

걷기·차·붓다볼 명상
차근차근 준비해 실행

“‘나’ 향상 시키는 발심
한 번 아닌 늘 해야 해”

​​​​​​​“포교는 자비심의 표현
원력 세우면 언제든 가능”

“자비심의 표현이 포교”라는 심산 스님은 “세상 사람을 위한 진정한 자비심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것이 포교”라고 강조했다.

푸른 소나무, 붉은 꽃 토해 내는 배롱나무, 야자수 종려나무 등이 어우러진 도량은 이국적인 정원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뿐인가. 실향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등 14종 500여 그루의 나무들이 내어준 숲길은 자연스레 사색의 세계로 이끈다. 수년 동안 자신을 괴롭혀 온 망념이라도, 곳곳에 배치된 의자에 앉아 숨 한 번 길게 내쉬면, 스쳐가는 바람에 떨어져 나갈 듯싶다. 시민들이 이 절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

한적한 동산의 정취에 빠져들 즈음 높이 45m의 원형 대웅보전을 토대로 자리한 21m의 아미타 대불이 ‘이곳은 절’이라고 설파한다. 아미타불 복장에는 달라이 라마가 증여한 부처님 사리가 봉안돼 있어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다소 줄었지만 평일에는 200여명, 주말에는 500여명이 방문했다. 부산 도심 한복판에 4만9500㎡(1만 5000여평)의 숲을 품은 홍법사는 심산 스님과 하도명화 보살의 인연과 원력이 빚은 명찰이다.  

울산고 입학 첫 주, 선배들의 권유로 울산불교학생회에 가입해 곧장 해남사로 걸음했다. 처음 가 본 절이었지만 낯설지 않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일주문으로 들어섰다. 한 달이 지난 식목일 이른 아침. 법당에 앉아 있다 무심코 밖을 내다보았다. 향나무 사이로 들어찬 햇살이 법당 단청에 스며들었다. 

“저는 부처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그해 5월 양산 통도사에서 울산불교학생회 신입 환영회가 있었는데 종범 스님(전 중앙승가대학 총장)의 ‘일체유심조’ 법문이 뇌리에 박혔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듭니다. 한밤에 밀려오는 공포에 우리가 떠는 것은 어둠 속에 무서운 존재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 어리석은 마음이 악마와 도깨비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소 풀 먹이러 들판으로 나갔다가 골짜기에 풀어놓고는 친구들과 편을 갈라 ‘총싸움’을 하곤 했다. 그런데 산속 외진 곳에 숨고는 ‘짐승이 튀어 나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떨곤했다.
“그렇다. 그 두려움도 내 마음이 만든 것이다.”  

어렴풋하게나마 걸림없는 자유를 꿈꾸며 고등학교 졸업 직후 출가하겠다고 작심했다. 고3 여름방학 때, 경상남북도 연합단체인 영남불교학생회 수련회가 경주 중생사에서 개최됐다. 당시 주지 소임을 보고 있던 도문 스님(현 조계종 명예 원로의원)이 법문 말미에 대중들에게 물었다.

“출가할 사람 있나?”

딱 한 사람만 손을 들었다.

“동국대 불교대학 입학 후 찾아오라!”

책상 서랍 깊숙이 밀어 넣었던 교과서와 참고서를 다시 펼쳤고, 다짐한대로 동국대 선학과에 합격했다. 당시 도문 스님은 내장사 주지를 맡고 있었다. 

광복 75주년을 맞이해 3000개의 등을 밝히며 세계평화를 염원했다. 홍법사 제공

자신이 써 온 일기장 7권을 모두 불살랐다. 자신의 모습이 눈곱만큼이라도 담긴 사진은 모두 태워 버렸다. 속옷 몇 벌과 옥편 한 권 달랑 들고, 흰 눈 덮인 내장사로 걸음해 삭발염의했다. 조계종 단일계단 제3기 출신의 심산 스님이다. 

1923년 출생인 하도명화 보살은 경봉 스님 등 당대 선지식과 교류하며 불연의 깊이를 더했다. 특히 1988년 10억원 상당의 사비를 쾌척해 (재)불심홍법원을 설립하고 청소년포교, 장학사업, 군법당 불사, 사회봉사에 박차를 가했다. 

평생을 기도수행에 매진하면서도 4만9500㎡의 땅에 묘목을 기르는 ‘신창농장’을 일궜다. 사업을 목적으로 한 농장이 아니었다. 부처님 법 흐르는 도량으로 조성하겠다는 발원이 뿌리 내린 농장이었다. 그리고 20여년을 기다렸다. 자신의 원력과 결을 같이 할 스님을 말이다.

