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이란 온갖 사량분별이 떠오를 때마다 얼른 화두로 마음의 초점을 바꾸어 수행의 길을 가는 것이다. 결국 화두는 번뇌를 녹이고 잘라내는 용광로와 같고 관운장의 청룡도와 같다.”최근 간화선 수행 풍토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간화선의 현대적 의미와 구체적인 효용성을 다룬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참선지도자협회(이사장 의정 스님·협회장 각산 스님)가 11월22일 오전 해인사 선림원에서 ‘간화선, 실제 삶에 어떻게 적용되나?’를 주제로 명상세미나를 개최했다. 참선아카데미 심화교육인 참선지도사 1급 과정의 집중수행 일환으로 열린 세
제28 불수불탐분에, “만약 어떤 이가 항하사 모래 같이 많은 칠보로 보시한 공덕보다 일체법에 아(我)가 없음을 알고서 인(忍)에서 성취한 공덕이 더 클 것”이라 하였다. 일체법에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음을 안다는 것은 무아법(無我法)을 성취하였다는 것이요, 무아법을 성취한 상태에서 감내해냄을 통해 성취할 수 있는 공덕은 그 크기가 갠지즈강 모래알 수보다 많은 칠보를 쟁여놓고 그것을 불보살님에게 세세생생 공양을 올려 쌓은 공덕보다 더 크다는 말인데, 이를 사자성어로 옮긴 것이 ‘무생법인’이다.무생법인(無生法忍)이란 “일체법이 공하
이번 주 ‘법담법화’에서는 좀 무거운 주제에 해당되는 윤회의 주체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불교에서는 윤회의 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회를 논함에 있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짐과 짐꾼에 대한 비유 설명이다. 여기서 짐꾼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무아론과 유아론으로 갈라진다.윤회의 주체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의 내부에서 뿍갈라(puggala)가 윤회의 주체 역할을 담당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부파불교 시대의 독자부(犢子部)에서 뿌드갈라(pudgala)가 윤회의 주체라고 주장했다. 이
부처님의 지혜를 금강석에 비유한 ‘금강경’은 부처님이 제따와나에서 수보리 등을 위해 설법한 가르침이며, 일체법에서의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범소유상(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개시허망(모두가 다 허망하다) 약견제상비상(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즉견여래(곧 여래를 보리라)”라는 사구게가 대표적으로 회자되는 것 역시 무상·무아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는 경전이기 때문이다.특히 중국 선종의 육조 혜능이 이 경전에서 “응당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라는 대목을 듣고 느낀 바가 커서 발심
중도는 ‘유마경’ 입불이문품(入不二門品)에서 ‘불이(不二)’로 표현되고 있다. 이 품에서 31인의 보살은 저마다 대칭적[爲二] 이원상(二元相)을 개진하면서, 이를 불이법문(不二法門)으로 합일하는 이원자주(중도자주)의 안목을 보여 주고, 유마힐은 침묵으로 불이법문을 나타내었다. 보살들에게 어떻게 하여 불이문에 드는지 유마힐이 묻자, 보살들은 저마다 아래와 같은 이원의 불이를 답하였다.먼저 (1) 법자재보살의 생-멸 (2) 덕수보살의 아(我)-아소(我所) (3) 불순보살의 수(受)-불수(不受) (4) 덕정보살의 구(垢)-정(淨) (5)
불교는 철학인가 종교인가? 혹은 부처님은 사상가인가 종교가인가? 이런 질문들이 예전부터 던져졌다. 불교를 종교로 보기에는 철학적 체계가 그 어느 철학보다 치밀하다고 말하거나, 부처님 역시 종교가의 면모도 있지만 사상가, 철학가의 면모가 뚜렷하다는 평가도 있어왔다. 과연 부처님은 철학가일까, 종교가일까.부처님께서 꼬살라국의 사왓띠(Sāvatthi)에 머물고 계실 때의 일이다. 떠돌이 수행자 띰바루까(Timbaruka)가 부처님을 찾아뵙고 질문을 하게 된다. 이 대화는 ‘상윳따니까야’ 2권에 실려 있다.[띰바루까] 존자 고따마여, 괴로
