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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차의 소통’ 1회 선차아회

차가 우려낸 선향으로 승과 속이 어우러지다

순천 송광사서 차 하나 두고
스님과 차인들 1박2일 수행
‘동다송’필사한 ‘백열록’공개
조선 도공의 찻사발도 선보여
진각 국사 부도 앞에서 좌선

 

 

 

▲ 선차아회는 사부대중이 격식을 벗어나 선과 차로 소통하는 선차 수행을 전문으로 하는 템플스테이였다. 스님과 차인들이 마주 앉아 맑은 차를 차례대로 마시고 명상에 드는가 하면(우) 가장 간결한 방법으로 차를 다려 마시고 입정에 드는 수행도 선보였다(좌).

 

 

선(禪)과 차(茶,) 역대 불가의 많은 스승들은 이 두 단어가 닮았다고 했다. 아니 하나라고 했다. ‘선’이라고 하면 어렵고 난해하다는 인식이 앞선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하근기의 기자 같은 사람들도 상념치 말라는 친절한 도구가 바로 ‘차’다. 한 잔 차를 마주하면 어떤 에너지의 작용인지 제법 선사들의 일갈에 대답할 용기가 생기곤 했다. 스님들의 차시는 선으로의 안내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래서일까. 선과 차가 만나는 자리라는 ‘선차아회(禪茶雅會)’가 열린단 소식에 서둘러 배낭을 멨다. 장소는 조계총림 송광사(주지 무상 스님)였다.


선차아회는 중국, 일본, 대만을 오가면서 세계선차문화교류대회를 지난 8년 동안 이끌어 온 최석환 월간 ‘차의세계’ 대표가 원력을 갖고 기획한 차 수행 전문 템플스테이였다. 동아시아의 선차를 연구하고 정의하며 정신문화의 한 영역으로 이끄는데 주력해 온 그는 지난 1년 동안 제방 각지 스님과 차인들을 만나 한국국제선차문화연구회를 조직했다. 그 연구회의 첫 시도가 11월15~16일 송광사에서 열린 제1회 선차아회였다. 특히 최근 동아시아 선차문화 흐름은 기예보다는 실질적인 수행이 중요시 되는 실정이다. 이에 ‘선차를 하는 아름다운 모임’이라는 의미가 담긴 선차아회는 차를 매개체로 수행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자리임을 분명히 했다.


첫 선차아회의 주인공은 스님들과 차인들이었다. 송광사 전 주지 현봉 스님과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송광사 전 강주 일귀, 장흥 보림사 주지 일선, 송광사 포교국장 각안 스님을 비롯한 스님들이 동참했다. 그리고 최 대표를 비롯해 박정진 문화인류학자, 최정간 현암도자연구소장, 김영숙 중국차 전문가, 정충영 옛그릇 연구가, 신현청 도자연구소장, 숙우회(대표 강수길)와 혜명다례원(원장 장문자)까지 서울, 광주, 부산 등에서 50여명이 송광사에 모였다.


선차아회는 개막식과 더불어 대웅전에서 맑은 차를 불전에 올리는 헌다의식으로 시작됐다. 한 사람의 차인이 다려 올리는 한 잔의 차였지만 참가자 모두의 마음을 모으기에는 충분했다. 헌다에 이어 송광사의 다풍, 한국과 일본, 중국 차문화의 차이점, 선차의 가치를 풀어내는 특강이 릴레이로 이어졌다. 강사들의 설명에 차인들은 펜을 들고 수첩에 빼곡히 기록했다.


저녁예불 이후 전개된 ‘다담선’은 사부대중이 격식을 벗어나 한 자리에 둘러 앉아 차를 마시고 차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됐다. 이 자리에서는 송광사성보박물관에 소장된 특별한 유물도 공개됐다. 초의 선사의 ‘동다송’을 필사한 가장 오래된 책으로 알려진 ‘백열록’이었다. 문화재를 공개하는 흔치 않은 자리에 차인들은 두 눈을 반짝이며 옛 스님들의 자취를 더듬었다.

 

 

▲초의 선사의 ‘동다송’을 필사한 가장 오래된 책으로 알려진 ‘백열록’을 펼쳐보는 스님들.

 


달빛이 송광사 계곡에 모습을 드러낸 시각, 선차아회의 참가자들은 최근 신축한 송광사 템플스테이 전용관에서 힐링 명상에 참여했다. 스님과 차인들이 마주앉아서 맑은 차를 차례대로 마시고 명상에 드는 시간이었다. 고요한 가운데 30분이 흘렀다. 죽비를 든 현봉 스님이 방선을 알렸다. 다시 한 잔의 차를 마셨다. “아까 마신 차과 지금의 차는 그 맛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스님의 한 마디가 가슴 속을 맴돌았다.

 

 

▲ 차인들은 선차아회에 참가한 스님들께 정성스럽게 차를 공양했다.

 


명상으로 비운 마음에는 조선 도공의 무심(無心)이 빚어낸 찻사발이 자리 잡았다. 조선의 이도다완(井戶茶碗), 웅천 찻사발이 정충영 연구가의 안내로 조심스럽게 공개됐다. “수백 년 전 조선의 찻사발을 일본에서 가져와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한 정 연구가는 “우리 도자기는 우리 차인들이 대대로 이어갈 수 있길 바란다”는 염원도 전했다.

 

 

▲ 정충영 연구가의 안내로 조선시대 웅천 찻사발이 조심스럽게 공개됐다.

 


둘째 날에는 행다 시연이 릴레이로 전개됐다. 혜명다례원은 다완과 차호는 물론 치마 색까지 오방색으로 맞췄다. 숙우회는 스님들을 향해 차를 공양한 뒤 다시 가장 간결한 방법으로 차를 다려 마시며 입정에 드는 수행을 선보였다. 정중하고 고요한 다인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니 직접 차를 마시지 않아도 차 마시는 행위를 보는 것 자체가 입정의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시연이 끝난 후에는 일선 스님의 안내로 참가자들이 함께 불일암과 광원암을 올랐다. 불일암 감원 덕조 스님이 차를 가까이 했던 법정 스님의 일상을 소개했고 광원암에서는 차인들이 진각국사 부도에 차를 올리고 그 자리에서 일정 중 마지막 좌선의 시간을 가졌다.

 

 

▲ 차인들이 진각국사 부도 앞에서 마지막 입정의 시간을 갖는 모습.

 


선차아회에 동참한 일선 스님은 “차 행사에 참석하면 항상 차인들만의 행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 선차아회는 차를 시연하는 사람들과 보는 사람 모두 하나가 되는 자리였다. 특히 승보종찰 송광사에서 스님과 불자들이 차로 소통했다는 점이 고무적”이라고 강조했다. 일귀 스님 역시 “송광사 대중 스님들에게는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귀한 시간이었다. 아마 스님들과 함께 1박2일을 보낸 차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박정진 차문화 연구가도 “스님들의 선기와 차인들의 정성이 만난 따뜻한 시간 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석환 대표는 “선차아회는 한국의 다른 사찰은 물론 일본, 중국에서도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선차의 수행적 가치를 전할 것”이라며 “차인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참여하고 소통하는 기회를 마련해 이 시대 꼭 필요한 힐링의 장으로 발전하도록 노력 하겠다”고 강조했다.


1박2일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송광사를 나오는 길, 오후 햇살을 머금은 단풍잎들이 한 결 바람에 비처럼 쏟아지는 풍경과 만났다. 문득 선사들의 당부가 떠올랐다.


“차 마시고 맑은 정신으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라. 온전히 있는 그대로 볼 때 ‘발견’하는 그것이 ‘선’이다.”
 

순천=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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