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신문 조사결과 2022년 상반기 불교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자는 모두 32명으로 확인됐다. 이중 동국대가 18명으로 가장 많았고 위덕대와 동방문화대학원대가 각각 3명으로 뒤를 이었다. 이어 중앙승가대에서 2명, 서울불교대학원대·한양대·서강대·한국외대·금강대·공주대에서 각 1명의 불교박사가 나왔다.분야별로 보면 불교를 수행이나 명상 측면에서 접근한 논문이 8편으로 가장 많았다. 이는 사고, 정서, 신체감각 등 효과적인 자기조절능력 향상을 위한 마음챙김·MBCT 등 명상이 꾸준히 주목받는 학문분야임을 입증한다. 인물을 탐색한
경남권 7개 시·군 조계종 사찰을 중심으로 하는 경남 남부 사찰연합회가 결성됐다.조계종 경남 남부 사찰연합회(회장 법연 스님)는 2월23일 경남 진주 의곡사에서 ‘조계종 경남 남부 사찰연합회 출범 법회’를 봉행했다. 이 자리에는 해인총림 해인사 주지 현응, 원로 선용, 다주 여연 스님, 해인사 종무소 국장단 스님과 연합회 초대회장을 맡은 의곡사 주지 법연 스님 그리고 두타사 주지 자용, 청곡사 주지 승찬, 호국사 주지 적민 스님 등 연합회 회원 사찰 주지 스님들이 동참했다. 또 조규일 진주시장,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정호
‘유신헌법·긴급조치’가 관통한 1970년대는 암울한 시대였다. ‘…보이지 않는 공포와 가장 강력한 경멸의 뒤범벅을 우리는 오늘날 삶이라고 부른다. 게다가 그 공포와 경멸을 더 많이 차지하겠다고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싸우고 있다. 하하. 그러니 그 삶이라는 것에 손이 닿자마자 손은 썩기 시작하고 그 삶이라는 것 속에 발을 들이밀자마자 발은 썩어 버린다. … 그리고 더 많은 거짓을 차지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싸우고 있다. //술보다 더 지독한 痲藥이 필요하다.’(정현종 시 ‘절망할 수 없는 것조차 절망하지 말고…노트 1975’)
앞에서 상좌부의 니카야에 이미 보살의 특징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여기서는 이제 우리에게 널리 퍼진 하나의 오해에 대해 먼저 해명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좋겠다. 그 오해란 대승불교가 보살의 이념 아래 붓다의 상태를 목표로 하고 이는 이타에 중점이 놓인 것이지만, 반대로 소승의 아라한의 이상을 목표로 하고 이는 자신만의 해탈을 지향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구별은 널리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하나의 도그마처럼 받아들이지만 많은 경우 이는 과도한 단순화일 것이다.상좌부 경장 중 특히 제5부 ‘쿠다카 니카야’(小部)에서 보살이란
한국불교종단협의회장 원행 스님이 국회정각회 신년법회에서 대선을 앞둔 불자정치인들에게 악업을 경계하는 열 가지 행동 계율인 ‘십선계(十善戒)’의 실천을 당부했다.국회정각회(회장 이원욱)는 2월9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신년법회를 봉행했다. 이번 국회정각회 신년법회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3년만에 봉행됨과 동시에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소속 종단지도자들을 초청해 더욱 의미를 더했다. 법회에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장 원행 스님을 비롯한 종단협 회장단과 조계종 총무원 소임자 스님들이 자리했다. 이와 함께 박병석 국회의장, 이원욱 국회정
현재 대한불교조계종(이하 조계종)의 승려법은 승려(비구·비구니)가 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3가지 자격을 요한다. 20세 이상일 것, 고졸 이상일 것, 종단에서 설치하거나 지정한 승가대학 또는 기본선원 과정을 이수할 것. 승려가 될 수 없는 결격사유도 있다. 속세 관계를 끊지 못한 경우, 금치산 및 한정치산의 경우, 경제적 파산, 형법상 피의자이거나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 파렴치범의 전과, 난치병이나 전염병, 정신 또는 신체 조건이 부적당한 경우 등이다. 승려가 되려면 세속의 기준만으로도 중등 이상의 교육을 받은 성인으로서
