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삼대 성인의 수행처이기에 명명된 서울 관악구 ‘삼성산(三聖山)’을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이 가톨릭 신부(엥베르·모방·샤스탕)의 유해 성지로 둔갑시켰다. 문제의 삼성산에 대한 정보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전해졌는데 이 사전을 편찬한 주체가 한중연이다. 신부들이 받은 고통과 유해를 찾아내는 과정을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불교 관련 언급은 ‘삼성산이란 명칭은 본래 고려 말 명승 나옹·무학·지공이 수도한 곳이라는 데서 유래되었으나’ 뿐이다. 삼성산을 가톨릭 성지로 각인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삼성산”의 유래는 고대로 올라간다. 원효·의상 스님과 윤필 거사가 이 산에서 정진했다. 여말선초 때는 지공·나옹·무학 스님이 수행했다. 삼막사와 염불암의 역사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한다. 아울러 18세기 영조 때 편찬된 전국읍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무학, 나옹, 지공 세 큰 스님이 각각 절 지어 살았기에 삼성산이라고 이름했다’고 적시돼 있다. 삼막사 사적비(1707)에도 ‘신라 때 원효대사가 처음 터를 잡고 띠집을 지어 수도 정진하던 것이 삼성산 유래의 시초이며…(중략)…고려 말 지공·나옹 등의 선사들이 삼성산에 머물며 선풍(禪風)을 진작시켰다’고 새겨져 있다. 무학·나옹·지공 스님의 전법 의지를 기반으로 조선 시대 비보사찰로 중시됐던 호압사를 비롯해 관음사, 반월암, 상불암, 안양사, 망월암 등이 들어섰다. 산에 깃든 역사와 문화만을 고려해 한 단어로 축약하자면 삼성산(三聖山)은 불산(佛山)이다.
원고를 작성한 필자가 따로 있었다고 해서 한중연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한중연이 단독 집필자로 선정한 그는 가톨릭 사관에 기울어진 인물로 해미국제성지 신앙문화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순교자 연구를 통해 서소문공원, 광희문 등 서울 시내 유적지를 가톨릭 성지로 주장하는 논문 등을 다수 집필하기도 했다. 삼성산 기록 과정에서 그는 고문헌의 역사적 기록은 외면한 채 1980년대 출판한 가톨릭계 서적 2권(한국천주교회사, 순교자의 얼을 찾아서)과 가톨릭 성당 홈페이지만을 참고했다. 애초부터 역사·문화 서술에 객관성을 기대할 수 없던 인물을 단독 집필자로 선정한 한중연의 책임은 무겁다.
서울시 또한 삼성산을 가톨릭 성지로 설명하고 있다. 서울시는 기존 1구간 평균 20km의 ‘서울 둘레길’을 1구간 평균 8km로 줄여 21코스로 세분화했다. 숲속의 길을 걸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서울 둘레길은 날이 갈수록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런데 12코스인 ‘호암산’코스를 설명하며 ‘삼성산 성지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형을 받고 순교한 앵베르주교와 모방·샤스탕 신부가 명동성당 지하 묘소로 모셔지기 전까지 묻혀있던 묫자리’라고 적시하고 있다. 불교 관련 설명은 아예 없다. 불교 전문가가 아닌 시민이라면 삼성산을 가톨릭 성지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전통 깊은 사찰과 유적지를 연결해 서울의 역사와 문화, 자연생태를 곳곳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했다’는 서울 둘레길이 되레 역사·문화를 왜곡하고 있다.
언어와 역사는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전문가들이 말했듯 ‘역사적 사실은 언어 기록으로 남고, 언어 또한 그 역사에 흔적’을 남긴다. 땅·강·산 등의 이름에서 그 지역의 특성과 문화를 직관적으로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기에 지자체는 지명이나 문화·성지를 명명할 때 신중해야 한다. 종교 단체 역시 이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송두리째 흔들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교계가 신경 써야 할 곳이 참 많다. 천진암, 잠두봉, 해미읍성, 광화문광장, 서소문역사공원 등 대한민국 전역의 역사 유적이 가톨릭 성지로 둔갑하고 있지 않은가. 교계의 강력한 항의에도 가톨릭은 물론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러니 가톨릭 성지화에 지자체가 앞장서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이번 사안에 대해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백과사전에서조차 가톨릭 중심의 왜곡된 역사기술이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정부가 이를 의도적으로 묵인하고 있기 때문 아니냐”는 의문을 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시와 한중연은 삼성산 왜곡에 대해 명확히 해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1732호 / 2024년 6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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