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광주시가 호국불교 성지 남한산성과 천주학을 공부하던 이들을 보호하다 스님들이 희생되고 폐사된 천진암, 나눔의집을 비롯해 광주시의 역사문화유산을 껴넣은 ‘가톨릭 성지순례길’ 사업 추진과 관련해 역사왜곡과 종교갈등 소지를 인정하고 공식 사과와 함께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광주시(시장 신동헌)는 10월5일 조계종 총무원으로 ‘가톨릭 순례길’ 조성사업에 관한 공문을 발송해 이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공문은 조계종 사회부가 9월13일 광주시에 ‘가톨릭 순례길’ 추진 배경과 사업 백지화를 요구하는 항의공문을 보낸데 따른 회신이다.
앞서 광주시는 천주교 수원교구와 순례길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남한산성과 천진암을 잇는 32km의 성지순례길을 만들겠다고 공표했다. 그러나 이 순례길에는 불교계가 설립·운영하고 있는 나눔의집과 승군의 호국역사가 깃든 남한산성을 비롯해 가톨릭과는 전혀 무관한 조선백자도요지, 신익희 생가, 허난설헌 묘 등 관광명소가 대거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가톨릭 성지순례길이라는 개념 아래 광주시의 역사문화유적지까지 하위 개념에 종속시켜 종교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광주시는 공문에서 “호국불교 성지인 남한산성과 천진암 스님들의 희생,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나눔의집을 특정 종교 성지로 왜곡해 비춰질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또 사업추진 배경과 관련해서는 “불교계의 숭고한 가르침과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한 남한산성의 ‘호국불교’ 가치와 천진암의 자비정신을 광주시민들은 자부심의 역사로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규제로 묶인 광주시의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세계 명소화하고자 ‘광주순례길 조성사업’을 추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광주시는 “향후 종교적 갈등과 역사왜곡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그간 사용했던 ‘남한산성~천진암 성지 광주순례길’ 사업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처음부터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향후 본 사업에 대해 귀 원과 협의해 추진할 예정”이라며 “사업이 원활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법보신문은 9월10일 ‘경기도 광주시, 불교유산까지 껴넣은 가톨릭 성지순례길 추진’ 기사와 기고를 시작으로 ‘가톨릭 순례길’에 대한 문제점과 불교계의 반발을 지속적으로 보도했다. 조계종 중앙종회, 종교평화위원회, 광주불교사압연합회, 대한불교청년회,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는 잇따라 성명을 발표해 광주시의 종교편향적 행위를 규탄했으며, 조계종 전국비구니회도 이같은 문제들에 대한 대응 방안 모색을 위해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조계종 사회부장 원경 스님은 “광주시가 ‘가톨릭 순례길’에 대해 사과하고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공문이 올 수 있었던 데에는 법보신문의 역할이 컸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남한산성과 천진암에 대한 잊혀진 역사를 발굴하고 불교적 가치를 조명하는 작업과 더불어 광주시뿐 아니라 전국 유사 사례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내영 기자 ny27@beopbo.com
사회부장 원경 스님 입장문 전문.
광주시 종교편향 사과 관련 입장문
최근 광주시의 '천진암 성지 광주 순례길' 사업추진과 관련,
광주시에서 해당 사업 명칭의 부적절성에 대한 사과와 함께
명칭 수정 및 사업 재검토 결정을 해준데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종단은 광주시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민족의 역사와
우수한 전통문화콘텐츠가 바르게 해석,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종단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종교사회에서 공공기관의 종교편향
정책이 초래하는 소모적인 국민갈등을 예방할 기구와 법체계를 마련해줄 것을 현 정부와 모든 지자체에 요청합니다.
불기2565(2021)년 10월 7일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부장 원경
[1604호 / 2021년 10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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