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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구청 차별적 종교인식 위험하다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1.04.02 16:40
  • 수정 2021.04.12 13:23
  • 호수 1580
  • 댓글 1

크리스마스트리 상식 밖 일정 전시
이웃종교인 받을 피해 고려 안 해
책임회피·불교폄훼 발언 서슴없이

“트리 조형물은 특정종교의 상징물이 아니다.” “트리 사업에 교회 측 예산이 얼마나 들어갔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이 끝났다고 점등도 못하고 해체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런 것으로 이의제기를 하면 불교계가 욕을 먹을 것이다.”

불교계의 공분을 사고 있는 ‘3월 크리스마스트리’에 대한 해운대구청 측의 항변이다. 관계자 2인의 말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자는 책임회피·궁색변명이고 후자는 ‘억지주장·불교폄훼’다. 특히 후자의 경우, 담당자가 본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불교계가 욕을 먹을 것”이라며 서슴지 않고 던진 막말에서는 공무원의 오만함마저 느껴진다.

‘해운대, 희망의 빛 이야기’의 당초 계획은 11월28일부터 2월14일까지였고 트리는 11월28일 설치됐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세로 이 행사는 잠정 연기됐고 다시 잡은 일정은 2월15일부터 3월28일까지였다. 이 지점에서 짚어보자. 빛 축제에 등장한 ‘트리’, 해운대구 측의 해명처럼 크리스마스트리가 아니라고 볼 수 있을까?

오래 전부터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교회는 물론 서울시청 등의 주요 도시 광장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밝혀졌다. 대중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을 크리스마스트리 형상을 모를 국민이 없다는 얘기다. 초등학생들에게 크리스마스트리를 그리라 하면 어떤 형상이 나오겠는가. 해운대구청이 즐비하게 전시한 그 트리모양 아닌가?

해운대구청이 설치한 트리 조형물은 처음 세워질 때만 해도 십자가를 달았다가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별로 대체했다. 이 트리 조형물들의 하단부에는 교회이름도 새겨져 있는데 관련 공무원은 “교회에서 거액의 지원금을 내 만든 조형물”이라고 했다.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 조형물이었다고 해도 교회에서 ‘거액’을 내놓았겠는가? 당초 계획한 트리가 크리스마스트리라는 사실에 대한 더 이상의 입증이 필요한가 말이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워 놓고 크리스마스트리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이의제기 하는 불교계가 욕먹을 것”이라 겁박까지 하고 있으니 이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전형이다. 공무원이라는 ‘권세’로 불교계를 ‘농락’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불쾌하다.

당초 예정기간에 크리스마스가 포함돼 있으니 크리스마스트리를 애써 세우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축제시기에 적합한 콘텐츠를 확보해 대중의 참여를 높이려는 기획으로 볼 수도 있다. 코로나19 여파 속에 침체된 지역 일부의 상권이라도 일으켜 보려는 심정 또한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트리를 축제기간 내내 세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초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무려 두 달이 넘는 79일 동안 밝힐 것이었다. 행사가 2월로 연기된 이상 크리스마스트리가 등장해야할 이유가 전혀 없었음에도 2월과 3월을 거쳐 42일 동안 세워 두었다. “교회에서 거액의 지원금을 내 만든 조형물들을 크리스마스 시즌이 지났다는 이유로 해체하는 것은 예산 낭비”라는 주장은 궁색한 변명도 안 된다. 공무원 스스로 기독교 대변인 역할을 자처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지자체가 특정 축제를 주도·지원하는 건 지역 주민들의 연대감과 자부심 고취, 지역문화 창달 등 사회문화적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웃 지역민들의 참여도까지 높아진다면 대국민 상생화합도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해운대구청이 개최한 이런 식의 축제는 종교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기독교의 상징물이 지역을 대표하는 특정 공간에서 상식 밖의 긴 기간 동안 전시되고 있을 때 이웃종교인들이 받을 위화감과 상처를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작금의 행정이나 억지주장을 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의원이나 국회의원 등 지역민을 대표하는 지도자들도 이번 사안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너무도 긴 기간에 걸쳐 전시된 크리스마스트리 아닌가. 큰 축제의 일환인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치부한다면 오판이다. 공평하고 정의로운 세상, 차별 없는 세상은 생각보다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상대를 배려하지 못한 것도 도를 넘으면 무시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대수롭지 않은 존재로 보는 게 차별’이라고 보면 기독교 외의 이웃종교들은 해운대구청으로부터 차별 받은 것이다. 불교계가 이번 사안을 간과하지 않고 주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1580호 / 2021년 4월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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