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24일, 금강경 간경을 만독했다. 지금까지 날 돌아보면 부정적인 마음이 많았다. 가족 중에서도 특히 엄마와는 물과 기름 같은 뭔가 모를 그런 거리감과 서운함이 있었다. 일을 하면서는 일복이 참 많아 일에 치였었고,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으면서도 지나고 보면 이용당하곤 했다.허우적거렸던 상황들이 너무 싫었다. 가족 간이든 스스로든 밑이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삶 어느 곳에서든 뭔가가 꼭 새어나가는 모양새였다. 그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절에 다니기 시작했고 그러다 금강경을 만나 공부하게 됐다. 공부를 많이 하면
지난 60년을 무엇하며 살았나. 되돌아본다. 늘 쓸데없는 망상과 생각 속에 사로잡혔다. 언제나 욕망, 증오 등 부정적인 행동으로 스스로가 고통 받았다. 좀더 정확하게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했다. 또 주위 인연에 집착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며 화냈다. 자만심과 열등감을 오가며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살았다. 항상 내면에서 불 같이 일어나는 것들과 싸웠다. 아니다. 싸우지 않고 불과 같이 일어나는 마음들에 편승해왔다.쓸데없는 망상 사로잡혀욕망·증오로 고통받아부정적 생각 알아차리며 내려놓기 반복하자 행복밖으로 보이는 모습과 내면은 달랐다
나는 본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권사였던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었다. 결혼 후 살림만 하고 있던 차에 지인의 소개로 연꽃모임 이대원성 보살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때부터 불교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대원성 보살은 그때 겨우 서른 살을 갓 넘은 젊은 나이였다. 그러나 너무도 열심히 불교활동을 하며 절에 다니는 대원성 보살을 보면서 신기함과 호기심으로 따라 다녔다. 우연은 운명이 놓아준 다리였다.사경하고 보시하던 도반대원성보살 모습에 감화본받고자 법화경 사경힘든 시절을 극복한 힘우연 아닌 인연으로 부처님을 믿게 됐고 큰스님들 법
반복된 일상에 회의감불교 접하고 활력 느껴참법배워 새 기운 얻고늘 참회하는 마음 발원 늘 호기심이 많았던 내가 불교를 접하면서 나의 삶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일상에 매몰돼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된 삶에 회의를 느꼈지만 불교를 공부한 뒤로 하루하루 삶이 달라졌다. 절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또 스님들로부터 감로수와 같은 법문을 듣는 것은 세상의 어떤 취미보다 재미있었고 또 삶의 활력소가 됐다. 또 (사)미소원 장유정 이사장을 따라 봉사활동을 하며 새로운 희망을 가꿔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미소원에서 진행하는 자비도량참법 기도에 참가했다. 지도법사 희선 스님의 지도에 따라 5일간 호궤합장을 하며 전생에서부터 이어온 악업을 끊고 새로운 선업을 지을 것을 발원했다. 예전부터 꼭 자비도량참법 기
20년간 참선 했지만일상선 여전히 고통지관수행 시작하고는오욕락 견딜 힘 생겨 대학교 1학년 중간고사 때 문제를 다 풀고 좋은 성적을 받으리라 생각하며 기분 좋게 일찍 시험장을 나왔는데 나중에 들려온 얘기 한마디에 내안에 있는 모든 에너지가 분노, 실망으로 끓어올랐다. “뒷장 문제 어땠어?” 뒷장 문제를 놓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별문제 아닐 것 같은데 그 당시 너무 화가 나고 괴롭고 힘들었는데, 그렇게 괴로워하다가 궁지에 몰리니 나도 모르게 기숙사 침대 위에 반가부좌하고 가만히 앉게 되었다. 그런데 참선과 인연이 있었던지 “이렇게 분노하고 실망스러운 지금, 참나라고 할 수 있는 나는 아무 흔들림이 없지 않는가?” 하고 스스로 되뇌자 그 순간 괴로움이 봄눈 녹듯 사라졌다. 몇 시간의 참담한
일상 스트레스 고민하다성수스님 친견하고 발심매일 700배 실천하면서하심 배우고 행복되찾아 ▲대오·45 매일 700배를 꼬박꼬박 실천하며 하루일과를 마무리한다. 직장생활을 하며 매일 절을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지난 2012년 입적하신 활산 성수 스님이 내려주신 평생의 숙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원력으로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몸을 다독이며 묵묵히 절을 한다. 성수 스님은 “선지식을 만나면 반은 된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그대로 실천할 때 비로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돌이켜보면 성수 스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스님의 생전 가르침을 늘 가슴에 새기며 하루하
