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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허황옥 3일’, 한국불교 잃어버린 324년 되찾는 길

기자명 법보
  • 기고
  • 입력 2022.05.06 11:18
  • 수정 2022.05.06 17:54
  • 호수 1632
  • 댓글 1

사단법인 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 스님

사단법인 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 스님이 김수로왕의 비 허왕후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허황옥3일-잃어버린 2천년의 기억’과 관련해 기고문을 보내왔다. 도명 스님은 허왕후 도래의 사실적 규명을 통해 한국불교의 역사와 문화가 풍부해지길 희망했다. 편집자

사단법인 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 스님.
사단법인 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 스님.

지난 4월23일 경남 김해의 롯데시네마에서 지역불교계와 가락종친들이 참석한 가운데 ‘허황옥 3일–잃어버린 2천년의 기억’이라는 영화 시사회가 있었다. 이어 25일 부산 오투 롯데시네마에서는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 통도사 승가대학장 인해 스님, 안국선원 주지 석산 스님 등을 모시고 시사회가 진행됐다. ‘허황옥 3일’은 봉화마을 생태다큐멘터리 영화 ‘물의 기억’을 연출한 진재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김해 김씨를 비롯한 700만 가락종친의 시조 할머니(始祖母)인 김수로왕의 비 허왕후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 주된 스토리는 2000년 전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1만 km에 달하는 결혼항해가 실재한 역사인지를 추적하는 여정이다.

고려의 국사 일연 스님이 편찬한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와 ‘파사석탑’ 편에는 허왕후 도래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가락국기에는 허왕후의 국내도래 상황을 상세히 기록했고, 파사석탑 편은 이 탑이 서역 아유타국에서 가락국(가야)으로 오게 된 내력을 육하원칙에 의해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금관 호계사의 파사석탑은 옛날 이 읍이 금관국일 때 세조 수로왕의 부인인 허황후 황옥(黃玉)이 동한 건무 24년 무신에 서역 아유타국에서 싣고 온 것이다. 처음에 공주가 부모의 명을 받들어 바다를 건너 장차 동쪽으로 가려다가 파도신(波神)의 노여움을 만나 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부왕(父王)에게 아뢰니 이 탑을 싣고 가라고 하였다”라고 기록했다.

파사석탑조의 내용을 요약하면 일연 스님께서 사시던 고려말 당시, 김해의 호계사(虎溪寺)에 파사석탑이 있는데, 이 탑은 가야를 건국한 김수로왕의 비인 인도 아유타국 출신의 허황옥 공주가 싣고 왔다는 것이다. 동한시대 건무(建武) 24년은 서기 48년으로 이때 가야에 허왕후와 함께 불교 상징물인 탑이 왔다고 적혀있다. 그래서 김해 김씨를 비롯한 가락종친과 불교계 그리고 가야권역에 사는 일반 민초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도 파사석탑의 실물은 허왕후릉 옆의 보호각에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헌 기록과 유물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주류 사학계에서는 지속적으로 허왕후 도래의 역사성을 의심하며 소위 ‘허왕후 신화설’에 무게를 둬 왔다. 허왕후의 도래가 전 세계 고대의 결혼 사화(史話) 중 가장 상세한 기록으로 남아있건만 ‘삼국유사’는 사관(史官)이 아닌 스님이 쓴 것이라 윤색의 요소가 많다고 보는 것이다.

나아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은 온전히 믿을 수 없다는 학계의 이해하지 못할 연구 풍토가 더해져 가야 초기기록들과 함께 허왕후도 부정당하는 실정이었다. 심지어 국내에서 가야사 권위자라는 학자가 “수로왕과 허왕후의 결혼은 낙랑국 상인들의 염문 설화”라는 해괴망측한 논리가 지금도 학문의 이름으로 버젓이 통용되고 있다.

이는 왕과 공주를 상인들로 격하시키고 국경을 뛰어넘는 세기의 로맨스를 ‘통속적인 남녀 간의 연애’라는 염문(艶聞)으로 폄하하는 거짓 주장이다. 이러한 입장은 일연 스님께서 애써 남겨놓았던 우리 민족의 대서사시를 한낱 풍문으로 치부하는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옛날 국경을 초월한 2만5000여 리의 결혼항해와 아름다운 이야기는 트로이를 파멸로 이끌었던 ‘파리스 왕자와 헬레네’의 러브스토리나 자명고를 찢고 끝내 죽음으로 막을 내린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비극적 사랑과는 격이 다른 차이가 있다. 험난한 대양을 건너 성사된 허왕후와 수로왕의 만남은 나라의 번영과 함께 오래도록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고 이러한 해피엔딩은 지금도 모범적인 가정의 표본으로 남아있다.

