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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새해에 만난 큰스님 조계종 종정 진제법원 대종사

  • 새해특집
  • 입력 2021.01.05 10:30
  • 수정 2021.01.05 10:41
  • 호수 1568
  • 댓글 0

화두타파 전 “바랑 안 진다” … 목숨 건 정진 후 관문 뚫고 대자유

‘위대한 부처된다’ 한 마디에
석우 스님 은사로 출가 단행

묘관음사 선원서 7년 수행
향엄상수·일면불 월면불 해결

향곡스님, 서릿발 법거량 후
법호 ‘진제’·‘전법게’ 내려

해운정사 창건·간화선 대중화
금당·태고선원 조실 ‘선풍진작’

​​​​​​​성담사 창건해 선림선원 개원
이 땅에 ‘선의 뿌리’ 더 깊게

남해 삼동에 성담사(聖潭寺)를 창건한 조계종 종정 진제법원 대종사는 선림선원(禪林禪院)을 열어 이 땅에 선의 뿌리를 더욱 깊게 내리려 하고 있다.

근세의 선지식 향곡(香谷) 선사는 주장자(拄杖子) 하나 걸어 두고 부산 묘관음사에서 눈 푸른 납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자루 지팡이를 청산에 걸어 두었나니(一條拄杖掛靑山)/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또한 물건도 아니네(非心非佛亦非物)/ 그대 이 속을 뚫고 지나간다면(有人這裡透過)/ 기나긴 세월 가도 언제나 깨어 있으리(塵劫圓明長不昧).’ (석지현 역)

법원(法遠) 스님이 그 앞에 섰다. 절을 올리고 게송(偈頌)을 내보였다.

‘이 주장자 이 진리 몇 사람이나 알겠는가(這箇拄杖幾人會)/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알지 못하누나(三世諸佛總不識)./ 한 막대기 주장자 문득 금룡으로 화(化)해서 (一條拄杖化金龍)/ 한량없는 조화를 자유자재 부리는구나(應化無邊任自在).’

정월 보름, 친척 어르신이 찾아왔다.

“여기서 10리 밖 해관암(海觀庵)에 대선사 한 분 계신다. 법문 한 토막이라도 들어보자.”

두 거사는 암자로 걸음 했고 노을 내려앉는 무렵 닿았다. 등에 지고 온 쌀 한 말 마루에 내려놓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허리를 곧추 세운 채 가부좌 틀고 앉아있는 노승의 기품은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는데 채봉(綵鳳)이 앉아 있는 듯했다. 삼배를 올렸다.

“이보게 청년! 이 번 생은 태어나지 않은 셈 치고 중노릇 해 보지 않겠는가?”
“중노릇 하면 어떤 점이 좋습니까?”
“범부중생이 위대한 부처가 되는 법이 있네!”
‘위대한 부처!’

이 한 마디가 스무 살 청년의 온 몸을 훑고 지나갔다. ‘불교정화운동’ 당시 종정을 역임한 석우 스님과 훗날 대한불교조계종 13대 종정에 오른 진제 스님과의 사제(師弟) 인연은 이렇게 맺어졌다.(1953)

때 되면 산에서 나무 한 짐 해 와 밥 짓고, 틈나는 대로 채소들도 가꿔야 했기에 허리 한 번 쉬이 펼 수 없었다. 그래도 절 밖의 일엔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출가 전의 재미있던 일들 꼽아봐야 은사 스님 시봉하며 공부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채공(菜供)·갱두(羹頭)는 물론 공양주 소임까지 보며 행자생활 시작한 지 7개월여 즈음 흘렀을 때다. 하안거 해제 후에 너덧의 선객이 문안인사 차 석우 스님을 친견했다.

“옛날 중국의 과거시험 때 나온 문제 하나 있네. ‘동쪽에서 떠오른 해가 크게 웃는다(日出東方大笑).’ 어떠한가? 그 당시 어떤 사람이 ‘나 아(我)’자를 놓아서 재상에 등용됐는데 자네들은 어떤 자를 놓겠는가?”