원효의 행적과 불교대중화운동,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인물들을 추적한데 이어 저술과 불교사상을 검토할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그에 앞서 이 장절의 제목을 ‘동아시아 불교역사상의 원효불교’로 한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원효의 행적과 사상의 이해를 추구하는 역사학자나 불교학자들의 관점과 접근방법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발견된다. 첫째는 원효 행적에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오해로 이미 6회에 걸쳐 이것에 관한 자료들을 검토했다. 결과를 종합하면, 원효 행적 가운데 특히 불교대중화운동을 주목하고, 주된 교화 대상이 평민과 노비와 같은 피지
2600여년 전 인도에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는 왕좌를 버리고 깨달음을 이룬 자, 붓다가 되었다. 1400여년 전 신라에서 태어난 원효 스님은 왕실과 귀족 중심의 불교를 민중에게 전해 오늘날까지도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고승, 세계인이 주목한 불교철학의 거목이 되었다. 이 책은 1200여년의 간극을 두고 있는 이 위대한 두 인류의 철학사상이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 그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부처님이 깨달은 중도의 진리는 사성제와 십이연기로 확산됐고, 1200여년 후 원효 스님은 중도의 연기를 ‘일심(一心)’과 ‘
탄허 스님(1913~1983)은 경허에서 한암으로 이어지는 한국선의 계승자다. 일평생 저녁 8~9시에서 새벽 12~1시까지 잠깐 수면을 취한 뒤 반드시 몇 시간의 참선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 것은 선사로서의 엄밀함을 보여준다. 스님은 20세기 최고의 대강백으로도 꼽힌다. ‘화엄경’ 현토와 번역 및 강원 교재 편찬이라는 방대한 역경불사를 이뤄냈으며, 각성, 통광, 무비 스님의 ‘탄허 3걸’이라는 기라성 같은 강백들을 양성했다. 명실상부한 한국불교의 ‘고승’이며 ‘대종사’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스님은 불교의 테두리에 갇히지 않는다.
1월21일 서울 조계사에서 봉행된 전국승려대회에서 사부대중은 부처님께 이렇게 고했다. “일제강점기 이후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은 불교와 전통문화의 영향력을 위축시키고자 노골적인 종교편향과 차별정책을 펼쳤고, 오늘날까지 종교편향과 불교왜곡이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위법망구의 파사현정, 호법원력으로 분연히 일어나 엄동설한을 무릅쓰고 전국승려대회라는 승가갈마를 열게 되었습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강렬하다. 목숨을 버려서라도 그릇된 것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가 표출돼 있기 때문이다. 섣불리 떠올릴 세속의 의지와는 결이 다르다. 경전 한
[1617호 / 2022년 1월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파도는 발아래서 출렁이고 갯바위에 부딪힌 ‘철썩∼’ 소리 청명하게 들려온다. 푸른 바다 위를 걸어 고색창연한 절로 들어서는 것 같다. 바다 위에 처음 절을 세운 스님은 고려의 고승 나옹 혜근(懶翁 慧勤·1320∼1376)이다. 해안가의 비경을 마주한 나옹 선사는 ‘뒤는 산이요 앞은 물이니, 아침에 불공 올리면 저녁에 복 받을 곳(背山臨水 朝誠暮福地)’이라 했다. 길지임을 확신한 나옹 선사는 토굴을 짓고 정진에 들어갔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전화로 소실되었다가 1930년대 초 통도사 운강 스님이 보문사로 중창한 바 있고, 1970년대
양주 회암사지(사적)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향한 첫발을 내딛었다.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1월13일 오후 열린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회의에서 양주 회암사지를 세계유산 잠정목록(Tentative List)에 선정하기로 했다.잠정목록 선정은 세계유산 목록 등재를 희망하는 회원국들이 작성한 자국의 유산 목록이다. 유네스코에 제출하기 전 국내에서 진행하는 심의 절차로, ‘잠정목록 → 우선등재목록 → 등재신청후보 → 등재신청대상’으로 이어지는 4단계 중 첫 단계이다. 문화재청은 상반기 중 세계유산센터에 양주 회암사지 등록 절차를 밟
