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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 불교유산까지 껴 넣은 ‘가톨릭 성지순례길’ 추진

  • 사회
  • 입력 2021.09.03 14:46
  • 수정 2021.09.10 14:55
  • 호수 1600
  • 댓글 19

8월26일, 수원교구와 ‘성지 순례길’ 조성 업무협약 체결
나눔의집·남한산성·천진암 등도 가톨릭 성지순례길에 포함
불교계 “역사왜곡에 시장이 가톨릭에 광주시 헌납한 행위”

광주시와 천주교 수원교구가 8월26일 순례길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광주시와 천주교 수원교구가 8월26일 순례길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경기도 광주시가 나눔의집과 조선시대 스님들이 피와 눈물로 쌓아올린 남한산성을 비롯한 천년고도 광주의 역사문화유산을 가톨릭 성지순례길에 편입시켜 세계화하겠다고 공표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엄연한 역사왜곡일 뿐만 아니라 신동헌 광주시장이 광주시를 가톨릭에 헌납하겠다는 것이자 다종교사회에서 지자체가 앞장서 종교갈등을 부추기는 졸속편파행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경기 광주시(시장 신동헌)는 8월26일 보도자료를 통해 천주교 수원교구와 ‘천진암성지 廣주 성지 순례길’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불교계를 비롯한 다른 종교계나 단체들의 의견 수렴도 전혀 없이 가톨릭계에서 순교성지로 주장하는 남한산성과 천진암을 잇는 성지 순례길을 만들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광주시와 천주교 수원교구는 협약에 따라 순례길 홍보와 운영을 상호 협력하고 실무위원회를 구성해 유기적으로 협조키로 했으며, 이를 통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과 같은 세계적 명소이자 관광지로 만든다는 방침이다. 신동헌 광주시장은 “남한산성과 천진암을 잇는 광주 순례길은 전 세계에서 오직 광주시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무이한 자산”이라며 “천주교 신자는 물론 일반 관광객도 찾는 명품 둘레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용훈 주교도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와 순교성지를 잇는 광주 순례길 사업을 함께 하게 돼 너무 기쁘다”고 흔쾌히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도 광주시가 배포한 가톨릭 성지순례길 코스에는 불교계가 건립해 운영하고 있는 나눔의집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 순례 코스에는 불교계에서 설립·운영하고 있는 나눔의집과 승군의 호국역사가 깃든 남한산성을 비롯해 가톨릭과는 전혀 무관한 조선백자도요지, 신익희 생가, 허난설헌 묘, 경안습지생태공원 등까지 모두 가톨릭 성지 순례길에 포함돼 있다. 가톨릭 성지순례길이라는 개념 아래 천년이 넘는 광주시의 역사문화유적지까지도 하위 개념에 종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가톨릭에서 성지라고 주장하고 있는 천진암(天眞庵)은 명칭 자체에서 드러나듯 스님들이 거주했던 암자로 가톨릭 성지 이전에 불교의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천진암은 스님들이 천주학을 공부하던 이들을 보호하려다 폐사에까지 이른 곳으로 불교계로서는 목숨을 걸고 다른 종교를 품어준 자비의 공간임에도 오늘날에는 가톨릭에 의해 불교 흔적조차 지워지고 있는 배신의 공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은 “역사적 사료와 근거들이 무수히 존재함에도 한국 가톨릭에서는 천진암이 본래 절이 아니라 작은 초막이라고 억지를 부려 자신들만의 성지로 조성하려 애쓰고 있다. 박해 받던 중생들을 자비정신으로 돌보며 평화와 공존의 공간이 돼야할 천진암이 어느 순간 이들에 의해 배신과 왜곡의 현장이 됐다”며 “광주시의 가톨릭 성지순례길 추진은 한국 역사와 다른 종교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된 행정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가톨릭 성지순례길에 나눔의집을 포함시킨 것도 불교계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눔의집은 30여년 전 월주 스님을 중심으로 불교계의 원력을 모아 개설한 위안부 피해자 지원시설이다. 더욱이 최근 이사 스님들의 후원금 횡령 등에 대해 혐의가 전혀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무리한 행정처분으로 이사진 전원을 해고해 경기도가 불교계로부터 나눔의 집을 빼앗기 위한 수순을 밟는 데 광주시도 적극 동참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남한산성 역시 가톨릭 성지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임진왜란 때 목숨을 걸고 전장에 뛰어들었던 스님들이 스스로 먹거리를 해결하며 지은 것이 남한산성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또한 남한산성 축조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장경사, 망월사, 동림사, 옥정사, 개원사, 남단사, 한흥사, 국청사, 천주사 등 숱한 사찰이 현존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를 철저히 외면한 채 광주시가 남한산성을 가톨릭 성지로 공인하는 것은 종교 갈등을 불러일으키겠다고 작정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역사학자인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는 “광주시와 가톨릭의 역사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로 호국불교의 상징인 남한산성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퇴색시켜서는 결단코 안 된다”며 “이는 역사를 조작하는 심각한 행위로 일각의 의도대로 이러한 인식이 고착화되면 우리 역사가 작위적으로 둔갑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광주시는 이와 관련한 법보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사업은 초기 논의단계로 명확히 결정된 바는 없으며 특정종교에 국한돼 변모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모든 종교를 아우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광주시의 이 같은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이미 광주시는 가톨릭과 업무협약까지 체결하며 ‘천주교 순례길’ 조성의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 위원장 도심 스님은 “명백한 역사왜곡임에도 지자체가 나서 갈등을 부추기는 사업을 추진하는 행위는 다종교사회에서 심각한 종교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광주시의 가톨릭 성지순례길 조성 사업은 대단히 중대한 문제로 종단 차원에서 논의 후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김내영 기자ny27@beopbo.com

[1600호 / 2021년 9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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