침묵이 흘렀다. 그때, 석우 스님은 공양 지을 준비에 여념 없던 행자를 지목하며 ‘한마디 일러보라’했다.

“없을 무(無)자를 놓겠습니다!”

해가 동쪽 하늘에 떠올라 밝은 빛으로 온 세상을 비추지만, 비추는 그 모습에는 호리(毫釐)의 상(相)도 없다는 뜻을 담았던 ‘무(無)’였다.

“장차 큰 그릇이 될 행자다.”

석우 스님으로부터 받은 화두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父母未生前 本來面目)’이었다. 도리사에서 정진하던 중 지견이 생겨 화두를 내려놓고 해제일을 기다렸다. 은사 스님에게 이 문제를 여쭤볼 참이었다. 그러나 스승은 제자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1958년 음력 12월27일 세수 84세, 법납 45세로 열반에 들었다.

근세의 대 선지식 향곡 스님.
근세의 대 선지식 향곡 스님.

당시 대 선지식으로 칭송되던 향곡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묘관음사로 걸음 했다.

“바른 답을 해도 삼십 방, 바른 답을 못 해도 삼십 방이다. 어떻게 하겠느냐?”

말문이 막혔다.

“공부, 다시 해라.”

그대로 물러 나와 2년여 동안 제방선원을 다니며 정진했다. 오대산 상원사 선원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깊게 반조해 보았다. 직감으로 알아챈 게 있었다. 해제일에 맞춰 향곡 스님을 다시 찾아 갔다.

“화두를 내려 주십시오. 화두를 타파하기 전에는 저 바랑을 지지 않겠습니다.”
“이 어려운 진리의 관문(關門)을 해결할 수 있겠느냐?”
“생명을 떼어 놓고 한 번 해보겠습니다.”
“‘향엄상수(香嚴上樹)’를 들어라.”

중국 당나라 향엄(香嚴) 선사의 법문에서 비롯된 화두다. 한 스님이 나무에 올라갔다.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거나 발로 밟지도 않고 오직 입으로만 물고 매달려 있는데, 때마침 나무 밑을 지나가던 스님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향엄 선사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질문한 이를 무시하는 것이요, 대답을 한다면 떨어져 목숨을 잃을 것”이라며 “어서 이르라!” 했다.

그 자리에서 척량골을 세우고 가부좌를 틀었다. 그로부터 2년 5개월 동안 결제·해제도 잊고, 산문 밖도 나가지 않은 채 일구월심(一久月深) 화두를 들었다. 새벽 3시, 부처님 전에 예불을 하러 가던 중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일어나는 순간 홀연히 화두를 해결했다. 그 ‘경지’를 글로 써서 향곡 스님께 올린 것이다. ‘한 막대기 주장자가 금룡으로 화해서 한량없는 조화를 자유자재 부린다’고 말이다.

“용(龍)이 홀연히 금시조(金翅鳥·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용을 잡아먹는 큰 새)를 만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당황하여 몸을 움츠리고 세 걸음 물러나겠습니다(屈節當胸退身三步).”
“옳고, 옳다!”

옛 선지식이 누누이 일러왔다. 하나의 화두를 타파하면 다른 화두도 모조리 깨버릴 수 있다고 말이다. 그 어렵다는 ‘덕산탁발(德山托鉢)’도 뚫었는데 유독 ‘일면불 월면불(一面佛 月面佛)’에서 막혀버렸다. 다시 5년 동안 전력을 쏟아 참구해 이 관문도 열어 젖혔다.

‘한 몽둥이 휘두르니 비로정상 무너지고(一棒打倒毘盧頂)/ 벽력같은 일 할에 천만 갈등 흔적 없네(喝抹却千萬則)/ 두 칸 토굴에 다리 펴고 누웠으니(二間茅庵伸脚臥)/ 바다 위 맑은 바람 만년토록 새롭도다(海上淸風萬古新).’