영화 ‘허황옥 3일’에서는 현대의 첨단 기술을 적극 활용하여 2000년 전 그녀의 결혼항해가 충분히 가능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영화에서는 도래 당시의 해풍, 해류, 지형 그리고 파사석탑의 과학적 분석뿐만 아니라 아유타에 대한 언어적 고찰 등이 망라되어 있다. 가장 주목할만한 것 중 하나는 그녀가 온 뱃길이 고대 철기 기술의 이동 경로인 ‘아이언로드’(iron road)일 가능성을 역사적으로 규명한 데 있다. 해양문화를 전한 그녀의 가락국 도래는 수로왕의 대륙 문화와 융합하며 문화적 폭발을 일으켰고 가야가 해양 강국으로 가는 초석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우리는 역사 속에서 500여 년간 삼국과 함께 경합하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가야 건국자 수로왕과 그의 아내 허왕후를 ‘다시보기’해야 한다. 허왕후는 대한민국 ‘차인(茶人) 1호’라는 위상뿐 아니라 불교의 상징물인 탑을 이 땅에 최초로 가져온 인물이란 점도 주목해야 한다. 아울러 고려의 최고 지식인이기도 하셨던 일연 스님께서 남기신 우리 문화의 보고이자 한국인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K-컬쳐, ‘삼국유사’를 재조명해야 한다.

몇 년 전 한글 창제를 다룬 영화 ‘나랏말싸미’가 상영되었다. 영화는 한글 창제의 여러 설 가운데 하나인 범어(梵語) 기원설과 신미 스님을 비롯한 불교와의 관련성을 바탕에 두고 제작하였다. 송강호, 박해일 등의 유명 배우들이 열연하며 상당한 기대를 모았지만 의외로 흥행은 참패였다. 개봉 직전 출연 여배우의 죽음이라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지만 또 다른 원인은 ‘한글 창제에 불교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라는 것이 검증이 안 된 역사 왜곡이라는 네티즌의 집중포화와 그로 인한 여론 악화 때문이었다. 영화나 드라마가 역사 왜곡 프레임으로 공격받으면 선입관으로 인해 선택의 기회마저 잃는 것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는데 그러한 경우였다.

후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한글 창제의 불교 공헌과 영화를 통해 파급될 불교의 긍정적 이미지를 막고자 하는 어떤 세력의 의도된 전략이었다고 한다. 어떤 분야든 스스로 모르면 당하고 자기 것이라도 지킬 의지가 확고하지 않으면 결국 뺏기게 된다. 가야불교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종종 느끼지만 가야불교나 허왕후 도래에 대해 유독 닫힌 시각으로 부정부터 하는 이들을 보게 된다. 예를 들면 누구나 다 아는 대표적 오픈 백과사전 ’나무위키‘에서 허황옥을 검색하면 ‘불교윤색설, 절대 존재할 수 없는 아유타국’ 등으로 근거가 부족한 부정적 추정으로 가득 차 있다. 학문과 종교의 이름으로 편향적 추정을 확정으로 몰고 가려는 세력들이 실재하는 것이다. 허왕후 도래의 사실적 규명으로 한국불교의 역사가 1700년에서 2000년이 되면 이는 종교사 차원을 넘어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것임에도 그들은 반갑지 않은 눈치다.

영화 ‘허황옥 3일’에는 한국불교 최초 도래에 관한 숨겨진 역사적 진실과 현재적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김해와 부산에서 시사회를 마치고 5월12일 전국 대도시에서 개봉한다. 적어도 김해 김씨, 허씨, 인천 이씨로 구성된 가락종친에게 이 영화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뿌리를 확인하는 기회이자 살아있는 역사를 증명해 주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이유는 이들은 주변인이 아닌 허왕후와 관련한 직접적인 당사자들이고 자기 것을 챙기지 않으면 그 누가 대신 지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계도 허왕후 도래의 역사성과 한국불교의 중요한 유산들을 증명하는 이 영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허황옥 3일’은 지금 한국불교에서 잃어버린 324년을 되찾아 가라고 불교계에게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1632호 / 2022년 5월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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