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지장경(地藏經): 삼계교는 모든 경전 가운데 ‘지장십륜경’을 빈번하게 인용하고 있다. ‘지장십륜경’은 삼계교 지장3부경인 ‘점찰선악업보경’ ‘지장보살본원경’보다 빈도가 높다. 특히 ‘삼계불법’ 4권 가운데 ‘지장십륜경’의 인용 횟수는 무려 120회에 달한다. 특히 신라 신방 법사는 651년 신라에 삼계교(지장교) 사상을 전하고자 현장 법사가 쓴 경전을 번경하며, 서문을 통해 삼계사(三階師) 위치를 정립했다. ‘지장십륜경’에서 지장은 “말세구제의 본원에 의해 악 비구를 옹호하고 있다. 속인의 삼보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심을 요구하고
이번에는 삼계교 역사에 어떤 특이점이 있고 이 사상은 어떻게 신라로 들어오게 됐는지를 다뤄보고자 한다. ①삼계교는 역대 조정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신행 스님(540~594)의 입적 이후로도 무려 400여년간 유지됐다. 10세기초 (宋代初)가 되어서야 그 흔적이 끊어졌다.②불적(佛籍) 이외의 사료가 제법 많다. 탄압으로 인해 불교 사적류가 많이 사라졌다. 이에 사적류보다는 금석문과 불교사적(佛敎史籍) 이외의 사료가 다수다. ‘역대삼보기’의 신행 약력과 ‘속고승전’ 습선편에 있는 전기(傳記)를 통해 신행(信行) 스님에서 본제(本濟),
앞서 보았듯 삼계교는 왕실·귀족·대사찰로부터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또 불교권에서도 교리에 대한 해석과 주장이 달라 찬반의 상반된 형태를 나타냈다. 삼계교에서는 정토에 관한 설을 주장하고 있다[15가(家)의 이설(異說) 가운데 14번째의 설]. 또 삼계교 탄압으로 흩어진 여러 자료 가운데 유독 정토교 방면에 대해 논한 것이 다수 발견됐다. 삼계교는 아미타불내지 정토개념에 대한 반대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토교와는 소견이 달랐다. 도대체 어떠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중국 남북조말기는 수당불교를 일으킨 중요한 전환기였다. 이 계기
보통 종교의 흥망성쇠는 시대의 정치와 그 운을 같이한다. 본고의 4회 끝에서도 언급했듯 삼계교는 무진장행등의 훌륭한 행법으로 가난으로 인해 고통받는 빈고의 중생을 제도했으나 정부·귀족들 손익에 영향을 줘 탄압의 원인이 됐다. 무진장시(施)를 펼치고자 했던 무진장원(院)이 폐쇄됐고,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무제(武帝) 폐불 원인인 승려 타락에 삼계교가 직간접적 영향을 받았다는 것. 둘째 후원자 고경의 실각으로, 유일한 재원활동인 무진장행이 금지됐다. 그렇다면 시기에 따라 어떤 탄압의 역사가 있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
삼계교에 대한 자료는 상당히 폭 넓다. 실천적 행법 또한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지면 관계상 여기서는 ‘삼계교와 지장신앙이 어떠한 경전 유통을 통해 어떻게 사상을 성행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해 간략히 논하도록 하자. 신라에서 일어난 지장(삼계) 사상에 대해서는 마지막 연재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사실 지장교(지장신앙) 발원지는 삼계교이다. 하지만 다섯 번에 걸친 정부의 탄압으로, ‘삼계’라는 이름과 함께 ‘지장’이란 명칭은 더이상 겸용할 수가 없게 됐다. 삼계교 역사는 이렇듯 900년대 중반까지 그늘 속에서 점차 잊혀져 갔다. 삼계
삼계교는 시(時)·처(處)·인(人) 삼계(三階)에 있어서 지금은 제1계도 제2계도 아닌 제3계 말법시(末法時)이고, 그 처소도 정토가 아닌 예토(穢土)이며, 따라서 제도될 인간도 일승보살이나 삼승이 아니라고 한다. 말법시에 일체 공견유견을 파계 한 사견(邪見) 중생들이라는 것이다.이러한 말법시에 제3계 중생들의 공견유견의 병을 멸하는 방법은, 제3계 불법에 있으며 그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이 삼계교의 핵심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3계 불법 중심사상에는 어떠한 내용이 있을까?결론부터 말하면 제3계 불법의 중심사상은 ‘보경(普敬)’과 ‘인
‘무진장행법’은 삼계교의 경제관이다. 이를 분명히 알기 위해선 신행 스님의 출생전 사회경제적 혼돈 상황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으나 여기서는 곧바로 삼계교도의 무진장행시로 넘어가도록 하자. ‘무진장행’(法·施)은 삼계교의 경제적 원리이다. 경·율에 입각해 실천적으로 그 행법내지 베품을 실시한 것이다. 삼계교도들은 이러한 경제적 관념을 도입했다. 민중을 도와 그들의 의복과 양식 등 생활을 윤택하게 하면서 이를 수행과 연결시켰다. 이는 불교사에 있어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념은 어떤 경전에서 출처를 찾을 수 있을까.‘화엄
삼계교의 창시는 신행 스님(540~594)이 고안한 특출한 사상이다. 말법관에 의지해 모든 불교를 시(時)·처(處)·인(人), 삼계(三階)로 분류했는데, 이는 교법 가치에 의존하기 보단 시대적 기능을 중시했다. 시기 상응의 실천적 포교 방법으로 당시 불교를 지양하며 발전한 종파다. 이렇게 훌륭한 사상을 지닌 삼계교가 왜 근대에 이르러 빛을 발하게 됐을까. 그 원인으로 ‘삼계교 탄압’이 지목되고 있다.삼계교는 수대(隋代)의 신행 스님에 의해 창시돼 당대(唐代)에 걸쳐, 불교의 위기를 극복하고 민중을 기반으로 교단을 재구성하려고 했던
삼계교 또는 삼계종이라 불리는 종파가 오늘의 중심과제다. 우선 간략하게 그 사상에 대하여 정의해 보기로 하자. 신행(信行, 540~594)이 창시한 삼계교는 시기를 따라 법도 그 가치가 변해, 최승의 법문도 말법(末法)의 시대에는 실효를 잃어버린다는 것으로, 불교를 나누어 삼계(三階, 시계·처계·인계)로 나눠 불법을 배당하는 것이다. 먼저, 삼계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①때(時)로서는, 불멸후 첫 500년은 제1계, 다음의 500년은 제2계, 1000년 내지 1500년 이후는 제3계이다. ②거주처(處)로서는, 정토연화장세계 내
불교(佛敎)는 글자 그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를 종교라는 개념에서 바라보면 그 뜻이 다소 멀게 느껴지게 된다. 그렇다면 종교(Religion)의 일반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1) 신이나 절대자 등과 인간과의 관계로서 보는 정의, 2) 신성감·외경 감정 등 종교에서 보이는 특정한 심리 상태를 기준으로 하는 정의, 3) 특정 가치 체계를 갖춘 인간의 생활 활동으로서의 정의. 이를 근대적인 의미로 표현하자면 결국 인간(자신)의 고독 탈피를 위한 정신적인 몸부림의 소산이다. 또한 이것은 절대적 신념 체계이며 궁극적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