부처님의 깨달음은 연기의 이치에 대한 깨달음으로부터 비롯됐다. 그리고 이후 펼쳐진 가르침 모두 이 연기법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연기에 대한 이해는 자연스럽게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끌어 준다.부처님 입멸 후 그 가르침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알맞게 해석돼 왔다. 때문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현대의 학문과 방법론으로 불법을 다시 진지하게 토론하고 재석할 필요가 있다. 이 책 ‘연기와 공 그리고 무상과 무아’는 홍창성 미네소타주립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그런 필요에 따라 연기법과 그것으로부터 파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공양 뒷바라지가 필요할 때면 가끔 봉화사 다니기를 지속했다. 그러던 중 철야 염불수행정진에 동참할 기회가 생겼다.오롯이 스님과 함께 늦은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하는 염불수행. ‘자비염불송’을 따라 하고 손뼉을 치고 포행 하기도 하면서 지속하는 명상과 108배 정진…. 밤새며 하는 철야기도였지만 피곤하지도 졸리지도 않았다. 기도 후 소감을 발표하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왜일까….법당을 나서며 스님께 여쭈었다. 보통 큰법당에는 ‘대웅전’이라는 현판을 거는데 봉화사는 왜 ‘나무아미타불’이 걸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가 11월30일 법보신문에 ‘현각 스님의 혜민 스님 비판은 악구’라는 기고를 보내왔다. 이에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침체된 한국불교가 그나마 사회적 위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몇몇 스님들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은 바 크다. 불교라는 울타리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과 함께 호흡하면서 삶의 여정에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과 평온을 가져다주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바로 이러한 활동의 선두에 선 것이 혜민 스님이었다.혜민 스님은 전 국민의 호응을 받는 대중적 멘토였다. 미국 명문대 교수 출신에다 준수한 외모, 세련된
법상에 올라 주장자를 한 번 들어 올리고 이르기를대중들이여!여러분은 각기 삼세의 모든 부처가 지닌 지혜와 대상을 한 치도 다름없이 본래 소유하였다.여러분도 지니고 부처도 똑같이 지닌 적멸의 즐거움과 만유한 신통묘용을 아는가 보는가? 알고 보았으면 말해보라.잠시 있다가 ‘할’을 한 번 하고 이르기를모든 형상은 눈으로 들어오고 모든 소리는 귀로 들어온다.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을 마시는구나.알겠는가.晝夜天明暗(주야천명암)春秋地溫冷(춘추지온냉)妙哉這一物(묘재저일물)常放大光明(상방대광명)나무아미타불낮과 밤은 하늘이 맑았다 어두웠다 하
정토사 회주 보광 스님이 ‘제 32회 포교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인 종정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조계종 포교원은 11월25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제32회 포교대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시상식에는 교육원장 진우, 포교원장 지홍, 총무부장 금곡, 문화부장 오심, 교육부장 서봉, 포교부장 정인 스님을 비롯한 교역직 스님들이 참석했다. 이날 시상식은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기 위해 참석인원을 제한했으며, 시상식은 포교원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다.올해 포교대상 대상으로 선정된 보광 스님은
73장은 “대개 사람이 죽음에 임박해서 단지 ‘5온(몸‧감수‧생각‧분별‧인식)’이 모두 ‘공(空性; Śūnyatā,suññ atā)’하고 ‘4대(흙‧물‧불‧바람)’에 ‘(영원‧절대)나’가 없음을 관하면, ‘참된 마음’은 형상이 없어서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니니, 태어날 때 ‘자성’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죽을 때 ‘자성’이 가는 것도 아니다. 담연하고 원적해서 ‘마음’과 ‘경계’가 하나와 같다. 이와 같다면 곧 알 수 있어서 ‘3세(과거‧현재‧미래)’에 구속되거나 결박되지 않고 문득 세상을 벗어난 ‘자유인’이 된다. 만일
먼저 우리 불교학의 발전을 위해 반야학술상을 제정함으로써 불교학자들을 격려해 주시는 존경하는 요산 지안 큰스님과, 제10회 반야학술상 수상자로 저를 선정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저는 13권의 저서와 4권의 번역서, 그리고 85편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저서 가운데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붓다의 과학이야기(참글세상, 2014)’ 그리고 논문 가운데 ‘생명공학에 대한 불교윤리적 조망(불교문화연구, 2002)’ 등 여덟 편의 논문을 통해 불교와 과학의 접목을 시도해보았습니다.이들 저서와 논문에는 다음과 같은
