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5. 김해 정토원의 ‘호미 든 관음’

기자명 주수완

내면의 부처를 캐달라는 중생의 바람

노동 상징하는 호미 불상은 파격적…농민운동 바탕으로 조성돼
호미는 불교가 다른 세상 종교 아닌 이 땅에 뿌리내림을 알려줘
마치 승가가 사회와 쌍무적인 관계에 있음을 알려주는 듯해

김해 봉화산 정상의 ‘호미 든 관음성상’.
김해 봉화산 정상의 ‘호미 든 관음성상’.

승가에는 ‘울력’이라는 것이 있다. 원래는 마을사람들이 보수를 받지 않고 힘을 합쳐 어떤 일을 해내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지금은 스님들이 사찰에서 농사를 짓는 등의 자급자족을 위한 생산활동을 뜻하는 것으로 더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노동하는 스님이라는 이미지는 현대사회에서 불교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부처님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원래 브라만 같은 인도의 종교 수행자들은 노동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수행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사회가 배려한 것일 수도 있지만, 불교에서는 다른 의미도 추가돼 있다.

원래 스님들이 탁발을 하는 것은 노동을 통해 스스로 먹을 것을 생산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현재는 승가에서 육식이 금지되어 있지만, 원래는 부처님도 육식을 하셨다. 금지된 것은 ‘육식’ 자체가 아니라 더 근원적으로 생명을 죽이는 행위였다. 그리고 식물도 생명이기 때문에 식물 역시 죽이면 안 되는 것이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오로지 남들이 이미 죽인 생명만 먹을 수 있었고, 심지어는 스님에게 공양할 목적으로 죽인 음식도 그것을 알았다면 먹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육식이 허용되었다고 해서 지금보다 더 쉬운 수행이었던 것이 아니라, 어쩌면 더 까다롭고 엄격한 수행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먹기 위해 식물을 재배하는 행위 역시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농사를 지으려고 해도 지금의 사찰과 같은 일정한 거주처가 없이 떠돌던 인도의 스님들은 농사를 지을래야 지을 수도 없었다. 
 

중생구제를 위해 다양한 지물을 들고 계신 천수관음상. 여기에 호미는 없지만, 관음보살이 방편으로서 도구를 들고 있는 것은 전통에도 부합한다.
중생구제를 위해 다양한 지물을 들고 계신 천수관음상. 여기에 호미는 없지만, 관음보살이 방편으로서 도구를 들고 있는 것은 전통에도 부합한다.

그렇다고 울력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승가 역시 변화한 것이므로 과거와 비교해서 원래 그렇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인도는 그렇게 엄격히 수행하더라도 종교수행자에 대한 보시가 최고의 공덕이었던 문화적 배경 덕분에 스님들이 비교적 쉽게 생존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동아시아에는 그런 전통이 없었다. 때문에 스스로 음식을 해결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육식을 포기하는 대신, 채식은 스스로 재배하여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니 동아시아에서 스님들의 노동은 매우 성스러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해 정토원의 ‘호미를 든 관음’은 노동하는 수행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무척 흥미롭다. 한편으로는 관음보살께서 호미를 들고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고 독특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다지 특이할 것도 없다. 부처님이 호미를 든 것이 아니라 보살이 호미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보살은 원래 출가수행자가 아니므로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본래의 개념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관음보살은 부처님과 다름없는 성인이라는 점에서 역시 노동을 상징하는 호미를 들고 계시다는 것이 파격일 수밖에 없다.

김해의 해발 140m 봉화산 정상에 자리잡은 정토원에 세워진 이 관음상은 동국대 학생회장이었던 고 선진규 법사(작년에 작고하셨다)께서 동국대 기숙사인 기원학사에서 함께 공부하던 30명의 불교학과 재학생과 뜻을 모아 농민운동을 바탕으로 4대(심신, 사회, 경제, 사상) 개발의 원력을 세우며 이를 상징하는 차원에서 1959년 4월5일에 조성한 것이다. 필자는 아무리 그 뜻이 좋다지만 ‘대학생 31명이 어떻게 이처럼 돈이 많이 드는 높이 24척의 석상을 조성할 수 있었을까’라는 실무적인 의문부터 가졌는데, 원래는 이처럼 큰 것이 아니라 시멘트 재질로 조성한 높이 12척의 지금보다는 작은 상이었다고 한다(현재 원래의 이 상도 정토원 초입에 강화처리되어 봉안돼 있다). 

물론 12척의 불상이라고 해도 대학생들이 감당하기에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동국대 백성욱 총장의 전폭적인 지원도 있었다고 하니 가능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물론 시작이 반이라고 이처럼 큰 일을 처음 고안하고 추진한, 그리고 끝까지 이끌어온 선진규 법사의 원력이 아니었다면 지금 보고 있는 이 호미 든 관음성상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토암 초입에 처음 제작된 ‘호미 든 관음성상’ .
정토암 초입에 처음 제작된 ‘호미 든 관음성상’ .

지난 회차에 소개한 도솔암의 책 읽는 부처님이 화성 주지스님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듯이 정토암의 관음상 역시 선진규 법사의 아이디어로 탄생했지만, 조각은 당시 홍익대 석공과(조소과) 학생이었던 박일현이 맡았다. 그러다 이 시멘트 재질이 점차 풍화되어 손상되었기 때문에 다시금 FRP로 같은 도상의 관음상을 조성하여 모셨으나 FRP는 무게가 가벼운 때문인지 1998년 태풍으로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이에 1999년에 다시금 박일현이 맡아 지금의 석조상으로 조성하게 된 것이다. 

호미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었을까? 농민운동에도 적극적이었던 선진규 법사의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었으나, 이제 그 호미는 농민운동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호미는 불교가 다른 세상의 종교가 아니라 이 땅에 뿌리내리고 있는 종교임을 뜻한다. 또한 불교가 세상을 버리는 종교가 아니라 세상을 구제하는 종교임을 다시금 천명한 것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흔히 불교의 승려들은 속세를 버린다고 하지만, 그렇게 버리기만 하고 중생들의 보시를 받기만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낸 세금으로 국가대표 선수들을 양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국가대표선수들이 경기에 열심히 임하지 않는다면 국민들도 세금으로 선수들을 양성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메달로 이어지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열심히 경기에 임하고 좋은 경기를 펼치느냐의 문제이다. 승가에 대한 보시도 이와 같다. 

호미를 든 관음은 우리에게 승가도 노동할 것을 강조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승가가 이 사회와 쌍무적인 관계에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호미는 중생에게는 노동이지만, 승가에는 현실참여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그 현실참여란 세속의 경제활동에의 관심이 아니라 중생들의 마음 속 깊이 자리한 내면의 부처를 캐내달라는 우리들의 바람일 것이다. 고 선진규 법사가 일으킨 재가불교운동은 바로 시대의 대승불교 운동이 아니었을까? 

1959년 원래의 ‘호미 든 관음’이 조성되던 날이 마침 식목일이라 식목행사도 함께 열렸는데, 그때 봉화산 아래 마을이라 봉하마을이라 불렸던 곳에 살던 당시 중학생이었던 고 노무현 대통령도 나무를 심으러 정토원에 왔었다고 한다. 훗날 그는 당시를 ‘방 안에 있던 부처가 밖으로 나온 날’이라고 회상했다고 하는데, 더없이 정확한 표현이 아닐 수 없었다.

주수완 우석대 조교수 indijoo@hanmail.net

[1611호 / 2021년 12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