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가 고려시대 고승 기념비와 사적비 등 석비(石碑) 연구성과를 담은 ‘한국의 석비-고려(국보·보물)’을 간행했다. 지난해 발간한 ‘한국의 석비-고대(국보·보물)’에 이은 두 번째 학술정보 자료집이다.이번 자료집에는 현존하는 고려시대 석비 400여기 가운데 국보·보물로 지정된 39기의 기본 정보와 석비의 주인공 소개, 형태와 가치, 고화질 사진과 탁본, 판독문, 해석문을 수록했다. 수록한 석비 대부분은 고려시대 고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저자 일연 스님의 ‘군위 인
하동 쌍계사 불교 회화에 담긴 미양식을 통해 쌍계사의 독창적 예술성을 탐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사단법인 한국미술사연구소(소장 문명대)·한국불교미술사학회가 11월20일 오후 1시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 제1강의실에서 ‘하동 쌍계사의 불교회화’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쌍계사 개산 1297주년·창건 1181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날 학술대회는 쌍계사 주지 영담 스님의 축사와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의 기조발제로 시작된다. 이어 △쌍계사 팔상도 연구(김정희/ 원광대) △쌍계사 영산회상도 연구(고승희/ 동국대) △쌍계사 삼장보살도 연구
‘무진장행법’은 삼계교의 경제관이다. 이를 분명히 알기 위해선 신행 스님의 출생전 사회경제적 혼돈 상황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으나 여기서는 곧바로 삼계교도의 무진장행시로 넘어가도록 하자. ‘무진장행’(法·施)은 삼계교의 경제적 원리이다. 경·율에 입각해 실천적으로 그 행법내지 베품을 실시한 것이다. 삼계교도들은 이러한 경제적 관념을 도입했다. 민중을 도와 그들의 의복과 양식 등 생활을 윤택하게 하면서 이를 수행과 연결시켰다. 이는 불교사에 있어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념은 어떤 경전에서 출처를 찾을 수 있을까.‘화엄
“이 경을 이지수행함으로 해서 부처님도 되고, 조사도 되고, 선지식도 되고, 이 경을 이지수행함으로 해서 행복도 찾고, 부귀공명도 찾고, 모든 시비, 선악에서 헤어나와서,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도리를 다 성취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한 것입니다.”고산 스님 목소리는 지금도 생생하다. “삼세제불 역대조사가 다 이 경으로부터 출연했다”며 ‘금강경오가해’ 강석을 펼치던 고승의 목소리가 지면 위에 고여 글을 타고 흐르더니 책장을 박차고 독자에게 달려간다. 그 생생한 목소리에 다시 강석이 열린 듯하다. 올해 3월23일 쌍계사에
코로나19와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이중고에서도 묵묵히 포교 원력을 실천하는 교계 단체들을 지원해 한국불교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자 마련된 선서화 전시회가 개막식을 갖고 350여점의 작품을 일반에 공개했다.특별선서화전 추진위원회(공동추진위원장 돈관·덕문·호산·성행·현민·보인 스님)는 11월2일 서울 동국대 팔정도 광장에서 불교중흥을 위한 특별선서화전 ‘새로운 인연’ 개막식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상월선원 회주 자승 스님과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 원로의원 자광·원행, 도선사 회주 동광, 중앙종회의장 정문, 호계원장 보광, 교육원
세월의 무대 속에서 일어나는 한 개인의 삶이나 나아가 개인이 모여서 이루어진 세상을 보면, 그 속에는 무수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런 지난 ‘무수한 일들’을 사람들은 ‘기록’해 왔는데, ‘기록하는 행위’에는 반드시 기록하는 주체가 있게 마련이다. 물론 그 주최는 개인일 수도 있고 집단일 수도 있다.필자가 종학(宗學)을 논하는 이번 글에서는 ‘기록하는 행위’에 주목하고자 한다. 인간의 행위는 크게 세 방면으로 드러난다. 육체를 매개로 한 행위, 언어나 문자를 매개로 한 행위, 사유를 매개로 한 행위,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이런 행위가