역경(譯經) 대원칙 하나. ‘이해 못 하면 번역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오역은 만 사람의 사상을 왜곡시킬 수 있다. 원전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파악, 그에 따른 통찰이 이뤄졌을 때라야 한 문장 써 내려갈 수 있는 것이다. 운악산 봉선사는 한국 역경사에 한 획을 그은 두 선지식을 품었다. “번역할 때 원전에 있는 말을 빼지도 말고, 없는 말을 보태지도 말라!” 했던 운허(耘虛·1892∼1980) 스님과 ‘한글대장경’ 완간의 주축이었던 제자 월운(月雲·1929∼현재) 스님이 주석한 도량이다.봉선사 조실 월운 스님은 다경실(茶經室)에
한국불교의 지성문화를 이끌고 있는 법보신문이 올해도 다양한 연재를 마련했다. 강백, 수좌, 명상지도자, 불교학자, 역사가, 시인 등 각계에서 활약하는 저명인사들이 필진으로 다수 참여한다.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으로 써내려가는 연재들은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는 물론 불자들의 수행과 신행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교리·법문‘진우 스님의 금강경 강설’ ‘각전 스님의 본생담으로 읽는 불교’ ‘신규탁의 화엄경 경학’ ‘오중철의 돈황벽화로 읽는 불교경전’이 신설됐다.진우 스님은 조계종 승가교육의 백년대계를 이끄는 교육원장으로 선과 교에
‘해가 처음 돋아오를 때는산꼭대기 위에 있게 되나니당신의 슬기로운 광명이야말로일체 중생을 비추시리다싯다르타 태자가 세간을 떠나 출세간에 나아가면서 명예와 권력과 부의 상징인 왕자 옷을 벗고 출가자의 의복, 즉 진인(眞人)의 옷이요, 세상을 건지는 자비의 옷, 소망이 이루어지는 법의 옷으로 갈아입고 산에 들어가자 온 산은 서광이 가득하였다.’(수행본기경)이는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를 찬탄한 글이다.집도 절도 없다는 말처럼 나는 요즘같이 자유로울 때가 없다. 이른 아침이면 자욱한 안개 속을 지나 근처 외국인스님들이 공부하는 무상사에 기도
“설봉선사는 현사사비를 일컬어 재래인(再來人)이라고 했다. 불보살이 중생제도를 위해 다시 온 사람이라는 의미다. 윤창화 대표가 꼭 그렇다. 그는 자신의 서원과 불보살님의 가피로 일생을 불교출판을 위해 산 재래인이다.”(시인·선어록 번역가 석지현 스님)“나의 외우(畏友)인 그는 출판인으로서 불자로서 인간으로서 참으로 성실하고 진지하고 선한 사람이다.”(홍사성 ‘불교평론’ 주간)“단순히 책을 펴내는 수준을 넘어 뛰어난 안목으로 필자들 저술 작업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근대 불교출판인의 모범이 안진호 스님이라면 이후 현대 불교출판인의 넘버
한국 1700년의 불교역사 속에서 호불 군주는 4세기 무렵 불교가 전래된 이후 14세기 말 성리학을 국시로 한 조선왕조의 성립 이전 시기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불교 전래 이후 조선 초까지 1000여년 기간 재위했던 군주들은 호불적이었다고 하겠지만,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도교를 장려했던 당시의 보장왕이나 고려 초 유학자 최승로의 시무상소를 대부분 받아들인 성종, 고려중기 도교의 관사인 복원궁을 설치했던 예종 등은 호불 군주로 간주하기 어렵다. 숭유억불시기인 조선 초 태조 이성계의 아들 태종과 손자 세종이 호불 군주로 간주되는 경우도
원효는 태종무열왕 8년(661) 45세 즈음 당 유학을 가던 중에 무덤 속에서 깨달음을 체험하였고, 이어 요석공주를 만나서 설총을 낳고 환속하여 거사가 되었다. 그 뒤 문무왕대(661~681) 20여년 동안은 원효 생애의 전성기로 불교대중화운동과 불교사상체계 수립에 매진한 시기였다. 이 기간 쟁관법(錚觀法)을 만들어 엄장(嚴莊) 같은 화전민을 교화했고, 사생아로 태어난 불구의 사복(蛇福)과 어울리고, 그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주기도 하였다.다른 한편으로는 경전연구에 몰두하여 100종 가까운 저술 대부분을 완성하였다. 그런데 원효의 활
사단법인 한국미술사연구소(소장 문명대)가 12월18일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 제1강의실에서 ‘600년 왕실 원찰 흥천사의 불교공예’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2018년 11월부터 흥천사 불상, 불화, 건축을 조명해온 한국미술사연구소가 공예를 마지막으로 흥천사 미술사를 마무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흥천사 주지 각밀 스님은 “문명대 한국미술사연구소장님을 비롯해 수많은 연구자들 덕분에 흥천사가 조선 왕실의 원찰로서 위상을 되찾고 있다”면서 “밤낮으로 연구에 주력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문명대 한국미술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