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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위한 평화의 스크럼이 세계평화 근간"

기자명 법보
  • 기고
  • 입력 2022.03.01 12:02
  • 수정 2022.03.02 09:14
  • 호수 1622
  • 댓글 2

기고-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푸틴, 유리한 역사적 사실 취사선택해 침략 명분 정당화
중국·일본이 역사왜곡으로 한반도 미래 넘보는 것과 유사
급격한 안보환경 변화에서 평화구심점은 역사의식·애국심
대한민국 이끌 지도자는 올바른 역사의식과 통찰 갖춰야

우크라이나 군용 차량이 키예프 중심부의 독립 광장을 지나 이동하는 모습. 출처=CNN
우크라이나 군용 차량이 키예프 중심부의 독립 광장을 지나 이동하는 모습. 출처=CNN

지금 세계는 ‘신냉전’이란 말이 등장할 정도로 곳곳에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2월24일 세계적인 군사 강국 러시아가 이웃 나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군인을 비롯해 무고한 많은 시민이 죽거나 다치고 있다. “전쟁이란 늙은이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작당하면 젊은이들이 피 흘리며 죽어 나간다”라는 말이 있는데 소수의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의 야욕에 의해 희생당하는 이들이 어디 젊은이들뿐이겠는가.

사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힘없는 여성과 어린이들이다. 10여년 전쯤 한국전쟁을 겪은 노보살님이 “스님 제가 팔십 평생 살아보니 무슨 일도 다 있어도 되지만 전쟁만은 없어야됩니다.” 하였다. 그 말로 그녀의 삶에서 전쟁이 얼마만큼 마음의 큰 상처를 남겼는지 알 수 있었는데 순간 그녀의 표정에는 전쟁을 체험한 과거의 슬픔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잔혹하지 않은 전쟁은 없지만 지금의 전쟁은 과거와는 또 다른 양상이다. 물론 적과 직접적인 교전도 하지만 현대전은 최첨단 무기들의 등장으로 과거처럼 총·칼로 상대와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되었다. 전장에서 적을 직접 마주하게 되면 공포도 가중되지만 더불어 인간의 선한 본성인 양심도 발현한다. 그로 인해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도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 때때로 아름다운 미담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러나 직접 대면하지 않고 화면에 비치는 적을 첨단 무기로 살상하게 되면 마치 게임 하듯 무심하게 인간을 다룬다. 그래서 무인 비행기나 드론으로 수십·수백 명을 죽이고 나서도 양심의 가책이 조금도 없는 무감각한 상태가 될 수 있다.

인간세계에서는 인간의 생명만큼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게 없지만 전쟁에서는 명분이 우선시 되기도 한다. 명분이 뚜렷하면 국가 간에 전쟁을 일으켜 큰 희생을 치르더라도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권력에 눈이 먼 독재자는 전쟁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가짜 뉴스로 국민을 선동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공작을 통해 전쟁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전쟁을 일으키는 명분 중 대표적인 것이 자국에 이해관계에 유리한 역사적 사실을 취사선택하는 방식을 통한 전쟁의 정당화이다. 그러한 예가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현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만든 것이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후 소비에트에서 국가와 국명을 주었다.”고 하였다. 고로 우크라이나는 뿌리가 없고 그 시작은 소비에트의 속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함부로 까불지 말라는 협박으로 읽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뿌리가 9세기 키예프 공국에 있다는 역사도 사실이지만, 우크라이나는 16세기부터 독자 세력의 공동체를 형성해 민족 정체성을 오랫동안 형성한 역사적 실체를 가진 국가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출처=CNN
전 세계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출처=CNN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전쟁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우크라이나는 원래 구(舊)소련에 속했던 영역인 집안 문제이기에 서방 국가들은 내정 간섭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유리한 역사적 사실만을 취사선택해 침략의 명분으로 삼았고 힘으로 겁박한다면 전쟁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한편, 지난 2017년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은 과거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이는 곧 한국은 과거 중국의 속국이었으므로 한국에 대한 역사적 지분이 미국이 아닌 중국에 있다고 트럼프에게 넌지시 암시한 것이다. 이처럼 위대한 중국의 부흥을 뜻하는 시 주석의 중국몽(中國夢) 속에는 기회가 되면 북한과 한국을 복속하겠다는 무서운 의도가 깔려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자각해야 한다.