통도사 강원 졸업 후 교무국장 소임을 보던 심산 스님은 당시 주지 태응 스님의 권유로 새롭게 들어선 통도사부산포교원을 맡았다.(1994) 신도라고 해봐야 서너 명에 불과했다. 돌파구가 필요했는데 뾰족한 수는 없었다. 

예로부터 고난에 부딪쳤을 때 기도하라 했다. 대학 졸업 직후 서울 대성사 주지를 맡았을 당시 은사 도문 스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가 떠올랐다. 

매월 1·2·3일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신도들의 동참도 허락했다. 소문은 금세 부산 전역에 퍼졌다. 첫 기도에 200여명이 몰리더니 이내 1000여명이 운집했다. 

심산 스님의 기도이자 신도 개인의 기도였다. 하여, 축원문 읽을 일 없었고 기도비 받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신도들은 기도비 대신 공양미를 올렸다. 매월 3일 만에 40∼50가마니 분량의 공양미가 쌓였다. 그러는 사이 신도는 1000명을 넘어섰다.

북한동포를 돕기 위해 공양미 100가마를 모은 적이 있다. 그때 ‘IMF 경제위기’가 몰아쳤다.(1997) 당장 곁에 있는 사람부터 보듬어야 했다. 쌀을 팔아 밥 차를 사서는 부산 어린이대공원에서 실직자와 노숙자를 위한 급식에 나섰다. 심산 스님은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통도사부산포교원과 함께했다.

심산 스님이 소임을 놓자 하도명화 보살이 신창농장에 머물러 주기를 청했다. 20여년 동안 기다려온 스님이 심산 스님이었음을 확신한 것이다. 

절 이름은 ‘홍법사(弘法寺)’로 정하고 ‘홍법사와 인연 맺은 사람들 모두 행복하기’를 서원했다. 2002년 동짓날 관세음보살님을 모시고 첫 법회를 열었다. 2003년 개원한 홍법사를 통도사 말사로 등록했다. 2009년 원형의 대웅보전이 완공되고 2010년 아미타 대불이 봉안되면서 포교에 탄력이 급속도로 붙으며 부산 포교의 새 지평을 열었다.

홍법사는 단기출가를 통해 150여명의 동자승을 배출했다. 홍법사 제공.

홍법사 개원과 함께 심혈을 기울인 분야가 어린이 포교다. 4~6세 어린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동자승 단기출가’가 대표적이다. 출가기간은 21일이고 행자와 똑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하고 발우공양하며 육법공양도 올린다. 2004년 시작한 이후 150여명을 배출했다. 

“동자승 예비모임 때만 해도 저 보고 ‘아저씨’하고 쫓아다니던 아이들이 출가 단 며칠 만에 ‘스님’하며 합장합니다. 서너 살의 아이가 부모님 곁을 떠나 엄격한 출가생활을 한다는 게 쉽지도 않거니와 가벼운 인연도 아닙니다. 불자로 살아갈 씨앗을 심어주는 것이기에 나름의 자부심도 가져봅니다.”

2006년 시작한 6박7일간의 ‘어린이 단기출가’도 인기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 진행하는데 2018년 여름에는 접수를 시작한지 이틀 만에 마감됐고, 역대 최대 인원인 31명이 입방했다. 홍법사의 출가 프로그램은 전국적으로 정평 나 있다.

“단기 출가에 참여했던 아이들이 결국 홍법사의 진성불자로 성장합니다.”

인도, 몽골, 라오스 등 국제교류에도 남다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대만의 불광산사와는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홍법사 일주문 두 개의 돌기둥 중 하나에 ‘국제불광회 부산협회’가 명료하게 새겨져 있을 정도다. ‘국제불광회’는 대만의 불광산사가 1991년 조직한 NGO 단체로 세계 약 60개국 200여개의 협회·분회가 있다. 

불광산사를 세운 성운 스님이 2003년 직접 홍법사를 찾아와 ‘국제 불광회 부산협회 인증서’를 심산 스님에게 직접 전해주었다. 

“하도명화 보살님은 1970년대 불광산사를 참배하며 한국불교의 미래를 엿보았다고 술회한 바 있습니다. 저 역시 불광산사를 자주 참배하며 대만불교를 심도 있게 들여다 보았습니다. 홍법사가 추구하는 불교의 생활화·현대화·복지화·세계화는 불광산사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습니다.”  