삶의 무게에 괴로움 겪다참법 수행 실천하며 반성도반들과 봉사모임 이끌며인생의 행복 비로소 느껴 ▲자비심·59 늘 맞는 일상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설레고 두근거린다. 부처님가르침에 귀의해 35년간 수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스승 희선 스님을 만나 자비도량참법기도를 5일간 하고, 회향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마음작용의 인과를 따라 지옥과 극락을 두루 살펴보면서 지난 시간들의 어리석음에 몇 번이나 울컥하며 사람으로 태어난 감사함에 눈시울이 젖었다. 잘못이 있으면 참회하고 뉘우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실제로 그 일을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다.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것은 곧 자기를 부정하고 죽이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늘 나만 중심으로 두다가우연히 접한 자비 명상에자만 버리고 이타심 배워매일 변하는 삶보면 행복 ▲지원·50 2006년 여름 허리디스크로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한 법우가 잡지 하나를 들고 와 볼 것을 권했다. 병실에 갇혀 답답한 일상을 보내던 차에 그 잡지를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그런데 잡지의 한 쪽 귀퉁이에 마가 스님이 지도하는 자비명상에 대한 소개와 함께 지도자교육과정을 모집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오래전부터 자비명상에 대한 관심이 컸던 차에 꼭 수업을 듣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서둘러 퇴원을 하고 첫 강의부터 동참하였다. 첫날부터 자비명상 수업은 나에게 큰 감동을 줬다. 상담이론 수업을 들을 때는 마치 부처님의 말씀을
공주 갑사서 절수행 접해6년째 매일 108배 실천몸과 마음의 건강 되찾고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워 매월 둘째 주마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열리는 3000배 철야정진에 참여한지도 이제 2년이 되었다. 사실 나는 3000배의 반 정도밖에 못하지만 5~6년 전부터 거의 매일 108배를 해온 터라 지인들은 날더러 대단하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항상 난감하다. 절 수행은 9년 전 공주 갑사 템플스테이에서 처음 접했다. 법당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너무 편해서 오래 앉아 있고 싶었지만 무릎과 고관절이 아파서 힘들었다. 차라리 절을 하며 움직이는 것이 편하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것이 절 수행이었다. 그런데 절을 하고나면 복잡하고 답답했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온 몸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아내의 권유로 불교 입문사업하다 폐암으로 수술자비명상 접하고 삶 변화육체·정신 건강얻어 행복 불교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은 독실한 신심을 가지고 있었던 아내 때문이었다. 아내는 불교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해박한 지식도 가지고 있었다. 의정부가 고향이었던 아내는 대학교 때 불교학생회 동아리활동을 했고, 절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신심을 키웠다. 그런 아내를 따라 휴일 날이면 함께 절에 다니기도 했지만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다. 아내가 법당에 들어가면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빨리 나오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한 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아내를 볼 때면 불만이 적지 않았다. ‘사업으로 바쁜데 꼭 절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나. 그 시간이면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 사업 이야기를 나누면 인