역사적 인물로서 원효(617~686)는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냈다. 26대 진평왕・27대 선덕여왕・28대 진덕여왕・29대 태종무열왕・30대 문무왕・31대 신문왕 등 무려 6대의 국왕을 거치는 동안 신라는 내외적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되는데, 원효의 불교적인 삶도 그에 못지않은 여러차례의 전기를 맞으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를 온몸을 던져 실천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원효의 출가 전 행적에 관한 자료는 전해지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으나, 어릴 때 이름이 군부대의 이름인 서당(誓幢)이었다는 점을 들어 젊은 시절 일시적이나마
교계 단체 지원을 목적으로 기획된 ‘불교중흥을 위한 특별선서화전, 새로운 인연’이 11월2일 동국대에서 막을 올렸다. 코로나19의 파고 속에서도 포교원력을 이어가고 있는 단체들을 지원, 포교 활성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마련된 이번 전시회에는 상월선원 만행결사를 이끌고 있는 회주 자승 스님이 희사한 선서화 300여점이 전시된다. 전시회는 11월8일까지 동국대 본관 4층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회는 사부대중의 폭넓은 동참과 더불어 높은 사전 판매율로도 눈길을 끌었다. 지난 9월9일 불교중흥을 위한 특별선서화전 추진위원회(공동추진위원장
조계종 제24교구본사 선운사(주지 경우 스님)가 11월7일 오후 2~5시 경내 성보박물관에서 ‘선운사와 불교문화재’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선운사 주지 경우 스님의 환영사와 유기상 고창군수, 최인규 고창군의회장의 축사로 시작되는 이번 학술대회는 신병욱 전북대 교수의 사회로 △선운사의 조선초 고승 행호와 덕원군(황인규/ 동국대 교수) △검단선사 보은 염선제(나종우/ 원광대 명예교수) △선운사와 불교미술(최인선/ 순천대 교수) △선운사의 건축(남해경/ 전북대 교수)이 발표된다. 이후 한문종 전북대 교수, 백덕규 김제시 학예사, 한수영
중국 시안(西安)에서 황허(黃河)의 서북쪽 고비사막을 지나 험준한 톈산산맥(天山山脈) 줄기를 넘어 로마까지 이어지는 7000㎞ 길. 고대의 동서문명을 이은 실크로드의 관문은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사막의 동쪽 끝자락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오아시스 도시’ 둔황(敦煌)이다.거친 모래바람을 뚫어가며 힘겹게 걸음을 내딛다 닿은 오아시스. 생의 끝자락일 것만 같았던 그곳에서 마신 한 모금의 물이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적신다. 비단과 도자기를 싣고 가던 대상(隊商),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난 모험가 모두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는 흙산 절벽에 구멍을
한국불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신라의 원효를 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00년대 초기부터 원효는 주목을 받아 저술들이 수집 정리되기 시작하였으며, 최근에는 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추진되어 적지 않은 분량의 저서와 논문이 축적되었다. 특히 원효의 저술 발굴과 주석 작업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화쟁(和諍)’과 ‘일심(一心)’ 등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에 관한 연구도 상당한 진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에 관한 연구에 비하여 역사적 연구는 부진한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一光東照八千土 (일광동조팔천토) 大地山河如杲日 (대지산하여고일) 即是如來微妙法 (즉시여래미묘법) 不須向外謾尋覓 (불수향외만심멱)한 줄기 빛으로 팔천토 비추니 대지산하가 해처럼 밝아지네. 이것이 여래의 미묘한 법이니 모름지기 밖에서 찾지 말라.하동 쌍계사 화엄전에 걸린 주련이다. 직역은 쉬우나 뜻을 새기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앞의 두 구와 뒤의 두 구가 문맥상 맞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광(一光)·미묘법(微妙法)을 간파하지 않고는 100년을 들여다보아도 그 깊은 뜻 꿰뚫지 못할 것이다. 법보신문에 연재 중인 ‘법상 스님의
“예전과 달리 스님들의 의지와 결속력이 옅어지고 있어요. 여기엔 다양한 원인이 있겠습니다만 이중 하나는 정신자세에 대한 문제에요. 수행자가 이어가야할 뿌리를 기본적으로 알려준다면 출가자에게 자부심을 높여줄 수 있어요. ‘넌 이런 전통을 이어받을 계승자야’라는 생각과 함께요.”10월13일 열린 한국불교학회 추계특별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제4교구본사 월정사 교무국장 자현 스님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스님은 “먹고 사는 문제가 물론 중요하지만 돈보다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줄 수 있어야 한다”면서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현실에서 한국