1967년 하안거 해제법회일! 법상에 올라 묵묵히 앉아 있는 향곡 스님에게 당차게 여쭈었다.

“불조께서 아신 곳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불조께서 아시지 못한 곳을 선사님께서 일러주십시오.”
“구구는 팔십이라.”
“그것은 불조께서 다 아신 곳입니다.”
“육육은 삼십육이니라.”

법원 스님이 예를 올리고 물러나니, 향곡 선사 또한 말없이 법상에서 내려온 후 조실 방으로 들었다. 다음 날, 향곡 스님을 찾아가 다시 여쭈었다.

“부처의 눈과 지혜의 눈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어떤 것이 납승의 안목입니까?”
“비구니 노릇은 원래 여자가 하는 것이니라(師姑元來女人做).”
“오늘에서야 비로소 선사님을 친견 하였습니다.”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보았느냐?”
“관(關)!”
“옳다!”

향곡 스님은 진제(眞際)라는 법호와 함께 전법게를 내렸다.

‘부처님과 조사의 산 진리는(佛祖大活句)/ 전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것이라(無傳亦無受)./ 지금 그대에게 활구법을 부촉하노니(今付活句時)/ 거두거나 놓거나 그대 뜻에 맡기노라(收放任自在).’

중국의 석옥청공으로부터 임제정맥을 이은 태고선사의 법이 조선의 서산 휴정으로 이어지고 근세의 경허·혜월·운봉-향곡 선사로 등등상속(燈燈相續)된 법맥이 진제 스님에게 올곧이 닿은 역사적인 순간이다.

해운정사는 한국불교 대표 참선도량으로 자리매김 했다.
남해 삼동면에 자리 잡은 성담사.
동화사 금당선원.

부산에 해운정사를 창건(1971)한 진제 스님은 그곳에서만도 50년 동안 승·재가의 선객을 제접하며 참선 대중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 또한 동화사 금당선원의 조실을 맡아 참선 도량의 선풍을 다시 진작시켰다. 이곳은 ‘문 없는 문’을 마주했던 역대 선지식의 혼이 담긴 도량이다. 고암, 석우, 효봉, 구산, 서옹, 향곡, 성철 스님 등이 정진했다.

2012년 조계종 제13대 종정에 오른 후 2017년 제14대 종정에 재추대 됐다. 고향인 남해 삼동에 성담사(聖潭寺)를 창건한 진제 스님은 선림선원(禪林禪院)에서 후학들을 양성해 이 땅에 선의 뿌리를 더욱 깊게 내리려 하고 있다. 푸른 바다 펼쳐 있는 남해 성담사 염화실(拈花室)에서 조계종 종정 진제법원(眞際法遠) 대종사를 친견했다.

“참나를 바로 보시라! 평생 쓰고도 남을 행복과 지혜 얻을 터”

정안 갖춘 선지식 만나 공부…고매한 품격의 자신 재발견
선림선원, 결제1년 산문출입 금지…삼매 이르려면 바위 돼야
‘코로나19’ 인간 탐욕의 결정판…나와 자연 ‘한몸’ 인식 절실

 

조계종 종정 진제법원 대종사는 “전쟁과 환경파괴를 막으려면 인간의 탐심(貪心)을 제어해야 한다”며 “화두참선은 탐심의 근본을 다스릴 수 있다”고 전했다.
조계종 종정 진제법원 대종사는 “전쟁과 환경파괴를 막으려면 인간의 탐심(貪心)을 제어해야 한다”며 “화두참선은 탐심의 근본을 다스릴 수 있다”고 전했다.