내면성찰 위해 불교 공부스승 만나 위빠사나 접해7년 수행하며 삶의 변화하루하루 행복이 밀려와 뜨거운 누룽지 숭늉을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머물고는 ‘아, 뜨겁구나, 고소하구나’라고 알아차린다. 뜨거운 숭늉은 목젖 아래로 넘어가고 밥풀은 혓바닥에 남아 머문다. 다시 그것을 꼭꼭 씹어 단맛으로 삼킨다. 시큰하게 익어버린 얼갈이 배추국물김치를 한 가닥 입에 넣고 씹어 삼키고는 색, 수, 상, 행, 식으로 알아차려 본다. 비단 아침 공양만일까. 일상의 모든 순간이 환경에 의하여 찰나 생 찰나 멸의 반복과 순환이라는 사실, 이것을 일상에서 여실지견으로 알아차리게 된 것은 50대 중반이었던 7년 전부터다. 아이들이 모두 성장해 각자의 삶을 찾아 사회로 나가게 되면서, 문득 이제야 비로소 나를 찾고 내
남편 사업실패로 불화우연히 절수행 접하고매일 108배 참회하자삶의 행복·희망 되찾아 불교에 입문한지 어느 덧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부처님 법을 만난 것에 감사하며 사찰에 다니면서 기도와 수행을 하고, 늘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발원하고 있다. 부처님 가르침을 만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20년 전 우리 가정은 늘 한켠에 어두운 그늘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남편의 거듭된 사업실패로 부부간에 다투는 일이 많았고, 그럴 때면 아이들은 불안에 떨었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에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남편과의 불화는 잦아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래서는 안 되겠다. 나라도 중심을 잡지 않으면 아이들이 잘못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우연히 백봉거사 접하고청년불자 1호 인연 맺어장좌불와 용맹정진 체험새말귀 수행 확산에 주력 1967년 대불련 법회에 참석하면서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여름방학 때 해인사에서 개최된 대불련 수련대회를 통해 사찰에서의 수행을 체험했고, 법회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겨울방학 때 직지사에서 열린 대불련 동계수련대회를 마친 뒤 도반들과 해인사 백련암에서 1주일 2만배 기도를 마치고 성철 스님을 친견하기도 했다. 이후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을 듣기 위해 해인사 원당암에서 머물던 어느 날, 우연히 한 일간지에 나온 백봉 김기추 거사님의 금강경법회 기사를 보게 되었다. 당시 재가자가 법문을 하는 경우가 흔치 않았던 탓에 몹시 궁금해 정릉 보림사에서 백봉 거사님의 금강경법회에 직접 참석하게 되었다. 눈
마음의 휴식처를 찾다자애명상을 처음 체험미움 버리고 용서하자고통 줄고 행복찾아와 직장 생활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와 사람관계에서 생기는 생채기, 쫓기듯 보내는 시간이 만들어 내는 불안감, 괜스러운 짜증과 화남 등. 이런 지친 마음에 휴식처가 필요하겠다 싶어 알아보던 차에 때마침 시작하는 자애명상 과정이 있어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자애명상을 하면서 놀라웠던 것은 지금까지 가져 본 적 없는 마음을 짓게 된 것이었다. “내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용서받기를 원합니다”, “(나에게 잘못을 행한) 그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나는 용서합니다.” 내가 언제 누군가를 구체적으로 용서하는 마음을 먹어봤던가? 내가 언제 타인에게 진심으로 내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해 본 적이 있던가? 용서를 하고, 용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장애불안하고 고통스런 삶연속새벽마다 대비주 수행하며인생의 참 기쁨 느껴 행복 ▲원행선·48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남들에 비해 고단한 삶을 살았다.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래서 늘 쫓기고 불안함의 연속이었다. 그 땐 한시도 마음 편히 쉬지 못했다. 몸의 고통은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학창시절 등하굣길은 고행이 무엇이고, 삶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것인지를 뼈저리게 체험하게 했다. 그래서 다음 생이 있다면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부처님 법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렇게 고통스럽고 방황의 세월을 보내던 2009년 어느 날, 봉은사에서 기초교리과정을 등록했