一念蕭蕭不記年 皮膚脫落自完全 일념소소불기년 피부탈락자완전長天夜夜清如鏡 萬里無雲孤月圓 장천야야청여경 만리무운고월원 (한 생각이 소소하니 세월을 모르겠고/ 피부가 벗겨져도 그대로 온전하다./ 밤새도록 사념이 없으니 거울처럼 맑구나./ 구름 없는 하늘에 뜬 달은 홀로 둥글도다.)이 주련은 송나라 때 조동종(曹洞宗)의 고승이었던 단하자순(丹霞子淳) 선사의 게송이다. ‘단하자순선사어록’ 제2권, ‘선림류취’ 제17권, ‘사가록(四家錄)’ 제4권, ‘선문염송집표주’ 권제216, ‘임천노인평창단하자순선사송고허당집’ 권4 등에 실려 있다. 참고로
효봉 스님(1888~1966)은 가야총림 초대 방장과 통합종단 초대 종정을 지낸 고승이다. ‘절구통 수좌’로 유명했던 스님은 판사라는 선망의 자리를 뒤로 하고 38세에 산문에 들었다. 늦깎이 출가자였지만 스님은 한번 앉으면 엉덩이 살이 헐어 진물이 달라붙을 정도로 정진했다.효봉 스님은 용성 스님과 수월 스님을 만나 가르침을 얻은 후 운수행각과 용맹정진에 돌입했다. 그렇게 1년 6개월 동안 스스로를 토굴에 가둔 채 화두에 매진했고, 마침내 1931년 금강산 법기암 무문관 토굴에서 깨달음을 이뤘다. “이 산승은 상세(上世)에는 육조를
지난 10월5일 조계사 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금산사와 호국불교’라는 주제의 학술대회가 있었다. 그 취지는 뇌묵 처영의 의승활동에 대한 조명을 통하여 호국도량으로서 금산사의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필자 또한 ‘금산사의 미륵신앙과 호국애민정신’이란 주제로 발표하였다. 청허와 사명 그리고 처영이 표충(表忠)의 대표적 승장으로 받들어지는 반면, 금산사에서 의승군을 이끈 처영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의미가 큰 학술대회였다.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서 ‘유학자들이 바라보는 불교에 대한 시각으로부터 불교계는
조계종 제12교구본사 법보종찰 해인사(주지 현응 스님)가 10월7일 장경판전 앞에 포쇄소를 마련하고 인경본 1270권의 포쇄를 진행했다. ‘포쇄(曝曬)’란 바람을 쐬고 햇빛에 말려 습기를 제거한다는 의미다. 이번 포쇄는 123년 만에 진행된 의식으로 포쇄 과정에서 인경 당시의 팔만대장경 상태를 확인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됐다.해인사는 이날 장경판전 계단 아래에 포쇄소를 차리고 포쇄를 알리는 고불의식에 이어 기획국장 학암 스님의 포쇄 선언을 시작으로 장경판전으로부터 인경본의 출납, 이운을 시작했다. 인경본이 제작된 1898년 이후 장경
서울 봉은사(주지 원명 스님)가 개산 1227주년 맞이 역대조사 다례재를 봉행하며 개산대재의 개막을 알렸다. 봉은사는 10월6일 봉은사 대웅전 앞 특설무대에서 794년 견성사란 이름으로 봉은사를 창건한 신라시대 고승 연회국사를 비롯해 허응당 보우대사, 서산 휴정대사, 사명 유정대사, 남호 영기율사, 한암당 중원대종사, 영암당 임성대종사, 백곡당 처능대사의 진영을 모시고 다례재를 봉행했다. 역대조사 스님들의 업적을 계승하고 뜻을 기리는 다례제를 시작으로 봉은사는 한 달여 간 다채로운 문화예술행사를 펼친다.다례제는 헌향, 헌다, 헌화,
신라는 26대 진평왕(579∼632)과 27대 선덕여왕(632∼647) 때에 국왕의 권위 강화에 기여하는 왕실불교가 완성되어 가는 한편 그러한 불교에 대한 비판적인 성격의 대중화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왕실불교‧대찰불교의 한계와 모순에 대한 비판과 대안으로 대중불교‧가항(街巷)불교가 새로 대두된 것이었다. 불교대중화의 선구자로서 혜숙은 시골의 농촌에서, 혜공은 골목 거리에서, 그리고 대안은 시장 장터를 무대로 하여 각각 일반 서민들을 대상으로 불교를 포교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들은 단순한 불교의 포교사‧전도사
맑은 목탁 소리가 이른 새벽을 깨웠다. 이어진 이산혜연 선사 발원문 독경소리에 대중들은 잠에서 벗어났다. 10월2일 상월선원 만행결사 삼보사찰 자비순례 2일차 일정은 새벽 3시 도량석으로 시작됐다.하루 전 입제식을 갖고 천리순례의 첫발을 뗀 순례단은 이날 전남 곡성 용바위 주민생활체육공원을 출발해 사성암 주차장까지 총 25km 구간을 행선했다. 순례에 앞서 예불문과 한글반야심경 봉독으로 이번 천리순례의 의미를 되새긴 대중들은 섬진강이 만들어낸 짙은 안개를 뚫고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칠흑 같은 어둠과 짙은 안개 탓에 한 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