한나래문화재단 이사장인 심산 스님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연등 만들기, 화전놀이, 한복 예절 등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데도 주력해 왔다. 

“1996년 몽골 간단사 방문을 계기로 국제포교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1997년 국제포교부를 정식 발족했습니다. 1998년 1월 제1회 외국인을 위한 ‘윈도우 투 코리언 컬쳐’ 행사를 매월 시작한 이후 2006년 10월 총 100회를 맞이한데 이어 2015년 5월 총 200회를 개최했습니다.”

한나래문화재단은 외국인 포교의 새로운 방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울러 의외의 성과도 동반됐다. 외국인들과 직접 대화하며 어학실력을 높이려는 청소년들이 이 행사에 대거 몰리며 청소년 포교도 활성된 것이다. 

‘붓다볼’ 소리 명상은 호응도가 높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심산 스님은 명상 프로그램을 전격적으로 도입하며 홍법사의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있다.

“티베트 불교의 법구인 붓다볼(싱잉볼)을 통한 소리 명상, 차를 통한 선차명상, 걷기 명상 프로그램을 전문가들과 논의하며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미 시작한 붓다볼 소리 명상은 호응도가 높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불자뿐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기에 포교진작에 큰 힘이 되리라 봅니다.”

도량을 내어주어 시민들의 정서함양에 도움 된다면 무엇이든 시도해 볼 참이다. 최근에는 캠핑이나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템플스테이도 생각해 보았을 정도다. 왜 아니겠는가. 한여름에는 아이들의 물놀이장으로 내어주고, 야외 전시공간을 확보 못한 작가들에게 6000m²(약 2000평)의 잔디밭을 기꺼이 내어준 심산 스님 아닌가. 너무도 원론적인 질문을 드렸다. ‘포교란 무엇인가?’

“자비심의 표현이 포교입니다. 세상 사람을 위한 진정한 자비심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것이 포교입니다. 알고 있는 진리를 나누는 것도 포교이고, 가진 물질을 나누는 것도 포교입니다. 아픈 사람 간호하는 것도 포교이고, 험한 말 삼가며 부드러운 미소로 상대를 보는 것도 포교입니다.”

심산 스님은 직접 찍은 사진과 글을 오전 8시 SNS를 통해 대중 휴대폰으로 띄운다. 7세기 인도의 불교학자 샨띠데바의 ‘입보리행론’ 한 구절이 8월30일 당도했다. 

‘모두가 나를 나쁘게 말하고, 다른 이가 나를 해롭게 하여 조롱해도 좋습니다. 이 모든 것이 깨달음을 이루는 인연이 되게 하소서.’

차를 통한 선차명상.

일상에서의 수행을 당부한 것일 터다. 문득 심산 스님의 에세이집 ‘처음 마음 그대로’의 한 대목이 스쳐갔다.

‘수행이 없을 때는 한겨울의 나뭇가지처럼 초라해 보이고 희망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쉽게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행의 공덕으로 마음의 봄바람이 불어와서 비로소 인연이 맞으면 내 속의 불성이 꽃보다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겨울과도 같은 냉담한 마음에서는 꽃을 피울 수가 없다. 삶을 따듯하게 하는 원력과 신심의 바탕에서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고등학교 때 발심하며 품으려 했던 ‘대 자유’는 얻었는지 궁금했는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불교와 인연 맺은 첫 계기가 발심이라면 그건 한 번의 추억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발심은 삶의 전환점이 아닙니다. 끝없이 나를 향상시키는 계기입니다. 그러고 보면 발심은 늘 있어야 합니다.”

재발심의 중요성을 뜻함이자 회광반조(回光返照)를 말함일 터다. 홍법사에 거는 기대감은 더욱 더 부풀어 올랐다. 성큼 다가 온 청량한 초가을 바람이 도량 연못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심산 스님은

불심 도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동국대 선학과와 불교문화대학원, 통도사 강원을 졸업했다. 대성사 주지, 공창종합사회복지관장, 사)동련 이사장, 조계종부산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사)한나래문화재단 이사장, 부산 홍법사 주지를 맡고 있다. 몽골 NOC 훈장(1997), 조계종 포교원 제10회 포교대상 원력상(1998), 조계종 포교원 제26회 포교대상 공로상(2014), 불이상(2002)을 수상했다. 2008년에는 행정안전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저서로는 ‘처음 마음 그대로’가 있다.

 

[1552호 / 2020년 9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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