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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으로 만든 ‘가짜 직지’…“복원·영인본 모두 조작됐다”

  • 교계
  • 입력 2025.09.17 11:42
  • 수정 2025.09.17 13:02
  • 호수 1794
  • 댓글 4

학계·교육계, 왜곡된 영인 자료로 52년간 연구
원본 색상 18배 왜곡에 금속활자 특징까지 변조

국민 세금으로 제작된 직지 영인본과 복원본이 수십 년간 원본을 심각하게 왜곡한 채 학계와 교육 현장에서 ‘진본’으로 통용돼 왔다는 충격적인 실상이 드러났다. 1377년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直指)’ 원본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상황에서, 영인본과 복원본은 대다수 연구자와 국민들이 이 귀중한 문화유산을 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제작한 영인본과 복원본들이 오히려 직지의 진정성을 이중으로 훼손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국 문화유산 관리의 근본적 문제가 국제적 망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우식 웨이퍼마스터스(경북대 인문학술원) 박사와 유영식 단국대 교수가 최근 ‘보존과학회지’에 발표한 두 편의 논문 ‘청주고인쇄박물관이 복원한 직지(直指) 금속활자본 하권 제1장 금속활자 인판의 정확성 검증’과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직지 원본의 디지털 이미지와 세 종류 영인본의 축척 및 색 재현성 비교 분석’을 통해 청주고인쇄박물관이 복원한 금속활자 인판과 국내 제작 영인본들의 심각한 오류가 동시에 폭로됐다. 이들 영인본과 복원본은 문화공보부 문화유산관리국(1973년)과 청주고인쇄박물관(2000년, 2015년, 2020년) 등 공공기관에서 국가·지방자치단체 예산을 투입해 제작한 것들로, 세금으로 문화유산의 가치를 이중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1377년 간행된 '직지' 원본과 1973년 당시 문화재관리국에서  오프셋방식으로 흑백 인쇄해 제작한 직지 영인본. 
1377년 간행된 '직지' 원본과 1973년 당시 문화재관리국에서  오프셋방식으로 흑백 인쇄해 제작한 직지 영인본. 

영인본의 왜곡은 1973년 첫 제작부터 시작돼 52년간 지속된 조작의 연속사다. 연구진이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직지 원본의 디지털 이미지와 국내에서 제작된 3종의 영인본(1973년, 2000년, 2020년)을 이미지 분석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정량 측정한 결과, 모든 영인본에서 원본의 이미지를 인위적으로 왜곡 또는 보정해 인쇄된 것이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원본과의 색상 차이는 최소 5.78배에서 최대 18.7배까지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람 눈으로 색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최소 기준의 6~18배에 해당하는 수치로 연구진은 “출판물의 국제 표준 컬러 매니지먼트 기준에서의 허용 수준(허용 오차 3 이하)과 비교하더라도 6배 이상 초과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1973년 흑백 영인본이 2000년 컬러 영인본보다 특정 글자에서 원본에 더 가까운 색을 보인 역설적 결과도 나타났는데, 이는 ‘가독성 향상’을 위해 글자를 선명하게 보이도록 명도를 인위적으로 조정한 결과였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단순한 색상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내용 삭제와 편집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1973년 최초 영인본은 원본 표지에 포함된 프랑스 공사 콜랭 드 플랑시의 역사적 기록, 파리 경매 일련번호 등 중요한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표제 위치까지 변경했다. 제책으로 인한 왜곡을 보정한다는 명목으로 행간 폭을 조정하고 장서인(도장)의 위치를 임의로 이동시키거나 일부를 잘라내는 일까지 벌어졌다.

2000년과 2020년 제작된 영인본도 원본과 대조해 보면 표제와  장서의 위치, 크기 등에서 모두 원본과 차이를 보인다. 
2000년과 2020년 제작된 영인본도 원본과 대조해 보면 표제와  장서의 위치, 크기 등에서 모두 원본과 차이를 보인다. 

2000년 영인본에서는 원본의 왼쪽 위와 아래에 적혀 있던 손글씨를 아예 지워버렸고, 제1행의 폭도 의도적으로 넓혀졌다. 또한 광곽 밖의 공간은 원본의 색상을 연장해서 채우는 방식으로 원본과는 다르게 인쇄되었다.

크기도 모든 영인본이 원본보다 가로 방향으로 6~8mm 넓게 제작돼 의도적인 변경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이 2015년 지자체 예산을 투입해 복원한 직지 하권 제1장 금속활자 인판에서도 근본적인 오류가 확인됐다. 직지는 1377년 금속활자본으로 제작된 후 1378년 목판본으로 다시 간행됐는데, 두 판본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금속활자본은 ‘頭頭物物(두두물물)’처럼 같은 글자가 반복될 때도 서로 다른 활자를 사용했지만, 목판본에서는 두 번째 글자 대신 작은 크기의 ‘又(우)’자나 ‘二(이)’자를 반복 기호로 사용했다.

그런데 청주고인쇄박물관이 복원한 제1장 인판에는 목판본에서만 사용되는 반복 기호가 잘못 포함됐다. 복원 인판은 ‘巍巍(위위)’, ‘渠渠(거거)’, ‘漫漫(만만)’ 등의 반복되는 글자에서 두 번째 글자를 반복 기호인 ‘又’자로 복원했는데, 이는 금속활자본의 핵심 특징을 완전히 무시한 심각한 오류다.

1377년 간행된 금속활자본 직지에서 사용된 활자 사용 방식.
1377년 간행된 금속활자본 직지에서 사용된 활자 사용 방식.
1378년 간행된 목판본 직지에서 사용된 활자와 기호의 사용 방식을 금속활자본과 대조해 보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1378년 간행된 목판본 직지에서 사용된 활자와 기호의 사용 방식을 금속활자본과 대조해 보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영인본과 복원본의 이중 왜곡으로 인한 파급효과는 심각하다. 연구자들은 복원된 금속활자 인판을 통해 직지의 금속활자 특징을 연구하고, 동시에 영인본을 통해 원본의 모습을 파악해왔다. 그런데 두 자료 모두가 조작됐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지난 수십 년간의 직지 연구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특히 전국의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수십 년간 이중 왜곡된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교육 현장에서는 초·중·고교와 대학에서 수백만 명의 학생들에게 잘못된 직지의 모습이 각인됐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부정확한 한국 문화유산 정보가 전파돼 K-문화 확산 시대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연구진은 이 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문화유산 복원·영인본 제작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복원 시에는 금속활자본과 목판본의 특징을 명확히 구분해 반복 기호와 같은 오류를 재발시키지 않아야 하며, 영인본 제작 시에는 정밀한 이미지 촬영 및 색상 기록, 인쇄 방식과 종이 특성을 고려한 색 조정, 제작 조건의 체계적 기록 및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이 필수적이라고 제안했다.

유우식 박사는 “직지와 같은 현존 최고 금속활자본의 복원본과 영인본은 단순한 복제물이 아니라 원본의 가치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라며 “공공기관의 무책임한 문화유산 관리가 낳은 참사로, 즉각적인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794호 / 2025년 9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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