정토사 회주 보광 스님이 2020년 포교대상인 종정상을 수상했다.조계종 포교원(원장 지홍 스님)은 11월9일 “대중매체 포교와 불교학, 문화발전에 공헌한 바가 큰 보광 스님을 제32회 포교대상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포교원에 따르면 보광 스님은 남다른 포교 원력으로 정토학 개척과 대승불교 전반에 걸쳐 많은 연구 성과로 불교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988년 ‘한국정토학회’를 설립해 지금까지 정토학연구 33집을 출간했고, ‘선의 나침반’으로 평가받는 일본 조동종 개산조 도겐 스님의 700여년 전 저서인 ‘정법안장’을 완역 중에
모름지기 불교도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올바른 견해(sammā-diṭṭhi, 正見)를 갖추어야 한다. 올바른 견해에서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등이 나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릇된 견해(micchā-diṭṭhi, 邪見)에서는 그릇된 사유, 그릇된 언어, 그릇된 행위 등이 나올 수밖에 없다. 붓다는 성도 직후, 그릇된 견해를 조건으로 생기는 느낌과 올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생기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올바른 견해가 먼저라고 말했다. “어떻게 올바른 견해가 먼저인가? 그릇된 견해를 그릇된 견해라고 꿰뚫어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추사는 초의 선사와 차 이야기만 나눈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도 불교에 깊이 정통하여 조선시대 대표적인 불교 논쟁인 백파 긍선과 초의 의순의 삼종선·이종선 논쟁에도 뛰어들어 초의를 거들었을 정도였다. 그뿐 아니라 제천송금강경후(題川頌金剛經後)' ‘제불설사십이장경후(題佛說四十二章經後)' ‘백파상찬병서(白坡像贊竝序)' ‘제해붕대사영(題海鵬大師影)' ‘제인악영(題仁嶽影)' ‘오석산화암사상량문(烏石山華巖寺上樑文)' ‘가야산해인사중건상량문(伽倻山海印寺重建上樑門)' ‘
제165칙: 믿음과 발원이 견고하면 극락정토의 연못에 들어간다.수신하지 않고 염불하여도 이익이 있겠지만, 왕생할지 여부는 백 천만 중의 하나를 얻기 어렵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지극히 공손하면 그것이 행운인 점이다. 당신이 지은 두 마디 말은 비록 옳다할지라도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마땅히 고쳐서 “지혜로 번뇌와 음욕을 끊고 고해를 뛰어 넘겠다. 굳은 믿음과 발원을 세우면 극락정토의 연못에 들어간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확실하다. 공부하는 법칙은 모두 이 두 마디 속에 들어있다. 제166칙: 부처님 명호는 팔식의 밭에서 영원히
구마라집 스님은 각기 다른 범어 3개에 대한 한문 번역어로 동일한 상(相)을 사용하여 ‘금강경’을 번역하였다. 첫째는 아상・인상 할 때의 ‘상’으로서 범어로는 산즈냐(saṁjñā)인데 음역은 ‘산야’요 의역은 ‘지식(知識)’이니, 그 반대어인 쁘라즈냐(prajñā)가 ‘반야’와 ‘지혜(智慧)’로 옮겨진 것에 맞춘 것이다. 둘째는 32상・80종호 할 때의 ‘상’으로서 범어로는 락샤나(lakṣaṇa)인데 일종의 징후로 드러나서 감각기관에 감지(√lakṣ)된 모양새를 가리키므로 ‘감지새’로 옮겨놓는다. 셋째는 범어로 니미따(nimitta
67장은 “그러므로 ‘옛사람’이 설하기를, ‘삼악도(지옥‧아귀‧축생)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가사’ 아래에서 ‘사람의 몸’을 잃는 것이 고통이다’고 하시다”이다. 이 내용은 묘희(妙喜, 1088∼1163)와 죽암(竹庵, 1082∼1146)이 편집한 ‘선림보훈’의 설이다. 해석하길 “옛사람이,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않으면 한 방울의 물조차 소화하기 어렵다’하시니, 이것은 가사 아래에서 ‘사람 몸’을 잃게 되는 이유이다. 불자들아! 분발하고 분발하라! 이 장은 하나의 ‘아하(62장)’라고 한 것에서 시작하여 하나의 ‘옛말(현재 6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주·객관의 화합(인연)으로 상의상관(연기)하면서 조건 지어져 있으므로 고정적 실체라고 할만한 것은 없다. ‘고정적 실체가 없음(無自性)’을 ‘공성(空性)’이라 하는데, 이것은 조건 지어져 있는 모든 존재의 연기성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이를 용수는 ‘중론’ 관사제품(觀四諦品) 제19송에서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어떠한 존재도 인과 연의 화합으로 생겨나지 않는 것은 없네(未曾有一法 不從因縁生). 이런 까닭에 모든 존재는 공하지 않는 것이 없네(是故一切法 無不是空者).”‘연기=공’이라는 명철한 논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