▲부산 해운정사는 한국불교 대표 참선도량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도량을 지은 연유가 궁금합니다.
“산중이 아닌 시변(市邊)에 해운정사를 창건한 건 스님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참선수행의 일미라도 전해보고 싶어서입니다. 선(禪)의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쥐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행한다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정안을 갖춘 선지식의 올바른 지도 아래 정진하며 점검 받으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간화선만큼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상에서 수행할 수 있는 것도 드뭅니다. 참선 하세요! 대오각성에 이르지 못했다 해도 수행 전보다는 훨씬 고매한 품격을 갖춘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성담사 선림선원 청규가 매섭습니다. 기본 1년 결제에 산문출입도 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가마솥에 물을 끓이려면 장작불을 지피고 지속적으로 때야 합니다. 닭도 알을 품어서 21일을 쉬지 않아야 줄탁동기(啐啄同機)로 부화 됩니다. 하물며 숙세의 업이 태산처럼 높은 범부가 성인이 되려 하는데 지속적이고도 집중적인 수행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몇 달하다가 쉬고 또 몇 달하다가 쉬고 해서는 화두일념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1년 결제를 하는 것입니다. 산문출입조차 허용하지 않는 이유도 있습니다. 깊은 삼매 없는 대오견성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삼매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절에서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고 오래 머물면서 온 몸을 바쳐 집중적으로 정진해야 깊은 삼매에 들 수 있습니다. 개인 방은 물론 다각실과 별도의 요사채도 없습니다. 대중 방에서 함께 정진하고 취침해야 합니다.”

▲어떤 방편을 들어 지도점검 하실 예정인지요.
“선림선원은 옛 조사의 수행가풍을 복원하여 불법의 대의와 정법의 안목자(眼目子)를 배출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마조선사 일할(一喝)과 백장선사 이롱안흑(耳聾眼黑)의 거량, 운문의 삼전어(三轉語)’로 수좌들의 공부를 점검하려 합니다. 이 관문을 통과한 납자에게 전법게를 내릴 것입니다.”