참선하려다 위빠사나 접해마하시 수행센터 수련한뒤금정선원서 걷기명상 수련명상 통해 ‘여실지견’ 체험 ▲ 선재향·47 불교에 입문한 뒤, 경전을 공부해 가면서 더 궁금해지는 것이 있었다면, ‘정말로 어떻게 수행해야 그 좋은 경지를 맛볼 수 있을까’였다. 하지만 법문을 들으면 들을수록, 경전 속에서의 수행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발견할 수 없어서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이제 정말로 조용히 앉아서 선(禪)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가사를 돌보는 여자들이 선 공부를 할 만한 곳은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라디오 불교방송에서 ‘12연기와 위빠사나’라는 주제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동료직원 영향으로 발심역경 속에서 매일 삼백배하심 하는 마음 배우면서고통 줄고 행복을 되찾아 ▲정심화·59 불교를 접하게 된 건 신심 깊었던 시어머니(공덕월 보살님)의 영향 때문이었다. 40대에 홀로되신 시어머님은 4형제를 키우면서 그 가난하고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불심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어려운 살림에도 절에 불사가 있을 때면 보시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탓에 당대 큰스님으로 알려졌던 금오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았고 가까이에서 시봉하기도 했다. 시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염불을 놓치지 않으셨다. 아침저녁으로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도 염주를 돌리는 것을 자주 보았다. 새벽마다 향을 피우고 기도를 하셨고, 금강경도 열심히 읽으셨다. 그러면서
나보다는 남을 의식해시비·분별심으로 고통참선 수행 접한 뒤로나를 알아가는데 집중 ▲선혜일·53 어렸을 때부터 50이라는 숫자와 함께, 화장기 없는 얼굴에, 어딘지 모를 어느 법당에서 법복을 입고 합장한 채 부처님을 향해 다소곳이 서 있는 내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부처님밖에 모르고 사시던 어머니 밑에서, 어렸을 때부터 그런 환경에 익숙해져 그런가 보다 생각하기도 하며, 늘 내 미래가 궁금했었다. 그래서 살다가 힘들 때마다 얼른 50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부처님 앞에 서 있던 ‘나’는 지극히 편안하고 고요한 모습이어서 인생에서 내가 바라던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 더 이상 구할 게 없는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안
회사 위기로 미래가 불안불력회 알고 절수행 시작매주 3000배 실천하면서삶 참회하고 자신감회복 ▲진연화·47 살아보지 않은 앞날을 어느 누가 미리 알 수 있을까마는 나의 삶에서 이런 시간과 마주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오빠가 경영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며 회사의 성장과 나의 미래를 연결시켜 생각해 온 내게 회사의 위기상황은 내가 계획했던 앞으로의 시간과 삶이 예상과 전혀 다르게 진행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실패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조급함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마음은 거칠어지고 부정적이 되었으며 좁디좁아졌다. 나라고 믿어왔던 나의 모습이 아니었다. 수행의 필요성을 느꼈다. 할아버지
야근·출장에 심신 쇠약부정적인 마음까지 일어하루 천배 100일 기도로삶의 새로운 의미 되찾아 ▲고결·51 8년 전이었다. 나의 몸과 마음은 무너질 대로 무너져 있었다. 방송작가라는 직업은 늘 시간에 쫓겨 살아야 했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했으며, 취재 때문에 자주 출장을 떠나야 했다. 몸이 피곤한 것도 문제였지만, 마음이 지쳐가는 것은 더 큰 걱정거리였다. 직업의 특성상, 늘 PD로부터 부정적인 비판을 들어야했고, 작품이 방송되고 나면, 일부 시청자들의 악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여기저기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마음은 끝도 없이 부정적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우주의 법칙은 정확했다. 내 마음이 시커멓게 먹구름으로 변하니, 과연 먹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