동북아는 지금 역사전쟁 중이다. 현재 역사 침탈의 모델인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과거사 왜곡이 국가 간의 단순한 학문적 논쟁 분야만은 아니다. 특히 일본은 국가가 주도하고 교육부를 통해 역사 왜곡에 개입하고 있으며 청소년들에게 자국 중심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한 역사 왜곡으로 우리 역사인 고구려, 발해 등을 중국의 지방사로 편입한 지 오래됐다. 최근 일본도 이에 뒤질세라 고대 지도에 가야를 비롯한 한반도 남부를 가야가 아닌 임나로 지명을 표기해오고 있다. 이는 과거 우리나라를 정복하기 위해 일본군 참모본부가 만든 ‘정한론’의 토대가 되는 임나일본부설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일본도 중국처럼 고대 영역 왜곡을 통한 한반도의 미래 지분을 넘보고 있는 것이다.

주변국의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공연히 대응했다간 외교적 마찰이 우려된다, 또는 학문의 영역이니 전문가인 역사학자에게 맡기라”고 말한다. 그럼 과연 그동안 우리 정부와 학계에서 대응하지 않은 결과가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하버드 램지어 교수의 위안부 망언이 무대응의 성공적인 결과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한, 중, 일의 역사전쟁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한 이 시점에서 정부와 동북아 역사 재단을 비롯한 역사 관련 기관 그리고 사학계는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현재 우리를 둘러싼 러시아, 중국, 일본은 군사와 경제 대국만이 아니라 풍부한 역사, 문화 등 소프트파워를 갖춘 국가들이다. 이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강력한 원심력으로 우리를 자기네 쪽으로 당기려 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강력한 구심력을 갖추지 못하면 언제든 딸려갈 수 있는 태생적 환경을 지니고 있다. 물론 구심력의 근원이 되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춘 선진국이 된다 해도 조석으로 변하는 국제정세에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통해 보면 국가의 안위를 강대국과 우방에게만 맡길 수 없음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물론 우방과의 협력과 소통은 기본이지만 자국의 안보는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다시금 일깨워 주고 있다.

이러한 안보환경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우리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최고의 구심력은 바로 역사의식을 갖춘 애국심이다. 종종 현실에서 국가 또는 민족을 말하면 구태의연한 보수주의나 시대에 뒤떨어진 군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G7을 비롯한 선진국과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 또한 민족, 국민, 국가라는 내셔널리즘에 기반해 통치, 운영되고 있는 점도 엄연한 현실이다.

또 이스라엘의 전례를 보면 애국심과 역사의식을 갖춘 국민은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모든 것을 던지고 나라를 지키려 한다. 반대로 역사의식이 없는 국민은 나라가 위에 처하면 나라를 버리고 먼저 도망간다. 지금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역사 교육이 부족하고 국민은 역사에 무지한데 이러한 때에 국난이 닥치면 과연 나라를 위해 자기를 던질 사람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하는데 다만 필자 개인의 기우(杞憂)이길 바란다.

역사의식이 나라를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우리의 역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의 침략을 극복한 경험에는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밑바탕으로 작용했다. 그 근원에는 우리 민족의 시조(始祖)인 단군과 함께 유구한 역사의 문화민족이라는 자긍심이 있었다. 이러한 한국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배경에는 한국학의 뿌리가 되는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가 있다. 일연 스님의 투철한 역사의식은 국난이 닥쳤을 때 백성들의 마음을 모아 이 강산을 지켜내는 원동력이 되었고 한국불교의 이러한 전통은 이후로도 ‘호국불교’라는 특징으로 발현돼 이어졌다. 그 유구한 흐름이 조선시대 서산, 사명, 영규 스님과 승병으로 전해졌고 일제강점기에는 만해 스님과 용성 스님, 구하 스님 등을 비롯한 수많은 스님들에게로 계승됐다.