▲2018년 하안거 해제법어를 통해 “산천에 마음 뺏겨 화두 놓고 유랑 말라”하셨고, 2019년 해제 법어에서는 “시주은혜 마음속 깊이 새기라”하셨습니다.
“지금 여기가 견성하는 자리입니다. 생사해탈의 이 일을 조금이라도 미루는 마음이 있다면 벌써 십만 팔천리 어긋납니다. 만약 ‘오늘 못하면 내일 하지’ ‘금년에 못하면 다음 해에 하지’ 하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일생동안 허송세월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수좌들은 이 한 철에 반드시 견성(見性)하리라는 각오로 일각일초(一刻一秒)도 허비하지 말고 화두와 씨름해야 합니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산다는 것이 곧 시시각각 죽음의 문턱으로 다가가는 것이니, 누구라도 마음광명을 밝히는 이 일을 소홀히 한다면 염라대왕의 추심(推尋)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법을 위해 일신을 돌보지 않겠다는 위법망구의 결연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종정스님께서 대중에게 전하고 계시는 ‘참나’의 진면목을 세속의 사람들도 화두 들고 정진하면 볼 수 있는지요.
“불성(佛性)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단지, 과거생에 지은 업에 따라서 이 업신(業身)의 형상이 다를 뿐이지, 마음의 바탕은 천불만조사(千佛萬祖師)와 동일합니다. 누구든 참나를 직시하면 일천의 부처님과 일만의 조사님네와 통하고, 마음 가운데 있는 팔만사천의 법문·지혜를 응화무변(應化無邊) 자재하게 쓸 수 있습니다. 만인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만천하에 법을 펴기도 하고, 거두기도 하는 자재의 수완을 갖춘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할 일을 다 해 마친 ‘요사인(了事人)’입니다. 그러니 남녀노소, 승속을 불문하고 누구든지 신심(信心)을 내어 부지런히 정진해 자신의 성품을 바로 보면 위대한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뉴욕 방문 당시 ‘세계전쟁 종식’을 강조하셨습니다.
“갈등과 화해, 전쟁과 평화를 가르는 건 탐욕입니다. 그 탐욕이 지금 동서양 전 대륙에 걸쳐 넘실대고 있습니다. 정치·경제·종교적 갈등이 국가 간의 전쟁까지 일으키며 어린 생명마저 끊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홀로 서있지 못합니다. ‘나와 너’의 인연으로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살며, 내일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너를 죽인다’ 생각하지만 실상은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하루빨리 이러한 무지몽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탐심(貪心)을 제어해야 합니다. 화두참선은 탐심의 근본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진제선회’의 역할이 이 시대에 중요하겠습니다.
“진제선세계화회(眞際禪世界和會)는 대사회적 자비구현 실천사항의 일환으로 자연재해와 환경파괴로 인해 기아와 고통으로 신음하는 수많은 이웃형제를 위한 인도적 구호와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불사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가려 합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처에 간화선 정신과 수행법을 보급하려 합니다. 그리하여 궁극에는 인류 개개인이 종교, 사상, 인종, 빈부를 초월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간화선으로 마음을 닦아나가고, 서로 아끼고 도와가며 풍요로운 지구촌을 만든다면, 온 인류가 나와 더불어 한 몸이 되고 온 세계가 한 집이 되니 어찌 화목하고 평화로운 불국토를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한반도 남북경색 국면이 장기화하고 있습니다. 상호간의 강도 높은 ‘비판·비난’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입속에 도끼가 있다’고 했습니다. 나쁜 말을 함부로 하면 결국 자기 몸을 찍는 것입니다. 극단적 대립의 양변을 여의고 원융무애한 중도의 식견으로 사안을 살피면 답을 찾을 것입니다. 2년 전 판문점에 깃들었던 ‘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1700년의 ‘한국불교 유전자’가 남북한 국민 모두에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불교를 매개로 대화의 물꼬를 트면 좀 더 용이할 것입니다. 남북이 하나 되는 길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갈등을 없애고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여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남북한의 불교성지순례 길이라도 하루빨리 열리기를 희망합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인이 고난의 세파를 헤쳐가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코로나 질병은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의 결과입니다. 나와 자연을 하나가 아닌 둘로 인식한데 따른 것입니다. 이것은 지구촌의 위기와 직결됩니다. 인간이 지나치게 풍요를 갈망하고 문명의 이기에 탐닉한다면 인류는 지구에서 살 수 없습니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그만큼 살날도 단축하는 것입니다. ‘천지가 나와 더불어 한 뿌리요(天地與我同根) 모든 존재가 나와 더불어 한 몸(萬物與我同體)’입니다. 인간과 자연, 유정과 무정이 우리와 유기적 관계입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는 사실, 인간과 자연이 상생의 관계라는 사실, 온 지구촌이 나와 더불어 한 몸이라는 사실을 명료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나와 더불어 이웃이 함께하는 것이고, 인간과 더불어 자연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웃 없이 나만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땅을 딛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나 혼자만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더불어 행복한 삶을 지향해야 합니다.”

▲202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사부대중에게 전할 메시지를 청합니다.
“5대양 6대륙의 모든 인류여. 참나를 바로 보시라! 평생을 쓰고도 남을 행복과 지혜를 얻을 것입니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진제법원 대종사는

1934년 남해 삼동면서 출생.
1953년 석우 스님 은사로 사미계 수지.
1958년 혜운 스님 계사로 구족계 수지.
1967년 묘관음사에서 향곡선사로부터 인가.
1971년 부산 해운정사 창건. 현재 조실.
1994년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을 맡아 현재까지 납자 제접.
1996∼2011년 조계종 기본선원 조실.
1998년 백양사 무차선 법회 초청 법주.
2000년 조계종 종립 봉암사 태고선원 조실.
2003년 조계종 원로의원.
2012년 조계종 13대 종정 추대.
2013년 조계종 간화선 대법회 법주.
2017년 조계종 14대 종정 추대.

 

[1568호 / 2021년 1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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