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1일 해남 대흥사에서 서산대제 추계제향이 열린 모습. 대흥사 조실 보선 스님이 공양을 올리고 있다. [법보신문 DB]](https://cdn.beopbo.com/news/photo/202404/321826_113560_4028.jpg)
역사에 묻힌 의승군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은 2012년 4월이다. 맥이 완전히 끊겼던 서산대사 휴정 스님(1520~1604)의 국가제향을 조계종 제22교구본사 해남 대흥사가 200여 년만에 복원하면서 논의가 시작됐다. 대흥사는 조선시대 서산대제 제향 의례집인 ‘표충사 향례홀기(表忠祠享禮笏記)'와 제사 차림도인 ‘진설도(陳設圖)' 등 문헌에 근거해 의례를 원형에 가깝게 재현했다. 국가 제향은 ‘표충사 향례’라는 이름으로 매년 봄·가을 치러졌다. 하지만 1871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중단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다.
서산대제를 계기로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도 연구에 착수했다. 그해 6월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서산대제의 국가제향 복원을 위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현행 제도 아래서 서산대제를 국가제향으로 복원할 수 있는 방법은 가칭 ‘호국 의승군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국가제향을 봉행하고 역사 속에 묻힌 의승군을 추모하는 것이라 결론지었다.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민추본)도 힘을 보탰다. 민추본은 북한의 조선불교도련맹 중앙위원회와 2012년 8월 중국 선양(瀋陽)에서 회의를 열고 그해 11월 북한 묘향산 보현사 수충사에서 서산대사 제향을 공동으로 봉행하는 데 합의했다. 대흥사는 서산대사의 가사와 바리때가 전해진 사찰이고, 묘향산 보현사는 대사가 입적한 곳이었다. 하지만 논의만 이뤄졌을 뿐 실제 추진되진 못했다.
의승 선양 필요성은 ‘호국의승의날 국가기념일 제정 추진’으로 이어졌다. 조계종 중앙종회가 2014년 6월 “호국의승의 날 국가기념일 제정 촉구” 결의문을 발표한 데 이어 그해 8월 총무원도 국가기념일 제정 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이 무렵 흥행돌풍을 일으킨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도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의승 선양이 범국민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조계종이 2014년 8월 조계사에서 ‘호국의승의 날’ 국가기념일 제정 추진위원회 발족식 직후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있다.[법보신문DB]](https://cdn.beopbo.com/news/photo/202404/321826_113561_4049.jpg)
서명운동도 전국적으로 전개되며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전국교구본사주지회의는 같은해 10월 “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한 전국차원의 서명운동을 시작하겠다”는 결의문을 내고, 1500여 사찰에 서명지와 안내자료집을 발송했다. 그 결과 1년 만에 7만여 명이 동참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호국의승의날 국가기념일’ 제정은 정부의 반대 속에 표류했다. “국민적인 공감대가 부족하고 유사 기념일이 많다”는 것이 논지였다. 당시 행정안전부 의정담당관은 “호국의승의날은 2010년 5월 제정된 의병의날 등과 유사성이 있다”며 “현재 40여 개에 달하는 기념일이 있고 각계에서 기념일 제정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모두 들어줄 순 없다”고 거부했다.
불교계는 행안부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왜란 당시 스님들은 피지배계층이고 국방에 대한 의무가 없었는데도 자발적으로 승군을 규합하고 큰 활약을 했다. 특히 살생의 과보까지 감수하고 전쟁 보급 물자까지 자체 조달하면서 관군을 대신해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데 혼신을 다했다. ‘현충일’ ‘의병의 날’ ‘순국선열의 날’ 등과는 유사·중복성이 없었다. 국가 공식 기념일 제정 요건이 충분하다는 의견을 다시 전달했다.
이후로도 총무원은 2016년 8월 ‘호국의승의날은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어야 합니다’라는 자료집을 발간하고 불교사회연구소를 중심으로 호국불교 연구를 이어갔지만 정부는 10년이 넘도록 묵묵부답인 상태다.
다만 금산 칠백의총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얻으면서 ‘무명의 의승’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예우 역시 더 이상 미뤄선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문화재청은 의승장 영규대사(?~1592)와 800의승의 역사를 누락해 비판을 받아온 금산 칠백의총(사적)에 무명의승을 위한 비석을 세우고 의병 700명만 추념하는 ‘칠백의총’ 명칭을 바로잡기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더구나 현 정부가 ‘보훈’을 핵심 국정기조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국가 제향 복원과 무명 의승군에 대한 연구, 명예회복 및 위령 사업에 대한 성과가 이번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게 불교계 열망이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724호 / 2024년 4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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