자금 살펴보자면 국난으로 인해 스님들이 무기 들고 나라 지키러 갈 일은 없지만 스님들은 불자들에게 부처님의 법음과 함께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도록 계몽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맞는 ‘호국불교’의 전통을 계승하는 방식이라 여겨진다. 사실 호국불교는 결코 무(武)를 숭상하거나 호전적인 용어가 아니다. 통불교(通佛敎)를 표방하는 한국불교의 여러 정체성 중에 하나이며 호국(護國)의 본래 의미는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 바탕이다.

전쟁은 부처님 재세시에도 많이 있었고 부처님은 평화를 위해 직접적인 행동과 간접적인 설법을 통해 여러 번 중재를 하시기도 했다. 왜냐하면 인과를 훤히 아는 당신의 지혜로운 눈으로 볼 때 전쟁의 결과가 얼마나 참담하고 그것으로 인해 고통받을 중생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셨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은 연기(緣起)로 모든 존재와 현상은 서로 이어지며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나비효과가 되어 전 세계인에게 불안감을 조성하고 세계와 우리나라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일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며 우크라이나와 국내에는 유학생들과 국제결혼을 한 많은 가정이 있다. 그들 중에는 나의 가족과 친척 또는 친구와 이웃들도 있을 수 있다. 이처럼 인생을 살다 보면 남의 일이 내 일이 되고 강 건너 불이 나에게 붙고 있음을 종종 경험한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평화를 위한 기도와 전쟁 반대를 위한 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불제자로서 한평생 중생의 행복과 세계 평화를 위해 살아가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본받고 실천해야 한다. 인류의 영적 진보라는 거대한 물결도 한 사람의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평화를 위한 기도와 따뜻한 위로 그리고 함께 아파하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으로 평화의 동심원을 넓혀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우크라이나를 위한 직·간접적인 지원도 해야 한다. 폭력을 싫어하는 마음과 평화를 위한 적극적인 원조로 평화의 스크럼을 짜면 그 흐름이 장차 세계 평화의 근간이 될 것이다.

지금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대선이 눈앞에 있다. 또 석 달 뒤면 지역의 지도자를 뽑는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정치인에게 역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기 나라와 자기 민족의 근원을 모르는 후보가 어찌 국가를 이끌어 갈 위정자가 되고 지역의 뿌리인 향토사를 모르는데 어찌 지방의 수령이 될 수 있겠는가. 정치하는 이가 그동안 역사를 몰랐다면 이제부터라도 역사를 배워야 한다. 올바른 정치란 역사를 통찰하는 깊은 안목에서 나오는 것이지 틈만 나면 상대를 헐뜯고 정치공학 운운하는 얄팍한 정치 기술자들에게서는 나올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여러 명의 대통령을 뽑으면서 다양한 공약과 선택의 기준들을 보아왔다. 주요 후보들은 ‘먹고 사는’ 문제를 내세우며 경제 관련 공약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미 경제력 10위로 선진국 반열에 진입한 상황에서 경제뿐 아니라 우리의 위상에 맞는 사회·문화적인 청사진과 실행 의지가 요구된다.

지금 한국의 노래와 드라마는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한류는 이제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독립적인 장르로까지 인정받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 지도자는 이러한 한국의 위상과 미래 비전을 견인할 후보가 선출되어야 한다. 그 중심에 올바른 역사의식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어야 한다.

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필자는 매 선거마다 정파가 아닌 인물을 보고 선택해왔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그에 더해 역사관이 뚜렷한 후보를 선택하고자 한다. 그래야만 많은 미래학자와 영성가들이 예견한 21세기 세계를 이끌어갈 문명대국 ‘대한민국호’를 멋지게 항해할 선장이 될 터이니까.

[1623호 / 2022년 3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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